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인생 18년
| 김순자 한성식품 사장 | 땅덩어리가 좁다고 아우성이지만 좁은 한반도 안에서도 김치에 대한 입맛은 제각각이다. 내가 김치 사업에 뛰어든 뒤 가장 어려웠던 점은 팔도의 입맛을 두루 맞추는 일이었다. 조금만 양념이 강하면 충청도와 경기도에서 반품이 들어오고, 조금만 싱겁다 싶으면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난리였다. 이는 지역별로 선호하는 김치 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남쪽으로 갈수록 김치는 짜진다. 바다를 접하는 강원도는 조개류와 멸치 등을 넣어 개운한 맛을 낸다. 경기도 김치는 짜지도 맵지도 않다. 반면 경상도와 전라도는 기후가 따뜻해 오래 저장하느라 소금과 항균작용이 있는 고춧가루를 많이 사용하다 보니 대체로 짜고 매운데다 국물도 적고 자극적이다. 이처럼 개성 있는 전국의 김치들이 나의 발목을 잡을 줄은 18년 전 김치 사업에 뛰어들 당시만 해도 전혀 예상치 못했다. 전국의 소비자들을 고루 만족시켜 줄 수 있는 김치를 개발하기 위해 수도 없는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보편적인 입맛을 맞추려면 젓갈 배합이 관건이었다. 그래서 경상도·전라도·충청도 등이 전국 각 지역을 고향으로 둔 사람들을 직원으로 채용했다. 이들을 대상으로 새 김치를 맛보는 품평회를 열면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맛을 내기 위해 김치를 수없이 만들고 또 만들었다. 김치 맛을 일정하게 하기 위한 조리의 표준화도 중요한 문제였다. 포장김치는 공장에서 만들지만, 기계가 아닌 사람들이 일일이 손으로 만든다는 게 특징이다. 집에서 담그는 김장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배추 속잎마다 양념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기계로는 김치를 만들 수 없다. 대강 감으로 이뤄지는 김치 담그는 일을 ‘배추 1㎏당 소금·고춧가루·젓갈·파·마늘 몇 g’ 하는 식으로 한성만의 조리법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배추·무·양념들을 소모했는지 모른다. 이런 난관을 헤쳐가다 보니 어느 새 18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처녀 시절 고왔던 내 손은 김치 국물에 마를 날이 없고, 보다 맛좋고 새로운 김치를 만들기 위해 수없이 먹은 양념 탓에 위도 성치 못하다. 그래도 나는 김치가 좋다. 이유는 김치만의 독특한 매력 때문이다. 김치는 온도·양념·물에 따라 그 맛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묘한 음식이다. 얼마든지 새로운 맛을 창조해 낼 수 있는 것이다. 그게 김치의 경쟁력이다. 어디 그뿐인가. 김치에 비타민·무기질·생리활성물 등 몸에 좋은 각종 영양소가 많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졌다. 사스 예방에 특효가 있다고 김치가 인기를 끈 것도 김치의 우수성을 입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김치는 다른 분야와 달리 여자이기 때문에 더욱 유리한 분야인 것도 마음에 든다. 내가 김치사업을 하면서 가장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점은 어릴 적부터 남다르게 예민했던 나의 혀끝이다. 김치에 소금이나 양념이 조금이라도 많거나 적다 싶으면 기가 막히게 맞추는 나였다. 김치는 또한 세계적으로 한국이 가장 우위에 있는 몇 안 되는 분야라는 점도 자랑스럽다. 그러나 이런 배경만 믿고 안심할 수 없는 것이 요즘 상황이다. 값싼 중국산 김치와 일본의 기무치가 우리의 토종 김치를 위협하고 있어서다. 한국의 대표산업은 반도체와 휴대폰만이 아니다. 김치산업도 그에 못지않은 한국의 간판산업이 될 수 있다. 정부와 국민들은 김치산업에 관심과 지원을 보낼 필요가 있다. 언젠가 한국 김치가 전 세계를 제패할 것을 믿기에 하는 말이다.
김순자 한성식품 사장 1954년 충남 서산 生 숭실대 중소기업대학원 卒 86년 6월 한성식품 설립, 한성식품 대표 2001년 신지식 특허인 선정(특허청) 2002년∼現 (사)여성발명협회 부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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