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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공정성’ 다시 도마에

공정위 ‘공정성’ 다시 도마에

공정거래위원회의 ‘공정성’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지난 7월24일 공정위가 6대 그룹을 대상으로 부당 내부거래가 있었는지를 조사하겠다고 발표한 뒤 논란이 일고 있는 것. 공정거래위원회는 삼성·LG·SK 현대자동차·현대·현대중공업을 비롯, 6개 대기업 집단의 80개 계열사를 대상으로 내부거래와 관련된 자료를 8월3일까지 제출하도록 요구했다고 밝혔다. 공정위의 부당 내부거래 조사는 2000년 말이 마지막이었다. 공정위는 지난 7월2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자산 규모 상위 12개 그룹의 2001 회계년도 재무제표를 근거로 ‘칼’을 빼들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LG·SK·현대자동차 등 4대 그룹의 전체 매출액 가운데 계열사끼리 사고 판 매출액 비중이 37.6%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도 39.5%보다 조금 줄었지만 여전히 40%에 가까운 수치다. 공정위 관계자는 “기업 투명성이 높아졌지만 내부거래가 별로 줄지 않았다”며 “결합재무제표로는 파악할 수 없는 내부거래의 유형과 규모 등을 알아보려고 자료를 요청한 것”이라고 밝혔다. 서류만 달라고 했다지만 재계에서는 공정위를 삐딱하게 보고 있다. 올 초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이 올해는 내부거래 조사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가뜩이나 경기도 나쁜 마당이라 불만이 많은 모습이다. 특히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갑작스레 태도를 바꾼 ‘저의’가 뭐냐는 주장이다. 이른바 ‘기업 길들이기’ 아니냐는 것. 재계에서는 그래서 이번 공정위 조사가 현대차그룹을 겨냥한 것이라는 루머도 돌았다. 올 상반기 정부에 그다지 협조적이지 않았다는 관측에서다(4대 그룹의 내부거래 비중은 1.9% 포인트 떨어진 반면 현대차그룹의 내부거래 비중은 15.9%로 조금 늘었다). 재계에서는 공정위 조사의 불공정성을 조목조목 따지며 반발하고 있다. 먼저 불공정 혐의도 없는데 무턱대고 조사를 벌인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주장이다. 신종익 전국경제인연합회 규제조사본부장은 “미국의 경우 혐의가 없으면 조사를 거부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신본부장은 또 “조사 대상도 불공정 혐의가 있는 기업이 아니라 만만한 재벌에 국한한 것도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가뜩이나 미국발 경제위기 가능성 등으로 어려운 시점에 국내 기업을 굳이 괴롭힐 이유가 있느냐는 주장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불공정 혐의가 있다면 조사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 상황 아니냐”며 “국내 기업과 생존 다툼을 벌이고 있는 외국 경쟁사들이 악의적으로 이용하면 누구에게 득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재계뿐만 아니라 공정위와 재계의 가교 역할을 맡고 있는 공정거래협회도 공정위 발표를 걱정하는 모습이다. 공정거래협회는 “이번 조사는 내부거래의 이사회 결의와 공시제도 미비 사항 등을 개선하는 데 포커스를 둬야 한다”며 가급적 현장 조사까지 이어지진 않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공정거래협회는 또 80개인 조사대상도 부당 내부거래 혐의가 있는 기업으로 좀더 줄여야 한다고 요청했다. 나라 밖에서도 공정위를 보는 시각이 곱지 않다.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AWSJ)은 지난 7월29일 미국 회계 스캔들 탓에 민감해진 글로벌 투자자들이 한국 주식시장을 다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외국계 애널리스트들은 공정위의 조사가 12월 대선을 앞두고 재벌로부터 정치 자금을 징수하려는 나쁜 의도로 결정된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 파문이 커지자 공정위는 다소 당황하는 모습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지난 2000년 4월1일 제정된 ‘대규모 내부거래에 대한 이사회 의결 및 공시에 관한 규정’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한번도 점검해 보지 않아 이번 조사를 벌이게 됐다”며 배경을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서면조사 뒤 혐의가 없으면 조사를 끝내겠다는 게 기본 방침”이라며 “이번 조사를 계기로 기업을 길들이거나 군기를 잡는다는 식의 루머는 억측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별일도 아닌데 너무 과민 반응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공정위가 이렇게 서둘러 진화에 나섰지만 재계 반응은 썰렁하다. 특히 공정위가 지난 4월부터 코스닥 등록 벤처기업 1백1개사를 대상으로 부당 내부거래 조사를 벌인 뒤끝이라 ‘기업 길들이기’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벤처업계가 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되고 있지만, 벤처조사 뒤 바로 재벌을 타깃으로 삼은 건 아무래도 문제가 있다는 것.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다시 고쳐 맨 공정위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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