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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할머니 보쌈 수원 조원점 기길서 사장]“'정직하게 장사… 손님·종업원 모두 만족”

[원할머니 보쌈 수원 조원점 기길서 사장]“'정직하게 장사… 손님·종업원 모두 만족”

기길서 사장은 어차피 다가올 은행 퇴직에 대비해,창업 1년전부터 창업거리를 찾아나섰던 부지런한 스타일이다.
찬바람이 채 가시지 않은 2000년 2월 초순. 한빛은행(현재 우리은행) 국제부 과장으로 근무하던 기길서(46)씨는 보쌈을 먹고 있던 부인(42·송현주씨)의 손을 확 잡아끌고 서울 청계천7가 있는 ‘원할머니 보쌈’ 본점 사무실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쇠뿔도 단김에 뽑으라는 말처럼 곧바로 ‘수원 조원점을 오픈하겠다’는 내용의 임시계약서에 사인을 해버렸다. 사실 이날 기사장은 부인과 함께 코앞에 다가온 ‘은행 퇴직’에 대비해 새로운 창업거리를 찾기 위해 시장조사를 나왔던 차였다. 당시 그는 부인과 함께 ‘퇴직 후 창업’에 대한 고심을 하고 있었다. ‘집사람과 같이 음식장사를 한다’는 원칙은 정했지만 구체적인 아이템은 잡지 못하고 있던 터. “칼국수를 할까, 통닭구이를 할까 하면서 당시 돌아다니기도 숱하게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제가 15년 동안 단골로 드나들던 원할머니 보쌈 집까지 가게 된 것이지요.” 일종의 ‘현장 체험’이었다. “집사람이 가서 막상 먹어보니 생각보다 맛있다고 하더군요. 점포 분위기도 생동감이 넘쳤고요. 그래서 집사람이 끌리는 듯한 눈치를 보이자마자 과감하게 이층으로 데리고 올라가 싸인까지 해버린 것입니다.”

신통치 않은 본사 반응 하지만 본사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본사에서는 “마침 수원 조원동 지역이 비어 있기에 점포는 내줄 수 있지만, 상권 분석을 위해 이틀간 시간을 달라”고 요구했다. 조사 후 나온 조원동 상권 등급은 B급. 쉽게 말해 “상권이 열악하니 한참 고생을 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런데도 하겠냐고 본사에서 물어왔다. 이에 대한 기길서 사장의 대답은 OK. “만약 상권이 좋다는 조사가 나왔다면 나는 ‘태만’에 빠졌을 겁니다. 하지만 열악하다는 조사가 나오자 ‘시장개척’을 해서라도 이 지역 입맛을 바꾸어놓고 말겠다는 오기가 생기더군요.” 당시 그의 부인은 그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단독 사인 결정’을 인정했다. 기사장이 ‘앉아서 지휘봉을 흔드는 스타일’이 아니고, 대신 현장에서 뛰어다니는 스타일이란 걸 알고 있어서다. 호랑이를 때려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쳐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하는, 몸사리지 않고 저돌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강한 스타일이란 얘기다. 서울 신림동에 살던 기사장이 멀리 떨어진 조원동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먼저 복잡한 서울을 떠나고 싶었고, 둘째 광교산 아래에 자리잡은 조원동에 처가쪽 인척들이 많이 살아 자주 가보았고, 그래서 그쪽 지리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결심을 굳힌 그는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시켰다. 가게터를 알아보고 본사에서 부인과 함께 2주 교육을 받은 후에 조원동 장안구청 사거리에 번듯한, 1백평 규모의 원할머니 보쌈 조원점을 정식 오픈한 날은 2000년 6월24일. 한데 그는 이 무렵 아예 조원동 한일타운 아파트로 이사까지 와버렸다.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아예 ‘조원동 사람’이 되기로 독하게 마음먹고 내려온 것이다. 하지만 오픈 이후 기길서 사장은 곧바로 예상밖의 ‘고생길’로 접어든다. 현직 은행원이 퇴근 후 아내 일을 돕는 ‘더블 잡’을 수행해야 했었기에 그 고생의 강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당시 명예퇴직을 고려했기에 창업 자금 2억원을 조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음식점 ‘초짜’인 그는 ‘은행원만 하던 내가 과연 제대로 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을 떨치기가 쉽지 않았다. 