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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人才 채용에 ‘히딩크 현상'…고급두뇌 수입붐

기업人才 채용에 ‘히딩크 현상'…고급두뇌 수입붐

히딩크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희동규(喜東奎=기쁜 동방의 별)’.한국에 월드컵 본선 첫 승리의 감격을 안겨준 거스 히딩크 축구 대표팀 감독에게 네티즌들이 대한민국으로의 귀화를 권하며 지어준 우리 이름이다. 그가 이 제의를 받아들인다면 조선시대 인조 때인 1627년 일본으로 가던 뱃길에 풍랑을 만나 이 땅에 정착한 네덜란드의 선원 박연(벨테브레) 이래 가장 유명한 네덜란드계 한국인이 될 것이다. 박연은 조선 여인과 결혼했고, 훈련도감에서 일하면서 명나라에서 들여온 홍이포의 제작법과 조종법을 가르쳤다. 히딩크는 ‘오대영(5:0)’ 감독이라는 비아냥을 들어가면서도 세계의 강팀들과 일대 일로 맞섬으로써 한국 선수들에게 강해지는 법을 가르쳤다. 귀화야 전적으로 히딩크 그의 뜻에 달렸지만 2002년 6월 현재 그가 한국의 해외 인력 채용에서 가장 성공한 케이스라는 평가엔 누구도 이의가 없을 듯하다. 삼성 등 국내 기업들은 너도나도 ‘히딩크 리더십’ 배우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삼성·LG·SK·현대차 등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해외 우수 인력 채용에 나서고 있다. 삼성은 지난 5일 ‘인재전략 사장단 워크숍’을 열어 연구·개발(R&D)·정보기술(IT) 등의 분야에서 해외 우수 대학 유학생과 해외 상위 대학 출신의 현지 인력을 대상으로 해마다 석·박사 학위자를 1천명씩 뽑기로 했다. 이 회의에서 삼성은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대상자의 국적을 따지지 않기로 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고 양성하는 것은 경영자의 기본 책무”라며 사장단에 “인재 확보를 위해 직접 뛰라”고 주문했다. LG는 유학파를 주축으로 해외 인재 유치에 힘을 쏟고 있다. 이 회사는 LG전자·LG화학·LG투자증권 등 6개 계열사별로 오는 10월까지 R&D 인력과 경영학 석·박사 1백명을 충원할 방침이다. 이들 계열사의 인사 담당자들은 이를 위해 해외 우수인력 유치단을 결성해 수시로 미국의 50여 대학을 순회하며 인재 유치 활동을 벌이고 있다. 정보통신과 생명공학 사업을 투 톱으로 설정한 SK도 해외 주요 대학을 직접 찾아가 인재를 구하고 있다. 특수 인력을 뽑을 땐 헤드헌팅 업체를 활용하고 있다. 미국·중국 등에 생산거점을 구축하고 있는 현대자동차그룹은 20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 미국 주요 대학에서 이공계 석·박사 학위자를 주축으로 1백∼2백명을 현지 채용 한다. 대상 학교는 콜럼비아대·미시간대·스탠퍼드대·캘리포니아대(버클리교) 등 미 중동부와 서부의 유명 대학들. 이 기간 중 이들 대학을 방문해 채용 상담을 실시하는 한편 같은 기간 현대차와 기아차의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원서를 받는다. 지원 자격은 미국 정규 대학의 석·박사와 학사 학위자 또는 2003년 학위취득 예정자들로 서류 전형과 면접으로 뽑는다. 현대차측은 올해 해외 인력 채용은 미국 대학 출신자들이 대상이나 내년부터 유럽·일본 등으로 채용 지역과 인원을 지속적으로 늘려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현대 경영지원팀의 조용욱 과장은 “아직은 외국인 중 한국 근무 희망자가 많지 않아 순수한 외국인은 30명 이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기업의 해외 사업장들은 책임자까지 이미 외국인들로 채워지고 있다. 외국기업의 국내 현지 법인 최고경영자(CEO)들이 국내파로 채워지고 있는 추세와 맞물린 현상이다. LG전자는 대부분 외국인인 해외 근무 인력의 규모가 국내 인력 규모를 넘어섰다. 국내 기업에 취업한 해외 고급 인력들은 얼마나 받을까? 국내 한 대기업의 책임자급으로 채용 협상이 진행 중인 한 외국인은 연봉 3억원을 희망하고 있다. 액수에 대해서는 의견 접근이 이뤄졌으나 회사쪽은 절반을 성과급으로, 당사자는 전액을 고정 급여로 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주거비·교육비 등을 합산하면 이들 외국 고급 두뇌들에 들어가는 비용은 연봉의 1.5∼2배에 이른다. 해외 인력 채용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의 확보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우수 인력에 대한 대기업들의 인식은 총수들의 발언에서 엿볼 수 있다. 