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름한 상가건물, 알고 보니 황제株 산실
| 설악아파트 상가를 찾아온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실망하고, 한편으론 놀란다. 매출 1조원이 넘는 알짜회사가 있는 곳 치곤 건물 외관이 너무 허름하기 때문에 실망하고, 또 '알짜 롯데 3사'가 허름한 한 건물에 모두 있다는걸 알고 놀란다. | 주가 1백만원짜리 알짜회사의 본사건물은 어떤 모습일까. 보통 으리으리한 외관에 첨단 공조시설·엘리베이터·인터넷 시설등이 척척 돌아가는 인텔리전트 빌딩을 연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같은 선입견은 롯데칠성(대표 이종원) 본사를 보는 순간 여지없이 깨져버린다. 최근 연일 연중최고치 경신 행진을 펼치며 1백만원을 향해 고공비행을 거듭하고 있는 롯데칠성 본사가 들어 있는 건물은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 있는 5층짜리 허름한 설악복지센터. 이 건물은 한남대교 남단 바로 아래에 있으며 잠원역·신사역과도 가까운 교통의 요지다. 설악복지센터는 지금 한창 재건축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설악아파트 단지 내 상가건물. 이 상가건물은 재건축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망치와 불도저 소리가 한창인 공사판 한가운데, 그것도 시장판 같이 시끌벅적한 상가건물에 국내 굴지의 재벌회사 본산이 들어 있는 게 미스터리에 가깝다. 경우에 따라선 지나치게 옹색한 ‘티’를 내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든다. 입주 회사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건물 5층에 있는 롯데칠성은 익히 알려진대로 주가 1백만원을 넘보고 있는 우리나라 음료업계의 초우량주 회사다. SK텔레콤 같은 서비스업체를 제외한 제조업체 중에선 최고의 주가를 자랑한다. 4층에 본사를 둔 롯데건설도 마찬가지. 1998년 임승남 사장이 부임하면서 롯데건설은 주택시장에 돌풍을 불러일으켰고, 지금은 삼성·현대·LG건설 등과 어깨를 견주는 주택건설업계의 다크호스다. 3층에 본사를 두고 있는 롯데햄은 국내 햄시장의 선두기업으로 시장점유율 38%를 차지하고 있는 알짜기업이다. 그러나 건물 외관만 봐서는 이들 롯데의 알짜 3사가 입주해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건물 외벽은 모두 우중충한 회색빛으로 뒤덮여 있는데다, 롯데칠성 본사를 알리는 회사 간판조차 붙어 있지도 않다. 그 흔한 광고판조차 없다. 상가 출입구에 롯데칠성·롯데건설·롯데햄·롯데우유 본사라는 글씨가 새겨진 조그만 명판이 붙어 있긴 하지만 무심코 지나가면 이것도 보기 힘들다. 예전에 한보그룹도 대치동 상가에 있었지만 상가 꼭대기 간판에 한보라는 글씨만은 큼지막하게 써놓아서 일반인들에게 존재를 알렸지만 여긴 그런 것도 없다. 대신 건물 외관 곳곳에는 식당·학원·은행 등이 내건 온갖 광고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전형적인 아파트상가 건물 모습 그대로다. 1층과 2층에는 오만가지 점포들이 들어차 있다. 이 상가는 한마디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든 걸 해결해 주는 ‘미니 백화점’이다. 이러다 보니, 상가주변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은 롯데칠성 본사를 잘 모른다. 그들에겐 그저 이 빌딩은 생필품을 사러 가는 ‘시장’일 뿐이다. 롯데 직원들은 “엘리베이터도 없는 우중충한 건물에 알짜 3사가 들어 있다는 건 내용보다는 실속을 중시하는 롯데의 그룹문화, 신격호 회장의 성격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며 본사 입지의 배경을 설명한다. 으리으리한 초고층 건물에 자리잡은 다른 대기업들에게선 찾아 볼 수 없는 검소함이 금방 느껴지지 않냐는 것이다. 이 상가건물은 이름도 각양각색으로 불린다. 지역주민들 사이에선 설악아파트 상가로 통하지만 건물 안내판에는 설악복지센터라고 써 있다. 하지만 롯데직원들은 설악 자를 떼고, 롯데 자를 붙여서 롯데복지센터라고 명명했다. 그런데 직원들은 명함에 설악아파트복지센터라고 쓴다. 건물은 하나지만 부르는 이름은 여럿되는 셈이다. 매출 1조가 넘는 거대 기업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이 건물을 찾아오면 누구나 실망하고, 한편으로는 놀란다. 아직도 택시운전사들이 롯데칠성을 못 찾아서 큰 길에서 헤매는 일이 잦다. 