실제 오픈 초반에는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오는 고생 투성이·실수 투성이의 연속이었다. “돼지고기를 썰다 보니 넥타이까지 썰었습니다.” 은행에서 퇴근하면 옷 갈아 입을 새도 없이 주방으로 달려갔다. 주문받고 고기를 썰다 보면 어느새 넥타이까지 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화들짝 놀란 적도 여러 번이다. 창업 후 6개월간은 잠도 하루에 3∼4시간밖에 못 잤다. 그만큼 바쁘게 고단하게 빈틈없게 하루를 살었던 탓이다. 이때 몸무게가 5㎏나 빠졌고, 지금도 긴장을 한 탓인지 이대로 유지하고 있다. 서울에서 버스타고 내려오다 깜빡 졸다 내릴 곳을 지나쳐 수원역까지 갔다가 택시 타고 허겁지겁 돌아온 적도 많다. 잠이 모라자서 살이 쪽쪽 빠지던 시절이었다. 음식 만드는 게 좋았기에 돼지고기를 삶고 김치를 담그는 건 웬만큼 자신 있었지만 초반에는 허둥지둥 대기 일쑤였다. 음식 이름을 잘 몰라서 주문한 것과 다른 엉뚱한 음식을 갖다 줘 면박을 당하기도 했다. 또 2인분짜리 보쌈 ‘중(中)’을 시킨 손님에게 3인분짜리 ‘대(大)’를 갖다 주고서는 천연덕스레 앉아 있곤 했다. 물론 이때 값은 2인분만 받았는데, 그러자 ‘그 집에서 보쌈을 참 푸짐하게 준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었다. 춘천 성수상고를 나와 1979년 10월 당시 상업은행(현재 우리은행)이란 번듯한 직장에 들어갈 때만 해도 ‘이 은행에서 정년 퇴직하고 뼈를 묻겠다’는 각오를 갖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도 99년 들어 결국 IMF 바람을 비껴갈 수 없다는 걸 절실하게 깨닫기 시작한다. 자신과 같은 ‘국내파’는 결국 외국 물을 먹은 ‘해외파’ 행원들에게 밀릴 것이고, 결국 명예퇴직을 신청해야 한다는 판단을 한다. 결국 창업 6개월 후인 2000년 12월 명예퇴직을 하면서 22년간에 걸친 긴긴 은행원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오픈 첫날은 ‘운때’가 맞아서 떼돈을 쓸어담는 행운을 누렸지만 그 다음날부터는 철저하게 그의 수완에 따라 매출이 오르내렸다. “오픈 첫날 운 좋게도 근처 주공아파트 청약 신청이 있었기에 이 손님들이 한 1백명이 한꺼번에 우르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첫날을 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 모를 정도로 보냈습니다. 그때 그 손님들에게 정말 묻고 싶었습니다. 맛있게 잘 드셨는지, 부족한 것은 무엇인지 등. 하지만 바빠서 한마디도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이날 밤 12시에 마감하고 손님 수를 헤아려보니 4백명이 넘더군요. 하루 매출도 3백만원을 돌파했고요.” 은행원 한달 월급보다 많은 매출을 단 하루 만에 올리는 장사의 마력에 흠뻑 젖었다. 하지만 그런 ‘행운’이 계속될 리가 만무했다. 그는 그래서 “나는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CEO”라는 마인드를 갖고 오픈 초반부터 일종의 승부수를 두기로 결심한다. 승부수는 ‘질’과 ‘정직’이었다. “본사에서 2인분 3백40g을 내주라고 한다면 1g도 속이지 않고 그대로 내보냈습니다. 그것도 가장 맛있는 부위만 골라서 내보냈습니다. 맛없는 부분은 썰어서 그냥 버렸고요. 또 삼겹살을 좋아하는 남자 손님이 오면 그 부위를 좀더 드렸고, 살코기를 좋아하는 여자 손님이 오면 그 부위를 더 드렸습니다.” ‘서비스 품질’도 철저하게 지켰다. 예를 들어 멀리 수서나 화서에서 1개짜리 주문이 와도 1시간 투자해서 오토바이 타고 배달을 나갔다. “돈 벌러 간 것은 아닙니다. 내가 만든 음식을 하나를 팔아도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 때문에 간 겁니다.” 그 ‘정직한 경영’은 지금껏 버리지 않고 있다. 그는 ‘정직한 경영’을 ‘신용’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내 행동을 누가 보든 안 보든 믿음을 주는 행동을 한다는 게 요지다. 해보니 이게 돈버는 첩경이란다.

