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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박제 아테네올림픽선수단장·필립스코리아 대표… “경영이건 스포츠건 원동력은 챌린 지 정신”

신박제 아테네올림픽선수단장·필립스코리아 대표… “경영이건 스포츠건 원동력은 챌린 지 정신”

신박제 단장
올림픽 선수촌 입촌식에 참석한 신박제 단장(가운데).
사내 체육대회에서 시축을 하고있다.
지난 8월15일(현지 시간) 오전 9시30분 그리스 아테네 근교에 자리잡은 올림픽 선수촌의 한국선수단 본부 사무실. 신박제(60) 올림픽선수단장이 환하게 웃으며 들어왔다. 아테네의 강렬한 햇살에 검게 탄 얼굴이었지만 피곤한 기색 없이 건강한 모습이었다. 신단장은 이미 새벽 5시에 일어나 전체 임원회의를 주재하고 일일업무 추진현황을 점검하고, 분야별 점검을 마친 상태였다. 이제 곧 10시30분에 한국대사관이 주관하는 광복절 기념식에 주요 임원들을 대동하고 나가야 한다. 현지에서 이뤄진 신단장과의 인터뷰는 바쁜 일정과 일정 사이 잠깐 비는 시간에 가졌다. 신단장과 해외에서 만난 것은 이번이 두번째다. 한번은 2003년 1월 세계 가전쇼(CES)가 열렸던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였다. 당시 그는 필립스코리아 사장 겸 LG필립스LCD 부회장 자격으로 CES에 참가했다. 정보기술(IT) 업체의 최고경영자(CEO)로서 IT와 가전제품의 향후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해 세계 최대의 디지털가전 전시회인 CES를 찾은 것이다. 당시 라스베이거스 중심부에 있는 한식당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식사 후 수행원 하나 없이 직접 짐을 트렁크에 넣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에서도 안면이 있는 처지여서 짐 싣는 것을 도와주자 겸연쩍어했다. 만날 때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그는 다부지고 카리스마 넘치는 외모와 달리 상당히 소탈하다. 그의 이런 성격은 이번 아테네올림픽선수단 운영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단장으로서 어깨에 힘이 들어갈 만도 하지만 ‘역피라미드론’을 내세워 그런 우려를 불식한다. “단장은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선수가 맨 위에 있고 단장은 밑바닥에서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신단장은 1995년 주한 외국기업 대표로선 처음으로 핸드볼협회 회장이 됐고, 더 나아가 두번이나 올림픽선수단장이 됐다. 96년 애틀란타올림픽과 이번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이다. 두 차례나 올림픽선수단장을 맡은 사람은 신단장이 처음이다. 해외 법인장이 해당 국가의 스포츠를 대표하는 올림픽선수단장이 된 경우는 스포츠계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기업인으로서 그는 11년째 필립스의 한국 현지법인인 ㈜필립스전자의 CEO를 맡고 있다. IMF(국제통화기금) 위기 이후인 99년에는 당시로서는 가장 큰 투자액인 16억 달러를 필립스 본사로부터 유치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최근엔 주한 외국기업들의 모임인 글로벌IT포럼의 회장을 맡아 주한 외국기업 CEO들의 맏형 역할을 하고 있다. 이쯤 되면 궁금증이 솟아나지 않을 수 없다. 주한 외국기업 CEO로서 텃세가 심하기로 유명한 체육계에서 거목이 된 배경은 무엇인지, 또 필립스 본사는 그에게 해외법인장으로서는 일종의 외도라고 할 수 있는 체육계 일을 계속하게 배려하는 이유는 뭔지, 그리고 이것을 가능하게 만든 ‘신박제’는 어떤 사람인지.

