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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넓고 도망갈 곳은 많다?

세계는 넓고 도망갈 곳은 많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김충식 전 현대상선 사장
안정남 전 국세청장, 이석희 전 국세청 차장,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왼쪽부터)
“1997년 대선 때 여야후보들에게 정치자금을 전달한 이대영 미래그룹 회장은 그 대가로 막대한 공적자금을 받았으나 결국 경영에 실패해 현재 해외도피 중입니다. 그가 모든 혐의를 인정하고 법의 심판을 받겠다는 뜻을 밝혀왔지만 아직 귀국을 못하고 있어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진실이 드러날 경우 치명타를 입게 될 무리들이 그의 귀국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6일부터 방영되기 시작한 MBC 새 수목드라마 ‘삼총사’의 첫 장면이다. 우리 사회에서 범죄 후 해외도피는 이제 거의 일상적인 일이 돼 버렸다. 이들 도망자들을 소재로 한 정치드라마까지 나오는 현실이다. 현 정부 들어 발생한 여러 건의 게이트 때마다 핵심 혐의자나 증인들이 사건 공개를 전후로 해외로 달아나 진상파악이 안 된 경우가 많다. 대우그룹의 김우중씨는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케이스로 아직도 행방이 묘연한 채 유럽의 어느 곳에서 은신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른바 세풍사건의 이석희 전 국세청 차장도 도피 중이던 미국에서 현지 경찰에 의해 체포돼 본국 송환 여부를 결정할 재판을 받고 있다. 정현준 게이트에 연루된 오기준 신양팩토링 사장과 유조웅 동방금고 사장, 이용호 게이트에 관련된 김현성 한국전자복권 사장·윤명수 R기업 전무 등도 해외로 도피 중인 인물이다. 이밖에 부동산 투기의혹을 받고 있는 안정남 전 국세청장도 해외로 도피 중이다. 최근에는 수백억원대 주가조작사건을 벌인 기업인이 가족으로 데리고 해외로 도주했다가 입국이 거부돼 송환됐는가 하면, 연예인 비리사건과 관련해 유명연예인 2명이 해외로 도피한 뒤 귀국을 거부하고 있다. 또 해외도피 사건 가운데 가장 웃기는 일은 이런 해외도주범을 잡아들여야 할 경찰청 특수수사대의 최규성 전 총경이 미국으로 도주해 버린 사건이다.

김우중씨 4년째 낭인생활 해외도피가 민간인이나 공직자를 가리지 않고 범죄의 세계로 만연이 된 느낌이다. 정권교체기는 사회적으로 불안한 시기다. 사회적인 기강 해이로 인해 범죄 유혹이 크고, 감추어진 비리가 드러날 가능성도 커진다. 핵심 혐의자나 증인이 해외로 도주하는 일이 앞으로 더욱 빈발할 가능성이 크다.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누구 누구는 정권 바뀌기 전에 해외로 토낄 것’이라는 얘기들이 공공연히 나돈다. DJ정권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들이 그 대상으로 거론된다. 지난 90년 이후 국내에서 죄를 짓고 해외로 도피한 사범은 모두 2천3백72명이며, 이 중 64.1% 인 1천5백21명이 지난 2000년 이후 도피한 것으로 집계됐다. 법무자 자료에 따르면 1990년대엔 연간 1백명 안팎이던 해외도피 사법은 지난 2000년 5백14명, 2001년에는 6백14명으로 크게 늘었다. 특히 올 상반기에만 3백93명이 각종 범죄를 저지르고 해외로 달아났다. 국가별로는 미국이 86명으로 가장 많고 일본 25명·홍콩 18명·태국 8명·호주 6명순으로 85% 이상이 우리와 범죄인 인도조약을 체결한 국가로 파악됐으며, 사기·횡령·부도·배임 등 경제범죄가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것으로 나타났다. 해외도피 사범이 이처럼 급증한 것은 IMF사태 이후 한국사회에 만연한 한탕주의식 모럴 해저드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지난 99년 10월 출국, 4년째 해외체류 중인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최근 측근에게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김우중 전 회장은 지난 9월 독일 모처의 병원에서 장 협착증 수술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회장의 핵심 측근은 최근 “김 전 회장은 그전에 뇌경막하혈종 제거수술을 받은 적이 있고 심장질환도 호전되지 않아 전체적으로 건강상태가 매주 좋지 않다”고 전했다. 그는 또 “김 전 회장은 스스로 원해서 떠난 것이 아닌 만큼 빨리 귀국하고 싶다는 뜻을 주위사람들에게 여러 차례 밝혔다”면서 “그러나 대우의 공과(功過)를 밝혀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무르익지 않는 한 김 전 회장의 귀국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 대우그룹 OB모임에 가보면 김 전 회장 귀국을 놓고 설왕설래한다. 들어오고 싶지만 현 정부가 귀국을 못하게 막고 있다는 볼멘 소리도 나온다. 아직은 귀국할 때가 아니라는 신중론을 강조하는 인사도 있다. 어쨌든 한때 국내 3∼4위를 다투던 대우그룹의 김우중 전 총수는 4년째 해외에서 낭인생활을 하고 있다. 부인 정희자씨가 옆에서 간호를 하고 있다. 정희자씨는 가끔 국내에 소리없이 들어왔다 나가곤 한다. 얼마 전 추석 때도 잠깐 귀국했었다. 최근 들어 현대그룹 전·현직 임원들의 해외도피가 부쩍 늘어났다. 현대와 관련된 정치적·경제적 이슈들이 불거져 나오면서 해외로 튄 도피성 외유가 대부분이다. 현대그룹은 ‘4천억 대북지원 의혹설’이 제기되면서 또 다시 걷잡을 수 없는 미궁에 빠져들고 있다.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은 미국과 일본을 오가며 폭탄발언을 일삼다 최근 귀국,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김충식 전 현대상선 사장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체류하면서 신병 치료 중이다. 김 전 사장은 최근 인터뷰를 통해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의 불법자금 요청을 거절했다가 사표를 냈다”고 발언해 현대그룹을 뒤흔들어 놓았다.

