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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제언③]“상환의지 있는 사람은 구제하라”

[긴급제언③]“상환의지 있는 사람은 구제하라”

개인 신용불량자가 지난 4월 말 현재 400만명에 육박하며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신용회복위원회를 찾은 개인 신용불량자들이 상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묘책(妙策)을 찾는 것이 문제다.” 신용불량자 문제 해법에 대한 한 전문가의 일침이다. 사실 빚은 갚는 것 외에 다른 방책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뭔가 묘책을 찾는 형국이다. 정부와 금융기관들은 잇따라 신용불량자 대책을 내놓고 있다. 일각에서는 도덕적 해이를 문제삼지만, 내수부진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도덕적 해이 없이 신용불량자를 구제하는 묘책은 없을까? 불행히도 아직까지 그런 묘책을 찾은 사람은 없다. 요즘 유행하는 ‘윈-윈 게임’이라는 말도 있지만 신용불량 문제에 관한 한 원칙과 효과는 ‘제로섬 게임’이다. 여기서 원칙이라 함은 도덕적 해이 방지이고, 효과라 함은 신용불량자 구제를 뜻한다. 이 문제는 성장과 분배, 시장과 정부, 경쟁과 평등만큼 어려운 문제다. 최근 배드뱅크 설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국민은행의 이성규 부행장은 “이쪽으로 조금 가면 도덕적 해이라고 비판하고, 저쪽으로 조금 가면 실효성이 없다고 비판하는 상황”이라며 난감해했다. 원칙을 고수하자니 싸늘한 내수가 문제다. 지난 4월 말 기준으로 신용불량자는 391만명. 경제활동인구인 2,300만명의 17%에 달한다. 안 그래도 수출 주도의 경제구조 때문에 내수부진이 만성화된 판에 400만명이나 소비자 대열에서 빠진 채로는 내수부진의 ‘지병’을 고치기 힘들다. 연일 사상 최대라는 수출 덕에 한국 경제가 근근이 버티고 있지만 이 호황이 영원하리라고는 누구도 믿고 있지 않다. 환절기에 감기 오듯 세계 경기가 내리막을 타는 순간 한국 경제는 아무런 보호막 없는 침체에 빠질 수 있다. 비교적 외부여건에 많이 좌우되는 수출에 비해 국가 경제 내에서 자체적으로 움직이는 내수는 경제의 안정성과 직결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한국 경제는 일촉즉발의 화약고 상태다. 그리고 그 뇌관은 바로 신용불량자 문제다.

“구제책, 도덕적 해이 불가피” 일부 전문가들이 신용불량자 대책을 적극적이고 과감하게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신용불량자 구제제도는 크게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워크아웃, 배드뱅크를 통한 구제, 다중채무자 공동채권추심프로그램, 개인채무자회생법에 의한 법원판결 등이 있다. 홍순영 삼성경제연구소 경제동향실장은 “신용불량을 해결하지 않고는 한국 경제가 성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성장률이 1%만 올라가면 5조원의 부가가치가 발생한다. 비용 대 이익의 관점에서 신용불량자 대책을 적극적으로 처리해 경제성장률을 올리는 것이 신용불량자 해결에도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이동규 신용회복위원회 과장은 “도덕적 해이 문제에 과도하게 집착할 경우 결국 신용불량자 구제책을 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과장은 “문제는 상환의지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구분하는 것이다. 상환의지가 있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신용불량자 대책의 핵심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적극적으로 신용불량자를 해결하자는 측에서도 최근 정부의 신용불량자 대응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한번에 끝내지 않고 연이어 나오는 신용불량자 대책이 신용불량자들로 하여금 ‘빚을 갚겠다’는 의지보다는 ‘뭔가 더 나오겠지’ 하는 기대 심리를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를 위해서 400만에 이르는 신용불량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신용불량자 해결 과정에서 채무나 이자 탕감이라는 도덕적 해이가 불러올 좋지 않은 선례를 우려하고 있다. 특히 얼마 안 되는 월급에서 빚을 갚거나 근검절약해 빚을 지지 않은 사람들, 특히 신용불량자 근처를 맴돌며 신용불량자에 빠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피해를 입게 될 경우 자칫 신용우량자들에게 허탈감을 줄 수도 있다. 최공필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배드뱅크처럼 사적 채권·채무 관계에 국가가 개입할 경우 도덕적 해이의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최연구위원은 “돈 빌린 사람과 돈 빌려준 금융회사의 관계에 왜 정부가 개입해 국민의 세금을 쓰느냐”며 “정부는 시장 원칙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세부적인 채무변제 계획은 당사자들끼리 세우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지금처럼 정부에서 일괄적인 기준을 주지 말고 금융회사가 알아서 상환의지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구분하라는 얘기다. JP모건의 이코노미스트인 임지원 상무는 “발생한 문제를 빨리 해결하기 위해 부채를 탕감하는 방식의 정책은 단기적으로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손실이 더 크다”고 언급했다. 시장경제의 근간인 신용을 무너뜨리면서까지 내수진작을 도모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경제평론가이자 소설가인 복거일씨는 “도덕적 책무를 다하지 않은 사람이 이익을 보게 하는 정책이 바로 도덕적 해이의 전형”이라고 평가했다.

