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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가]세련된 국제신사 황영기vs 농사꾼의 아들 김정태

[은행가]세련된 국제신사 황영기vs 농사꾼의 아들 김정태

세련된 국제신사 황영기vs 농사꾼의 아들 김정태
김정태·황영기
'황영기냐 김정태냐.’ 요즘 금융가에서는 김정태 국민은행장과 황영기 우리금융지주 회장 내정자의 비교가 한창이다. 이들은 ‘행장은 환갑이 지나야 할 수 있다’는 기존 상식을 뒤엎고 50대 초반의 나이에 은행장에 취임하면서 은행가에 ‘김정태 쇼크’ ‘황영기 쇼크’라는 말을 유행시켰다. 나이뿐만 아니라 경영 스타일도 닮은꼴이다. 스스로 ‘장사꾼’이라고 말하는 김행장이나 철저히 1등주의를 추구하는 황내정자 모두 수익성과 주주가치 극대화를 경영의 일차적 잣대로 삼고 있다. 이밖에도 두 사람은 초고속 승진을 했다는 점, 시장주의자라는 점, 그리고 기존 관행을 거침없이 깨는 스타일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기존 관행을 깨라] 지난 1998년 동원증권 사장이던 김정태씨가 주택은행장에 선임되자 은행가는 충격에 휩싸였다. ‘아무리 호남정권(DJ)이라 하더라도 어떻게 일개 증권사 사장이 은행장을 할 수 있느냐’는 게 당시 은행가의 반응이었다. 김행장의 출신지가 전라남도 광산이고, 광주일고를 나왔기 때문이다. 98년만 해도 증권사 사장은 은행의 고참 부장이나 이사급 정도로 인식되고 있었다. 당시 동원증권의 직원 수는 불과 1천5백명. 반면 주택은행의 직원 수는 1만2천여명에 달했다. 기껏해야 은행의 지역본부 정도 규모밖에 안 되는 증권사 출신이 은행장이 됐다는 것은 기존 은행원들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취임 뒤의 행보도 파격적이었다. 노조가 ‘관치’라며 행장실 출입을 막고 밀가루 세례를 했음에도 그는 아랑곳없이 행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노조에 최후통첩을 보냈다. “계속 이러면 공권력의 힘을 빌리는 수밖에 없다. 알아서 판단하라.” 관료 출신 은행장들이 노조의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추던 과거의 모습을 그에게서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노조는 결국 물리력 행사를 중단하고 물러나야 했다. 인사 스타일도 연공 서열에서 능력 위주로 확 바꾸었다. 철저한 성과급, 나이를 가리지 않는 발탁 인사, 그리고 과감한 외부 수혈 등 기존 은행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일들이 매일 벌어졌다. 황영기 내정자도 증권업계에선 파격적인 행보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지난 2001년 6월 삼성증권 사장 취임과 동시에 ‘약정 위주의 영업을 지양하고 고객 수익 우선의 자산 영업을 하겠다’는 폭탄 선언을 했다. 주식 약정 수수료가 전체 수입의 50%가 넘는 상황에서 수수료 영업을 포기하겠다는 것은 증권업계 현실에선 이단적인 정책이 아닐 수 없었다. 일부 임원들은 현실과 맞지 않는 정책이라고 반기를 들었다. 하지만 황사장은 밀어붙였다. 한 삼성증권 관계자는 “당시 사내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황사장은 배짱이 두둑한 인물”이라며 “임원들에게 ‘하라면 해’라고 말할 정도로 자신의 경영 방침을 고수했다”고 말했다. 자산관리 영업을 강화하면서 그는 리서치 기능과 프라이빗뱅킹 비즈니스도 대폭 확대했다. 삼성증권은 다른 증권사들로부터 ‘돈으로 유명 애널리스트를 싹쓸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대대적인 스카우트를 단행했다. 증권업계 부동의 1위인 프라이빗뱅킹 비즈니스도 황사장의 작품이다. 그동안 부자 고객에 대한 차별화된 서비스를 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많았지만 프라이빗뱅킹 비즈니스에서 은행과 경쟁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증권업계에서는 프라이빗뱅킹 비즈니스 모델을 정착시킨 유일한 회사로 삼성증권을 꼽는다. 이재영 씨티프라이빗뱅킹그룹 대표는 “황영기라는 뛰어난 경영자가 있었기 때문에 삼성증권이 프라이빗뱅킹 비즈니스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 실제 3천억원의 자산으로 시작된 삼성증권의 프라이빗뱅킹은 현재 2조원가량으로 늘었다.

