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하청업체들 모회사도 ‘꿀꺽’
| 자회사가 모회사를 인수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해 눈길을 끌고 있다. 사진은 합병을 공식 발표하는 방준혁 넷마블사장(왼쪽).김정상 플레너스 엔터테인먼트 사장. | 잘 나가는 ‘하청업체’가 못 나가는 ‘원청업체’를 인수하거나 자회사가 모회사를 인수하는 일이 최근 종종 벌어지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한때 재벌그룹 계열사로 이름을 날렸던 ㈜삼미를 최근 인수한 이는 부산 출신 중견건설 기업인인 박원양 삼림종합건설 회장이다. 삼미는 1997년 경영 악화와 그룹해체 과정을 거치면서 그동안 법정관리를 받아오다 삼림컨소시엄에 인수되면서 경영 정상화를 이룩했고, 지난 6월2일 법정관리에서 벗어났다. 박회장은 지난 6월3일 삼미 신임 대표이사 회장으로 취임했다. 그런데 박회장과 삼미의 경우 인수 이전에 이미 끈끈한 인연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울산에 있는 삼미의 스테인레스가공 공장이 두 회사를 이어준 ‘매개체’였다는 후문이다. 부산 지역에서 제법 알려진 삼림종합건설은 이 공장 건설을 비롯해 예전에 삼미그룹에서 발주한 주요 공사를 맡아서 처리한 인연이 있다. 말하자면 삼미의 공사 하청업체가 바로 삼림종합건설이었던 셈. 그러다 보니 박회장은 김현철 전 삼미 회장과도 알고 지냈고, 삼미의 속사정도 자세히 알게 돼서 한때 원청업체였던 삼미 인수전에 뛰어들어 성공했다는 얘기다. 시중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국내 첫 에어콘 생산업체로 유명한 범양냉방공업을 지난해 7월 인수한 장영근 가야산업 회장(현 범양냉방 회장)도 삼미·삼림 경우와 엇비슷하다. 장영근(64) 회장은 78년에 기계금속업체인 가야산업을 일으켜 십수년 전부터 공조기기부품을 납품하면서 범양냉방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하지만 98년 3월 범양냉방 부도가 발생하면서 장회장도 한때 곤경에 빠졌다. 납품물량에 대한 결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범양냉방과의 인연을 끊지 않고 신용으로 납품을 계속하는 한편 원청업체인 범양냉방공업을 인수하는 작업에 들어가 성공했다. 이로써 4년 4개월 만에 범양은 법정관리를 벗어났다. 휠라코리아(회장 윤윤수)가 주축이 된 지주회사 SBI가 휠라아메리카, 미국 투자전문펀드 서버러스와 공동으로 휠라 본사(휠라 홀딩 S.P.A)를 인수한 것은 자회사가 모회사를 인수한 격이다. 휠라코리아의 윤윤수 회장은 지난 6월10일 휠라의 지주회사인 SBI 아시아 사장으로 선임됐다. 자본금 35억원인 휠라코리아 지분은 ‘휠라 홍콩’이 23.52%, ‘휠라 네덜란드’가 73.87%, ㈜케어라인이 2.60%, 한국인 개인 주주가 0.01%를 각각 소유하고 있다. 플레너스엔터테인먼트의 방준혁 전 사장(현재 이사, 넷마블 창업자)이 플레너스를 인수한 것도 자회사가 모회사를 인수한 케이스다. 플레너스와 넷마블이 인연을 맺은 시기는 2001년 12월. 당시 플레너스가 넷마블 가치를 1백억원으로 산정하고, 주식 스왑 방식으로 넷마블 지분 51%를 가져갔고, 이로써 넷마블이 플레너스 자회사가 됐다. 하지만 플레너스와 넷마블 합병이 지난 5월29일 공식 발표되면서 ‘엄청난’ 지분변동이 일어났다. 오는 8월28일 합병작업이 완료될 예정인데, 합병비율은 플레너스와 넷마블 각각 1:1로 하고, 플레너스의 기준 주가를 2만5백82원, 넷마블의 가치를 2천9백20억원으로 한다는 것이다. 플레너스 총 자본금은 1백5억원으로 증가할 예정인데, 합병 후 방준혁씨 지분은 총 23.4%가 되며, 방씨는 플레너스의 최대주주가 된다. 자회사 사장이 모회사를 ‘확실하게’ 인수한다는 얘기다. 박주영 회장이 파츠닉(예전 대우전자부품)을 인수한 건 자신이 다니던 회사를 아예 통째로 인수한 케이스다. 대우전자부품에 다니던 박회장은 86년 알루코를 설립, 여기서 번 돈으로 99년 대우 사태로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가 있던 자신의 친정 대우전자부품을 2001년 1월 인수했다. 경영철학이 ‘독창적인 사고’라고 밝히는 박회장은 말 그대로 남들이 감히 생각지도 못하는 수완을 발휘해서 모회사를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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