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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으로 몰리는 뭉칫돈 청계산 주변·하남 등에 눈길

땅으로 몰리는 뭉칫돈 청계산 주변·하남 등에 눈길

토지값이 오르자 전문 투기꾼들은 개발 예정지를 돌며 불법, 탈법 거래를 일삼고 있다.
“땅으로 부(富)의 이동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토지를 전문으로 거래하는 한 공인중개사의 말이다. 최근 5·23 대책 등 아파트와 주택에 집중된 정책 때문에 돈 가진 사람들의 관심이 토지로 쏠리고 있다는 것이다. 토지는 환금성이 떨어지고 장기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일반인들의 단골 메뉴는 아니었다. 하지만 주택에 대한 버블(거품) 우려가 커지면서 이제는 ‘토지밖에 없다’는 인식이 점점 확산되고 있다. 토지에 대한 규제가 상대적으로 헐겁고, 도시민들의 농지 취득이 쉬워진 것이 일차적인 원인이다. 이 때문에 지금 신도시 인근이나 개발 호재가 있는 땅에는 미등기 전매가 성행하고, 토지거래허가를 피하기 위한 불법·탈법 행위가 기승을 부려 정부의 단속 의지를 무색케 하고 있다. 고준석 신한은행 PB팀장은 10억원 이상 고액자산가들이 요즘 들어 부쩍 토지에 관심을 갖는 것에 적잖게 놀라고 있다. 고팀장은 “종전에는 소규모 상가 건물·빌딩·재건축 대상 아파트가 인기였지만, 최근엔 토지에 투자하겠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며 “5·23 대책 후 특히 아파트는 거품이라는 생각이 늘고 토지를 투자의 대안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투기 바람’거세진 김포 고액 자산가들이 관심을 갖는 곳은 주로 강남권 수요를 대체할 지역으로, 서울 공항 주변이나 청계산 주변, 성남·하남시 등이다. 지난달 초 신도시로 지정된 김포·파주시에는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이 무색할 만큼 투기 바람이 거세다. 김포시의 경우 새롭게 건축허가를 받았거나 신도시 인근의 수용되지 않는 1∼2급지 땅은 평당 70만∼1백만원, 땅 모양이 좋지 않거나 도로 사정이 나쁜 3∼4급지가 평당 50∼60만원으로 한두 달 새 20만원 이상 올랐다. 장기동 현대공인중개사무소 황봉석 사장은 “신도시 발표 직후에 비해 가격 오름은 잠잠해졌지만 5·23 조치 후 추가 상승을 기대한 일부 토지주들이 매물을 거둬들이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펜션 건축 붐으로 충청·강원권의 스키장·바다·계곡·유원지 인근의 땅들도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충남 안면도 일대 펜션 부지로 적합한 땅들은 지난해 평당 80만∼1백만원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평당 3백만원으로 3배 이상 올랐다.

