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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시장' 이명박 검증]비전은 ‘굿’…도덕성은 ‘글쎄’

['CEO 시장' 이명박 검증]비전은 ‘굿’…도덕성은 ‘글쎄’

일러스트 이경재
“난 CEO 시장으로 당선된 사람입니다.” 지난 11월4일 오전 서울 시청 시장 집무실. 간부회의를 막 마치고 들어선 이명박 서울 시장은 ‘CEO 시장’이란 말에 힘을 주었다. 지난 1965년 현대건설 면접 시험 때 “건설은 창조”라며 건설업계에 발을 들여 놓은 뒤 11년 만에 CEO(대표이사 사장)에 오른 그는 ‘샐러리맨의 신화’였다. 경력만 따지면 누구도 부럽잖은 그다. 특히 지난 6·13 선거에선 CEO 시장이란 캐치프레이즈로 주식회사 서울을 접수했다. 직원 4만5천여명, 1년 예산 13조여원의 ‘거대 기업’…. 민주당 김민석 후보의 젊음과 패기도 이시장의 CEO론 앞에선 역부족이었다. 지난 7월 취임 뒤 넉달여가 흘렀다. 그는 건설 현장에서의 명성을 시정(市政)에서도 하나둘씩 입증해야 할 입장이다. 그렇지 않으면 CEO 시장이란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에 그치고 만다. ‘이명박 신화’는 개발 시대를 넘어 정보화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걸까? 아니면 결과적으로 1천만 시민이 한물간, 노회한 경영자에게 속은 꼴이 될 것인가? 이시장은 청계천 복원, 강북 뉴타운 개발, 뚝섬 시민녹지공원 조성을 비롯해 굵직한 사업들을 잇달아 내놨다. 주식회사 서울을 개조하고, 업그레이드시킬 사업 청사진이다. 그는 특히 자신의 임기(4년) 안에 모든 걸 마무리 짓겠다는 욕심을 부리진 않겠다고 못 박았다. 적어도 10년은 내다 보고, 일관성을 갖고 밀고 나가겠다는 것. 이시장의 말처럼 대개 결과로 책임지는 CEO로선 선뜻 내키지 않은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묘수였다. 강북 뉴타운 개발은 강북 사람들의 소외감을 달래고, 강남을 중심으로 번진 부동산 버블 우려를 잠재울 ‘묘약’이었다. 청계천 복원과 뚝섬 시민녹지공원 조성건 등은 무릎을 칠 만한 비전이었다. 무엇보다 친환경론자로 평가받으면서 개발론자라는 이미지를 희석시키는 계기가 됐다. 편히 쉴 녹지공간이 부족한 현실에서 시민들로선 반길 일이었다. 더구나 잘 하면 돈벌이도 가능하다. 지난 11월1일 열린 서울국제경제자문단(SIBAC) 총회에서 자문단 의장을 맡고 있는 데이비드 엘든 HSBC 회장은 “청계천 복원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며 “적절한 환경이 조성되면 투자는 자연적으로 이뤄지는 법”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입지도 단단히 다졌다는 평가다. 정가에서는 이시장의 개발 계획이 대선을 앞둔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에게 천군만마 같은 존재라고 보고 있다. 특히 서울 강북 지역의 경우 전통적으로 민주당이 강세였던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포스트 이회창 시대를 노리는 이시장으로선 유력한 대선 주자인 이후보로부터 확실한 ‘눈도장’이 찍힌 셈이다. 이시장은 그러나 ‘이회창 오너-이명박 전문경영인’이란 구도는 속사정을 모르는 일이라며 손을 내저었다. 두 사람 모두 한나라당이란 점을 빼면 공통 분모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후보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지방자치단체장인 자신을 좌지우지할 수단은 거의 없다는 것. 대통령 눈치볼 필요 없이 ‘마이 웨이’를 가겠다는 얘기다. 어찌됐건 이시장으로선 잘 다듬은 비전 하나로 일거양득 이상의 효과를 거뒀다는 평가다. 개발비 등의 타당성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다소 침체됐던 서울시가 잘 돌아가는 민간 기업처럼 어느 정도 활기를 되찾았다는 분석에는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다. 서울시 공무원들에게 경영 마인드를 심으려는 노력도 ‘거장’다운 면모이다. 이시장은 “기업은 돈을 어떻게 벌고, 얼마나 잘 쓰느냐를 고민하지만 공무원 조직은 주어진 예산을 나눠준다고 착각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다 보니 어떡하면 효과적으로 쓰느냐가 아니라 쓰느냐 마느냐를 갖고 머리를 싸맨다는 것. 이시장은 “엄청난 역사(役事)를 벌이니 뭉칫돈이 들거라고 생각하지만 경영 마인드를 도입해 내년 예산을 짜니 올해보다 2% 이상 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서울시 간부 특별연수 현장인 삼성인력개발원을 둘러보라고 권했다. 공직사회에도 경영 마인드를 도입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마련한 경영 교육장이다. 