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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진실…되찾아 줄 또 한번의 혁명을 기다린다

정직·진실…되찾아 줄 또 한번의 혁명을 기다린다

국제통화기금(IMF) 충격으로 신용과 산업이 통째로 흔들리고 있다. 가장 나쁜 시기에 가장 나쁜 조건으로 가장 나쁜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IMF조건에 따른 경제적 개혁에 ‘고전적 고통’이 따르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IMF조건을 이행·실행할 수 있는 비경제적 조건, 즉 정치·사회적 하부구조다. 이게 더 큰 걱정이다. 벌써부터 IMF 이행조건에 충실하기보다는 미국의 음해론, 월스트리트 공작설, 일본의 한국견제설 등 외세 음모론이 횡행하거나 책임자 징벌론이 거론되고 있다. 확실히 IMF라는 타율을 불러오기까지의 열악한 유통성관리는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의 구조적인 경쟁력 약화와 그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근본 원인은 바로 이 나라 정치, 사회, 더 원천적으로는 우리 문화, 우리 일상 그 자체에 있다. 1959년 4·19혁명이 나기 1년 전의 일이다. 그때만 해도 우리는 미국의 원조로 이나라 수입과 재정을 감당하고 있을 때였다. 김, 텅스텐 등 우리의 자력수출을 다 합쳐 봐야 미국이 주는 원조의 반도 안 되는 형편이었다. 56~57년 무렵은 우리나라 예산의 반 이상이 미국 원조물자 판돈(對充資金)으로 충당되었다. 즉 국민들이 낸 세금은 국가예산의 반도 채우지 못했다. 실은 6·25가 나서만이 아니라 2차 대전 중 일제의 식민지약탈과 해방 후의 분단으로 우리는 1945년 이후 줄곧 미국 원조로 물자수입과 국가예산을 충당해 왔다. 1959년, 말하자면 이렇게 미국 원조로 나라살림을 연명한 지 14년쯤 되었을 때였고, 이 해도 매년 그렇듯 미국 국제개발처(AID)에서 그 다음해 원조를 결정하기 위해 대한(對韓)원조실적을 평가하고 다다음해 원조방향을 건의하기 위한 AID평가단이 왔다. 그 단장은 ‘드레이퍼’장군이었다. 몇 주일간의 체한(滯韓)조사를 거쳐 드레이퍼 단장이 보고서를 발표하는 날 나는 중앙청에서 그의 기자회견을 맡았었다. 요 지는 이제 한국도 계속 원조받을 생각을 버리고 ‘수출’을 해서 자립하라고 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지극히 원리적이고 옳은 말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글을 쓰는 (당시 20대 중반이었던) 나나 모든 신문이 그리고 모든 정치인들이 일제히 이제 미국이 원조를 해 주기 싫으니까 원조액수를 줄이려는 음모, 공작, 핑계로 수출이야기를 꺼낸다고 욕을 했다. 물론 이때는 미국의 국제수지가 나빠지기 시작해 원조를 줄여가는 중이었고, 한·일 국교정상화 촉진압력을 가하고 있을 때였으며, 당시 이승만 대통령과 사이가 나쁜 때이기도 했으니 여러 해석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당시 한국을 지배하는 정서는 우리가 어떻게 수출하느냐, 미국 원조없이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것이었다. 우리가 14년간 계속 미국의 원조를 받고 사는 것이 정도(正道)가 아니라는 사실의 인식과 원조를 벗고 우리가 자립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이냐는 공론은 없었다. 수출은 자원이 없으니 불가능한 것이고 오로지 미국 원조를 어떻게 하면 많이 받을 수 있느냐는 정서의 통일이 있을 뿐이었다. 그 무렵 국내 처음으로 광목을 미국에 수출했었다. 미국 원조로 받은 원면을 가공해 광목을 미국에 수출한 것이다. S방적에서는 마침 통신사도 겸하고 있어서 당시 몇 안 되는 신문사에 광목수출, 즉 우리나라 최초의 제조업 상품수출이던 이 광목수출을 보도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기자실에서는 이를 묵살했다. 그럴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수출을 하다니…. 더구나 원조받은 원면을 가공해 미국 같은 고급품 소비사회에 ‘메이드 인 코리아’가 수출될 리 없고 필경 S방적이 거짓말 하는 것이라고 단정하는 판이었다. 역시 그 무렵, 지금은 사라져버린 천우사의 전택보 선생께서 열심히 조화(造花)를 만들어 수출하자고 주장했다. 홍콩이 조화수출로 큰 외화벌이를 하고 있고 보세가공무역을 할 수 있는 관세법상의 손질만 해 주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건의를, 참으로 성실하게 주기적으로 기자실에 보내왔다. 아무도 보세가공무역이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 정말 가능한 것인지, 어떻게 하면 되는 것인지 진지하게 조사한 언론인은 없었다. 우리가 수출, 보세가공무역, 자립, 외자활용이라는 단어들이 일상화되고 제도화되기까지는 결국 5·16군사혁명을 기다리게 된다. 오늘 IMF 충격 앞에 책임론을 따지기보다 자립에의 자성론으로 제자리를 잡아가야 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기초와 원리를 너무 일탈해 왔기 때문이다. 빚이 많으면 그리고 빚을 갚지 못할만큼 경쟁력이 약하면 가계나 기업이나 국가나 반드시 망하는 것이 원리요, 법칙이다. 스스로 빚을 갚으려는 노력, 빚을 갚을 만한 경쟁력을 키우려고 노력하지 않는 한 반드시 타율이, 외압이 강제로 빚을 갚도록 하는 법이다. 세계에서 제일 비싼 정치비용, 세계에서 가장 높은 기업의 부채구조, 벤처와 창조가 없는 모래성을 쌓고 PR만 하는 그룹들, 이 엄중한 IMF 충격 속에서도 정당과 후보들끼리 또 재정경제원과 한국은행간 책임회피 경쟁을 하는 사회관계문화, 세계에서 제일 비싼 교육비용을 지출하면서도 가장 질 나쁜 교육, 아시아에서 제일 낮은 노동생산성, 세계에서 제일 비싼 그림값, 한국인만을 상대로 파는 스카치 위스키가 따로 생길 정도의 음주문화, 해방 후 4년만 경상수지흑자를 보고 48년간 적자를 내고도 걱정하지 않는 백성과 지도자들. 우리는 기본과 원리에서 너무나 멀리 일탈해 있으면서도 너무 오랫동안 일탈해 있었기 때문에 일탈된 비정상 상태를 정상 상태인 것으로 착각하거나 자기 최면, 자기 기만, 허위와 위선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5·16혁명으로 비로소 수출이라는 무역의 기본과 원리를 깨달았듯이 IMF 충격으로 겨우 빚구조, 거품구조를 걷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빚 많고 경쟁력이 없으면, 즉 거품이 많으면 당연히 망한다는 평범한 원리와 기본을 우리가 자율적으로 실천하지 않음으로써 IMF라는 타율을 받은 것이다. 빚구조 , 거품구조의 밑바탕, 즉 한국경제병의 하부구조에는 기업, 경제, 산업의 병을 넘어 바로 이 땅의 정치, 사회, 교육 좀더 근본적으로 한국의 일상문화의 병이 도사리고 있다. 진실에 충실치 않고, 정직이 덕목이 되지 않고, 거짓이 당연하고, 부정직이 유능한 것이 되는 비정상이 정상이 되어 왔다. 그래서 진짜 정상, 정직, 진실을 위해 우리는 또 한 번 혁명을 필요로 하고, 총칼의 피를 흘리지 않고 IMF혁명이 온 것이 그래도 다행이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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