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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는 영원하다?

광고는 영원하다?

영화나 TV 프로그램 속에 특정 상품 ·서비스를 노출시키는 ‘PPL 광고기법’이 각광받고 있다.
확실한 예측 한 가지. 현재 NBC에서도 방영 중인 케이블 TV 브라보(Bravo)의 인기 프로그램 <퀴어 아이 포 더 스트레이트 가이> (Queer Eye for the Straight Guy) 출연진 가운데 한 사람은 치아를 드러내며 활짝 웃지 않았다는 이유로 핀잔을 듣게 된다. 해결책은? 치아 미백 테이프 크레스트 화이트스트립스(Crest Whitestrips)를 붙이면 된다. 크레스트 제조업체 프록터 앤 갬블(P&G)은 NBC와 <퀴어 아이…> 새 시리즈 방영 시 적어도 1회분 이상에서 크레스트가 등장할 수 있도록 협상을 벌이고 있다.

앞으로 TV 프로그램 안에서 특정 상품을 많이 접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프로그램 내 광고’는 화면 전면에서 코카콜라 캔을 툭 떨어뜨리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방송사들은 광고주와 함께 프로그램 줄거리나 세트를 고안한다. 상품을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서다. 광고효과를 극대화하자는 것이다. 방송사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광고를 이리저리 피해가는 진득하지 못한 시청자들에게 다가가는 게 목적이다.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Walt Disney Studios)의 전 사장 리처드 프랭크(Richard Frank)는 “시청자들이 광고를 보지 않는다”며 “방송사 광고 담당자들도 걱정할 정도로 큰 문제이기 때문에 광고 대행업체들은 다른 광고기법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전했다. 프랭크는 현재 캘리포니아주 베벌리힐스 소재 인티그레이티드 엔터테인먼트 파트너(Integrated Entertainment Partners)의 파트너다. 고객기업의 제품을 TV나 영화 줄거리에 주요 소품으로 등장시켜주는 업체다.

연기자와 대본도 없이 그저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 카메라만 여기 저기 설치돼 있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봇물을 이루자 시청자의 잠재의식으로 파고드는 광고가 등장했다. TV 영화 시리즈 <스포트라이트 프레젠테이션> (Spotlight presentation)에서 1909년쯤 야구장에 옛 존슨 앤 존슨(J&J) 제약의 대형 옥외 광고판이 나와도 놀랄 필요가 없다. TNT 케이블의 <스포트라이트 프레젠테이션> 은 J&J가 제공한 제작비로 만든 영화이기 때문이다. 노골적인 사례도 있다.

워너 브러더스 네트워크가 방영한 여름 콘서트 시리즈 <펩시 스매시> (Pepsi Smash) 제작에서 펩시콜라는 세트 디자인과 사회자 선정에 직접 관여했다.
방송계에서는 이를 ‘브랜드 통합’이라고 부른다. 시청자가 속속 광고를 기피하는 만큼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신종 산업이다. 올해 시장 규모는 1억 달러로 추정되고 있다. 방송사는 이 같은 기법으로 일반 광고단가보다 최고 20%의 프리미엄을 얹어 받을 수 있다.

기억력이 좋은 장 ·노년층이라면 언젠가 본 듯한 광고전략임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라디오도 그랬듯 TV 초기 시절 광고주들은 프로그램을 스스로 만들어 자사 제품에 핵심 역할까지 맡겼다. 48년 첫 방영된 코미디언 밀턴 벌리(Milton Berle)의 코미디 버라이어티 쇼 <텍사코 스타 극장> (Texaco Star Theater)은 이후 뷰익(Buick) 자동차가 협찬하면서 <뷰익 벌리 쇼> 로 이름을 바꿨다.

인기 코미디 시리즈 <왈가닥 루시> (I Love Lucy)의 오프닝 크레딧(제작진 등이 소개되는 프로그램 첫 장면)은 원래 주인공 루시와 리키가 필립 모리스(Philip Morris) 담배 상자 근처에서 난장판을 벌이는 그림으로 처리돼 있었다. 50년대 후반 일련의 퀴즈 쇼 파문 이후 방송사들은 프로그램 제작을 직접 책임지고 협찬업체에도 대개 60초짜리 스폿광고만 허용했다. 80년대 들어 ‘프로그램 내 광고(PPL)’가 할리우드에 자리잡았다.

PPL 기법의 최고 성공작은 82년 개봉된 영화 에 등장한 초코볼 리시스 피시스(Reese’s Pieces)다. PPL 기법은 리얼리티 쇼 붐을 타고 한층 뻔뻔스럽게 강화됐다. 2000년 방영되기 시작한 <서바이버> (Survivor)에서 CBS와 기획 프로듀서 마크 버넷(Mark Burnett)은 특정 제품을 노골적으로 등장시켰다. 허기로 지친 출연자들에게 스낵 도리토스(Doritos)와 음료 마운틴 듀(Mountain Dew)를 제공한 것이다.

