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再起노리다 '할말'잊은 벤처 代父 끝내추락

再起노리다 '할말'잊은 벤처 代父 끝내추락

어디까지 추락할 것인가? ‘잊혀져가던 벤처 대부(代父)’ 이민화(49) 전 메디슨 회장에게 이번 겨울은 유난히 쌀쌀하다. 회사가 경영난에 몰리면서 2000년 말 회장직에서 물러나더니 이번에는 배임 혐의로 법정에 설 처지가 됐다. 지난달 대양상호신용금고 불법대출 사건을 조사 중이던 수원지검은 대출자 명단에서 ‘뜻밖의 거물’을 포착했다. 자금난을 겪고 있던 이 전 회장이 대양금고측에 접촉했고, 이 회사 대주주인 김영준씨를 통해 수백억원의 자금이 불법 대출된 사실을 밝혀낸 것. 이 전 회장은 김씨를 통해 2001년 3월 회사 명의로 4백45억원을 대출받았고, 이 가운데 ‘꺾기’ 명목으로 2백79억5천만원을 김씨에게 넘겨주었다. 이 돈은 결국 68억원만 회수돼 회사에 2백11억5천만원의 피해를 입힌 혐의다. 이에 대해 이 전 회장 측은 “혐의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당시는 자금 융통에 다소 무리가 따르더라도 부도 위기를 넘기는 것이 1순위였다”라고 밝혔다. 오스트리아 자회사 크레츠테크닉을 매각해 메디슨을 정상화시키는 것이 급선무였고, 신용금고 대출 건은 ‘생존자금’ 마련을 위한 고육책이었다는 것.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에 대해 “(이 전 회장이) 피의사실 전부를 인정,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다”며 법원이 영장심사에서 구속을 기각했다. 검찰은 조만간 구속영장을 재청구하거나 불구속 기소한다는 방침이다. 당장 철장 신세는 면했지만 벤처 대부의 ‘몰락’은 정해진 수순으로 읽힌다.