3만3천원짜리 국내 최고급 세제 “우리는 세제를 10ℓ당 3만3천원짜리 국내 최고급을 사용합니다. 다른 곳에선 물론 3천원짜리나 7천원짜리를 대부분 쓰고 있지만, 직원들 손을 보호하려면 국내 최고급을 써야 한다고 제가 우겨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급을 쓰면 손이 쩍쩍 갈라지고 위생에도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손님에게 나가는 그 음식 접시에 바로 음식을 담아서 직원들도 먹으라고 지시한다. 그만큼 접시 청결에도, 손님들 안전에도 자신이 있다는 말이다. 아무튼 이같은 ‘고급 세제’ 때문인지는 몰라도 직원들 이직도 거의 없다는 게 그의 자랑이다. 6개월이면 오래 있다는 게 이 업계 관례. 한데 조원점에는 2년 넘게 있는 이도 있다. 기길서 사장은 초반부터 “자기가 먹을 음식과 손님이 먹을 음식을 구분해서 만들지 말라”고 강조했다. 손님에게 나가는 음식에도 똑같이 정성을 기울이라는 말이다. “시골에서 자기가 먹을 고추와 내다팔 고추는 농약을 다르게 친다고 하는데 이는 정직한 경영이 아닙니다.” “계란찜을 할 때 타지 않게 하는 첨가물이 있다고 하더군요. 저는 주방장에게 그런 첨가물은 아예 입에 올리지도 말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몸에 안 좋은 색소나 음식점에서 흔히 사용하는 맛살도 그는 금했다. 색소가 사람 몸에 안좋다고 해서다.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버는 것은 독이고, 그렇게 번 돈은 내 돈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지금까지 초지일관 지켜왔다. ‘진짜’ 식자재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물론 그동안 가짜를 썼다는 얘기가 아니다. “처음에는 식자재와 부자재를 받아서 썼습니다. 초짜니깐 그럴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 이상한 게 눈에 차츰 보이더군요. 예를 들어 박스당 1만원 하는 상추가 하루가 지나면 6천원으로 떨어지는데, 하루 지난 것을 마치 새것이라고 하면서 갖다준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이를 안 그는 창업 1년이 지나서부터 직접 시장 바닥을 누비기 시작한다. 최고 품질의 식자재와 부자재를 구해야, 최고 품질의 음식을 만들 수 있고, ‘음식경쟁력이 점포경쟁력’이란 지론을 실천에 옮긴 것. 그는 인계동 동수원농수산물 시장 상인들 사이에서 유명인물이다. 외상 없이 현찰로 물건을 사가는 사장이기 때문이다. 이 덕분 때문일까? 이제 입소문도 퍼지면서 조원점은 ‘수원의 4대 맛있는 집’에 꼽히 정도로 명성을 얻었다. 매출도 정상궤도를 밟고 있다. “초반에 확 달아 올랐다가 1년 후에 3분의 1 정도가 내려앉더군요. 아마 보쌈에 대한 인식이 없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 다시 6개월 정도 흐른 다음 정상화됐고, 올해는 지난해보다 15% 정도 더 올라갈 것으로 보입니다.” 서울에 내려온 탓에 ‘점령군’ 이미지를 털어내고, 오픈 초기 지역사회에 ‘소프트랜딩(연착륙)’하기 위해 노력한 것도 그의 승부수이자 성공요인. 초짜 수원사람이 본토박이들로부터 왕따당하면 장사고 뭐고 ‘다 글러버린 일’이다.그래서 생각해낸 게 지역봉사활동. 어차비 회사를 운영해도 홍보비라는 게 있고, 성당(기길서 사장은 가톨릭 신자다)을 가도 십일조라는 게 있는데, 봉사활동비도 홍보비라고 마음을 먹고 아낌없이 지역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법무부 산하 봉사단체인 범죄예방위원회, 장안구 지역의 지역발전협의회, 조원동 지역의 주민자치위원회 등에 들어가 적극적으로 뛰어다니기 시작하면서 결국 소프트랜딩에 성공했다. 기사장은 이제 창업 후 만 3년이 지났지만 “남들이 6년을 한 경험을 갖고 있다”고 자부한다. 두 배로 열심히 살았기 때문이란다. 때문에 경제적으로는 무척 여유롭다. “퇴직 당시 은행연봉이 4천만원선인데 실제 세금 등을 제하고 나면 손에 쥐는 게 월 2백50만원쯤 됐습니다. 지금이요? 그냥 예전 연봉의 2∼3배는 충분히 넘는다고만 써주십시오. 허허허. 고생은 했지만 여유는 생겼지요.” 내외가 처음 같이 장사를 하다 보면 예상치 않은 일도 생긴다. “집 사람이 20년 동안 보지 못했던, 저의 새로운 모습을 보고 당황해한 적이 있었지요. 예를 들어 제가 여자 손님들에 매우 친절하게 대하는 모습 같은 것입니다. 지금은 오해가 다 풀렸지만, 오픈 당시에는 ‘왜 그 여자손님과 얘기를 그리 오래 하느냐’며 따지길래 부부싸움을 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젠 24시간 동안 같이 지내다 보니 부부의 정이 더 깊어진다는 걸 느낀다고 한다. 요즘은 내외가 같이 시간을 내서 ‘음식 시식 헌팅’을 떠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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