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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는 사회 디자이너 대중의 공감을 얻어야”

“예술가는 사회 디자이너 대중의 공감을 얻어야”

문화의 세기라고 하지만, 일반사람들은 문화 ·예술하면 아직도 생소하게 생각한다. 과연 예술가들은 우리 문화의 현주소가 어디쯤이라고 생각할까? 먼저 회화 ·조각 ·공공미술 ·미술운동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화가 임옥상을 찾았다. 그는 2000년 8월 1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에 미군부대에서 버려진 포크 ·나이프 ·스푼으로 만든 날개달린 황소 ‘엘자’라는 작품을 설치한 바 있다. 버려진 미군 물품들로 평화와 자유를 상징하는 작품을 만들고 그 속에 풍자적 의미를 담고자 한 것이다. 이처럼 임옥상은 메시지가 있는 작품들을 통해 사람들과 같이 느끼고 생각하고자 한다. 또한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면서 예술과 문화 전반에 대한 자신의 의견도 솔직하게 밝혀 왔다.
그는 약속장소인 평창동 가나 아틀리에에 15분쯤 늦게 도착했다. 미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그에게 대뜸 ‘호칭’부터 물어보았다. 그는 화가 ·조각가 미술운동가 등 여러 호칭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무엇으로 볼까? 다양한 예술을 만들어낸다는 의미에서 아트 피디(Art PD)라고 생각합니다.”
‘예술 PD’ 임옥상(53)은 서울대학교 회화과에서 학부와 대학원과정을 마쳤다.

광주교육대학교(1979∼81), 전주대학교(1981∼92) 교수를 지냈고, 민족미술협의회 대표(1993∼94)를 맡기도 했다.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중반까지 민중미술운동을 통해 사회의 문제의식을 담은 그림을 그렸고, 종이부조와 입체 등으로 표현영역을 확장했다. 최근에는 포탄껍질과 탄피 ·숟가락 ·포크 ·나이프로 이루어진 조각작품들과 공공미술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오랜 세월 작업을 해오면서 그가 지켜온 예술관은 무엇일까.

“예술가가 자유직업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사는 것은 아니며, 자기를 지키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저는 예술가란 이상과 현실 사이에 낀 존재로서 두 가지를 붙들고 넓히기도 하고 당기기도 하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 중간에서 어느 한쪽에 함몰돼 버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하나로 예술에는 탄생과 죽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대나 사회가 바뀜에 따라 자신의 예술 가치가 낡은 것이 될 때는 죽음을 선언하고 새로운 전위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임옥상 하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민중미술’을 떠올린다. 그가 민중미술을 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의 말처럼 시대와 사회가 바뀌면서 그의 예술관은 어떻게 변화했을지도 궁금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과거의 추상위주 그림을 넘어서 우리 현실에 대답을 주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구상으로 가자. 그렇지만 새로운 구상이어야 하고, 예술과 사회의 관계에서 소통이 단절된 그림은 더 이상 안 된다는 생각으로 사회현실과 관련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직접적인 묘사보다 상징과 비유 ·은유적 방법을 사용해서 사회의 집단 무의식에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그림을 그리려고 했습니다.”그런데, 그렇게 시작된 민중미술이 이후로 진행되면서 예술적 형식이 거칠고 조잡해졌고 이념만 앞세우는 경향을 갖게 됐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예술은 예술의 자리를 지키면서 자기 목소리를 높여야만 하는 것인데, 예술의 기능을 상실한 채 하나의 운동으로 돼버렸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예술형식으로서의 매력이 있어야만 설득력을 갖는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전문화가들이 아닌 사람들이 민중미술에 참여하다 보니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80년대 말, 90년대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예술이냐 아니냐라는 문제보다 현실적인 요구에 부응했던 것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 급조될 필요성이 있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럴 필요는 인정하지만, 그래도 예술은 예술의 위치를 지켜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버릴 수 없었다. 그건 그렇고, 항간에 ‘민중작가 임옥상은 죽었다, 민중으로 시작해서 귀족이 되었다’는 말들이 있는데, 정작 본인은 이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허허,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전해들은 적은 있습니다. 아마도 평창동에 살고 있고, 가나라는 후견인이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예술가는 이상에 대한 믿음과 현실에 부닥쳐야 한다는 두 가지 요구에 직면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친다면 경직된 예술로 끝나 버릴 수 있다는 관점에서 생각해 줬으면 합니다.”



‘민중작가 임옥상’은 죽었는가

그의 말은 아마도 미술이 경제적 측면을 포함한 모든 현실을 보듬기도 하고 제치기도 하면서 더불어 가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적지않은 사람들이 미술가들을 현실과 동떨어진 존재로 생각한다. 오래 전 일이지만 백남준은 TV에 출연해서 “예술은 사기다”라는 말을 해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잔뜩 기대를 걸고 있던 사람들에게 ‘오만’이나 ‘무책임’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어찌 보면 예술과 현실의 관계란 예술가들이 은연중 갖고 있는 이런 오만으로부터 자신을 깨고 내려오는 작업으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미술작품의 전시 자체가 사람들이 이해하고 공감하기를 바라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는 미술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얘기를 들려줄까.
“내 작품을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간혹 그런 사람들에게는 ‘아닙니다, 미술은 쉽습니다. 많이 보세요’라고 말합니다. 봄이 되면 봄옷을 찾아 입고 봄에 맞는 화장을 하듯이 그림도 봄에 맞는 것, 내 취향에 맞는 것을 찾아서 접근하고 자주 보게 된다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해 주지요.”