[시장이 뽑은 은행장]김정태 행장을 두고 증권가에선 ‘시장이 뽑은 행장’이라는 표현을 한다. 황영기 회장의 선임을 두고 증권가에선 다시 ‘시장이 뽑은 제2의 행장’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증권시장은 황내정자의 선임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제2의 CEO 주가’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되고 있다. 우리금융 주가는 지난 3월8일 장중 한때 사상 최고치인 9천5백10원을 기록하면서 강한 상승세를 나타냈다. ‘CEO 주가’의 원조는 김정태 행장이다. 김행장 취임 전만 해도 하나은행 등 다른 시중은행에 비해 낮은 주가를 보였던 주택은행의 주가는 그의 취임과 더불어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주가 상승의 기폭제가 된 것은 지난 98년 12월 열린 국내외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한 ‘기업투자설명회’. 그 자리에서 김행장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엄격히 적용해 회계를 해보니 4천5백억원의 적자가 예상된다”고 발표했다. 참석한 애널리스트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98년 실적만 놓고 보면 주택은행은 기피 대상 종목이었기 때문이었다. 김행장은 “얼마나 경영을 엉망으로 했으면 4천5백억원의 적자를 냈느냐”는 투자자들의 항의에 시달려야 했다. 손실에 대비한 대손충당금을 많이 쌓은 탓에 발생한 적자였지만 투자자들의 불만은 대단했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김행장의 손을 들어줬다. 취임 당시 23%선에 불과했던 외국인 투자자들의 지분율이 99년 1월 50%선을 돌파한 데 이어 2001년 말에는 무려 70%까지 돌파했다.

[이헌재식 금융구조조정의 상징] 김정태 행장이 주택은행장에 취임한 시기는 98년 8월. 당시는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로 대동·동화은행 등 일부 은행들이 문을 닫고 조흥은행 등에 공적자금이 투입되던 금융의 격변기였다. 부실 은행에는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정부 소유 은행은 민영화해야 하는 과제가 이위원장 앞에 놓여 있었다. 때문에 당시 이헌재 부총리는 국내외에 ‘시장 중심의 금융개혁’이라는 신호를 보내야 했다. 관료 출신을 선임해서는 이런 효과를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시장도 관료 출신을 꺼려하는 분위기였다. 행장 자리를 놓고 주택은행 내부 임원과 전직 경제관료, 현직 금융기관장 등 모두 열한명이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싸움이 치열하다 보니 ‘정치권 개입설’ 등 각종 루머가 나돌기 시작했다. 그러자 “분위기를 일신하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사람을 데려와야 한다”며 열한번째 후보로 추천된 인물이 바로 김정태 행장이었다.