이곳에서는 지금 4급 이상 시 공무원 2백30여명이 번갈아가며 교육을 받고 있다. 지금은 자신이 일일이 간섭하듯 들여다보지만 머지않아 민간 기업 임원 수준이 될 걸로 그는 기대하고 있다. 이시장은 추진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별명도 불도저다. 그러나 공무원 조직이 그의 뜻대로 움직일 지는 미지수다. 공무원 사회에 밝은 사람들은 단적으로 비용 절감 등이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시청의 한 관계자는 “고건 전 시장은 관료사회의 특성을 잘 아는 사람이라 정책을 추진할 때 불필요한 충돌은 가급적 피했지만 이시장은 ‘돌격 앞으로’만 외치는 것 같다”고 밝혔다. 효율성에만 포커스를 맞추는데다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라 시청 공무원들과 얼마나 잘 어울릴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 자칫 조직관리에 누수가 생길 수도 있다는 얘기다. 취임 한달여 만에 나온 ‘살생부’ 논란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이른바 고건맨과 친(親) 민주당 인사는 배제한다는 것이 그 핵심. 당시 민주당은 이시장에게 “서울시 인사의 기준을 밝히라”며 공세를 폈다. 그는 이에 대해 “이른바 살생부에 올랐다는 어느 인사는 오히려 고위 간부로 승진했다”며 터무니없는 정치 공세였다고 일축했다. 그럴까? 지난 11월6일 서울시 홍선광 부이사관이 일간지 광고에서 “서울시 도시개발공사 사장을 미리 내정, 시장이 멋대로 선정했다”며 “서울시를 개인 회사로 착각하지 말라”고 주장해 파문이 일었다. 정치권에 밝은 한 교수는 “이시장이 서울시 조직을 장악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명무실했던 구청장 회의를 한 달에 한번씩 열어 이견을 조정한다는 계획도 그의 생각대로 잘 굴러갈 지도 미지수다. 예컨대 개발의 과실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할 경우 대화와 타협을 통해 서로 양보하기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데 자칫 장밋빛 계획에 그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개혁과 혁신도 중요하지만 서울 경영의 연속성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고건 전 시장의 역점 사업이었던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 사업이나 뚝섬 개발 사업은 시정의 중심에서 약간 비켜나 있거나 틀이 통째로 바뀌어 말썽을 빚을 소지가 있다. 도덕성 시비가 ‘CEO 시장’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서울시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재산등록사항 공개목록에 따르면 이시장 일가의 재산은 모두 1백86억2천여만원으로 역대 시장 가운데 가장 많다. 이 금액을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은 드물다. 세간에는 적어도 신고 금액의 10배는 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적지 않다. 시장 당선 전 한나라당 고위 인사쪽에 돈을 건넸다는 얘기도 있다. 벤처 비리 연루설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요즘엔 “강북 뉴타운에 이시장 땅은 없느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정작 이시장은 “모두 터무니없는 헛소리”라고 일축했다. 이시장은 히딩크와의 사진 촬영, 살생부 파문 등으로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다행히 주식회사 서울을 개조할 대역사(大役事)의 마스터플랜을 제시하며 한숨 돌린 상태다. 청계천 복원 등이 그의 구상대로 될지 아직은 알길이 없다. 생태계는 복원하고, 교통난은 가중시킬 수도 있다. 절반의 성공이랄까? 그가 공언한 CEO 시장이란 결국 결과로 말할 일이다.

[미니 박스/CEO시장, 검증의 잣대는?] 조동성 서울대 경영대학장과 함성득 고려대 정경대 교수 그리고 한창수 삼성경제연구소 박사의 도움을 받아 질문서를 작성했다. 내용은 크게 비전·실천력·도덕성 등으로 구성했다. 비전 부문은 미래 트렌드를 읽거나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할 수 있는 능력 등을 중시했다. 실천력 부문은 조직 장악력과 기획력·추진력 등을 고려했다. 사회적 자질이랄 수 있는 도덕성 잣대는 공직자로서 재산 형성 과정 등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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