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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프라이빗뱅커를 찾아서]70세의 '안락한 노후'“20억 든다

[한국의 프라이빗뱅커를 찾아서]70세의 '안락한 노후'“20억 든다

“앞으로 서비스는 사이버와 인간, 두 가지로 나뉠 겁니다. 사이버로 가면 매스(mass), 즉 대중을 상대하는 서비스가 되죠. 인간이 직접 제공하는 서비스는 소수의 ‘부자 고객’쪽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고부가가치화가 가능하고, 인건비가 빠지기 때문이죠.” 대우증권 PB영업점인 압구정동 시저스 클래스의 김선문 지점장이 말하는 ‘PB 선택의 변’이다. 그는 스스로 “디지털 머리가 아닌 것 같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남은 하나, 부자 마케팅을 택했다.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은행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고객 1인당 수익성이 높지 않은 일반고객은 최대한 인터넷을 이용하도록 끌어들이고, 부가가치가 높은 부자고객에게 고급 서비스를 치중하는 것이다. 그래서 은행들의 PB 시장 쟁탈전은 갈수록 뜨거워질 수밖에 없다.

‘프라이빗뱅커=부자 전문가' 한국 금융계에서 ‘PB’는 VIP마케팅과 혼용되고 있다. PB의 원조, 스위스의 은행들은 대개 금융자산 30억원 이상의 고액 자산가들만 상대로 한다. 하지만 한국의 실정은 다르다. 신한·조흥은행의 경우 10억원 이상 은행에 돈을 맡긴 고객들에 한해 PB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삼성생명의 PB서비스격인 FP센터도 10억원 이상 보험상품에 가입한 고객들에 한해 종합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지만 나머지 금융기관들은 대개 1억∼5억원 정도의 예탁자들을 상대로 영업한다. 이 정도 규모는 PB라기보다 VIP마케팅의 범주다. 그래서 한국 금융계 대부분의 PB영업은 중상층의 부자 고객, 또는 부자가 되는 과정에 있는 중산층 엘리트 고객에 조준돼 있다. 이런 부자들의 자산관리를 맡는 PB들은 단연 최고의 ‘부자 전문가’다. 이들은 부자(중산층 이상의 생활을 기준으로 할 때)가 되는 방법을 어떻게 조언할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종잣돈을 모아서 기다리면 반드시 은행 금리 이상의 수익률을 올릴 기회가 온다고 강조한다. 월급으로 평생 얼마를 모을 수 있는지 산술계산하면 불가능해 보이는 돈도 현실에서는 만들 수 있다. 재산을 불리는 일은 단순 덧셈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유식 한미은행 PB팀장은 “2천만∼3천만원의 종잣돈을 모아서 재테크를 시작”하라면서 “상황마다 구체적인 방법은 다르지만, 어쨌든 종잣돈을 들고 주의깊게 들여다보면 분명히 기회가 온다”고 강조한다.삼성증권 세금담당 PB인 류우홍 차장은 “2억∼3억원 이후부터는 상당히 빠른 속도로 돈이 불어난다”고 말한다. 류차장은 돈 관리에서 2대 2대 1 원칙을 강조한다. “예컨대 2백만원의 월급을 받는다면 80만원은 당장의 생활비, 80만원은 미래, 나머지 40만원은 현재를 위한 투자로 쓰십시오.” 노후를 대비한 연금상품 등에 생활비와 똑같은 액수를 넣으라는 얘기다. “왜 다들 돈, 돈 합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치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미래가 불안하기 때문 아닙니까? 회사는 언제 그만두게 될지 모르고, 수명은 길어지고…. 결국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의 문제가 핵심이죠. 그래서 저는 현재 생활비만큼 미래를 위해 투자하라고 말합니다.” 생활비와 노후자금을 제외한 나머지는 현재를 위한 투자, 즉 내집마련 등 당장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목돈 마련을 위해 저축하라는 것이다. 류차장은 한동안 ‘짠돌이’라는 주변의 비아냥을 들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이 세운 저축 목표액을 달성할 때까지 기꺼이 감수했다. 최팀장도 월급쟁이가 종잣돈을 모으는 데 “외식 한끼 덜하고, 술 한잔 덜 마시고, 허리띠 졸라매는 수밖에 무슨 길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남의 돈으로 하는 주식투자는 도박 돈 한푼 없이 빚내서 주식투자 하는 식의 방법은 재테크가 아니라 도박이다. 