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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 걷히면 5%대 성장

불확실성 걷히면 5%대 성장

기업과 소비자들의 체감경기가 냉랭하다. 북한 핵 문제와 이라크 전쟁 발발 가능성의 영향이 가장 크다. 하지만 비관으로 기울 필요는 없다는 진단이다. 하반기에는 투자가 활발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봄이 성큼 다가 왔지만 경기는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다. 온갖 변수가 뒤엉겨 시계(視界)를 제로로 만들었다. 과열 시비를 낳았던 부동산 시장이 잠잠해진 데 이어 소비가 둔화된 상황에서 공교롭게도 외부 변수가 국내 경제를 덮쳤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 가능성이 국제 원유가를 밀어올렸고, 북한 핵 문제는 신용등급 전망을 깎아내렸다. 주가가 급락했고 환율은 요동치고 있다.

국내 경기에 대한 불안감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국내 경제성장률은 2000년에 3%로 둔화됐다가 지난해에는 약 6%로 회복됐다. 경기가 다시 가파른 하강곡선을 그리게 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전반적인 상황을 고려할 때, 우리 경제의 상황이 체감지표처럼 나쁘지는 않다는 진단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재 경기는 심리적인 요인으로 눌린 것이기 때문에, 대외적인 압력이 해소되면 빠른 속도로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다는 예상이다.

미국과 이라크 간의 전쟁은 단기에 종료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롯데경제연구실은 미국-이라크 전쟁이 후세인 정권 조기 붕괴와 함께 단기에 끝나고 유전지역 피해가 미미할 확률을 50%로 예상했다. 롯데경제연구실 유용주 경제연구팀장은 “이 경우 유가는 배럴당 연평균 25∼26달러로 안정되고 국내 경제도 하반기 5%대, 4분기에는 6% 수준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미국과 이라크 전쟁이 장기전으로 치닫고 아랍권으로 확대될 가능성은 20%로 높지는 않지만, 이런 비관적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경우 경제성장률은 3%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북한 핵이 이라크보다 부담

북한 핵은 이라크보다 우리 경제에 더 부담을 주고 있는 변수다. 신용평가회사 무디스가 우리나라의 신용등급 전망을 ‘긍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두 단계 낮춘 것도 북핵 문제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신용등급 전망이 부정적이라는 것은 앞으로 3∼4개월 안에 신용등급을 내릴 수 있다는 뜻이다. 북핵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무디스는 4월 방한 이후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낮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을 추방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한 데 이어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하는 등 강경 일변도여서 단기간 내 외교적인 해결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북핵문제가 장기화하면 외국인투자와 소비심리 회복이 지연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미국-이라크 전쟁이 단기에 종결되고 북핵 문제도 결국 외교적으로 해결된다는 낙관적인 시나리오가 들어맞는다고 치자. 그렇다 하더라도 미국이 언제 이라크를 공격하고, 언제 북핵 문제가 해결되느냐는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는다.
국제 유가는 2월 중순 배럴당 30달러선을 넘어서면서 2000년 1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중동산 두바이유는 30달러선, 북해산 브렌트유는 32달러선에 거래됐다. 게다가 지난해 11월까지 상승곡선을 그리던 반도체 값도 맥을 못추고 있다. 주력제품으로 떠오른 DDR D램으로 반도체 시장을 장악하려는 삼성전자의 계획은 난항을 겪고 있다. DDR D램 가격은 지난해 고점 대비 60% 이상 급락해 3달러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가계 부실의 후유증을 앓고 있던 국내 경제주체들은 어떻게 손을 쓰기가 아려운 이들 대외변수에 가위눌린 양상이다. 당장 기업 체감경기와 소비심리가 극도로 위축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조사한 2월 제조업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전망치는 84로 나타나, 2001년 1분기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대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도 같은 방향을 가리켰다. 전경련의 BSI 전망치는 89.3을 기록, 2001년 11월 이후 가장 낮았다. 수출 BSI가 94.9로 비교적 소폭 떨어진 반면 내수 BSI는 91.2로 가파른 하락세를 보였다.

소비재판매는 지난해 12월에 전달보다 2.0% 줄었다. 전년 같은 달에 비해서는 3.0% 증가하는 데 그쳤다. 올 1월에는 다소 활발했으나, 지난해 2월에 있던 설 연휴가 올해는 1월말에 걸친 덕분으로 풀이된다. 통계청의 소비자평가지수는 1월에 79.6으로 2001년 10월 이후 최저치로 나타났다. 이 지수는 소비자들이 현재의 경기와 생활형편, 소비지출 등을 6개월 전과 비교해 평가한 것이다.

