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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현대미술의 현주소를 한눈에

우리 현대미술의 현주소를 한눈에

'이 세상에서 가장 큰것과 작은것을 잴 수 있을까?
(니르바나 시리즈)
'화가의 옷'
'길에서'
앞으로의 우리 현대미술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까? 그것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좋은 전시가 서울 중구 순화동 호암갤러리(02-771-2381)와 종로구 신문로 성곡미술관(02-737-7650)에서 열리고 있다. ‘아트 스펙트럼’전(1월27일까지)과 ‘한국미술의 눈’전(1월31일까지)이 그것이다. 흔히 현대미술이라고 하면 난해한 예술의 대명사로 꼽힌다. 하지만 현대미술은 바로 이 시대의 고뇌와 감성·문제의식을 담은 예술이다. 그만큼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이 깊이 투사돼 있는 예술이며, 공감의 폭이 넓은 예술인 것이다. 특히 위의 두 전시가 주목되는 것은, 전자는 국내의 대표적인 사립미술관인 삼성미술관의 큐레이터들이, 후자는 현재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국내 중견·소장 비평가와 큐레이터들이 작금의 우리 현대미술을 이끌고 가는 기대주라고 생각되는 이들을 선정해 집약적으로 선보이는 전시이기 때문이다. 이런 퀄리티가 담보된 행사를 통해 우리는 보다 명료히 우리 시대 미술의 상황표를 그려볼 수 있다. ‘아트 스펙트럼’전에는 설치와 비디오 아트 계열의 작품이 많다. 김범·김아타·김종구·박화영·오인환·유현미·이동기·조승호·홍수자 등이 출품했다. ‘한국미술의 눈’전에는 회화와 사진 작품이 많이 내걸렸다. 김병직·김성희·민병헌·배준성·유대균·이정진·장명규·장지희·정현숙 등이 출품했다. 이 가운데 김종구와 김아타·배준성과 이정진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감상함으로써 우리 현대미술의 현주소를 살펴보자. 김종구는 쇳가루 설치작품인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것과 가장 작은 것을 잴 수 있을까?’를 내놨다. 타이틀과 같은 내용의 글씨를, 그는 쇳가루로 한지 바닥 위에 썼다. 쇳가루를 쓰레받기에 담아 글씨를 흘리며 썼다 해서 ‘쓰레받기체’로 명명한 이 글씨는, 단순한 문자의 미학을 보여주기 위한 작품은 아니다. 작가는 이 작품의 한쪽 귀퉁이에 낮은 시선으로 조망하는 동영상 카메라를 설치했는데, 그렇게 해서 촬영된 이미지가 전시장 벽면에 커다랗게 투사된다. 재미있는 것은, 그 투사된 이미지가 마치 산과 들이 겹겹이 겹쳐져 있는 풍경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티끌처럼 작은 쇳가루들이 모여 거대한 산하의 풍경을 이룸으로써 보는 이에게 큰 것과 작은 것·거시적인 것과 미시적인 것의 차이가 얼마나 상대적이고 피상적인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 쇳가루들은 작가가 커다란 쇠기둥을 깎는 과정에서 부산물로 나온 것들이다. 쇠기둥을 다듬어 하나의 작품, 그러니까 의미를 만들려고 무의미하다고 생각된 부분을 그라인더로 갈아서 버린 것인데, 그것을 모아 글씨를 쓰니 이제 전혀 새로운 의미가 발생했다. 오늘날과 같은 ‘효용 지상주의’의 시대에 ‘무용지용(無用之用)’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사진작가 김아타의 작품도 전통적인 동양의 세계관에 의지해 현대인의 실존을 날카롭게 해부하고 있다. ‘뮤지엄 프로젝트’라는 타이틀을 가진 그의 사진은 언뜻 보면 무척 도발적이고 외설적으로 느껴진다. 