롯데라는 초우량회사는 으레 ‘삐까번쩍한’ 건물에 있을 것이란 선입견 때문이다. 겨우 설악아파트 상가를 찾아오긴 해도 상가건물을 훑어본 다음 ‘설마 여기가 롯데칠성 본사일까’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다른 곳으로 가버리는 경우도 있다. 한 롯데건설 직원은 시골에서 올라온 친척들이 잠실 롯데월드에 가서 롯데건설을 찾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물어물어 찾아온 사람들은 대개 실망한다. 예전에는 롯데그룹에 들어온 신입사원들이 연수교육을 마치고 롯데칠성이나 롯데건설·롯데햄 등에 배정을 받아서 온 다음에 건물 외관에 실망한 나머지 결국 사표를 쓰고 나간 적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에 근무하는 롯데 직원들은 오랫동안 이골이 나서인지 근무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는 반응이다. 롯데칠성 강정용 팀장은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기자 등 손님들이 걸어서 올라 와야 한다는 것을 빼면 별 불편한 게 없다”고 말한다. 농담으로 직원들은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이게 주가 1백만원짜리 롯데칠성 본사라고 한다면 믿겠습니까. (웃으면서) 감방 아닙니까. 건물도 우중충하고 안에 들어오면 건물 한복판에 사무실이 있고, 철제 의자에 철제 책상까지…. 그래서 우리끼린 농담으로 감방이라고 부르죠.” 그러나 건물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고 무조건 아끼고 절약하는 게 꼭 좋은 것만도 아닌 것 같다. 롯데칠성에 출입하는 일선 취재기자들의 평은 약간 부정적이다. 일간지 경제담당 이모 기자는 “7년 만에 롯데건설 본사에 취재하러 갔었는데 간판 없는 사옥, 폐쇄적인 태도 하며 옛날과 달라진 게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롯데건설이나 롯데칠성이 검소한 기업이라는 얘기만 하는 것은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면서 “아마 회사 직원들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서 그렇지 속으론 이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회사측도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건물은 오래됐고, 사세가 커지면서 사무실 공간은 점점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물주인 롯데건설은 연내에 배관이나 전선 같은 부분을 새로 교체하는 이른바 리모델링 작업을 할 것을 검토 중이다. 원래 이 상가건물은 수십층으로 올리기 위해 뼈대를 아주 튼튼히 지었기 때문에 필요한 경우에 일부 증축을 하는 것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돈이다. 이 건물 연면적이 5천38평이나 되는데, 평당 리모델링 비용으로 1백만원씩만 잡아도 50억원이란 돈을 쏟아부어야 한다. 그러나 짠물경영으로 소문난 롯데측은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 봐도 그 돈이 아깝다는 눈치다. 롯데측이 리모델링을 망설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누군가는 이 건물을 보고 일본이 연상된다는 얘기도 한다. 국가는 잘 사는데, 국민들은 못사는 일본을 롯데가 빼닮았다는 것이다. 이는 롯데의 비즈니스 활동 무대도 일본이라는 사실과 무관치 않다. 엄연히 따지고 보면 허름한 건물이 본산이라고 해서 롯데가 대외 이미지나 실속에 있어서나 손해를 본 건 없다. 직원들도 “이 건물에 롯데 3사가 들어온 다음에 모두 사세가 커졌고, 나도 잘 됐고…”라는 얘기를 자주 한다. 설악아파트복지(福祉)센터는 원래 주민 복지(福祉)를 위해 지은 건물이다. 하지만, 진짜 복을 받은 쪽은 주민들이 아닌 ‘롯데 3사’다. 이곳에 입주한 다음에 사무실이 좁아서 일을 못할 정도로 회사가 커져 ‘터’덕을 톡톡히 봤다. 그만큼 발복 요인이 많은 명당터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롯데가 쉽게 다른 자리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쯤 되면 상가건물을 ‘롯데복지(福地)센터’라는 간판으로 고쳐달아야 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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