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 ·매장 ·물류 “다 바꿔”… 물량공세로 반전 시동
조직 ·매장 ·물류 “다 바꿔”… 물량공세로 반전 시동
할인점 사업에 뛰어든 지는 7년째. 하지만 롯데는 이마트에 밀리고 홈플러스에마저 추월당해 3위에 머무르고 있다. 이마트가 지난 상반기 2조4,000억원, 홈플러스가 1조7,000억원의 매출을 올린 데 비해 롯데마트의 매출액은 7,600억원에 그쳤다. 무엇이든 한 번 진출하면 삽시간에 업계를 평정해온 롯데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다.
이미 할인점은 매출 기준으로 유통업종의 대표로 자리를 굳혔다. 할인점 38개사는 지난해 총 매출액 17조4,000억원, 25개 백화점은 17조8,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할인점은 결국 상반기에는 ‘유통 1인자’에 올라섰다. 매출 감소세를 보인 백화점들이 상반기에 8조6,000억원어치를 파는 데 그친 반면 할인점은 9조1,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격차가 벌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롯데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할인점 부문에서 이마트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불리한 입지 및 물류시스템, 백화점식 마인드에서 비롯된 서비스 부재 3가지를 문제점으로 꼽는다.
가장 큰 약점인 입지문제는 후발주자라는 한계성과 그룹의 인식 부족에 기인한다. 지난 1993년부터 할인점을 낸 이마트는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을 골라 부지선점 전략을 구사했다. 점포는 나중에 짓더라도 우선 땅을 확보해둔 것이다. 반면 이마트보다 4년 늦게 출발한 롯데는 할인점 부지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더구나 초창기에는 할인점 사업을 주력으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지 확보를 위한 대규모 자금 동원을 꺼리는 경향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롯데마트의 서울 지역 매장 수는 6개로 이마트 11개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 수도권을 포함한 지방의 매장 수도 이마트가 40개에 이르는 데 비해 롯데마트는 23개에 불과하다.
초창기 매장은 할인점의 특성을 간파하지 못한 입지 선정과 매장 배치로 시행착오를 겪어왔다.
현대증권 이상구 애널리스트는 “롯데마트 1, 2호점인 강변역점과 월드점 개장 과정은 백화점식 경영 마인드가 불러온 무리수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구의동 테크노마트 내에 있는 1호점은 입지부터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유동인구가 많은 교통요지인 강변역은 백화점에 어울리는 곳이라는 얘기다.
이정희 중앙대 산업경제학과 교수는 “교통정체와 주차난이 심각한 테크노마트는 여유로운 가족 쇼핑을 원하는 할인점 고객을 끌어들이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잠실 롯데백화점을 개조해 문을 연 월드점은 쇼핑카트를 이용하는 고객들을 배려하지 않은 매장구조로 최근 다시 리모델링을 하는 시행착오를 겪었다. 이 교수는 월드점을 ‘백화점식 하드웨어에 마트식 소프트웨어를 설치한 격’이라고 지적했다.
유통 전문가들은 롯데마트의 두 번째 문제점으로 취약한 물류시스템을 지적한다. 제품이 생산지로부터 각 지역 매장으로 배분되는 시스템이 약하다는 것이다. 이 애널리스트는 “이마트는 용인 ·경기도 광주·대구 등 전국에 4개의 물류센터를 구축해 재고관리와 배송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있지만 롯데의 물류시스템은 창고 수준”이라고 말했다. 유통 강자인 롯데의 물류시스템이 후진적이라는 지적은 다소 뜻밖이다. 이 애널리스트는 “백화점식 마인드를 버리고 상품회전율을 높여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할인점에서는 박리다매로 빨리 재고를 털고 새 제품을 제때 채워 넣어야 한다는 얘기다.
롯데그룹은 제조업과 유통업이 결합해 특유의 시너지를 낸다. 그러나 롯데마트는 물류가 뒷받침되지 않아 이 시너지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이 애널리스트는 “롯데는 할인점을 백화점의 한 영업부서 정도로 생각해 백화점에서 쓰던 물류와 전산시스템을 그대로 적용했다. 오류와 시행착오가 반복된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말했다. 심지어 전산시스템은 마트에 적용하기가 불가능해 수작업으로 업무를 대신한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유통전문가들은 백화점 운영 경험이 풍부한 롯데가 서비스 측면에서도 낮은 평가를 받고 있는 원인을 롯데마트의 출범과정에서 찾았다. 인력 구성부터 잘못됐다는 것이다. 이수동 국민대 경영학과 교수는 “외국사와의 제휴나 타 업체로부터의 스카우트 없이 자체인력으로 교육을 진행해 할인점에서 필요한 역할과 임무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고 진단했다. 할인점이 ‘백화점의 부속사업’이라는 직원들의 인식도 문제였다. 익명을 요구한 롯데그룹 중견 간부는 “초창기 마그넷(현 롯데마트)으로 발령받으면 좌천이라는 인식이 강했다”고 말했다.
반면 이마트는 영국 코스코와 기술제휴를 맺어 할인점 경영의 노하우를 쌓고 인력 교육을 마친 뒤 시장에 뛰어들었다. 지난 93년 개장한 1호점인 창동점도 시스템 개발과 인력 양성을 마친 뒤 오픈했다. 이 애널리스트는 “일종의 시범 운영체계였던 창동점이 할인점의 문제점 보완과 점포 표준화 연구 등을 가능케 했다”고 말했다.