하지만 그냥 저축만 한다고 돈이 불어나는 것은 아니다. 종잣돈이 생기면 좀더 적극적으로 재테크를 해야 한다. 그러려면 돈 되는 투자정보를 잘 좇아가야 한다. 부자들은 자신의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정보를 수집하고 비교 분석한 뒤 결정을 내리는 게 특징이다. 절대 한두 사람의 말에만 의존하는 법이 없다. 어디서 ‘○○투자가 유망하다’는 말을 듣고 덜컥 투자결정을 내리는 일은 없다는 말이다. 투자정보를 들으면 반드시 여기저기 중복 체크해 보고, 스스로 실사를 해본다. 그러나 직장인의 경우 재테크에 많은 시간을 투입하기 힘들다. 그래서 금융 컨설턴트가 필요하다. 예탁자산 1억∼10억원 이상의 부자들은 PB를 이용하면 된다. 하지만 중산층은 불가능하다. 최팀장은 이 경우 “한 은행을 정해두고 꾸준히 거래하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그러다 보면 단골 은행원이 생기고, 각종 금융상품에 대한 정보도 들을 수 있다. “PB서비스는 중산층·서민들에게도 가야 한다”(김선문 지점장)는 게 금융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급격히 고령화되는 현재 추세에서는 어떤 방법으로도 정부가 개인의 노후를 책임지는 것은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어느 정도는 각자가 준비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자면 온 가족이 가장의 월급만 바라보고 있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혼자서 재테크를 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저금리·부동산 차별화 장세·불안정한 주식시장 등으로 정교한 재테크 전략이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씨티은행 프라이빗뱅킹그룹의 이재형 대표는 최근 열린 한 PB 관련 세미나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지금은 PB가 소수의 부자를 위한 서비스지만 앞으로 5∼6년후면 일반 소비자 금융의 모든 직원들이 PB마인드를 가져야 합니다. 고객의 자산 등급에 따라 차별화된 서비스를 하는 것뿐이지 기본적으로는 누구나 자산관리 서비스가 필요한 시점이 곧 오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일반인들도 자신의 PB를 둔다는 기분으로 금융기관을 1백20% 활용할 필요가 있다. 맞벌이 부부가 아니라면, 주부가 재테크 공부와 실행을 담당하는 ‘분업전략’도 좋은 방법이다. 남편은 직업적인 전문성에 매진하고, 아내가 재테크 전문가가 돼 자산을 효율적으로 운용한다면 맞벌이 부부보다 유리할 수도 있다.

70세까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라 그렇다면 PB들은 어느 정도 돈이 있어야 안락하고 품위 있는 노후를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할까? 약 20억∼30억원이 있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중론. 어떤 수준의 노후생활을 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가끔씩 여행도 하고, 골프도 치면서 여유로운 노후생활을 유지하자면 사는 집을 빼고 20억∼30억원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여유롭지는 않더라도, 자식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노후를 보낼 수 있는 액수도 10억원 정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추산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70세 전후까지는 뭐든지 ‘일’을 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75.9세다. 현재 30·40대가 노년기를 맞을 때쯤이면 평균수명이 80∼90세는 될 것으로 의학계를 보고 있다. 60세에 은퇴한다고 해도 무려 20∼30년을 놀고 먹어야 한다는 얘기다. 재테크 전문가인 PB들이 자신의 개인적인 재테크보다는 금융전문가로서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전문성 향상에 분초를 아끼는 이유도 ‘근로 수명’을 늘리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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