‘기업 경영’과 ‘스포츠 외교’라는 두 마리 토끼를 성공적으로 잡았다는 평가를 듣고 있습니다. “개인 생활을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공적인 일에 투자하는 시간을 줄일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출근하기 전 새벽 시간이나 토·일요일은 대부분 체육계 일에 썼습니다. 제대로 된 휴가를 쓴 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군요.” 실제로 아테네에서 만난 신단장은 모든 에너지를 올릭픽선수단장 역할에 쏟아붓고 있었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랍니다. 새벽에 잠자리에 누워 다시 새벽에 일어나는 일의 연속이죠. 특히 이번에 같이 올림픽에 참석한 북한 올림픽 체육인사들과 수시로 만나 공동협력방안을 논의하느라 더 바쁩니다. 그동안 남북 공동입장 등 실무적인 분야에서만 협력했는데, 앞으로 남북이 스포츠과학 분야에서 손을 잡기로 한 것은 진일보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올림픽선수단장은 한시적인 자리다. 올림픽을 전후한 짧은 기간에만 필요한 자리다. 대략 석 달 정도다. 그렇다고 해서 가벼운 자리는 결코 아니다. 국가와 개인의 명예를 걸고 올림픽에 참가하는 임원과 선수단 등 총 376명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휘하는 사령탑이다. 무엇보다 올림픽선수단장은 명예스러운 자리다. 전 국민들의 눈길이 쏠리는 올림픽에서 선수단을 지휘할 수 있는 영광은 체육계에서 오랫동안 일했다고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체육계가 신단장을 선호하는 이유는 뭘까? 아테네에서 만난 대한체육회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선수단장을 인선할 때 주요 잣대는 통솔력, 올림픽 기여도와 국제대회 경험 여부, 외국어 구사능력 등입니다. 신단장은 이 모든 조건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죠. 과거에는 밀실에서 선수단장을 결정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공개적인 다면평가를 거쳐 신단장이 최적임자로 선정된 것이라고 보면 무방합니다.”

체육계에서 많은 일을 하고 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지난 1995년 2월 당시 문화체육부로부터 대한핸드볼협회 회장을 맡을 것을 권유받았습니다. 체육엔 전혀 경험이 없다고 고사했지만 주변에서 모르는 사람이 더 잘한다고 강권해 맡게 됐습니다. 애틀랜타올림픽선수단장 이후 체육계와 인연을 끊고 경영에 전념했지만, 98년 9월 다시 대한하키협회 회장을 맡았고, 2002년 7월부터는 대한체육회 부회장직도 맡고 있습니다.” 신단장의 진면목은 96년 애틀란타올림픽선수단을 맡았을 때 드러났다. 전통적으로 관료적이던 선수단 운영을 완전히 탈바꿈시킨 것이다. 선수가 중심이 되도록 했다.

필립스 본사에서는 필립스코리아의 한국 체육계 지원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전 세계 60여개국에 있는 필립스의 해외지사 중 대외활동을 인정받은 CEO는 제가 유일합니다. 제가 CEO를 맡는 동안 그룹 회장이 3명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모두 다 저를 적극적으로 지원해 줬습니다. 물론 저를 시기하는 해외법인 사장들도 종종 있습니다. 본사에서 글로벌회의를 열면 공개적으로 저를 비난하고 자신들도 대외활동을 하게 해 달라고 요구하곤 하죠. 그럴 때면 필립스 본사에선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능력이 있으면 한번 해보라’고요.”

