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구제 가면 쓴 무역委에 멍든 ‘ 農心’
피해구제 가면 쓴 무역委에 멍든 ‘ 農心’
◇무역위원회 어떤 곳인가=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무역위원회는 WTO(국제무역기구)협약에 따라 운영되는 조직이다. 따라서 독립성이 보장되야 하는 국제적 준사법기구다. 외국물품의 수입이나 불공정무역으로 인해 발생하는 국내산업의 피해를 구제하는 것이 주요 업무다. 수입물품으로 인해 피해를 본 국내산업의 당사자가 조사를 신청하면 우선 조사여부를 결정하고, 조사 후 피해가 인정되면 세이프가드 등의 조치를 관계 부처에 건의할 수 있다. 이번 중국산 마늘의 경우 조사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무역위원회의 기능과 성격은 지난 1987년 7월 출범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몇 차례 변해왔다. 출범 당시에는 상공부 장관의 구제조치나 행정처분에 앞서 심의·의결하는 자문 기능에만 머물렀다. 그러나 89년 12월 대외무역법의 개정으로 산업영향조사제도 대신 순수한 세이프가드제도(긴급수입제한제도)가 도입되면서 무역위원회는 산업피해에 대한 조사와 판정구제조치 건의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합의체 행정기관으로 바뀐다. 90년 4월에는 조직을 대폭 확대해 위원장을 포함, 위원 수가 9명으로 증원됐고, 사무국 조직도 50명으로 늘었다. 93년 12월 반덤핑제도가 대폭 정비되면서 덤핑방지관세를 신청하고 조사를 결정하는 권한이 기존의 재무부에서 무역위원회로 넘어왔다. ‘불공정무역행위조사 및 산업피해구제에관한 법률’이 지난 2001년 1월 만들어져 불공정 무역에 대한 조사와 제재조치가 강화되면서 무역위원회의 역할도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전성철 전 위원장은 지난 16대 총선때 서울 강남에서 민주당 공천을 받았다가 낙선한 후 지난해 11월부터 위원장을 맡아왔다. 위원으로는 하명근(전 산자부 자본재국장) 상임위원과 민병문(내외경제신문 주필)·박시룡(서울경제신문 논설위원)·박태호(서울대 교수)·조동성(서울대 교수)·이영란(숙대 교수)·최경수(재경부 세제실장) 등 6명의 비상임위원이 있다. ◇독립성 시비=그러나 무역위원회는 이번 조사기각 결정으로 ‘정부의 들러리가 아니냐’는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독립성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은 것이다. 조사 여부를 결정 짓는 전체회의가 열리기 전인 지난 24일 5개 경제부처 장관들이 ‘세이프가드 조치를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는 정부의 결론을 무역위에 통보했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상 ‘조사를 하지 말라’는 정부의 압력이며, 이번 결정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는 게 농민단체들의 지적이다. 무역위원회 회의에 참석했던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4시간 동안 진행된 회의에서 농민들 입장은 단 5분밖에 설명되지 못했다. 무역위원들은 농림부 관계자에게만 정부 대책과 관련한 질문을 했다”며 “농림부 대책이 세이프가드 조치를 대신할 수 있다는 논리를 일방적으로 몰아가는 분위기였다”고 비난했다. 전성철 위원장이 사퇴하면서 던진 말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그는 “이번 마늘 심의과정에서 무역위원회를 독립성과 자율성을 지키는 기구로 만드는 데 능력과 리더십의 한계를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역위원회가 (마늘심의에서) 충분히 진지하게 고민하고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한 점에 대해 농민들에게 사과드리며 책임을 통감한다”고도 했다. 전성철 위원장은 “회의 내내 정부의 마늘 정책을 좀더 시간을 갖고 검토한 후 정말 마늘 농가를 보호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서면 그때가서 조사를 기각해도 늦지 않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농민단체들은 “정부가 향후 5년간 마늘산업 안정에 쓰겠다는 돈은 1조8천억원이나 되지만, 이중 1조2천5백25억원은 마늘 수급 및 가격안정 자금으로 마늘값이 떨어지면 어차피 집행하기 힘든 돈”이라며 “마늘 농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자금은 올해 94억원에서 내년엔 오히려 74억원으로 줄게 됐다”고 반발하고 있다. 어쨋던 이번 조사 기각 결정으로 인해 무역위원회의 향후 위상은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게 통상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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