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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의 시장 대개편 신호탄
관련업계 대응책 마련 부심

‘공룡’의 시장 대개편 신호탄
관련업계 대응책 마련 부심

씨티은행에 이어 미국에서 건너온 또 하나의 공룡으로 인해 국내 금융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진출로 국내 소비자금융 시장이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일각에선 글로벌 소비자금융 회사에 맞선 토종 소비자금융 업체들의 사활을 건 싸움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자동차 할부 금리가 낮아지는 등의 효과가 기대된다.
GE와 같은 글로벌 회사가 국내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는 사실만으로 의미가 크다. 국내 소비자금융 시장이 한층 더 성숙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소비자금융 시장 자체도 커질 수 있다.”(LG증권 전용기 연구원)
“미꾸라지들이 판치는 물에 메기가 뛰어든 격이다. 국내 소비자금융 회사들의 자생력은 커질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금융사 가운데 성공한 사례가 극히 드물다.”(메릴린치 송기석 이사)
“아버지(현대차) 돈으로 사업을 하던 아들(현대캐피탈) 앞에 든든한 후원자(GE)가 나타났다. 이 후원자는 아들의 시행착오를 줄여줄 순 있다. 하지만 후원자가 아버지와 아들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지름길을 알려줄지는 지켜봐야 한다.”(JP모건 서영호 상무)

씨티은행에 이어 또 다른 ‘공룡’이 출현했다. 세계 최대 소비자금융 회사인 GE의 소비자금융 부문이 8월 2일 현대캐피탈 지분 38%를 1조500억원에 인수하고 한국 진출을 선언했다. GE의 소비자금융 부문은 자산 137조원 규모에 지난해 순이익 2조5,000억여 원을 올린 초우량 기업이다. 신용카드 ·개인대출 ·자동차할부 ·오토리스 ·모기지 ·보험 등 금융 상품 전반을 취급해 ‘비은행 금융계의 황제’로 불린다. 장기 회사채 등급이 미국 내에서 씨티은행과 함께 유일하게 ‘AAA’다. GE 소비자금융 부문은 그만큼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어 고객들에게도 싼 금리의 대출 상품을 제공한다.
이런 GE가 부실을 채 털어내지 못한 현대캐피탈에 1조원이 넘는 돈을 투자하겠다고 나선 이유는 뭘까. 그것도 내수시장은 침체돼 있고 경영권도 현대캐피탈이 유지하는 조건이다.

◇“GE는 기회 포착 ·선점의 명수”= 과거 GE캐피탈에서 기업M&A 업무를 담당한 HCD컨설팅의 함형기 대표는 “GE의 가장 큰 방침 가운데 하나가 ‘맨땅에 헤딩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GE는 항상 취약해진 시장에 들어가 순식간에 이익을 창출하는 회사”라고 잘라말했다.
최근 허약해진 국내 소비자금융 시장이 GE로선 호재라는 설명이다. 지난해 사상 최악의 신용위기로 카드사들은 보수 경영으로 선회했고, 캐피털 시장은 기껏해야 신차를 구입할 때 제공하는 자동차 할부금융 시장으로 움츠러들었다. 저축은행과 대금업계도 소액 신용대출 연체율이 높아지면서 자금난으로 휘청거리는 업체들이 속출했다.

함 대표는 “GE가 국내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되면 취약해져 있는 카드사들과 대금업체들이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삼성증권의 유재성 금융팀장은 “GE가 예전부터 국내 카드사 인수를 검토하는 등 한국 시장에 관심이 많았다”며 “외형적으로 안전해 보이는 자동차 할부금융 시장에 진출한 후 다른 소비자금융 부문으로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 시장을 교두보로 중국 시장 진출이 GE의 목표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JP모건의 서 상무는 “최근 GE는 ‘미래 성장동력은 아시아에 있다’고 공표할 정도”라며 “한국에서 ‘학습’ 한 후에 중국에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GE의 국내 진출 이유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현대차와의 ‘시너지 효과’다. LG증권의 전 연구원은 “GE는 자체적으로 자동차를 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국내뿐 아니라 해외 자동차 할부금융 시장에서도 현대차와 시너지 효과를 노릴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대 수혜자는 현대차 ·현대캐피탈 이번 전략적 제휴는 GE뿐 아니라 현대차와 현대캐피탈에도 이득이라는 게 시장의 평가다. 우선 현대차와 현대캐피탈은 신용등급이 AAA인 GE와 제휴하게 되면서 대외신인도가 상향조정될 전망이다. 한국신용정보는 이미 현대캐피탈 회사채 등급 전망을 기존 ‘안정적’에서 ‘긍정적’으로 상향조정했다.