“부채 탕감보단 소득 증대” “외국에서도 개인부채 문제는 경기변동과 연관지어 생각한다. 가장 좋은 정책은 부채 탕감이 아니라 소득증대다. 무엇보다도 기업의 투자여건을 개선해 고용을 증대시키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선순환적인 정책이다. 정책당국자들이 생각을 약간만 바꾸면 기업들의 투자나 고용을 유도할 수 있는 방안이 많다. 기업의 투자가 활발해지지 않으면 신용불량 문제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임지원 이코노미스트) “금융기관은 지금의 신용정보로도 충분히 상환의지 유무, 상환능력 유무를 파악할 수 있다. 단지 안 할 뿐이다. 정부는 대신 금융기관의 신용불량자 처리 능력에 따라 경영 인센티브와 제재를 하면 된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금융기관별 실력도 평가할 수 있다.”(최공필 연구위원) 전문가들 사이엔 “이번 기회에 신용불량자 제도를 폐지하고, 카드의 경우 리볼빙 결제를 활성화하는 등 신용불량자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사실 신용불량자 제도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멀쩡하던 사람도 신용불량자로 분류되는 순간 각종 금융기관에서 채권회수를 하기 때문에 버틸 수 없다. 금융기관도 채무자의 구체적인 신용 상태를 파악하기보다 일괄적으로 신용불량자만 가려내는 상황이 돼 개인신용 평가능력이 약해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리볼빙 제도 역시 개인과 금융기관이 스스로의 부채와 신용 정도를 계속 체크하고 신용 구매 금액의 일부만 갚아도 되도록 함으로써 갑작스런 유동성 부족으로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이미 정부에서도 일자리 연계 신용회복 지원, 금융기관의 개인신용 평가능력 제고, 신용불량자 등록제도 개편 등을 논의하고 있다. 이런 논의가 현실적으로 실행될 경우 신용불량자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정부의 인식이다. 신용불량자를 사회적 약자로만 보거나 내수회복을 위해 단기적인 부채 탕감에 주안점을 둘 경우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과 사회안전망 확충은 그것대로 해 나가되 신용불량은 분명히 약속 위반이나 신의 위반 행위로 인식돼야 한다. 그에 따른 불이익도 있어야 한다. 이미 발생된 신용불량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소득증대를 통한 부채상환능력을 키우는 것이 최상의 해결책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용불량에도 유일한 묘책은 바로 경제성장이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문제가 터질 때마다 묘책을 찾는 대신 원칙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원칙을 지키는 것은 예방 효과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한국 경제와 신용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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