[은행에 증권·투신·보험업 접목] 황내정자도 이헌재 부총리와 인연이 깊다. 항간에는 삼성그룹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황내정자의 선임을 둘러싸고 정찬용 대통령 인사수석비서관과 갈등이 있었지만 이부총리가 황내정자를 강력히 밀었다는 얘기도 있다. 황내정자는 중소기업중앙회 자문기관인 ‘중소기업 경영전략위원회’ 멤버로 활동하면서 이헌재 부총리와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위원회에는 이헌재 부총리와 절친한 인물인 오호수 전 증권업협회 회장도 멤버였다. 이 때문에 황내정자가 선임되기 전부터 삼성증권 내부에서는 우리금융 회장으로 자리를 옮길 수도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돌았다. 김행장이 이헌재식 금융개혁의 ‘1차 상징’이었다면 황내정자는 ‘2차 상징’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한일·상업 등이 합해 만들어진 우리금융은 그동안 전 하나은행 행장이었던 윤병철씨를 회장으로 영입해 조직 내 갈등을 해소하고 해외 DR(주식예탁증서)을 발행하는 등 1차 구조조정을 해왔다. 이 과정을 주도했던 윤병철 전 회장은 “우리금융을 정상화해 다음 사람이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나의 역할”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즉 자신은 토대를 마련하고 후임자가 제대로 일할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우리금융도 과거 주택은행과 국민은행처럼 민영화라는 숙제를 안고 있다. 김행장이 주택은행과 국민은행의 합병을 통해 민영화 작업을 했다면, 황내정자도 같은 일을 해야 할 임무를 갖고 있는 것이다. 황내정자는 내정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증권사뿐만 아니라 보험사도 매물로 많이 나와 있다”며 “어떤 회사를 인수할지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취임도 하기 전에 증권사와 보험사를 인수하겠다는 자신의 구상을 밝힌 것이다. 만일 그의 구상대로 우리금융의 밑그림이 그려진다면 금융계 판도는 크게 바뀔 것으로 보인다. 최공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증권화·겸업화는 향후 금융기관의 생존을 결정할 수 있는 문제”라며 “황내정자의 증권업 경험은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행장도 이미 한일생명을 인수, 사명을 KB생명으로 바꾸고 재출범을 준비 중이다. 예대마진에 의존하는 은행 경영 관행을 바꾸기 위해 김행장은 취임 초부터 펀드 판매를 독려해 왔다. 은행의 입장에서 펀드 판매는 리스크를 지지 않은 채 수수료 수입을 올릴 수 있는 분야다. 김행장은 특히 최근 한국투자증권과 대한투자증권 인수를 위한 사무국을 설치하고 상대적으로 취약한 증권업과 투신업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만일 황내정자까지 증권·투신·보험업 강화를 추진하면 국내 금융시장은 다시 한 번 대대적인 기업인수·합병(M&A)전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농사꾼 vs 국제신사] 신사김행장과 황내정자는 경영 스타일은 비슷하지만 외모나 경영자의 이미지는 사뭇 다르다. 김행장은 본인의 표현을 빌자면 전형적인 농군의 아들이다. 그는 평소에도 자신이 농군의 아들이라는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는 주말이면 진짜 농부로 변신한다. 20여년 가까이 주말이면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에 있는 농장으로 내려가 농사일을 한다. 외모도 동네 아저씨 같은 이미지다. 하지만 황내정자는 ‘국제 신사’로 불릴 정도로 깔끔하고 단정한 외모를 갖고 있다. 김행장은 대신증권·동원증권 등 국내 금융기관에서만 줄곧 근무한 반면 삼성물산에서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디딘 황내정자는 파리바은행·뱅커스트러스트 등 외국계 금융기관을 거쳤다. 유학도 다녀와 영국 런던 정경대(LSE)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게다가 그의 영어 실력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통역을 도맡아할 정도로 탁월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삼성증권의 한 임원은 “황내정자는 영어를 못하는 임원들을 자주 질타했다”며 “영어는 국제 시대의 필수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두 사람의 이미지는 이처럼 다르지만 술에 관해서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둘 다 대단한 주량(酒量)의 소유자들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술을 잘 마신 것으로 알려진 김행장은 직장 생활 초기 두주불사형이었다고 한다. 지난해 과로로 쓰러진 뒤 지금은 저녁 모임은 삼갈 정도로 건강을 챙기고 있지만 동원증권 재직 시절에도 술을 잘 하는 경영자였다는 게 동원증권 임직원들의 얘기다. 황사장도 술이 매우 세다. 한 삼성증권 관계자는 “폭탄주도 거침없이 마치는 두주불사형”이라며 “어떤 때는 같이 술을 먹기가 겁이 날 정도”라고 말한다. 직원관리 방식도 비슷하다. 임원들에겐 엄하고 아래 직원들에겐 관대한 스타일이다. 김행장은 동원증권 재직 시절 “본사가 돈을 벌어오는 영업점 직원들을 관리하면 안 된다. 돈을 벌지 못하는 부서는 돈을 버는 부서를 도와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황내정자도 비슷하다. 임원들과 본사 관리부서에는 혹독할 정도로 업무 지시를 내리지만 아래 직원과 영업점 직원들의 얘기에는 늘 경청하는 자세를 보였다고 한다. 항간에는 이헌재 부총리가 정부 정책에 자주 반기를 들은 김정태 행장의 대항마로 황영기 회장을 내세웠다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금융 전문가들은 대항마 논리는 근거가 희박하다며 오히려 건전한 경쟁 풍토가 조성될 것이라는 시각이다. 최공필 연구위원은 “김행장이 혼자 은행 개혁을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황내정자가 이런 개혁 흐름에 동참하면 금융업 전체로 보면 오히려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구경회 한화증권 리서치센터 연구위원도 같은 의견이다. “씨티은행의 한미은행 인수와 더불어 황내정자의 선임은 우리나라 은행 산업의 그림을 다시 그릴 수 있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 증권사 출신 은행장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은행 소매영업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일례로 국민은행이 신용카드 버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점을 지적할 수 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김행장은 자신의 명성과 1등 은행의 수장이라는 점에 비춰볼 때 카드 문제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감이 있다”고 말한다. 금융가에선 이들 젊은 행장들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이들의 어깨에 한국 금융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말이 지나치게 들리지 않는 것은 오랜 관치의 늪에서 벗어나 은행이 금융기관에서 금융회사로 변신하는 변곡점에 이들이 서 있기 때문이다.

황영기 우리금융지주 회장 1952년 生
서울고등학교·서울대학교 무역학과 卒
81년 영국 런던대학교대학원 경영학 석사
75∼80년 삼성물산 국제금융
86∼89년 뱅커스트러스트 증권 도쿄지점 지배인
2001년 삼성투자신탁운용 대표이사 부사장
2001∼2004년 삼성증권 대표이사사장
2004년 3월 현재 우리금융지주회사 회장으로 내정

김정태 국민은행장 1947년 生
광주 제일고·서울대학교 경영학과 卒
74년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국제경영이론 석사
69년 조흥은행 입행
80년 대신증권 상무이사
97∼98년 동원증권 대표이사 사장
98∼2001년 한국주택은행 은행장
2001년∼現 국민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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