일각에선 이번 제휴를 ‘현대캐피탈의 외자 유치’보다는 ‘현대차그룹의 금융부문 확대’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GE는 제조업의 성장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금융으로 업무영역을 확장해 성과를 올렸다”며 “현대차 역시 금융부문 확대의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JP모건의 서 상무는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진출은 이미 세계적인 추세”라며 “이번 제휴는 그동안 번번이 금융업 진출에 좌절했던 국내 재벌들의 징크스를 없애주는 단초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현대로선 삼성과 함께 국내 소비자금융의 두 축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며 “하지만 GE만큼 노하우 전수에 까다로운 회사가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동차금융 ·손보업계 파장 클 듯=현대캐피탈은 지난 회계연도 기준으로 취급액 11조5,000억원, 매출액 1조6,000억원을 기록하며 자동차 할부 시장의 70% 이상, 오토리스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현대캐피탈 관계자는 “신용등급 상향조정으로 조달금리가 낮아지게 되면 자동차 할부 금리가 기존 7.75~8.25%에서 7%대 초반으로 내려가 경쟁력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또 GE캐피탈코리아가 벌여오던 현대차 ·기아차 ·신차할부금융, 중고차 할부금융, 오토리스 부문 등을 모두 현대캐피탈 측에 이전할 예정이다. 이 가운데 오토리스 시장은 자동차 할부금융 시장의 10%에 불과하지만 지난 2000년 629억원에서 2001년 1,621억원, 2002년 6,635억원, 2003년 1조641억원 등으로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전 연구원은 “현대캐피탈이 GE와 적극적으로 자동차 금융 시장을 공략한다면 할부시장은 물론 오토리스 시장에서도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 다른 업체들도 해외 캐피털사와 짝짓기에 나섰다. 삼성카드의 캐피털 사업부문은 지난 6월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금융서비스를 맡고 있는 GMAC와 손잡고 GMAC 캐피털을 설립하기로 합의했다. GMAC는 GM그룹 전체 순익의 60%를 벌어들이는 할부금융사. 국내에선 GM대우차를 비롯해 캐딜락과 사브 등 GM 계열 수입차 판매를 활성화할 예정이다.

수입차 리스 전문업체인 CNH캐피탈 역시 최근 일본 스미쇼(住商) 오토리스와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스미쇼는 스미토모(住友)상사의 자회사로 일본 자동차 리스 1위 업체다. CNH캐피탈은 스미쇼와의 제휴로 현대캐피탈과 삼성카드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한 셈이다.
손해보험 시장에도 파란을 일으킬 전망이다. 지난 7월 말 GE캐피탈의 보험중개업 진출이 알려지자 기존 손보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해 국내 보험주들이 동반 급락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현대캐피탈 측은 “GE가 보험사업에도 경험이 많지만, 전체 보험 시장보다는 자동차보험 중개업에 국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증권의 심규선 연구원은 “GE와 현대캐피탈의 보험중개사는 현대차의 신차 할부금융 고객을 대상으로 자동차보험 가입을 유도해 수수료를 받는 형태가 될 것”이라며 “막강한 파워를 가진 대리점의 등장이자 자동차보험 가입의 또 다른 채널”이라고 말했다.

◇대금업체 ·카드사 ·은행권도 ‘경계령’= 대금업계에서는 이미 ‘GE 경계령’이 내려진 상태다. 함형기 대표는 “GE가 과거 일본에 진출한 사례를 보면 처음엔 카드 시장에 진출했다가 나중에 대금업 시장이 취약한 점을 노려 일본 대금업체 두 곳을 인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 GE 산하의 대금업체들은 일본 시장에서 2위와 3위로 급부상했다”고 덧붙였다.