모델들이 벌거벗은 채 가부좌를 틀고 있거나 기타 불교와 관련된 여러 도상적 이미지를 연출하고 있다. 혹은 두 개의 투명한 아크릴 판으로 ‘압착’된 상태에서 표본실의 청개구리 같이 갖가지 ‘포획 생물’의 자세를 연출하고 있다. 이들 모델들은 대부분 승려처럼 삭발해 우리는 무엇보다 성(聖)과 속(俗)이 강렬히 충돌하는 듯한 느낌을 이들 작품으로부터 받게 된다. 이같은 충돌은 그러나 그 극과 극의 부딪침만큼이나 새로운 조화와 합일의 가능성을 관자들에게 제공한다. 성과 속·선과 악·질서와 혼돈의 이분법을 넘어 그 벌거벗은 육체의 탄트라를 통해 진솔한 깨달음의 지평을 펼쳐 보인다는 인상을 받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욕망이 만연한 이 시대는 어쩌면 깨달음에 가장 가까이 와 있는 시대인지 모른다. 작가는 이런 진솔한 구도의 표현을 위해 결코 직업모델을 쓰지 않고 평범한 청춘남녀와 신혼부부·스님·직업여성·상이군인 등을 섭외하고, 선과 수행의 한 과정처럼 촬영 작업을 진행한다고 한다. ‘한국미술의 눈’전에 내걸린 배준성의 ‘화가의 옷’ 연작은 여전히 모든 것이 이중적이고 분열적인 우리의 좌표를 드러내는 작품이다. 그의 ‘화가의 옷’은 언뜻 보면 단순한 서양명화의 모방처럼 보인다. 한국인을 모델로 했을 뿐이지 다비드나 반 다이크 등 유명한 고전 대가들의 화려한 초상화를 흉내내 그대로 베낀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그렇게 단순한 작품이 아니다. 화면에 가까이 다가가 꼼꼼히 살펴보면 우리는 이 작품이 매우 복잡한 구성으로 이뤄져 있음을 알게 된다. 흑백으로 인물의 사진을 찍고 그 위에 투명한 필름을 씌워 필름 위에 화려한 서양 고전 의상을 그려 넣은 작품인 것이다. 이 고전 의상이 그려진 필름은 걷어 볼 수 있게 돼 있는데, 그렇게 걷었을 때 나오는 인물의 몸뚱아리는 완전히 벌거벗은 상태이다. 관자로 하여금 순간적으로 ‘핍핑 톰’이 되게 만드는 작품인 것이다. 이런 독특한 구성으로 인해 이 작품은 사진/그림·흑백/컬러·누드/코스춤(착의 인물상)·한국/서양·불투명/투명·현재/과거가 동시에 공존하면서 서로 분열하고 긴장하는 묘한 성격의 작품이 된다. 서구화와 현대화의 길을 내달려왔어도, 우리 안에서는 여전히 서구와 한국·전통과 현대가 갈등하고 투쟁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한 정체성의 혼란은 우리가 당분간 안고 가야 할 불가피한 과제이다. 그러나 이런 혼란도 우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우리가 그리는 미래의 비교를 통해 나름대로 정리·정돈하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사진작가 이정진의 ‘길에서’ 시리즈는 매우 시사적이다. 이정진의 ‘길에서’ 연작은 폐광 일대나 시골 마을·들판·전신주·자동차·창 등 말 그대로 길을 가다가 흔히 보게 되는 현실 풍경을 포착한 작품이다. 현실을 담았다고 하나 이 작품은 매우 초현실적인 인상을 주는데, 이는 작품의 이미지들이 현실에 존재하면서도 철저히 과거를 상기시키는 표정들이기 때문이다. 그 역류성은 우리의 기억과 무의식을 자극한다. 그리고 이렇게 현재와 과거를 잇는 이미지들 속에서 우리는 불현듯 우리가 정체성을 잃고 있는 존재라기보다는 그 어느 공동체보다도 열심히, 격렬하게 새로운 정체성을 창조하고 있는 존재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속(俗)이 충만하면 성(聖)이 보이듯이 혼란이 극에 달하면 질서가 보이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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