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목(75·사진)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명예교수는 서울시 도시계획국장 시절 여의도와 강남 개발을 주도했다. 여의도에 특수학군제를 국내 처음으로 도입해 황량한 모래섬을 주거지역으로 바꿨으며, 이를 응용해 강남 개발의 밑그림을 그렸다.

그가 서울시 국장으로, 교수로,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위원으로 재직하면서 지난 50년 동안 지켜본 서울의 변모는 올 여름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라는 5권의 책으로 묶여나왔다. 그의 책이 없었더라면 서울의 현대 역사가 한귀퉁이 잘려져 나갔으리란 평가를 받는다. 강남 개발을 주도한 사람으로서 손교수는 강남 집값 폭등의 원인과 대책, 그리고 강남과 서울의 미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그는 한마디로 “강남의 집값이 떨어지면 한국이 우울해질 것”이라고 답했다.

정부가 내놓은 집값 안정화 대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집값 안정화 대책에 교육문제에 관한 대책이 빠진 것은 강남 집값의 본질을 모른 탓이다. 강북의 한 고등학교에선 서울대에 한두명 정도 들어간다. 그러나 강남의 숙명여고는 지난해 서울대 합격생이 64명이었다. 어디에서 살고 싶은가.

강북에 특목교를 유치하는 것이 강남 집값을 잡을 수 있는 대안인가.

무엇보다 정부가 교육 투자에 인색하지 않았으면 한다. 윤덕홍 교육부총리가 교육과 집값은 별개라고 말했는데 아마추어 같은 말이다. 여의도 개발이 성공한 것은 특목고를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국무위원이면 국가 전체를 생각해야 한다. 교육밖에 몰라서는 안된다. 요즘 강남에서 사는 어지간한 학생들은 대부분 미국이나 캐나다로 유학을 간다. 5∼10년 뒤면 많은 강남주민이 한국을 뜰 것이다. 강남 집값을 잡으려면 갈데 없는 부동자금을 끌어들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은행 금리가 5% 이하로 떨어지면서 강남 집값이 올라갔다. 주위의 이자 생활자들에게 물어보면 은행에 돈 맡기면 도둑을 맞는 기분이라고 한다. 주식은 위험하고, 그러다 보니 부동산 투자를 안할 수 없다.

정부가 나서서 강남 집값을 잡아야 하나.

집값을 현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 못 올라가도록 잡아줘야지 떨어뜨리면 안된다. 일본처럼 부동산 거품이 붕괴되면 한국은 망한다. 일본은 13년 동안 집값이 떨어지면서 얼마나 우울한 사회가 됐는가. 강남 집값이 떨어지면 한국의 집값이 떨어진다.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 전체가 우울해진다. 다시 일어서기 힘들 것이다.

집값이 떨어지면 집없는 서민들은 좋아할 것 아닌가.

결혼해서 10년 지나면 대부분 집을 장만할 수 있다. 집 가진 사람은 언젠가 죽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 집이 모자라지 않는다. 집값이 떨어지면 좋아하지 않을 국민이 더 많다.

일본과 달리 영국과 미국은 20여년 동안 집값이 꾸준히 올랐는데.

이민을 받아들여서 그렇다. 경제가 계속 성장하려면 인구의 절대수가 있어야 한다. 한국은 10년 뒤 인구가 줄기 시작한다. 15년 뒤면 서울에서 지하철 역세권이 아닌 지역에 빈 집이 늘어날 것이다. 그때 나는 죽고 없다. 그러나 당신은 있을 것이다. 대책을 생각해야 한다.

행정수도 이전이 서울의 집값과 어떤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는가.

제일 엉터리 같은 정책이 행정수도를 옮기는 것이다. 선진국을 봐라. 수도는 옮기지 않는다. 브라질은 수도를 옮긴 뒤 경제가 죽을 쓰고 있다. 부산 경제가 맥을 못추고 있는 것은 경남도청이 창원으로 옮기면서부터다. 반면 춘천은 강원도청 때문에 유지되고 있다. 도청을 위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수입이 떨어져 나가면 도시 경제는 기울기 시작한다. 행정수도를 이전하면 1백만명이 서울을 떠날 것으로 정부는 예상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집은 다 서울에 두고 몸만 갈 것이다. 따라서 쓸데 없는데 투자해선 안된다. 한국은 자원이 부족한 나라다.

김포와 파주 신도시 계획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글쎄, 역시 강남이어야 한다. 젊은 사람들은 6·25를 너무 모른다. 한국 사람들은 강남이어야 마음이 편하다. 북한은 믿을 수 없다. 아직도 서울 근교의 산에 수많은 군사시설이 있다. 전쟁은 내일이라도 일어난다. 아직까지 돈을 쥔 사람은 6·25세대다. 따라서 강남이라야 이주할 것이다. 강남이라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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