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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 내세우는 ‘젠틀몬스터’ 공간 브랜딩 [허태윤 브랜드 스토리]

슬로건 "세상을 놀라게 하라"
예술적 공간으로 소비자에게 감각적 브랜드 이미지 각인

 
 
서울 신사동에 위치한 '젠틀몬스터 하우스 도산' 모습. [사진 젠틀몬스터]
 
로봇연구소를 운영하는 패션기업이 있다. 이 기업은 50년 된 대중목욕탕을 매장으로 만들더니 인형의 집, 세탁소를 콘셉트로 이색 매장을 선보이고, 쇼룸을 복합문화 공간형태인 만화 가게로 나타내기도 한다.  
 
2011년에 만들어진 이 브랜드는 10년 만에 세계적인 팝스타이자 패션 아이콘인 마돈나와 최고모델 지지하디드 등 글로벌 셀럽들이 먼저 찾는 브랜드가 됐다. 그뿐만 아니다. 루이비통을 보유한 세계적인 명품 그룹인 LVMH의 계열사 엘 카터 톤(L CHATTERTON)이 700억원을 투자하면서 아시아에서 가장 독창적인 브랜드로 인정받았다.  
 
이탈리아 명품브랜드 ‘팬디’, 미국의 ‘알렉산더 왕’, 밀라노의 라이프스타일 편집매장 ‘10 꼬르소꼬모’등이 먼저 러브콜을 보내며 성공적인 콜라보레이션을 만들어 냈다. 이들이 플래그십 매장을 오픈하면 마치 새로운 전시의 개막을 기다리듯 업계와 명품 브랜드들 그리고 럭셔리 소비자들이 기대한다.  
 
외형적으로도 현재 아이웨어 브랜드로는 드물게 중국, 뉴욕, 런던을 포함한 주요 도시에 50여 개의 직영 매장을 운영 중이며, 30개국 400여 매장에서 3000억원(2019년 기준) 매출과 더불어 30%에 가까운 놀라운 영업 수익을 올리고 있는 ‘몬스터’로 성장했다. (2020년은 코로나로 매출이 감소했지만 영업이익률은 유지를 하고 있다)  
 
이는 유럽의 신흥 럭셔리 브랜드 이야기가 아니다. 파격적이고, 창의적인 디자인, 그리고 공간마케팅을 통해 브랜드의 독특한 자기다움을 만들고 있는 이 브랜드는 토종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 이야기다.  
 

홍보 예산 대신 디자인에 투자  

중국 상하이에 위치한 젠틀몬스터 매장. [중앙포토]
 
젠틀몬스터는 영어캠프를 운영하는 회사에 다니던, 디자인과는 전혀 인연이 없던 김한국 대표가 회사 대표를 설득해 만든 안경테 회사가 그 출발이다. 규제가 심한 사교육 시장을 극복할만한 새로운 사업을 물색하다가 어떠한 상황에도 규제를 받지 않는 동시에 대기업과도 경쟁이 없는 안경테 사업에 주목했다. 
 
사업 초기, 유명 타투이스트와 협업 작업을 진행하며 내심 그를 설득하면 유명 연예인이 젠틀몬스터 제품을 착용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이 타투이스트는 연예인에게 끝내 제품을 주지 않았다. 이유는 충격적이게도 “제품이 예쁘지 않기 때문”이란 이유였다. 여기서 김 대표는 안경테도 예쁘지 않으면 소비자에게 선택되지 않는다는 디자인에 대한 본질적 니즈를 절실히 깨우쳤다고 한다. 이후 수개월 동안, 주요 타깃층인 ‘패션피플’이 원하는 차별화된 디자인 개발에 몰입한 끝에 시장에서 서서히 반응을 얻게 된다. 
 
젠틀몬스터는 이후부터 모든 마케팅과 홍보 예산을 디자인에 쏟아 붓는다. 대표 스스로가 디자인 공부를 미친 듯이 한다. 직원이 몇 안 되는 회사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 디자이너들을 선발하고, 외부 전문가들과 협업을 진행하는 등 기존 아이웨어 업체들과는 현격한 차이를 만들며 디자인 수준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  
 
그러던 중 젠틀몬스터는 또 다른 반전의 기회를 맞게 된다. 2014년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주인공 천송이가 젠틀몬스터 선글라스를 쓰고 나온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많은 돈을 들인 PPL이 아니었다.  
 
당시 전지현이 선글라스를 쓰는 장면이 있었지만 선택할 수 있는 제품의 종류가 200가지가 넘었다. 브랜드의 존재감이 크지 않았던 ‘젠틀몬스터’도 전지현 스타일리스트에게 전달됐지만, 선택의 여부는 누구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결국 뛰어난 디자인을 가진 제품력이 브랜드의 운명을 갈라놓은 셈이다. 이것이 젠틀몬스터가 ‘천송이 선글라스’로 알려지면서 국내는 물론 중화권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된 시발점이 된다.  
 