시는 부도위기 넘기는 게 1순위” ‘벤처 신화’의 상징처럼 불리다가 이용호 게이트의 장본인이자 ‘머니게임’을 본업으로 하던 김영준과 손을 잡게 될 만큼 메디슨은 어려워졌던 것일까? 메디슨 신화는 창립 이후 15년 동안 계속됐다. 메디슨호(號)는 초음파 진단기를 주력 상품으로 매출과 순이익에서 연평균 50%대 성장률을 구가했다. IMF 위기도 없었다. 매출액이 1998년 1천9백억원, 99년엔 2천억원을 넘어섰고 순이익은 99년 5백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위기는 전성기와 함께 찾아왔다. 이듬해부터 메디슨은 곤두박질치고 만다. 본업은 신통치 않은데 ‘벤처 연방’을 내세우면서 주식 투자에 열중한 데 문제가 있었다. 코스닥 거품이 걷히면서 투자한 주식 가치가 급격히 떨어졌다. 43개사에 달하는 ‘벤처 연방’ 건설을 위해 끌어다 쓴 빚 때문에 부채비율은 6백53%까지 늘어났다. 밀어내기 수출을 하다 보니 재고자산이 6백7억원까지 늘어났고, 경상적자가 1천3백47억원에 달했다. 회사가 코너에 몰리자 은행은 냉정했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부도설이 나온 이후 은행은 2년간 한 번도 도와준 적이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부도 다음날이 유상증자 대금 납입일이라 2백억원이 들어올 예정”이라고 설득했지만 은행은 그를 믿어주지 않았다는 것. 비상장 중소기업 최초로 지급보증을 받지 않고 무보증사채를 발행한 ‘화려한 시절’을 기억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별다른 방법이 없어지자 이 전 회장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김영준과 접촉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는 이용호 게이트는 수면 아래 있던 시기였다.한편에서는 돈이 오고간 시점을 들어 메디슨 부도 과정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이씨가 회장에서 물러난 시기는 2001년 10월, 회사가 부도가 난 것은 2002년 1월 말의 일이다. 그러나 대양금고에서 돈이 들어온 것은 이보다 훨씬 전인 2000년 말에서 2001년 3월이다. 모든 상황을 감지하고 있던 이 전 회장이 부도가 나기 1년여 전부터 사채업자와 접촉하면서 ‘다른 수(手)’를 모색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벤처기업가 C씨는 이 전 회장과 사채업자의 접촉 시기에 주목하면서 “자금조달 시기로 미루어 이 전 회장은 상당히 일찍부터 위기를 간파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 전 회장이 보유주식을 매각해 손을 쓰는 등 보다 세련된 ‘위기관리 능력’을 보였다면 최악의 사태는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벤처신화 典型 vs 벤처거품 장본인 이 전 회장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엇갈린다. “가장 존경하는 인물” 또는 “벤처사업을 시작하게 된 모델”이라며 칭송하는 아군도 많지만 적군도 많다. 이민화 하면 으레 ‘메디슨 신화’를 떠올리게 되고, 메디슨은 기술력으로 우뚝 선 벤처의 전형(典型)으로 거론된다. 그러나 이 전 회장은 엔지니어형 CEO라기보다는 비즈니스맨, 비즈니스맨보다는 벤처 정책가로 비쳐지기도 한다. 기업인 이민화를 ‘제대로 읽으려면’ 잠시 시계추를 거꾸로 돌릴 필요가 있다. 90년대 초반, 정부가 북방외교에 공을 들이던 때였다. 당시 노태우 정권이 소련(현 러시아)과 국교를 맺기 위해 30억 달러의 차관을 제공했다. 현물차관 형태의 이 돈은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던 소련 국민들의 생활고를 덜어주는 데 쓰였다. 이를테면 식료품과 옷·담요 같은 생필품들로 제공됐던 것.그런데 소련 정부가 요청한 ‘생필품 리스트’에는 첨단 의료장비였던 초음파 진단기가 들어 있었다. 국내에서 초음파 진단기를 만드는 업체는 메디슨이 유일했다. 메디슨은 단숨에 3천만 달러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 전 회장의 ‘수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85년 메디슨에 투자했던 서갑수 한국기술투자 전 회장 역시 비슷한 뉘앙스의 말을 한 적이 있다. “당시는 메디슨이 출범하던 해였다. 우리(KTB자산운용)는 메디슨에 2억원을 융자하기로 결정했다. 기술도 좋았지만 이 전 회장의 마케팅 감각이 뛰어났다는 점을 높이 샀다.” 벤처심사역 눈에 이 전 회장은 유능한 기술자보다는 훌륭한 장사꾼으로 보였다는 것이다. 스스로 “오버했다”고 표현할 정도로 도를 넘어선 대외활동에 대해서도 말이 많았다. 95년 이 전 회장은 벤처기업협회를 구성해 초대회장에 취임한다. 아직까지 벤처라는 용어조차 낯선 때였다. 회장에 취임하자마자 그는 ‘벤처기업 육성방안’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기술을 가진 우량 중소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장외시장에 상장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이를 그는 ‘작은 나스닥’이라 불렀는데, 이 안을 바탕으로 96년 코스닥시장이 탄생하게 된다. 이듬해 7월에는 이 전 회장이 주도한 벤처육성법이 통과됐다. 법안의 주요 내용은 벤처기업을 정부가 인증해 유리한 조건으로 투자를 받을 수 있게 해주자는 것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벤처인증제도(벤처확인제도)가 탄생한 것이다. 이밖에도 스톡옵션·벤처빌딩 같은 ‘히트작품’들이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일부에서는 이 전 회장에 대해 “코스닥을 머니게임의 장으로 변질시킨 원인을 제공했다”며 ‘벤처 모럴 헤저드’의 장본인으로 평가 절하하기도 한다. 어쨌든 한 기업의 수장으로서 벤처경영 ‘선생님’으로 나섰던 것은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 회사를 떠나 정책에 간여한다는 것 자체가 종업원과 주주의 이익과는 대칭선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 전 회장은 “벤처정책에 깊숙이 개입하기 시작한 96년 무렵 회사 경영에서 물러났어야 했다”고 말한 바 있다. 한편 지난 11월 법정관리 판정을 받은 메디슨은 활발히 ‘부활’을 모색하고 있다. 대리점.해외법인을 청산했고 ‘주특기’인 초음파 진단기 외에는 사업 분야를 대폭 줄였다. 3·4분기 매출이 7백35억원으로 화려했던 시절과는 거리가 멀지만, 2005년까지 재무구조를 정상화해 다시 거래소에 상장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이 전 회장 역시 1년여의 칩거를 거치면서 재기 시기를 저울질해 왔다. 김문수 전 메디링스 대표가 세운 ‘메디벤처’라는 의료연구소 고문으로 있으면서 일주일에 한 차례 정도 사무실에 출근했다고. 지난 11월 중순에는 ‘셀린 사이언스’라는 바이오벤처 기업을 설립하기도 했다. 그러나 배임 혐의사건이 불거지면서 이런 ‘재기 스케줄’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나이 50부터는 골프를 시작하겠다”던 그의 공언이 지켜질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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