토지‘미이용전매’도 등장 동계 올림픽 유치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강원도 평창군도 올 초에 비해 땅값이 2∼3배 뛰었다. 이 지역의 토지거래 건수도 크게 늘어 올 4월까지 거래 건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1천9백50여필지) 2배 이상 증가한 3천2백90여필지에 이른다. 택지개발지구 내 단독주택지는 단기차익을 노린 사람들의 투기장이 된 지 오래다. 지난달 28일 접수를 마감한 남양주 평내지구 내 단독택지 49개필지에는 1천9백60명이 몰려 평균 40대 1, 최고 3백5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토지공사 관계자는 “남양주시 거주 무주택 세대주라는 자격 제한을 뒀음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분양권 전매 제한으로 인해 이쪽으로 투자자들이 몰린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농지법 개정으로 도시민들도 3백평 미만의 농지를 매입할 수 있게 되면서 농지 거래도 활발해졌다. 일부 전원주택업체들은 대지에 비해 가격이 싼 한계농지를 개발해 펜션 단지를 분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농림부가 한계농지에 대한 대체조성비를 1백% 면제해 주는 방안을 추진 중이어서 수요는 계속해서 늘어날 전망이다. 토지값이 오르자 전문 투기꾼들은 개발 예정지를 돌며 불법·탈법 거래를 일삼고 있다.가장 흔한 방법이 미등기 전매.파주시에서 토지 거래를 전문으로 하는 한 중개업소 사장은 “서울 강남에서 넘어온 기획부동산(텔레마케팅으로 땅을 파는 회사)들이 평당 50만원에 산 대지를 평당 80만원, 평당 30만원에 매입한 농지를 평당 40만원에 등기를 하지 않고 제3자에 되판 경우도 있었다”며 “지역 토박이들은 땅값 변동에 둔하기 때문에 적당한 값을 쳐주면 선뜻 넘기고, 매수자들은 개발에 대한 기대감으로 비싼 값에도 매수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경우 등기를 위한 계약서는 원 매도자와 최종 매수자 사이에 체결하기 때문에 중간 매도자는 세금 한 푼 안내고 불로소득만 챙기게 된다. 나중에 문제가 발생할 소지를 줄이기 위해 계약서상에 ‘부득이한 경우 제3자에게 명의를 넘긴다’는 단서조항을 넣기도 한다. 미등기전매 행위가 사기 의도는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쌍방과실로 넘겨 매도자의 입막음을 하려는 의도라는 게 토지거래 전문 중개인의 설명이다. 일부 부동산 중개업소 등은 토지를 싸게 매입한 뒤 가등기 상태에서 투자자를 모아 명의를 넘기는 수법도 쓰고 있다. 땅값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다 보니 계약금만 걸어놓은 것들은 계약이 해지되는 땅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해약을 피하기 위한 온갖 방법이 동원된다. 종전 45∼50일이던 계약기간을 일주일로 앞당기거나 아예 중도금없이 계약 후 곧바로 잔금을 내기도 한다. 계약금과 함께 중도금 일부를 선지불하는 방법도 많이 쓰인다. 김포시의 한 중개업소 사장은 “계약금이 5천만원이라면 8천만∼1억원 정도 주고, 계약서에 ‘계약금과 중도금 일부를 지불했다’는 내용을 명시한다”며 “중도금을 내고 나면 해약이 안 된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는 허가를 받을 당시 이용 목적으로 쓰지 않는 미이용전매가 판치고 있다. 이를테면 A라는 사람이 4천5백㎡의 농지를 매입하면서 9백㎡짜리 5개필지로 분할해 ‘농업경작용’으로 허가를 받아낸 뒤 이 땅을 B∼F라는 5명에게 웃돈을 붙여 되파는 것이다. 농지의 경우 최소 1년 이상 실제 농사를 지어야 하므로 A는 ‘미이용 전매’에 해당된다. 최근 개발 요지에서 벌어지는 투기꾼들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김포시의 경우 지난해부터 양촌면과 첨단 산업 신도시가 들어설 대곶·월곶·통진·화성 등지에서 빈번하더니 신도시 발표 이후에는 시 전역과 강화도까지 확산하고 있다. 김포시청 관계자는 “신도시 발표 이후에는 토지거래허가 건이 매일 30∼40건씩 쏟아지며 다른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며 “상당수의 농지가 투기꾼들에 의해 토지거래허가를 받지 않는 1천㎡ 미만으로 정교하게 쪼개져서 들어온다”고 말했다. 그는 또 “농지거래허가시 실거주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현장에 나가보면 기가막힌 일이 많다”며 “외제 승용차를 타고 다니면서 쓰러져가는 초가집에 살고 있다고 말하는 뻔뻔스러운 사람도 많더라”며 혀를 내둘렀다. 친척이나 타인 명의로 땅을 넘기는 제3증여 방법도 사용된다. 토지거래허가구역 내에서도 증여는 면적에 관계없이 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규제와 단속 허술한 탓 토지시장에 돈이 몰리는 것은 저금리가 오래 지속되면서 주택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해 ‘인과응보’적 성격이 짙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정부는 천안·아산·김포·파주시 등 신도시 예정지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었지만 투기꾼들은 지능적으로 법망을 피해간다. 양도세를 실거래가로 과세하는 투기지역은 천안시 한 군데에 불과하다. 때문에 실제 매매가보다 훨씬 낮은 공시지가로 양도세를 내면 된다는 점이 투자자들에게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관할 지자체는 행정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불법·탈법 행위를 알고도 시정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하소연한다. 김포시청 관계자는 “전담 인원은 한 명뿐인데 허가 건수는 지난 1년 분량이 보름 만에 들어올 정도”라며 “투기꾼의 짓인지 뻔히 보이는 데도 즉각 고발조치 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설사 고발조치한다 해도 허가가 취소되고 벌금이나 세금을 징수하는 데 한 달 이상 소요돼 그 사이 여러차례 손바뀜이 일어난다. 그동안 땅값은 많아 올라 5백만원 미만의 과태료나 공시지가의 30%에 해당하는 벌금을 맞아도 수익이 생기니 두려울 게 없다. 미등기 전매는 흔적이 잘 남지 않아 처벌이 힘들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땅 투기에 대한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정부의 강력한 단속을 촉구하고 있다. 진명기 돌공인중개사무소 사장은 “솜방망이 규제로 투기꾼들은 거액의 차익을 남기고, 토지에 문외한인 선량한 사람만 피해를 볼 수 있다. 벌금형을 강화하고, 대대적인 조사를 벌이는 등 불법·탈법 거래를 근절하기 위한 행정력 투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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