그런데 또 여기서 타 브랜드와 다른 행보를 걷는 ‘젠틀몬스터’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히트한 드라마 PPL은 단기간에 소비자에게 관심과 인지도를 높이는데 큰 효과를 가지지만 지속성을 가지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관심의 효과를 지속시키는 것이 브랜드의 진정한 실력이라 할 수 있다.
 
젠틀몬스터는 이렇게 만들어진 인지도를 플래그십 스토어에서의 브랜드 경험으로 연결해 팬덤을 만들어 나간다. 공간을 활용한 브랜딩이다. 논현동에서 시작한 쇼룸을 청담동, 홍대로 확장하면서 매장 자체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대중 목욕탕을 개조해 쇼룸으로 만든 젠틀몬스터 매장. [사진 젠틀몬스터]
 
보통의 안경가게가 아닌 ‘젠틀몬스터’의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는 초현실 예술 공간으로 만든 것이다. 제품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초현실 예술 작품으로 가득 채운 갤러리 공간 같은 매장에서 ‘젠몬다움’을 경험하는 브랜드 공간이다. 서울 북촌에서는 오래된 목욕탕을 개조해 ‘BATH HOUSE’라는 공간으로 새롭게 탄생시켰고, 홍대 매장은 25일마다 매장 디스플레이 콘셉트를 바꾸는 ‘퀀텀 프로젝트’를 3년 동안 지속했다.  
 

예술 공간 선보이며 ‘젠몬다움’ 경험 제공

대구 매장은 세탁소를 콘셉트로 세상을 놀라게 했으며, 압구정동에 매장에는 폭탄을 맞은 듯한 건물의 잔해 속에 자체 로봇연구팀이 만든 6족 보행 로봇이 어슬렁거리며 신기하고 낯선 경험을 소비자에게 제공하고 있다. 당연히 고객들은 자발적인 SNS 활동을 통해 확산에 일조했다.  
 
젠틀몬스터는 돈을 내는 광고를 통해 브랜드를 알리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이 대중적인 브랜드를 지향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브랜드 차별화는 고객의 브랜드 경험에서 나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특히 패션처럼 소수의 오피니언 리더가 반응해야 대중이 움직이는 시장에서는 오피니언 리더들에 대한 브랜드 경험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젠틀몬스터’란 브랜드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김한국 대표는 사업을 시작하기 전 3개월 동안 칼을 옆에 두고 100권의 책을 읽겠다고 결심한다. (칼을 옆에 둔 이유는 자신의 결심이 흐트러지거나 책에 집중하지 않으면 손을 잘라 버리겠다는 비장한 결심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당시 특히 뇌과학과 심리학에 관련된 책을 많이 읽으면서 인간의 소비 심리와 관련된 인사이트를 얻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안에 지금과 다르게 살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도 그랬다. 그것이 몬스터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라고 한다. 그래서 ‘젠틀몬스터’는 젠틀하게 삶을 살아가되 내면에 감춰진 몬스터적인 욕망을 표출하고자 하는 인간의 속성을 반영한 심리학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아이웨어로 시작했지만 젠틀몬스터는 라이프스타일 패션 브랜드이다. 이들이 만드는 브랜드 경험은 비단 공간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향을 만드는 조향사, 미디어아트 전문가, 로봇 전문가, 바리스타, 파티시에, 소믈리에 등 다양한 영역에서 창의성을 가진 직원들에 의해 공감각(共感覺)적으로 만들어진다.  
 
하나의 감각이 다른 영역의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공감각적 경험은 그렇기에 입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젠틀몬스터 브랜드 DNA를 물려받은 스킨케어 브랜드 ‘템버린즈’ 와 새로운 디저트 판타지를 그리는 ‘누데이크’의 성공적인 출시를 보면 그 말에 수긍이 간다.
 
최근에는 젠틀몬스터가 중국 베이징 최고의 럭셔리 백화점 SKP-S의 요청으로 백화점 공간 디자인에 참여해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켜 그들의 미래를 누구도 예측할 수 없게 만들었다. 젠틀몬스터 브랜드 이념이자 가이드 라인은 ‘세상을 놀라게 하라’이다.
 
이런 이념 아래에 세상을 놀라게 하기 위한 독특하고 기발한 디자인과 그 브랜드를 독창적이고 빛나게 하려는 다양한 예술적 시도를 통한 브랜드 경험을 성공적으로 만들어 오면서 짧은 기간에 브랜드 위상을 높여왔다.앞으로 이들이 어떻게 세상을 계속 놀라게 하며 진화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 허태윤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대학교수다. 제일기획과 공기업, 플랫폼과 스타트업에서 광고와 마케팅을 경험했다. 인도와 미국에서 주재원으로 일하면서 글로벌 마케팅에 관심을 가졌고, AR과 플랫폼 기업에 관여하면서 플랫폼 기업의 브랜딩을 연구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 광고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한신대 평화교양대학 교수다.


허태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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