현대그룹 전·현직 임원 대거 해외체류 현대의 자금담당 총책임자였던 이익치 전 회장은 느닷없는 ‘도쿄발언’을 통해 정몽준 후보를 정면공격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민사·형사 소송에 휘말리고 있는 데다 아들 병역청탁 혐의로 지명수배를 받아왔었다.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은 대북사업을 챙긴다는 명분으로 북한과 중국·일본등지를 돌고 있지만, 세간의 이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현대아산 관계자들은 “김윤규 사장이 외부와의 접촉을 의도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북사업 관련 협의차 외국을 도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잦은 외국행도 4천억 대북지원설과 맞물려 심기가 불편한 게 사실이라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정몽헌(MH) 현대아산 회장은 지난 9월15일 출국한 이래 미국에 머물며 아직까지 귀국하지 않고 있다. 그의 최근 행보는 지난 2000년 3월 ‘왕자의 난’과 함께 투신·건설 등 각 계열사 유동성 위기가 몰렸을 때 일본에 체류하며 외부와 접촉을 차단했을 때와는 성격이 매우 다르다. 정회장은 막후에서 현대상선의 자동차운송사업 매각 등을 챙기며 연내 경영복귀를 준비하는 듯한 인상을 줬지만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 대북지원 의혹이 수그러들지 않는 한 귀국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전경련 고위 관계자는 “현정권의 햇볕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한나라당이 집권할 경우 정몽헌 회장은 현대그룹에 대한 경영권 보장도 불투명할 뿐만 아니라 김우중 전 대우 회장처럼 해외 망명생활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올해 코스닥에 등록한 파라다이스의 전락원(75) 명예회장도 도피성 외유를 3년 이상 했다. 전명예회장은 ‘카지노 업계 대부’로 불린다. 전명예회장의 이름은 지난 90년대 초반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93년 사정(司正) 바람과 함께 슬롯머신 업체를 둘러싼 비자금 문제가 사회 문제로 제기되면서 카지노 업체를 운영하던 전 명예회장에게까지 수사망이 좁혀왔다. 이 과정에서 전 명예회장은 90년부터 92년까지 법인세 1백22억원을 탈세하고 케냐 사파리파크호텔 개축자금으로 1천6백만 달러를 국외로 도피시킨 혐의를 받고 기소됐다. 전명예회장은 이때 구속을 피해 3년 3개월간 기나긴 도피성 외유를 떠났다. 도피 과정에서도 3백55억원에 대한 추징금을 세차례에 걸쳐 현금으로 완납해 뛰어난 현금 동원능력을 자랑하기도 했다. 이후 96년 귀국, 외화 밀반출과 재산 국외도피 혐의로 법정 구속됐지만 98년 8·15 특사에서 잔형 집행 면제로 석방되는 등 인생을 굴곡을 경험했다. ‘카지노 대부’라는 부정적 이미지와는 달리 전명예회장은 뛰어난 사교술로 국내는 물론 외국 고위인사들과도 두터운 친분을 자랑한다. 특히 74년 케냐 나이로비에 현지투자법인을 설립한 후 76년에는 카지노 업체를 개관해 케냐에서는 국빈급 대접을 받기도 한다. 케냐 정부 고위층과 폭넓은 교류를 밑천으로 88년 서울올림픽 유치 과정에서 아프리카 표를 획득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얘기다. 전명예회장은 이 공로를 인정받아 88올림픽 유치공로로 국민포장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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