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러시아가 달라졌다’ 바이든 외교는 사면초가에 그로기 [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푸틴의 외교 공세와 무력시위 앞에 움츠러든 바이든 외교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위협에 남미 파병 카드로 미국 압박
우크라이나가 알아서 버티라는 나토, 유럽 내 미국 입지 약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각)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듣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이 1월 20일로 취임 1년을 맞았다. 전날 백악관에서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 나타난 바이든은 우울하고 힘들어 보이는 표정이었다.
 
미국 내의 낮은 지지율, 국제사회에서의 실망감, 그리고 최근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 러시아와 벌이고 있는 힘겨루기가 취임 1주년 회견의 주요 주제였다. 바이든은 축하해야 할 위임 1주년의 날에 시종 무기력한 모습을 연출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것으로 본다”는 이야기를 할 때는 의기소침한 모습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의 지도자에게서 보기 힘든 표정이었다.
 

러시아의 대두·약해진 나토… 바이든 행정부 ‘총체적 난국’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3월 10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화상으로 열린 터키 원자력 발전소의 세 번째 원자로 건설 기념식에 참석해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1년 전 “미국이 돌아왔다”며 전 세계에 기염을 토했던 상원 외교위원장 출신의 외교·안보 전문가 대통령의 위세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주목되는 것은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정책 위기상황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국제사회에서 사면초가에 빠진 채 그로기 상태가 되고 있다.
 
지난해 미·중 경쟁에 집중하기 위해서라며 국제사회의 비난과 신뢰 하락을 감수하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했지만, 대중 압박은 제대로 시작하지도 못하고 있다. 지난해 연말부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금지해달라고 요구하며 미국과 서구 국가들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 바이든 행정부는 러시아에 농락당하고 유럽 동맹으로부터는 믿음을 잃어가는 상황을 맞고 있다. 한마디로 위기 상황이다. 가장 문제는 나토의 미래다. 나토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냉전 이후 사라지지 않고 민주주의·시장경제 수호동맹을 자처하고 있지만 사실상 미국 주도의 정상회의 클럽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평가다.
 
러시아는 연일 미국에 직격탄을 날리며 공세다. 우크라이나 침공 위협에 이어 쿠바·베네수엘라 파병 방안까지 동원하며 외교를 통한 ‘협박 총력전’에 나서고 있다. 60년 전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소련의 니키타 흐루쇼프 서기장이 미국의 눈앞엔 쿠바에 미사일을 배치하는 문제를 놓고 벌였던 ‘쿠바 위기’라는 악몽을 반추하며 미국을 위협하는 역사 정치다.
 
여기에 더해 남미 반미연대의 ‘행동대장’ 격인 베네수엘라에 러시아군을 배치하겠다며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모스크바에서 국경까지 490㎞ 떨어진 우크라이나를 서방 동맹기구인 나토에 가입하지 못하도록 미국에서 멀지 않은 남미에 러시아군을 주둔시키겠다는 위협이다. 실제로 러시아는 베네수엘라까지 장거리 전략폭격기를 보내는 훈련을 수시로 벌여왔다. 의도가 궁금했던 러시아의 포석이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비수로 나타난 셈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런 식으로 ‘나토 동진 저지’라는 목표를 내세워 ‘21세기 강대국 복귀’라는 국가목표의 달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러시아와 푸틴의 능수능란한 ‘궁즉통’ 외교 앞에 미국과 바이든 행정부는 앞에 미국 연일 밀리는 형국이다.
 

우크라이나 눈앞에서 육군 전력 뽐내는 러시아

러시아 장갑차 호송대가 18일(현지시각) 크림 반도의 고속도로를 따라 이동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는 여차하면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수 있다는 걸 과시하기 위해 10만 병력으로 우크라이나를 동북부·동부·남부의 삼면에서 포위하고 있다. 오랜 군사 개혁을 통해 양성한 엘리트 육군을 우크라이나 주변에 전진 배치한 것은 물론 훈련을 명분으로 우크라이나 서북쪽의 벨라루스에도 주둔시켰다.
 
러시아 육군은 자동차화보병과 기갑에 다연장로켓포 등을 앞세운 포병을 결합한 여단급 부대가 독자작전을 펼 수 있도록 구성됐다. 러시아군 훈련 영상에선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이동식발사대가 지상부대를 따라다니는 진귀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대전차·지대공·지대지 미사일을 구비해 상대의 항공·기갑 공격에 자체 대응할 수 있다.
 
2014년 러시아가 병합했던 우크라이나 남부에서 1월 18일 촬영된 AP 통신 사진은 무한궤도가 아닌 바퀴로 달리는 차륜형 장갑차 수십 대가 고속도로를 달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바퀴가 8개 달린 8x8형으로 3명의 승무원이 7명의 기계화 보병을 수송할 수 있는 병력수송장갑차 BTR-90으로 보였다. BTR-80이나 BTR-90은 3명의 탑승원과 8명의 기계화보병이 탑승할 수 있는 무한궤도형 보병전투차인 BMP-3와 함께 러시아군이 전장에서 보병을 안전하게 전선으로 보내는 주력 도구다.
 