이건희 회장은 5일 사장단 워크숍에서 “21세기는 한 명의 탁월한 천재가 천명, 만명을 먹여살리는 인재 경쟁 시대, 지적 창조력의 시대”라고 말했다. 구본무 LG 회장은 “우수한 R&D 인력을 과감하게 발탁하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삼성전자 등 외국인이 임원으로 있는 회사들도 늘고 있다. 제일은행은 두번째 외국계 행장이 재임 중이다. 해외인력 채용 움직임이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미국 기업들도 첨단 소프트웨어 개발, 엔지니어링 분야 등의 부족한 기술 인력을 외국인들로 충원하고 있다. 2000년 10월 미 상원은 하이테크 기술훈련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비자 발급 확대법안을 통과시켜 선마이크로 시스템즈·마이크로소프트·텍사스 인스트루먼츠 등 미국의 유명 하이테크 기업들이 해외의 고급 기술 인력을 채용할 수 있는 길을 터 주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 미국내 인력의 약 8%가 해외 기술요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만 정부는 지난해 9월 중국을 포함해 해외의 과학·기술 인력이 대만을 방문할 때 최장 6년까지 체류 허가를 내주기로 했다. 제프리 존스 주한미상공회의소 회장은 한국 정부에 “더 균형잡힌 이민 정책을 추구할 때”라고 충고한다. 20만명에 달하는 저기술의 외국인 근로자 대신 고급 기술을 지닌 20만의 고학력 외국인 근로자들이 들어와 새 기술과 제품, 디자인·경영방식·재정·마케팅 등을 개발할 때 한국이 누리게 될 막대한 이익을 상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고 말한다. 국내 기업들의 해외 인력 채용 붐은 비좁은 국내 대학들의 설 자리를 더 좁게 만들고 있다. 기업들은 국내 대학의 구태의연한 인력 양성 시스템에 대해 불만이다. 한 대기업의 인사팀장은 신입 사원을 뽑아 3년 가까이 교육을 시켜야 제 구실을 한다고 말한다. 그는 신입사원 교육비가 연간 전체 교육비의 절반에 이르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해외 고급 인력의 채용이 국내의 실업난을 가중시킬 가능성은 아직은 작아 보인다. 현대의 조과장은 “해외 인력 채용은 93년부터 해왔다”며 “IMF 체제로 중단됐던 프로그램을 재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격한 내외국인간 연봉차로 국내서 교육받은 인력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가중시키는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해외 인력 채용이 능사는 아니다. 모든 기업들에 대안도 아니다. 우선 국내서 일하는 만큼 국내 인력과의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있다. 커뮤니케이션 단절은 곧 비용이다. 헤드헌팅 업체 유니코써어치의 유순신 대표는 해외 고급 인력의 약 3분의 1이 국내에 ‘안착’한다고 말한다. 기술 등 본인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회사의 비전과 기업문화가 이들과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해외 인력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하고 무엇보다 CEO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해외 인력 유입은 사실 두 갈래로 이루어지고 있다. 고액 연봉의 고급 두뇌와 저임의 외국인 근로자들이다. 국내의 인력은 그 틈새에 끼어 있다. 이런 인력시장의 구조가 앞으로 우리 사회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는지 예단하기는 어렵다. 일본·대만·싱가포르 등은 전문 인력의 도입엔 적극적인 반면 단순 근로자 ‘수입’엔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유순신 대표는 “우수 두뇌는 순환한다”고 말한다. 해외 고급 인력의 수입과 국내 고급 두뇌의 유출이 같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해외 고급 두뇌의 채용은 우리가 세계로 뻗어나가기 위해 치러야 할 일종의 비용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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