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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 가볍게 보지마라

우동, 가볍게 보지마라

색깔 있는 면발이 특징인 본가우동. 치자,홍화씨,된장,과일 등을 원료로 사용한다.
2년 전 요맘 때 TV 방송용으로 ‘면발 당기는 이야기’를 스물 네편이나 뽑아냈다. 시작할 때는 열 두 편쯤 할 요량이었으나 두 배로 늘어난 셈이다. 왜 그렇게 늘렸느냐. 자장면과 라면 그리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이따금 사먹는 우동이 거의 전부였던 나에게 새롭고 신기한 면발의 세계가 끝없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의 우동은 대단했다. 중국에서 건너갔다고 하지만 우동은 일본이 꽃 피운 세계적인 음식이다. 1988년 이디오피아와 수단에서 기근에 관한 다큐멘터리 취재를 마치고 귀국길에 앵커리지공항에서 맛본 우동(일본 사람이 운영하는 가게)은 한달 여의 험난한 취재 일정을 한꺼번에 보상해 주는 듯했다. 나는 아직도 ‘우동’하면 앵커리지공항을 떠올린다. 그런데 면 음식을 소개하기로 작정하고 일본 속을 파고들어가 보니까 앵커리지공항에서 먹은 우동은 일본의 뒷골목 어디에서나 맛볼 수 있는 평범 또는 그 이하의 우동에 불과했다. ‘앵커리지우동’의 추억을 여지없이 깨뜨려버린 것은 ‘황태자우동’이었다. 지금의 일본 국왕이 황태자 시절 사이타마현에 있는 민물고기 양식장을 시찰하러 가다가 한끼 간단히 때웠다는 우동집인데 그 맛이 기가 막혔다. 값은 3백50엔, 우리 돈으로 3천5백원이니까 대단히 저렴한 가격이다. 기다란 면 밀대를 소림사 고승이 봉 다루듯 자유자재로 휘두르고 밀면서 면발을 뽑아내던 젊은 주방장(3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의 결연한 표정이 여태 생생하다. “아직 황무지라고 봐야지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인천의 ‘본가(本家)우동’의 주인 강동구(42)씨다. 2대째 면발을 뽑고 있는 의지의 한국인 인데 그는 단순히 반죽하고 뽑는 게 아니라 우동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일에 청춘 다 날린 사람이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이제야 본격적인 우동맛을 보여줄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내가 찾아간 날은 ‘김치얼큰굴우동’과 ‘뽕잎가시리우동’이 오늘의 특선메뉴였다. ‘김치얼큰굴우동’은 지난 밤 과음하신 분들이 드실 것이고 ‘뽕잎가시리우동’은 기능성을 최대한 살린 건강식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드시라고 준비했단다. ‘뽕잎가시리우동’에서는 귀여운 문학적 재능이 엿보여서 웃었더니, 강씨의 아름다운 부인 최미옥(38)씨가 생긋 웃는다. “‘뽕잎우동 먹고 뿅 가거라.’ 그런 뜻인 줄 아셨죠?” 잘 못 알았다. 가시리는 가거라가 아니라 해초의 이름인데 낯선 바다풀이었다. 가시리뿐만 아니라, 강동구씨는 치자·홍화씨·뽕 잎은 물론 수박·참외·딸기 같은 과일도 우동의 재료로 삼고 있다. “좀 별난 사람이군”하고 놀라기에는 아직 이르다. 막걸리·우거지·된장·고추장…. 우리 주변에서 늘 접할 수 있는 조선음식의 모든 소재가 그의 손을 거쳐서 면발 속으로 스며들어간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다. 우거지가 들어갈 때, 막걸리가 들어갈 때, 그 때마다 밀가루를 혼합하고 반죽하고 숙성시키는 방법과 시간이 다 다르다. 모든 밀가루(중력분·강력분·박력분 등등)의 성질을 다 파악하고 있어야 하며, 최소한 스물 네시간에서 최고 1백일(김치우동의 경우)까지 숙성되기를 기다려야 하는 지혜와 인내가 요구되는 작업이기도 하다.이런 고도의 노하우와 시간의 투자에 비해 한그릇 4∼5천 원의 가격은 전혀 비싸게 느껴지지 않는다. ‘우동의 몰락’이 고속도로 휴게소의 맛없는 우동에서 비롯됐다고 분개하는 강동구씨는 ‘대전역에서 서서 먹던 맛있는 우동’의 추억을 되살려 내고야 말겠다고 두 주먹을 불끈 쥔다. 전화 : 032-764-9668 (인천 중구청에서 1백m 거리)

추천해 준 분 : 한태수씨 (파라다이스 호텔 총지배인) 이 집 우동은 단순한 우동이 아니다. 주인이 끊임없이 개발해서 내놓는 우동 한그릇을 앞에 놓고 나는 늘 감동받는다.식소다·방부제·인공색소 하나 쓰지 않고 어떻게 이런 맛을 낼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치자·홍화씨·고추장 등에서 빼낸 색깔은 또 얼마나 화려한가. 그의 아름답고 건강한 우동이 우리나라의 고속도로 휴계소뿐 아니라 일본과 중국, 아니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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