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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하나로 두 가지 질병 ‘뚝딱’

약 하나로 두 가지 질병 ‘뚝딱’

둘 이상의 질병에 효과가 있는 ‘일석이조’ 의약품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약국을 찾은 손님이 약을 복용하고 있는 모습.
1년 전부터 피임약을 먹은 부작용으로 여드름이 많이 나 고민이던 20대 기혼 여성 최모씨. 그는 요즘 여드름이 주춤해 거울을 볼 때면 은근히 기분이 좋다. 피임이 되면서 동시에 여드름까지 치료하는 피임약으로 바꾼 뒤 여드름이 눈에 띄게 나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약의 이름은 ‘다이안느35’. 한국쉐링에서 판매하는 여성용 먹는 피임약이다. 한국쉐링의 김경민 다이안느35 담당 제품 매니저는 “이 약은 체내 남성호르몬의 양을 감소시켜 여드름을 치료한다. 피임약이면서 동시에 여드름을 치료하는데, 여드름 치료만을 목적으로 복용할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피임과 여드름 치료를 동시에 한가지 약으로 서로 다른 질병을 치료하는 이른바 ‘일석이조’ 의약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여드름 치료와 피임을 동시에 할 수 있는 한국쉐링의 다이안느35를 비롯, 골다공증 치료제 겸 유방암 예방약인 한국릴리의 에비스타 등이 대표적이다. 똑같은 성분으로 만들었지만 용량과 이름을 다르게 해서 별도로 내놓는 제품들도 있다. 한국MSD의 프로스카(전립선 비대증 치료제)와 프로페시아(발모제), 바이엘 코리아의 아스피린(해열제)과 아스피린 프로텍트(심혈관 질환 예방) 같은 경우를 들 수 있다. 피임과 여드름 치료, 탈모증과 전립선 비대증, 해열과 심혈관 질환 예방. 겉으로 보기에는 서로 상관없는 질병 같다. 그러나 의외로 서로 연관이 있는 경우가 많다. 체내 호르몬 이상으로 생기는 질환의 경우, 하나의 호르몬이 둘 이상의 기관에 동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일석이조 약물들은 해당 호르몬에 작용해 컨트롤하기 때문에 둘 이상의 질환을 동시에 치료할 수 있는 것이다. 후발업체들의 경우 이런 일석이조 의약품 개발에 더욱 매달리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뒤늦게 뛰어드는 만큼 차별화해야 팔리기 때문이다. 한국쉐링은 이미 피임약들이 시장에 많이 나와 있는 상황에서 피임약의 부작용으로 여드름이 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 주목, 여드름 치료 기능을 지닌 약을 개발했다. 제약회사들이 일석이조 의약품을 내놓는 이유는 또 있다. 신약을 만들기 위한 신물질 개발이 한계에 닿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박주애 한국릴리 의약정보팀 차장(약학 박사)은 “지구상에 있는 어지간한 물질은 거의 약용으로 개발됐고, 합성하는 데도 한계에 다다랐다. 그래서 기존에 만든 물질에서 새로운 기능을 찾는 데 눈을 돌리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기존 약물서 새 기능 추가 기존 약물에서 새로운 기능을 찾아내는 것은 제약업체 입장에서는 개발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연구소에서 만든 신물질 1만여 가지 가운데 임상실험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은 한두 가지에 불과하다. 상용화 가능성이 겨우 0.01%밖에 안 된다. 박주애 차장은 “기존 약물은 이미 안전성이 검증됐기 때문에 새로운 기능을 찾아낼 때는 임상실험만 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신약 개발에 들어가는 예산의 약 40%는 신물질을 찾아내는 데 들어간다”고 말한다. 즉, 신물질 개발 과정을 생략하고 기존 물질에서 추가 기능을 발견하면 그만큼 신제품 개발비를 아낄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추가 연구를 통해 더해지는 치료 효과는 신약의 특허 기간을 연장하는 의외의 성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박주애 한국릴리 차장은 “신약 특허권의 유효기간은 보통 특허 등록 뒤 15년가량”이라며 “제약회사들은 신물질을 발견한 뒤 바로 특허 등록을 하며 상용화까지는 얼추 10년이 걸린다. 따라서 유효 기간이 15년이라 해도 실제 특허권을 활용해 돈을 버는 기간은 길어야 4∼5년에 불과하다. 그러나 추가 치료 효과를 밝혀내면 특허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이유로 일석이조형 약물 개발과 출시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데, 간혹 소비자들이 이런 기능을 오용하는 경우가 있어 골머리를 앓기도 한다. 똑같은 약이지만 용도별로 용량과 가격을 다르게 파는 제품들의 경우 그런 일이 적잖게 벌어진다. 한국MSD의 프로스카(전립선 비대증 치료제)와 프로페시아(탈모 치료제)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한국MSD 소비자 상담실의 한 관계자는 “탈모 환자인 고객으로부터 프로페시아 대신 프로스카를 먹어도 되느냐는 문의전화가 심심치 않게 걸려온다”고 귀띔한다.

일석이조 약물 오용도 많아 프로스카와 프로페시아는 둘 다 ‘피나스테리드’를 주성분으로 한다. 용량 차이를 빼면 동일한 약이다. 피나스테리드는 원래 MSD에서 양성 전립선 비대증을 치료하기 위해 연구했던 성분이다. 그러나 연구진들은 연구 도중 피나스테리드가 모발의 성장을 촉진시킨다는 것을 발견했다. 원칙대로 하자면 머리가 빠져 고민인 환자는 탈모 치료약인 프로페시아를 먹어야 한다. 그러나 프로스카와 프로페시아가 동일한 제제라는 사실을 알게 된 환자들은 엉뚱하게도 프로스카를 사먹는다. 가격 때문이다. 1㎎짜리 한알에 2,000원인 프로페시아(탈모 치료제)보다 5㎎짜리 한알에 1,500원인 프로스카(전립선 비대증 치료제)가 훨씬 값이 싸다. 약효가 별 차이 없다면 값싼 약으로 손이 가는 것이 사람 심리다. 때문에 용량이 더 많지만 값이 싼 5㎎짜리 프로스카를 사서 4∼5등분해 복용하는 환자들이 상당수 있다고 한다. 언뜻 생각하면 한알에 1㎎인 프로페시아가 한알에 5㎎인 프로스카보다 값이 싸야 할 것 같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정이 있다. 한국MSD 관계자는 “프로스카와 프로페시아는 만드는 데 들어간 비용이 서로 다르다. 별도의 연구진이 서로 다른 시간과 비용을 들여 약효를 연구하고 임상실험을 했다”며 왜 약값이 서로 다른지를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1㎎ 다섯알을 먹으면 5㎎ 한알과 동일한 약효가 날 것 같다고 쉽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동일한 치료효과를 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없어 두 약을 혼용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의약품은 성분이 같아도 용량에 따라 투약 뒤 효과가 다르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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