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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이슬러의 변신은 무죄?

크라이슬러의 변신은 무죄?

다임러(Daimler)와 크라이슬러(Chrysler) 사이에 합병이 삐걱거리던 2000년 크라이슬러 그룹의 CEO 디터 제체(Dieter Zetsche)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로 향했다. 하지만 그가 원한 것은 해결사 역할 이상이었다. 멋진 자동차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제체는 새로운 모델 개발을 지시했고 이제 결실을 선보일 참이다. 올해 신모델이 9개, 2005~2006년에는 16개가 출시될 예정이다. 제체는 “이제는 수확할 때”라고 표현했다.

크라이슬러는 새로운 매출원을 필요로 하고 있다. 크라이슬러의 미국 내 승용차 ·경트럭 시장 점유율은 1996년 16.2%에서 현재 12.7%로 떨어진 상태다. 지난해 1~3분기 적자는 7억6,300만 달러를 기록했다. 그렇지만 새로운 모델과 몇 가지 비용 절감 노력 덕에 앞으로 흑자 전환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잇따른 신차 출시가 매출증대의 보증수표로 통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한국에서부터 독일에 이르기까지 모든 자동차 메이커가 올해 신차를 대거 발표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제너럴모터스(GM)는 올해 10여 개의 신모델과 기존 모델을 변형한 16개 제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한동안 주춤했던 포드자동차도 신모델 40개와 변형 모델을 출시한다. 증권사 메릴린치는 올해(2005년형) 미국에서 신모델 63개가 선보이면서 지난해 신모델 출시 기록 52개를 경신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제체는 신모델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기 위해 마케팅 예산도 2억5,000만 달러나 늘렸다. 하지만 자금조달 방법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했다. 포드의 경우 신형 픽업 트럭 ‘F150’ 마케팅에 1억 달러를 투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체가 극복해야 하는 것은 치열한 경쟁만이 아니다. 크라이슬러가 가장 공들인 두 모델이 올 봄과 여름에 각각 출시될 예정이다. 두 모델은 크라이슬러의 기존 고객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크라이슬러가 주력 모델로 간주하는 ‘300C’는 전면에 대형 은색 그릴을 부착한 강한 남성적 이미지를 풍기는 세단형이다. 억센 미식축구 선수를 연상케 한다. 크라이슬러가 편안하고 우아한 스테이션 왜건 판매에 주력해온 데다 가수 셀린 디옹(Celine Dion)의 달콤한 목소리까지 광고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볼 때 파격이 아닐 수 없다.

디옹의 목소리는 최근 크라이슬러 광고에서 사라졌다. 시장조사업체 아이솔로지(Iceology)의 애널리스트 웨슬리 브라운은 “강한 남성적 이미지가 먹혀드는 부분도 있겠지만 기대 수준에는 못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크라이슬러의 다지(Dodge)형 스테이션 왜건 매그넘(Magnum)은 새로운 해치 등 가족친화적인 여러 특성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차체가 낮고 폭이 넓은 남성적 이미지다. 현재 왜건이 다지 브랜드 가운데 가장 단조로운 4도어 세단으로 대체되고 있다. 업계 애널리스트 매리앤 켈러는 “크라이슬러가 ‘기존 시장에서 벗어나기로 작정했다’고 말하는 것 같다”며 “소비자들 입이 떡 벌어질 만한 제품을 내놓는다면 모를까 이번 모델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그뿐 아니다.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크라이슬러의 기존 고객들 가운데 일부는 동북부 지역에 거주하고 눈길에서 조향성이 뛰어난 전륜 구동 자동차를 선호하지만 300C와 매그넘은 후륜 구동형이다. 크라이슬러는 결국 4륜 구동형도 선보일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럴 경우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
크라이슬러가 근래 들어 선보인 ‘탈(脫)전통’ 모델들의 판매실적은 그야말로 들쭉날쭉이다. PT 크루저(PT Cruiser)는 출시 당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히트쳤지만 이제 신선감이 떨어졌다. 스테이션 왜건과 미니밴의 혼합형인 퍼시피카(Pacifica)는 높은 가격에다 마케팅마저 시원치 않아 판매가 저조했다.

가격을 3만 달러 아래로 인하한 뒤에야 판매가 다소 반등했다. 3만5,000달러짜리 스포츠형 쿠페 크로스파이어(Crossfire)도 판매가 부진한 실정이다. 215마력짜리 엔진이 미국인 운전자들 성에 차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스포츠카도 아닌 닛산(日産)의 세단형 알티마(Altima)도 245마력짜리 엔진 탑재가 가능하다. 크라이슬러는 300C와 매그넘에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생각인 것 같다. 300C와 매그넘에 옵션으로 340마력 엔진이 탑재될 예정이다. 크라이슬러는 300C ·매그넘의 포인트는 디자인이라고 말했다. 300C와 매그넘의 디자인을 총지휘한 랠프 질스(Ralph Gilles)는 “그렇고 그런 외양들 가운데 가장 돋보일 것”이라고 장담했다.

지난해 11월 제체는 자동차 딜러 6,000명을 초대했다. 신형 지프 그랜드 체로키(Grand Cherokee)와 컨버터블형 PT 크루저 등 크라이슬러의 신모델을 소개하기 위해서였다. 코네티컷주 미스틱의 딜러 로버트 밸런티는 신차들에 만족한 표정이었다. 그는 “동북부에서 후륜 구동형을 판매하는 데 별 문제는 없을 것”이라며 “신제품들이 새롭고 혁신적”이라고 평했다. 신모델들이 좋은 반응을 얻는다고 해도 크라이슬러의 핵심 영역은 다른 데 있다는 게 문제다.

크라이슬러가 지난해 들어 10월까지 판매한 180만 대 가운데 78%는 미니밴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 ·픽업이었다. 도이체 방크의 애널리스트 로드 래시에 따르면 오는 2006년까지 외국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북미 공장을 속속 건립할 예정이다. 공장들이 완공되면 북미 시장에 자동차 126만 대가 더 쏟아져 나올 전망이다. 이들 공장 대부분은 미니밴 ·SUV ·픽업을 생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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