새로운 광고 포맷은 TV 바깥 세계도 변화시키고 있다. 할리우드의 탤런트 에이전시들은 자사가 갖고 있는 연줄을 과시한다. 크리에이티브 아티스츠 에이전시(Creative Artists Agency)는 코카콜라와 폭스(Fox)의 연예인 지망생 선발 프로그램인 <아메리칸 아이들> (American Idol)에서 코카콜라를 어디서나 접할 수 있게 만든 것은 자사라고 주장했다. 심사위원들은 코카콜라 잔을 들고 마시며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코카콜라의 상징인 ‘빨간색’으로 도배된 방에서 심사받는다.

광고주나 광고 대행업체가 프로그램 제작비를 모두 부담하고 공짜로 콘텐츠까지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대신 특정 상품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배치한다. 광고 대행사가 프로그램 광고 매출 일부를 챙기기도 한다. 올 여름 방영된 NBC의 6부작 리얼리티 쇼 <레스토랑> (The Restaurant)은 어느 조그만 뉴욕 레스토랑에 관한 이야기다. 광고 대행사 인터퍼블릭 그룹 오브 코스(Interpublic Group of Cos)가 일부 자체 제작해 황금 시간대에 내보냈다. 그야말로 수십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인터퍼블릭은 1회당 제작비 100만 달러를 모두 부담했다. 하지만 광고 시간대 중 절반을 세 기업에 팔 수 있었다. NBC는 땡전 한 푼 안 들이고 프로그램을 만든데다 광고 시간대의 반을 챙겼다. 세 광고주 미쓰비시(三菱), 쿠어스 라이트(Coors Light), 아메리칸 익스프레스(American Express)도 프로그램 제작을 협찬했다.

<레스토랑> 의 오프닝 크레딧 화면에서 ‘주연’인 레스토랑 주인 로코 디스피리토는 미쓰비시의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을 운전한다. 주방 요리사는 쿠어스 라이트 맥주 한 상자를 질질 끌고 간다. 그리고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가 화면에 잠깐 클로즈업된다. 디스피리토는 점원들에게 월급을 지급할 돈이 없었다. 그가 자신의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통장을 톡톡 치며 한 점원에게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오픈 서비스(저리 신용카드 현금 서비스) 좀 받아와”라고 말하는 부분이 방영되기도 했다.

인터퍼블릭과 함께 <레스토랑> 을 제작한 벤저민 실버맨은 “시청자들도 이런 광고에 대해 다 이해한다”고 말했다. 인터퍼블릭은 TBS에서 10월부터 방영되고 있는 <하우스 룰스> (House Rules)도 제작했다. 여러 부부가 리모델링으로 완벽한 집 꾸미기 경쟁을 벌이는 프로그램이다. 제작비는 주택 리모델링 용품 전문 유통업체 로스(Lowe’s)가 부담한다.

리얼리티 쇼는 뭐든 괜찮다는 식으로 특정 브랜드와 제품을 마구 등장시킨다. 이제 광고가 드라마 안까지 파고드는 실정이다. NBC는 올 여름 화장품업체 에이번(Avon)과 맺은 광고 계약의 일환으로 에이번 신상품 마크(Mark)를 낮 드라마 <패션스> (Passions)에 등장시켰다. 주인공이 마크 영업 담당자로 부모를 기쁘게 해드린다는 내용이다. 포드(Ford)자동차는 올 가을에 중간 광고 없이 방영되는 폭스의 흥미진진한 테러리스트 드라마 <24>의 첫 편을 후원한다. 대신 방영 전이든 후든 긴 광고를 내보내고, 극중에 신형 픽업 트럭 포드 F150까지 등장시키기로 폭스와 합의했다.

문제는 극중 광고가 드라마 줄거리를 흐트러지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경쟁상태에 있는 다른 광고주들을 쫓아버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코카콜라의 척 프루트 수석 부사장은 “과대 광고 가능성에 대해 매우 조심하고 있다”고 밝혔다.
폭스의 <세븐티스 쇼> (That ’70s Show)와 NBC의 새 프로그램 <우피> (Whoopi)를 제작 중인 카시 워너 맨더배치(Carsey-Werner-Mandabach)의 파트너 카린 맨더배치(Caryn Mandabach)는 “세트장에서 갑자기 여러 상품을 접하게 되면 좀 비굴한 느낌이 든다”고 털어놓았다.

지난해 봄 카시 워너 맨더배치는 한 시트콤 줄거리를 워너 브러더스에 팔았다. 유럽 전역을 자동차로 둘러보는 한 미국인 가족의 이야기다. 중요한 것은 각종 자동차와 신용카드를 등장시킬 기회가 널려 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워너 브러더스는 방송하지 않았다. 방영이 좌절됐다고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앞으로도 유혹은 끊임 없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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