임옥상은 98년 6월부터 1주일에 한 번씩 인사동 거리에서 4년에 걸쳐 ‘당신도 예술가’라는 미술운동을 펼쳐 왔다. 사람들로 하여금 직접 그림을 그려보도록 하는 것이다. 미술가가 가질 수 있는 오만으로부터 내려와 대중들과 함께 한다는 점에서 반갑게 여겨진다. 한편 그 일로 인해 매스컴의 주목을 받게 되면 또 다른 오만이 싹트지나 않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그는 과연 ‘당신도 예술가’라는 이벤트를 대중들에게 미술을 이해시키기 위한 의도로 시작한 것일까.

“그런 점도 있지만, 내 자신의 작업의 재충전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벽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표현합니다. 사람들과 길거리에서 같이 부대끼고 작업을 하면서 여지껏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생겨나기도 하거든요.”
구체적으로 어떤 점들이 작품 속에 반영됐는지 궁금했다.

“대중성이 가지는 힘과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을 우선 하게 됐습니다. 환경과 생태문제를 깊이 생각하게 된 것도 ‘당신도 예술가’ 운동 이후부터입니다. 전시장에서만 보이는 한계를 넘어 사회 속에서 대중들과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미술에 대한 관심도 갖게 됐습니다. 이런 점에서 나는 예술가란 일종의 사회설계자, 사회 디자이너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더욱 이 공공미술 방향으로 나아갈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임옥상이 최근에 시도하고 있는 숟가락 ·포크 ·나이프로 만들어내는 작품들도 이런 맥락에 해당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상적인 재료, 사람들에게 익숙한 재료로 하나의 조형물을 만들어냄으로써 미술이 우리 생활로부터 그렇게 먼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다. 나아가 사람들의 미술에 대한 생각과 사회 통념에 변화를 줌으로써 그 작품이 특정한 공간에 놓일 때 그것을 보는 대중들과 일체감을 이루어낸다는 의도를 갖기도 한다.

치열하게 자신의 예술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인지라 그가 생각하는 문화계의 모습은 어떨지도 궁금해졌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이고 이제는 문화경쟁의 시대라고 말하지만, 과연 달라진 것이 있느냐는 물음에 부닥치면 우리 모두 자신하지 못한다. 달라져야 할 텐데, 아마도 그 답은 문화정책 ·예술가 ·대중, 그리고 사회여건이 합쳐진 공동의 노력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화예술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술가가 바라는 우리 문화의 달라져야 할 모습은 어떤 것일까?

특히 개혁을 유달리 강조하는 새 정부의 문화정책에 거는 그의 기대나 주문도 듣고 싶었다.
“문화 당국자나 여론주도층들이 문화를 더 이상 들러리 정도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예술가들을 지배하고 관리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새 정부의 문화정책을 맡고 있는 이창동 장관은 상업영화를 만들었던 사람이라 우리 미술인처럼 재정지원이 척박한 사람들과 다를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기본적으로는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더욱 키워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데 의견일치를 이루어 나가리라고 봅니다.”



문화관료부터 달라져야

흔히 문화 발전이라는 과제를 놓고 생각하는 것이 영상 ·게임산업 ·애니메이션 등의 육성이다. 문제는 이런 응용 분야들이 발전하려면 미술 ·음악 ·연극 등 순수예술의 육성과 발전이 전제돼야 한다는 생각을 놓치고 있다는 점이다. 순수예술의 발전이라는 토대가 없으면, 결국 남의 것을 베껴내는 정도에 그쳐 버릴 우려가 있다. 임옥상이 말하는 ‘예술가의 상상력을 존중하는 사회’란 이런 의미로 읽힌다. 문화정책적 측면에서 그런 배려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정책은 그저 탈 없이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기금을 공평분배해서 불만의 소지를 없애는데 주력하기보다는 문화적 집중을 통해 하나의 큰 틀을 만드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예술 엘리트가 곧 공공성도 갖게 된다는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결국 업그레이드된 대중주의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며, 문화정책을 통해 대중들의 미감과 이상을 향상시킬 수 있어야 비로소 예술의 발전이 가능한 것입니다.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있는 문화부 관리들은 아직도 있습니다. 전문성이 없는 문화관료들도 많고요. 그렇지만 소장 엘리트 문화관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희망적입니다. 문화정책을 집행하는 중요 국장이나 과장급 자리에 전문인들을 기용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역시 문화경쟁력의 출발점은 문화정책과 문화관료에 있다. 새 정부 들어 문화부 자리에 민예총 ·문화개혁시민연대 사람들이 많이 기용되고 있는 것도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보자는 취지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 사람들이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기보다 새로운 문화권력으로 자리잡는 데 그쳐 버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스스로에 대한 확인과 경계가 필요할 것이다.

만능 예술인처럼 비쳐졌던 임옥상에게도 고민과 바람이 있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자신의 예술이 가치를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고민이다. 그리고 그를 둘러싸고 있는 문화현실에 대해서는 변화를 바라고 있다. 우선적으로 문화정책과 관료들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 우리 앞에 놓여진 문화의 세기는 이 고민과 바람들이 문화정책 속에 얼마나 반영되고 성취될 것인가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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