이 장갑차는 주로 대반란·분란전(COIN·Counterinsurgency)에 사용돼 소량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耐)지뢰·매복 방호(MRAP·Mine Resistant Ambush Protection)’ 기능이 없어 탑승 보병이 차량 위에 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사진에선 해치도 닫혀있고, 차량 위의 병력도 보이지 않았다. 사실 BTR-90 장갑차 수십 대가 줄지어 고속도로를 달리는 장면만 보이지 병력은 외부에 전혀 노출되지 않았다. 미리 보안 체크를 받았는지 장갑차의 측면 모습도 인식이 어려웠다.
 
BTR-80이나 BTR-90은 전면 형상이 4x4 차륜형인 BRDM-2 정찰 장갑차와 비슷한데 AP 사진에선 측면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아 4x4BRDM인지, 8x8 BTR인지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BTR에는 탑승원만 승차해 수색·정찰 작업을 펼칠 뿐 이동할 병력을 싣지 않아 BMDR과 전술적 용도가 다르다. 보안 검열을 의심하는 이유다.
 
물론, 고속 이동과 추위를 피하기 위해 기계화 보병이 내부에 얌전하게 탑승했을 가능성도 있다, 또 다른 가능성은 이 사진으로 서방에 우크라이나 침공이 임박했음을 보여주기 위해 연출했을 가능성이다. 우리의 의도를 숨겨 상대로부터 오판을 끌어내는 기만 작전은 전쟁과 외교 협상에서 사용되는 고전적인 기법이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보다 병력과 장비에서 우위여서 우크라이나군이 개전 시 30~40분을 버틸 수 있을 것이라는 전문가의 지적을 보도했다.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을 비교하면 수치상으로는 러시아의 전력이 압도적이다. 병력만 봐도 러시아는 현역 90만 병력으로 20만9000명의 우크라이나를 압도한다.
 
냉전 당시부터 전통적으로 지상 전력, 특히 기갑 전력이 우세했던 러시아는 1만3000대의 전차와 2만7100대의 장갑차를 운용한다. 우크라이나는 2430대의 전차와 1만1435대의 장갑차를 보유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비교해 전투기 20분의 1, 전차 5분의 1, 장갑차 절반 정도를 보유 중이다.
 
하지만 드넓은 영토를 담당하는 러시아와 국경과 해안선, 해상 방어에 집중해 고슴도치 작전을 펼칠 수 있는 우크라이나를 단순히 병력과 장비 숫자로 게임을 하듯이 비교할 순 없는 일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는 1974㎞, 벨라루스와는 1084㎞의 국경을 맞대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전체 국경 6992㎞ 중 러시아와 그 동맹국 벨라루스로부터 지켜야 할 국경이 3058㎞에 이른다. 종심도 그리 깊지 않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러시아 국경까지는 380㎞ 정도다.
 
역으로 모스크바에서 우크라이나 국경까지는 490㎞에 불과하다. 키예프에서 벨라루스 국경까지는 더욱 가까워 100㎞ 남짓이다. 지난해 11월 벨라루스와 폴란드 국경에 이민자 희망자가 몰려 밀어내기 사태가 벌어졌을 때 우크라이나는 9000명의 병력을 벨라루스에 파견해 사태의 확대를 막았다. 당시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의 협력의 현장이던 국경이 이젠 우크라이나의 숨통을 죄는 누르기의 현장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유명무실해진 나토, 힘 키운 러시아 막기엔 역부족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6월 14일 벨기에 브뤼셀의 한 동맹 본부에서 열린 NATO 정상회담에서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과 함께 포즈를 취하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해 미온적인 조치로 일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우크라이나가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미국·영국은 대전차 미사일을 비롯한 지상 무기를 지원했으며, 1월 17일엔 추가 무기 지원을 약속하긴 했다.
 
캐나다는 소규모 특수부대를 파견했으며, 미군 특수부대가 우크라이나를 오가며 훈련을 지원하고 있다는 게 CNN의 보도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에 필요한 건, 나라를 지키고 전쟁을 막기 위해 필요한 건 나토의 개입과 파병일 것이다. 하지만 나토는 그럴 조짐이 없으며 사실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서방 군사 전문가에 따르면 나토는 현재 심각한 훈련 부족과 병력·무기 부족 현상을 빚고 있다. 사실 나토는 오래전부터 NATO(No Action, Talk Only: 행동 없이 말만 한다)’라는 별명으로 불려왔다.
 
하지만 지금 같은 비상 상황에서 의사결정은 느리고, 행동이 무디며, 군사력에선 전혀 위협적이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 여러 차례 군사 개혁과 꾸준한 투자로 기동전력을 갖춘 러시아에 밀리는 형국이다.
 