체육계 활동 때문에 혹 경영에 차질이 빚어지지는 않습니까? “본사에서 대외활동을 인정해 주는 것은 무엇보다 경영실적이 뒷받침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CEO를 맡은 초기 3년 동안 회사 매출이 4배 늘어났습니다. 필립스 본사에서 깜짝 놀라더군요. 이후에도 매년 두자릿수 성장을 해 지난해 약 8억 달러의 매출(외형)을 올렸습니다. 2007년까지 현재의 매출을 2배로 끌어올리는 경영전략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체육계 활동이 기업 경영에도 도움이 됩니까? “CEO에게 어렵지 않을 때는 없습니다. 단지 조금 어렵고, 많이 어렵고의 차이일 뿐이죠. 하지만 마인드를 바꾸면 결과는 딴판으로 나타납니다. ‘도전해볼 만하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이 필요한 거죠. 필립스코리아 경영의 요체는 한마디로 챌린지(도전) 정신입니다. 이런 점에서 스포츠와도 일맥상통하지요. CEO를 맡고 있는 11년 동안 나와 임직원들은 모두 끊임없이 챌린지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신단장 때문에 필립스는 한국인의 정서에 가까워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재순 올림픽선수단 본부 임원(필립스코리아 홍보담당 상무)은 “필립스 본사는 신단장의 체육계 활동을 통해 서로 ‘윈윈’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며 “필립스코리아는 현지와의 ‘토착화’에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얻었다”고 말했다. 필립스 본사는 신단장이 회장을 맡았거나 맡고 있는 핸드볼협회·하키협회에 재정적 지원도 아끼지 않고 있다. 한국에선 신단장의 체육활동 이후부터 주한 외국기업들의 스포츠를 통한 마케팅이 활성화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신단장의 오늘을 본사의 지원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들다. 그는 체육계에 투신한 이후 남이 따라가기 힘든 열정으로 덤볐다.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핸드볼협회장을 할 때였다. 선수들 건강을 위해 뱀탕이나 자라탕을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어 끓여줬다. 곁에서 지켜보던 부인이 불평을 했다. “협회 일도 좋지만 자기 돈을 그렇게까지 써서야 되나요.” 그때 신단장은 호통을 쳤다. “나라를 위해 일하는데 돈 몇 푼 가지고 불평을 하다니.” 이 같은 신단장의 체육에 대한 열의,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이 오늘의 그를 만드는 데 큰 몫을 했다. 신단장은 지난 75년 20명의 직원으로 설립된 필립스전자의 창립멤버로 입사해 29년째 일하고 있다. 그는 그 기간 중 가장 인상적인 일로 필립스로부터 한국에 16억 달러를 투자하도록 만든 일을 꼽았다. 신단장은 IMF 이후 본사 그룹 회장에게 LCD·조명·소형 가전 분야에 투자할 것과 한국이 훌륭한 파트너가 될 것을 제안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99년 16억 달러어치의 LCD 투자였고, 당시로서는 단일 건으로 유사 이래 가장 큰 외자유치였다.

기업 CEO로서 또 체육계를 이끌고 있는 분으로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입니까? “기업도 사회 구성원입니다. 기업 실적은 사회로 환원될 때 의미가 있습니다. 체육계 일도 마찬가지죠.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제가 하는 기업활동은 이런 바탕 위에서 이뤄질 것입니다. 체육계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봉사라는 대전제 아래에서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터뷰 말미에 그는 다시 올림픽선수단장으로 돌아왔다. “금메달을 딸 것으로 기대했는데 막상 은메달에 그치면 생명이 단축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런 점에선 체육계 일이 기업경영보다 더 어려워요. 바쁘게 움직이고 일하는 것만이 스트레스를 이기는 길이더군요.” 그는 바쁘게 다음 행선지를 향해 선수단 본부를 떠났다. 14일 예상했던 여자 소총에서 금메달이 나오지 못한 것에 잠을 설쳤지만, 15일 남자유도 60㎏에서 최민호가 동메달을 딴 것에 위안을 삼는다는 그는 일단 올림픽 기간 중 냉탕과 온탕을 오갈 것이 뻔했다.

<신박제 단장 약력> 1944년 11월17일 경남 창녕 生
경희대 전자공학과, 연세대 대학원(공학석사)
美 워튼경영대학원
75년 필립스전자 입사
82년 필립스전자 이사
91년 필립스전자 전무
93년∼現 필립스전자 대표이사
95년 2월∼96년 12월 대한핸드볼협회장
98년 12월∼現 대한하키협회장· 대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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