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돈업계 대부’ 이인혁 ㈜선진 회장… ‘웰빙 포크’는 영원한 나의 꿈
‘양돈업계 대부’ 이인혁 ㈜선진 회장… ‘웰빙 포크’는 영원한 나의 꿈
# 웰빙 포크 “돼지 키우는 사람이 무슨 철학이 있어. 그냥 소처럼 묵묵히 앞만 보고 걸어온 것이지. 허허허.” 국내 양돈업계의 산 증인인 이인혁 회장은 짐짓 외길 인생에 대한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73년 경기도 이천군 부발면에 돼지 키우는 제일종축을 세워 양돈업에 뛰어든 이래, 사료(79년 ㈜선진 설립)·식육(크린포크)·양돈계열화 사업·육가공(‘가족에게’라는 브랜드)까지 수직계열화 사업의 일가를 이룬 그의 공적은 그의 철학과 그대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그가 지금도 꿈꾸는 것은 오직 하나다. “돼지라는 게 원래 지저분한 거 아닙니까? 옛날 시골에서는 뜨물로 마당에서 키우던 거 아니예요. 그런 지저분한 돼지를 깨끗하게 키워서 맛있는 고급 고기로 만들어 국민에게 공급하겠다는 게 지금도 갖고 있는 소박한 꿈입니다. 뭐, 대단한 건 없어요. 70이 넘은 지금도 그 꿈을 갖고 살 뿐입니다.” 그는 사업 초창기부터 ‘미친 놈’ 소리를 들었다. “제일종축을 하면서 처음에 돈사를 지었더니, 다른 사람들이 ‘저 놈들은 무슨 돈사를 호텔처럼 지어서 돼지를 키우느냐’면서 나보고 미친 놈이라고 하더군요.” 58년 서울공대 섬유공학과를 나와 수도무역(염료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인혁 회장은 이후 염료(인성산업)로 사업 밑천을 마련한 다음에 수산업(인성수산)과 양돈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수산업을 하면서 동원산업 김재철 회장과 인연을 맺어 지금도 선진그룹 계열사 중 하나인 선진사료라는 회사를 선진과 동원이 공동경영을 하고 있을 정도다. 양돈업에 뛰어든 건 우연이다. “중학교 동창이 이걸 하다가 실패했는데, 그 일에 얽혀 있던 내가 뒷정리를 하면서 가만히 보니 과학적으로 양돈을 하면 얼마든지 되겠다고 판단을 한 거죠.” 그래서 그는 처음부터 과학화를 통한 고급 포크 개발에 공을 들였다. ‘축산업도 첨단산업’이란 각오로 새끼돼지가 태어날 때 모돈이 갖고 있는 질병을 차단하기 위해 제왕절개 같은 과학적 양돈법을 도입했다. 제일종축 농장을 특정질병부재(SPF) 농장으로 인정받기도 했고, SPF에 대한 연구를 위해 80년대에 100억원을 투자하는 과단성을 보이기도 했다. 3가지 종자를 교배한 삼원교잡돈을 개발해 균일한 고기 맛을 추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포크에도 명품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신념에서다. 92년에 브랜드 포크(크린포크)를 현대백화점에서 첫선을 보인 이도 바로 그다. 크린포크가 인기를 끌면서 수많은 후발주자들이 따라왔고, 브랜드 포크 경쟁시대가 열렸다. # 석전경우(石田耕牛) 황해도 금천 출신인 이인혁 회장은 ‘부자가 되려면 무조건 한우물을 파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그것도 황해도 사람들을 가리키는 석전경우라는 말처럼, 돌밭을 가는 소처럼 묵묵히 앞으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계속 나아가야 한다는 신조를 갖고 있다. “나에겐 석전경우라는 기질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북 5도 도민 사이에서도 황해도가 가장 악발이라는 말도 있지요. 해서 어떤 사람들은 ‘야, 호남보다 너희가 더 지독하다’는 농담도 하곤 하지요.” 그는 한눈을 팔지 않았다. 이회장의 친구이면서 초창기 멤버 중 한 명인 남기현 전 선진 상무는 몇년 전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 평을 한 적이 있다. “서울공대 친구 5명이 동업으로 선진을 시작했는데, 인혁이는 동업자 중에서 신언서판(身言書判)의 판이 가장 뛰어났던 친구였어.” 그런데 그 ‘판’에 대한 이회장의 설명은 간단하다. 바로 ‘판(判)=외길’이기 때문이다. “돼지를 키우다 보니 사료가 필요하고, 사료를 하다 보면 돼지가 많이 나오니까 식육가공을 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평생 이 길을 걷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눈이 커서 붙여진 딱부리라는 어릴 적 별명보다는, 직원들이 오래 전에 지어준 돼지아빠라는 별명에 더 애착이 간다. 