외국계 금융회사에 이어 한국은행 등이 잇따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춘 건 이런저런 요인들을 반영한 결과다. 한국은행은 2월 금융통화운영위원회에서 콜금리를 유지하고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5.7%에서 5.5%로 수정했다. 박승 한은 총재는 “유가가 배럴당 31달러로 당초 예상한 26달러보다 급등했고 환율이 급락한 점 등 여건 변화를 대입해 분석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앞서 UBS워버그는 한국의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의 4.7%에서 4.3%로 낮췄다. LG증권 이덕청 금융시장팀장은 “경기가 1분기를 정점으로 하강하는 게 아닌지, 각종 지표를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경기동행지수는 올라가고 있지만 선행지수가 좋지 않다”며 “올해 GDP가 4.8% 증가하는 데 그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반면 정부는 경제성장률이 지난해의 6.0% 수준보다 둔화되지만 5%대는 가능하다는 전망을 유지하고 있다.




기업의 투자회복이 관건

기업들은 바짝 엎드려 대외 변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금을 잔뜩 쌓아두고도 투자를 꺼리고 있는 것.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은 올해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경기가 잠에서 깨어나지 않을 경우에는 이들 회사도 투자 집행을 미룰 것으로 분석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유재준 경제조사팀장은 “대외 변수로 인한 유가 급등과 환율 변동으로 기업들은 올해 수립한 투자계획을 제대로 수행하는 데 제약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은 올 한해 내수 경기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투자와 인원 등을 동결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SK텔레콤은 주주들의 우려에 밀려 투자 확대 계획을 보류하기도 했다. SK텔레콤은 1월 당초 계획보다 1조원 많은 2조5,000억원을 광대역 코드분할다중접속(W-CDMA) 장비 등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가 주가가 하한가로 빠지자 투자 확대를 재검토하겠다고 공시했다.

이처럼 체감지표가 급락하고 기업이 ‘복지부동’하고 있지만 비관에 빠질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금융시장은 악재가 터질 때 실제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마련이고, 경제주체들의 심리는 시장지표와 함께 움직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롯데경제연구실의 유 팀장은 “심리는 많이 위축된 게 사실이지만 우리 경제는 건실하다”며 “내수는 부진한 반면 수출은 호조를 이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1월 수출은 144.9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27.3% 급증했다. 1월 수출은 금액으로는 지난해 4분기의 월평균 150억 달러대에 비해 줄었지만 1월 실적으로는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LG경제연구원 송태정 책임연구원은 체감경기가 경제지표와 괴리를 보이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내수 부문 둔화를 들었다. 송 책임연구원은 “내수와 서비스부문의 둔화가 체감경기를 더 차갑게 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수출 부문은 두 자리 증가율을 기록하며 경기를 이끌고 있지만, 여기에서 혜택을 받는 근로자보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내수 부문에서 일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산업별 취업자 비중을 살펴보면 서비스업이 63.3%로 제조업 19.0%보다 3.3배 높았다.

삼성증권 신동석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경기는 심리적인 요인으로 눌린 것이기 때문에 압력이 해소되면 빠른 속도로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 주요 기업이 지난해 사상 최대 이익을 내고 특별상여금까지 지급했다”며 “불확실성이 걷히면 움츠러 있던 소비가 살아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간 경제연구소들은 대체로 올해 우리 경제가 하반기부터 좋아지면서 5%대의 경제성장률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홍순영 경제동향실장은 수출 호조가 지속되면 하반기부터 경기가 회복되면서 성장률 5%대 복귀가 가능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LG경제연구소 신민영 경제분석팀장은 설비투자가 하반기 들어 두 자리 증가하면 하반기에 6%대 성장도 가능하다고 예상했다. 롯데경제연구실의 유 팀장은 “대외 변수를 제외하면 가계부실로 인한 부담이 지속될지 여부가 관건”이라며 “상반기 4%대, 하반기에는 5%대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반기 5%대 회복 가능할까

정부에 기대할 부분은 그리 크지 않다. 노무현 대통령은 경제를 불안하게 하는 3대 요인으로 이라크전 발발 가능성과 북핵 문제, 내수 침체를 꼽았다. 이들 원인 가운데 대외적인 부분은 정부가 독자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노 대통령도 북핵 문제와 관련해 “우리의 자체적인 역량만으로 대처하기 어려운 국가위험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새 정부는 내수는 둔화됐지만 경기가 정책 수단을 대대적으로 동원할 만큼 나쁘지는 않다고 진단하고 있다. 또 산업생산과 수출이 호조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경기를 진작할 경우 부동산시장 과열 등 부작용이 재연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따라서 일단 재정을 조기 집행하고 가계대출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선에서 대응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라크 전쟁 발발로 경기 위축이 우려될 때에는 한국은행 차입금과 재정증권 발행을 합쳐 재정 집행 규모를 최대 5조원 늘릴 계획이다.

기업들은 경기부양보다는 경영환경 개선에 대한 신뢰가 우선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비정규직 근로자 처우 개선을 비롯한 노조 편향적인 노동정책과 대기업 정책이 불안감의 한 원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외국인이 2월 국내 증시에서 매도우위로 돌아선 것도 이런 불안이 반영된 결과라고 풀이했다. 그는 “정책 혼선으로 기업 활동을 어렵게 만드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노 대통령이 꼭 지켜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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