현대캐피탈 측은 “GE캐피탈코리아에서 벌이던 개인신용대출 부문은 모두 현대캐피탈로 이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GE는 지난해 말부터 국내 30 ·40대의 직장인과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소액대출 시장에 뛰어들었다. 연리 49% 수준으로 66%를 내세우는 기존 대금업체들과 시장이 겹치진 않는다. 일본계 대금업체 관계자는 “최근 현대캐피탈과의 제휴로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며 “연체율이 떨어지면 대금업체 시장까지 공략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카드 시장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킬 전망이다. GE는 올해 말부터 현대카드와 제휴 협상을 시작할 예정이다. 정태영 현대카드 ·현대캐피탈 사장은 “GE 측이 현대캐피탈과 투자협상을 벌이는 과정에서 현대카드 투자도 같이 언급할 정도로 카드사업에 관심이 많았다”고 말했다.

업종을 가리지 않는 GE의 국내 진출은 은행권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은행들이 수익원 다각화를 위해 보험 ·할부금융 ·카드 등 제2 금융권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은 LG투자증권을, 하나은행은 할부금융사인 코오롱캐피탈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LG증권의 전 연구원은 “GE는 현대카드가 있기 때문에 신용카드 사업보다는 주택담보 대출과 같은 우량 소비자들을 겨냥한 시장에 뛰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개인대출 시장 본격 진출할 것”
정태영 현대카드 ·현대캐피탈 사장

지난 8월 2일 GE와의 전략적 제휴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장. 뿔테 안경과 깔끔한 정장 차림으로 기자회견장에 등장한 정태영(45) 현대카드 ·현대캐피탈 사장은 그동안 진행되어 온 협상 과정을 논리정연하게 설명해 나갔다. GE와의 협상을 성공리에 끝낸 소감을 묻자 “협상이 15개월이나 걸리는 바람에 영어 실력이 일취월장했다”고 답변하는 여유도 보였다. ‘오너의 둘째 사위’보다는 ‘금융회사 CEO’임을 확실히 각인시키는 데뷔 무대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대모비스 ·기아차 전무를 지낸 그는 지난해 1월 현대카드 ·현대캐피탈 부사장으로 부임하자마자 ‘현대카드 M’으로 돌풍을 일으켰다. 올 상반기 불황에도 방송 광고비를 115억원이나 지출할 정도로 강한 승부욕을 보였다. 현대캐피탈 관계자는 “회사에서 가장 늦게까지 일하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라고 귀띔했다. 8월 16일 여의도 현대캐피탈 사옥에서 다시 만난 정 사장은 기자간담회 때보다는 한결 여유있는 표정이었다.

- 1조원이 넘는 규모의 글로벌 기업과의 제휴로 부담감이 컸을 것 같습니다.

“저로선 이번 협상 과정이 즐거웠습니다. 솔직히 이런 협상에 자신이 있는 편이고요. GE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데이트 상대자’가 아니라 ‘배우자’를 구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현대차로부터 협상의 전권을 넘겨받아 급할 게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사안은 지난 3월에 결론났는데 GE 측 임원들이 휴가가
너무 많아 지체됐죠.”(웃음)

- GE와 제휴하게 되면 어떤 부문이 가장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을까요.

“개인대출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계획입니다. 개인대출 부문은 ‘드림론’의 실패 이후 ‘개점 휴업’
상태입니다. GE는 대출 부문에 탁월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죠. GE라고 ‘매직’을 부리는 것은 아니지만 체계적이고 시스템에 충실하다는 것이 강점인 것 같습니다. 현재 양사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이르면 10월에 상품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 현대차 역시 GE식 모델을 추구하는 것인가요.

“GE식 모델은 문어발식 모델인데요.(웃음) 제가 아는 한 현대차그룹은 모든 사업부문을 자동차에 ‘올인’하는 정책입니다. 현대캐피탈도 자동차와 관련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하는 셈이죠. 도요타(豊田)나 GM 등에 비해 현대차의 금융부문이 취약한 편입니다. 이번 제휴를 통해 우리 역시 현대차에 걸맞은 선진금융 회사로 성장해야겠죠.”

- 현대카드 부문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계속 공격적인 기조를 유지하실 건가요.

“네.(웃음) 신규 회원 확보보다는 우량 고객 위주로 끌고 갈 생각입니다. GE와 현대카드의 제휴가 이뤄진다면 연말부터 협상에 들어가고 방식은 현대캐피탈과 유사할 것입니다. 현대백화점과 연합카드는 현대백화점 회원들이 로열티와 이용률이
높아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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