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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탑 티어’ 개발자가 한국 스타트업에 합류한 이유

[인터뷰] 구현서 클래스101 신임 CTO
아마존에서 원클릭 결제서비스 개발 참여
반년 넘는 “같은 꿈꾸자” 설득에 넘어가

 
 
구현서 클래스101 CTO가 지난 9일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종근 기자]
 
온라인교육 스타트업 클래스101은 7월 27일 구현서 전 몰로코 한국대표를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영입했다고 밝혔다. 이 업체는 구 전 대표를 영입하면서 CTO 자리를 만들었다. 기대감도 감추지 않았다. 고지연 클래스101 대표는 “업계에서 주목받는 전문가인 구현서 CTO와 함께 세계 시장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키워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구 CTO의 이력을 보면 이유 없는 기대감이 아니다. 구 CTO는 지난 2012년부터 5년 동안 미국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근무했다. 해외 직구에 꼭 필요한 환전 서비스를 개발했다. 또 2016년엔 실리콘밸리의 애드테크 기업 ‘몰로코’로 옮겨 광고 플랫폼을 개발했다. 이 업체는 지난 5월 10억 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유니콘’에 등극했다.
 
이력이 화려한 만큼, 클래스101 행은 이례적이다. 2019년 클래스101은 시리즈A 라운드에서 120억원을 유치했을 만큼 잠재력은 인정받지만, 구 CTO가 몸담았던 곳에 비하면 기업 규모는 크지 않다. 아마존과 몰로코가 테크 기업이라면, 클래스101은 강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콘텐트 기업에 가깝다. 클래스101은 왜 구 CTO를 원했고, 구 CTO는 왜 모험을 선택했을까.
 
이런 물음에 구 CTO는 “일단 회사를 충분히 알고 싶다”고 말했다. 이후 보름여 간의 상견례를 끝낸 구 CTO를 [이코노미스트]가 만났다.
 
한 달간 어떤 일을 했나.
사람 공부를 했다. 한 명씩 만나 이야기하면서 어떤 사람이 있고, 이 사람이 어떤 역할을 하고, 이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꿈을 이룰 수 있을까를 파악하고 지냈다. 일을 효율적으로 하려면 서로 잘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A를 말했을 때 A로 받아들여지게 하려면 서로 잘 알아야 한다.  
 
한국에선 보통 술자리에서 파악하는데.
마다하진 않는다. 그런데 술자리에서 할 이야기는 평상시에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가능하다고 본다. 신변잡기 같은 이야기로 시작해도 1대 1로 이야기 나누다 보면 속 깊은 말이 하나씩 나온다. 한국에 있다가 미국 아마존으로 넘어갔을 때 가장 크게 느꼈던 차이점이 1대 1 면담 문화였다.
 
1994년생 대표와 소통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
격식 없는 분위기다. 수평적으로 일하자는 사람끼리 모인 곳이라 그런 것 같다. 오픈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한단 점에서 실리콘밸리보다 앞서나가는 면도 있다. 직원들이 작은 일이라도 사내 게시판에 올려 공개적으로 논의한다. 처음엔 어색한 감이 없지 않았는데, 최대한 발맞추려고 한다.  
 
5년 주기로 소속을 옮기는 것 같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사실 지루함을 빨리 느낀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한 곳에서 2년이면 지루해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아마존은 2년마다 한 번씩 부서를 옮겨준다. 그래서 2016년까지 5년간 있었다. 그러다 학교 친구들끼리 뭉쳐 애드테크 스타트업인 ‘몰로코’를 만들었다. ‘안 그래도 뛰어난 친구들인데, 나까지 가면 더 좋겠는데?’란 마음으로 참여했다.
 