나토는 냉전 시대에는 핵전쟁에 특화돼 재래식 전력으로 소련에 대결한다는 전쟁 철학을 확보하지 못했다. 핵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서로 상당한 갖춰 공포의 균형을 유지하는 한 핵전쟁이든, 재래식 전쟁이든 억지력이 있다는 생각이 지배했다. 핵전력은 사실상 미국이 주도했다. 30년 전인 1991년 12월 26일 소련이 사라지고 냉전이 끝나면서 나토는 새로운 동서 화합 무드에 젖어 군 개혁도, 전력 증강·유지에도 게을리 했다.
 
그 결과 ‘러시아도 손해가 크므로 전쟁은 없을 것이다’ ‘러시아는 경제력이 부족해 전면전을 벌일 능력이 부족하다’라는 안이한 생각에 젖어왔다. 실제 전력도 약화했고, 무엇보다 훈련과 대비태세가 크게 떨어졌다는 평가다.
 

우크라이나 둘러싼 러시아의 외교전에 고민 깊어진 미국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6월 1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2일 중앙아시아 자원 대국 카자흐스탄에 소요 사태가 발생하자 러시아는 불과 나흘 뒤인 6일 2500명의 공수부대를 현지에 보내 진압했다. 신속한 투입 덕분인지 사태는 3~4일 만에 진정됐다.
 
러시아는 IL-76 수송기에 전투태세가 완비된 공수부대와 기갑차량을 실어 현지에 보내는 데 사나흘이면 족했지만. 나토라면 ‘6개월은 걸렸을 것’이라는 게 서방 군사전문가의 지적이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가 군사동맹인 나토가 개혁하는 계기가 될지, 미국에 대한 의존을 키우는 상황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반대로 유럽이 더는 미국에 의존하지 않고 유럽 독자 방위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미국과 유럽의 따로 서기가 촉진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어느 경우이든 미국과 바이든 행정부에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미 러시아는 중국과 더불어 미국과 유럽 등 서방 동맹을 짓누르는 국제정치의 강력한 행위자로 등장했다. 미국의 입지가 동맹 지역인 유럽에서도 약해지거나 러시아와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할 판이다.
 
특히 나토 가입을 원하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주권국가 우크라이나가 그 때문에 러시아로부터 위협을 받는데 서방 진영의 안보동맹인 나토는 파병 대신 외교와 무기 지원만 강조할 뿐이다. 알아서 싸우라는 이야기다.
 
미국 등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맞서 싸울 수 있게 무기를 지원한다지만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싸워 군사적인 승리를 거두고 주권을 지키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미션 임파서블’에 가깝다. 어떤 식으로든 러시아의 영향 속에서 오도 가도 못할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는 연일 ‘침공 의사가 없다’면서 미국과 나토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려고 시도한다. 입으로는 침공 의사가 없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병력과 무기를 전진 배치하고, 지상군을 벨라루스에 보내며, 발트 해에 있던 강습상륙함 6척을 항구에서 떠나보내는 등 연일 무력시위다.
 
팀 버튼 감독의 할리우드 영화 ‘화성 침공’에서 화성인들이 ‘평화’를 외치면서 대량 학살을 일삼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러시아가 침공하든, 아니든 미국과 바이든 행정부는 러시아의 외교력과 술수에 휘둘렸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는 우크라이나의 문턱에서 무너지고 있다. 푸틴 대통령의 맹공에 옴짝달싹도 못 하는 형국이다. 이런 허약한 미국과 요동치는 국제정치 속에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 되고 있다.
 
불확실성은 경제와 국제정치의 최대 부담이다. 글로벌 사회는 미국도 어떻게 하지 못하는 코로나19에 이어 새로운 국제질서 재편 위기까지 맞고 있다. 미국과 나토, 그리고 국제사회는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가.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한-싱가포르 비즈니스 포럼‘…양국 경제계, AI·수소 등 첨단산업 협력키로

2와일드 터키, 101 헤리티지 강조...'101 데이' 프로모션 진행

3꼬꼬마들의 '훈훈' 폭풍 성장 눈길…'조립식 가족' 9일 첫방

4뉴진스 하니, 결국 국감까지..."내가 멤버·버니즈 지킬 것"

5동방신기·이무진·피프티피프티…KGMA '초호화' 3차 라인업 발표

6위기의 '홍명보', 임시 주장 김민재가 구할까

7北 "남쪽 국경 영구 차단·봉쇄" 공식화…요새화 진행

8 韓, 유엔인권이사국으로 선출…2025∼27년 임기

9참았던 눈물 쏟은 안세영...울먹이며 밝힌 새 출발·새 도전 의지

실시간 뉴스

1’한-싱가포르 비즈니스 포럼‘…양국 경제계, AI·수소 등 첨단산업 협력키로

2와일드 터키, 101 헤리티지 강조...'101 데이' 프로모션 진행

3꼬꼬마들의 '훈훈' 폭풍 성장 눈길…'조립식 가족' 9일 첫방

4뉴진스 하니, 결국 국감까지..."내가 멤버·버니즈 지킬 것"

5동방신기·이무진·피프티피프티…KGMA '초호화' 3차 라인업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