한우물을 판 노력은 차츰 외부에서 더 알아주게 됐다. “세계 시장에서 조금씩 선진이 알려지면서, 84년에 맥도널드가 선진을 찾아와서 햄버거 패티 납품을 타진했고 성사된 겁니다. 우리가 쫓아다니면서 한 게 아닙니다.” 94년 일본 시장에 돼지고기를 수출할 때 국내 최초로 검사면제업체로 지정받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선진은 국내외 시장 양쪽을 파고들고 있다. 선진이 모돈 수에선 1위지만 아직 브랜드 포크 시장의 물량 면에서는 대상·롯데햄에 이어 3위(2004년 크린포크 매출 663억원 예상)에 머물고 있다. 이인혁 회장은 인지도와 시장점유율이 낮다고 보고, 2008년 시장 1위(크린포크 매출 1,600억원 예상)로 도약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선진 매출액도 2004년 2,510억원에서 2008년 6,000억원으로 키울 생각이다. 이회장은 외국으로도 눈을 돌리고 있다. 2004년 베트남 사료공장, 1997년 필리핀 사료공장에 진출한 데 이어 이젠 중국 시장까지 겨냥하고 있다. # 스페셜리스트 그는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 39세에 양돈업에 뛰어든 이후 ㈜선진을 설립하던 45세에 곧바로 회장에 올라 지금까지 현역으로 뛰고 있다. 업계 최고참이고, 회장만 25년을 하고 있다. 요즘엔 “회장을 오래 해서, 회장 다음엔 무슨 직함을 갖고 있어야 하는가 고민할 정도”라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다. 그가 회장에 일찍 오른 이유는 간단하다. 양돈이든 사료든 뭐든 전문 분야는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신조에서다. 공대 출신인 이인혁 회장은 ‘나는 큰 그림만 그리고 전문 분야는 스페셜리스트(사장)에게 맡겨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선진이 초창기 사료사업에서 자리잡은 건 이런 ‘전문가 우대’와 무관치 않다. “사업이 가장 잘된 때요? 바로 사료사업을 시작한 직후 10년간이었습니다. 이원복(창업 5인방 중 한명임) 당시 선진 대표가 전문경영인으로 ‘외인부대’ 출신들 직원들을 책임지고 일했는데, 매출성장률이 매년 연 200∼300%를 기록했으니까요. 업계 신장률 1위였습니다.” 이 같은 전문가 우대 정책 때문에 선진은 업계의 인재 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수많은 선진 출신들이 업계 곳곳에 뿌리를 내렸고, 업계에서 유명한 도드람양돈협동조합의 초기 창립멤버로 선진 출신이 맹활약을 하기도 했었다. ‘이인혁=업계의 대부’ ‘선진=업계 사관학교’라는 업계 등식은 그의 경영스타일에서 비롯된 것이다. # 구두쇠와 자율경영 단단한 회사도 이인혁 회장의 브랜드다. 망하는 한이 있어도 남의 돈은 한푼도 안 쓰는 구두쇠 CEO의 전형이다. “그때 이것저것 정부 정책자금이 많았는데, 나는 그것을 하나도 안 썼어요. 그 돈을 쓰면 정부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을 듣기 싫어 그랬지요. 그래서 매출 2,500억 정도의, 조그만 회사 밖에 안 됐는지도 모르지만….” 선진은 창업 이래 지금까지 부채비율 100% 아랫선을 유지하고 있다. 요즘 부채비율은 75%(2004년 상반기)다. ‘구두쇠경영’은 이회장 성격과 무관치 않다. 회장실이 있는 서울 둔촌동역 바로 옆 3층짜리 사옥도 허름하기만 하다. 이인혁 회장은 10년 전만 해도 한끼당 5,000원 이상의 음식은 가까이 하지 않았다. 지금도 둔촌동역 주변의 볼품없는 아바이순대집을 직원들과 즐겨 찾는다. 주가관리도 철저하게 내실 위주다. 올해 상장한 지 만 10년이 됐지만 주가와 무관하게 묵묵히 갈 길만 갈 뿐이다. 최근 계열사인 엠젠바이오의 무균돼지 연구로 선진이 증권가의 주목을 받았지만, 이회장은 “그런 연구는 이미 20년 전에 선진이 다 했던 것(SPF 연구)”이라며 별일 아니라는 듯 말한다. 말 없이 전진하는 게 주가관리란다. 구두쇠경영과 대비되는 자율경영도 이회장의 특징이다. 이인혁 회장은 79년 사료사업에 진출하면서 선진(先進)이란 회사 이름을 생각해 냈다. 그리곤 선진이란 이름에 걸맞는 경영기법을 구사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예를 들어 요즘 말로 하면 ‘모바일 오피스’(이동 사무실) 같은 것이다. 선진 사료영업부의 영업사원들은 지금도 재택근무를 한다. 회사에 나올 필요가 없다. 80년대 초에 도입된 이 제도는 아직도 시행 중이다. 업계 최초로 인센티브제를 도입한 것도 바로 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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