지루해질 때쯤 클래스101에서 제안이 왔나.
원래는 옮길 생각이 없었다. 클래스101에서 처음 이야기를 꺼낸 건 올해 초였다. 그런데 서두르지 않더라. 같이 시간 맞춰 농구도 하면서 꽤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다. 그러면서 ‘같은 꿈을 꿔 달라’는 말을 하더라. 그래서 CTO라는 자리를 만들고, 비워놨다고 했다. 그런 접근이 마음을 움직였다. 급한 일을 막으려고 저를 찾았다면 거절했을 거다.  
 
어떤 꿈을 말하던가.
“모두가 사랑하는 일을 하면서 살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하려면 플랫폼이 필요하니 만든 것이 클래스101이었고, 지금까지 사람이 한 땀 한 땀 콘텐트를 기획하고 제공해왔다. 그런데 이제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이런 콘텐트를 경험하도록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비전 없는 스타트업은 없지 않나.
새로운 직장을 찾을 때 ‘경영진이 미쳐있는가’를 가장 먼저 본다. 꿈이 크고, 꿈만 보고 질주하면 시장 1등 같은 성과는 뒤따라온다. 다만 그러다 보면 놓치고 가는 부분이 있는데, 그걸 채워주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클래스101 창업 멤버들은 열 번이나 실패했다더라. 정말 마지막으로 해보자고 만든 게 클래스101이었다. 그 이야기 듣고 ‘정말 미쳐있구나’라고 느꼈다.  
 
어떤 점을 채워줄 수 있다고 보나.
비즈니스가 커지다 보면 우선순위 고민 없이 확장하기 쉬운데, 그 점에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열 번 실패했던 역사에서 진정성 봤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클래스101 사무실 내부 모습. [사진 클래스101]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아마존은 스스로 ‘지구상에서 가장 소비자 중심적인 커머스’라고 하는데, 실제로 그렇게 움직인다. 예를 들어 원클릭 결제에 통화 환전 서비스까지 넣는 작업을 제가 맡았다. 은행이 가져가던 환전 수수료를 우리가 가져가자는 목적이었다. 결제액의 1%만 가져가도 수백만 달러를 추가로 벌 수 있었다. 그런데 전에 한 번 개발했을 때 결제에 걸리는 속도가 0.1초 안쪽으로 느려졌다. 그래서 서비스를 취소한 적이 있다고 했다. 당장의 이익 때문에 원칙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만큼 우선순위가 분명하단 뜻도 된다.
 
클래스101에 적용해보자면.
매칭 프라블럼이다. 내가 모르는 세상 어딘가에는 내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콘텐트가 있다. 그런데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니 찾긴 어렵다. 나도 이런 막막함 때문에 한국에서 10년 일하다가 유학을 결심했다. 결국 기술로 해결해야 할 부분이라고 본다. 머신러닝 기술을 도입해서 수강생과 크리에이터(선생님)를 매칭해주는 것이다. 제가 주로 다루고 싶은 건 이 문제다.
 
인력 효율화 고민도 있다고 들었다.
강의 하나를 기획·운영하는 데 인력이 상당하다고 들었다. 크리에이터를 발굴하고, 홍보해주고, 영상을 올려주는 역할이 있는데, 각각을 조금씩 자동화해나가야 할 거다. 예를 들어 크리에이터가 쉽게 쓸 수 있는 편집 툴을 제공하고, 크리에이터가 영상을 올리면 클래스101은 리뷰만 해주는 식이다. 이렇게 기술지원을 늘리면, 섭외 가능한 크리에이터 수도 늘 거다.
 
영입 발표 때 고지연 대표가 직접 기대감을 밝혔다. 이에 답을 준다면.
들어오기 전에 물었다. ‘이런저런 비즈니스 개발하고 싶을 거고 내가 오면 더 빨라질 거라고 기대할 거다. 그런데 내가 오면 더 느려진다. 기다릴 수 있겠나.’ 빠르게 달리기 위해 포기한 것들을 다시 챙겨야 하므로 당장은 느려질 수밖에 없다. 대신 2년 뒤에 보면 성장이 빨라졌다고 느낄 거다. 

문상덕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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