노하우가 뒤지는 것은 단순히 할인점 운영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데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이수동 교수는 “신세계는 백화점 지점들의 직영률이 높아 점포별로 다른 전략을 수립하는 데 익숙하다. 때문에 할인점을 열 때도 지역밀착형 노하우를 적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눈에 띄지 않는 차이지만 지역특성을 반영한 상품구색과 진열, 마케팅 등에서 이마트는 직영의 경험을 살리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그룹과 백화점이 전체를 컨트롤하는 롯데는 지역별로 다를 수밖에 없는 대형 할인점 전략을 수립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는 것이다. 또 백화점과 그룹 계열사 매출을 신경쓰다보니 다른 할인점이나 심지어 동네 슈퍼에서조차 쉽게 살 수 있는 제품이 롯데마트에는 없는 경우가 생겨났다. ‘살 것이 없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롯데는 겉으로는 느긋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다. 유통부문 전체 매출액이 신세계에 1조원 가량 뒤진 것으로 나타났지만 “바뀐 회계기준에 의한 숫자놀음”이라며 여전히 맹주는 롯데라고 자부한다. 그러나 발걸음은 분주하기만 하다.
롯데 측은 “인력부터 매장까지 모두 바꾸는 중”이라며 장기전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조직개편과 매장 리모델링으로 기반을 다진 뒤 반격을 시작하겠다는 얘기다. 롯데는 최근 이철우 롯데리아 사장에게 롯데마트부문 대표이사를 맡기며 독립경영체제로 전환했다. 투자와 인사 등을 독자적으로 집행해 백화점과 다른 길을 가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롯데가 준비 중인 전략은 특유의 물량 공세 중심이다. 월드점을 시작으로 초창기에 개장한 매장은 모두 리모델링을 시작했거나 준비 중이다.
새로 문을 열게 될 점포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꾸며진다. 매장 규모를 3,500평 이상으로 대형화하고 매장을 지하 대신 지상에 배치할 예정이다. 또 멀티플렉스 영화관과 패밀리레스토랑을 입점시키는 등 할인점을 가족공간으로 생각하는 고객 눈높이에 맞추기로 했다.
물류는 최근 개발한 ‘신 구매 시스템’을 전 점포에 도입해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이 시스템은 발주부터 매입겿퓔흟재고관리에 이르기까지 상품 전 유통과정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롯데마트는 새 시스템 도입으로 납품확인서 결재 업무를 폐지하고 오류 수정에 소요되던 시간을 절반으로 단축시켰다. 최대 약점으로 지적된 입지문제도 자금력으로 밀어붙여 해결에 나설 예정이다. 롯데는 초읽기에 들어간 건국대야구장 부지 입찰에서 반드시 승리해 격전지인 서울 상권을 만회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롯데마트 김영일 이사는 “내년에 개점할 서울역사점과 구로점에 건국대야구장을 추가하면 서울에서도 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롯데의 물량공세는 앞으로 3~4년간 계속될 예정이다. 롯데백화점 이창원 부장은 “그룹은 2007년까지 전국 롯데마트 점포 수를 70개 이상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유통지존의 자존심을 되찾으려는 롯데의 노력은 할인점뿐 아니라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그 동안 슈퍼마켓과 편의점 ·인터넷 쇼핑몰 부문은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이 직접 챙겨왔음에도 성적이 신통치 않아 관계자들을 곤혹스럽게 했다. 현재 슈퍼마켓은 LG, 편의점은 훼미리마트가 1위를 고수하고 있으며 인터넷쇼핑몰은 LG이숍과 인터파크가 선두다툼을 벌이고 있다. 유통업 선두다툼에 ‘지존’ 롯데가 빠져 있는 것이다.
최근 이 부문에도 진격 신호가 떨어졌다. 롯데는 지난 10월 12일 한화마트 및 한화스토아를 인수하기 위한 MOU를 체결했다. 슈퍼마켓인 롯데레몬 13개점에 신규 점포 26곳(한화마트 9개점, 한화스토아 17개점)을 더해 당초 계획했던 슈퍼슈퍼마켓(SSM)의 골격을 갖춰나갈 예정이다. 하위권에 머물고 있는 쇼핑몰 롯데닷컴도 지난 9월 백화점, 롯데마트와 통합해 ‘롯데쇼핑 닷컴’으로 재편했다.
단순 쇼핑몰에서 벗어나 정보웹진과 명품관 등의 기능을 추가해 차별화를 모색하고 있다. 편의점 세븐일레븐은 순수가맹점 모집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타 업체와 출점경쟁을 벌였던 세븐일레븐은 작년 164억원의 적자를 냈고 부채비율도 400%를 넘어서는 등 후유증을 겪고 있다. 롯데는 아울러 우위를 지키고 있는 백화점의 아성을 확실히 다지고 있다.
구 한일은행 및 미도파 점포를 재개장해 명동상권을 장악한 뒤 여세를 몰아 신세계를 압박하겠다는 전략이다. 먼저 늦어도 내년 초까지 미도파를 잡화매장으로 재개장해 분위기를 띄운 뒤 한일은행에는 명품매장을 열어 대세를 굳히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신세계가 본점 리모델링이 끝나는 2005년까지 발목 잡힌 틈을 노린다는 계산이다.
빨라진 신동빈 부회장의 행보 |
|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트럼프發 ‘관세 전쟁’의 서막…“캐나다‧멕시코에 관세 25% 부과”
2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장에 한진만 사장
3신한투자증권, 정보보호 공시 우수 기관 선정
4업비트 투자자보호센터 "내년 美 주도 디지털자산 시장 온다"
5카카오뱅크, 인니 슈퍼뱅크와 협력 강화…“K-금융 세계화 선도”
6현대차증권, 대규모 유상증자 결정에 14% 급락…52주 신저가
7전동공구 업체 ‘계양전기’가 ‘계모임’을 만든 이유
8“삼성 인사, 반도체 강화가 핵심”...파운더리 사업에 ‘기술통’, 사장 2인 체제
9교육부·노동부, 청년 맞춤형 취업 지원 '맞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