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포장·모델 모두 노란색을 입혀라”
“약·포장·모델 모두 노란색을 입혀라”
SK제약 트라스트 지난 1996년 2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SK제약이 새로 개발한 신약 홍보를 위해 연 기자회견장에 작은 웅성거림이 일었다. ‘붙이는 관절염 치료제’라는 말에 ‘또 그저 그런 약’일 것이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던 기자들이 신약 개발자이자 미국에서 더 유명한 민동선 박사의 설명을 들은 뒤 태도가 180도 달라졌던 것이다. 그날 저녁 3개 TV방송의 저녁 뉴스에는 민박사의 설명과 ‘패치’(Patch)로 불리는 신약에 대한 기사들이 대대적으로 소개됐다. 다음날 신문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시까지 약은 먹거나 주사를 맞는 정도였지만 SK제약에서 내놓은 ‘트라스트’는 붙이고 있기만 해도 약 성분이 피부를 통해 전달되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세계 최초의 ‘붙이는 관절염 치료 패치’였다. 더구나 인조 피부에 사용하는 폴리우레탄으로 만든 트라스트는 48시간 동안 떨어지지 않는 특징도 있었다. 시장 반응도 좋았다. 두 달 뒤인 4월에 출시된 트라스트는 그해 70억원 가까운 매출을 올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트라스트는 벽에 부딪치기 시작했다. 우선 주 타깃층인 40대 이상 고객들의 인지도가 좀처럼 올라갈 줄을 몰랐다. 발음의 어려움 때문이엇다. TV CF에 나오는 모델조차 ‘트러스트’로 발음할 정도였다. 치료제의 특성상 첫 사용자가 계속 사용자가 되는 상황에서 답답한 노릇이었다. 또 ‘듣도 보도 못한’ 패치라는 개념도 외면당해 결국 광고 마케팅에서 제외됐다. 상황은 점점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그 와중에 나온 아이디어가 ‘노란색’이었다. 약국에서 약을 사러 온 사람들이 머큐로크롬을 살 때 “빨간 약 달라”고 하는 데 착안했던 것. 트라스트는 ‘피록시캄’이라는 주성분 때문에 제품은 노란색이었지만 포장은 푸른색과 녹색을 쓰고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소염진통제는 ‘고통을 시원하게 없애준다’는 의미에서 대부분 녹색 계열을 쓰는데, 트라스트도 그에 따랐던 것이다. “패치고 파스고 간에 소비자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죠. 처음에는 약효와 특징에 초점을 맞췄는데 통하지 않아 인지도를 높이는 쪽으로 바꾼 겁니다. ‘그거 가지고 될까?’하는 의견이 분분했지만 밀어붙였지요.” 당시 기획부장을 맡고 있었던 유병환 상무는 “TV CF에 탤런트 강부자씨를 모델로 세워 ‘노란색을 찾아라’는 캠페인을 펼쳤다”며 “노란 신호등·밤하늘의 보름달 등을 광고에 적극적으로 동원했다”고 말했다. 노랗고 동그란 모형이 등장하지 않으면 모델에게 노란색 옷이라도 입혔다. 국내 제약광고 사상 최초의 컬러마케팅이었고, 승부수였다. 반응은 빨랐다. 그리고 그 반응은 약국에서부터 왔다. “노란 약을 달라”는 소비자들이 늘어났던 것. 그러나 TV를 잘 보지 않는 약사들이 이를 알 리 없어 한동안 웃지 못할 혼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제품만 노란색이었지 포장은 그대로였던 까닭이다. 이런 실랑이가 계속되자 회사 측은 아예 포장까지 노란색으로 바꿔 버렸다. 포장까지 바꾸면서 ‘완전한 노란약’이 된 트라스트는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와 파급력으로 시장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광고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김성우 과장은 “트라스트는 노란약 캠페인으로 한 단계 뛰어올랐다”면서 “경쟁 제품인 케토톱이 7장에 2,500원인 데 비해 트라스트는 3장에 3,500원일 정도로 고가 정책을 쓰고 있지만 40%대의 시장점유율을 빼앗긴 적이 없다”고 말했다. 김과장의 말처럼 트라스트는 지난 2001년 경쟁제품인 케토톱을 누르고 붙이는 관절염 치료제 시장에서 1위가 됐고, 지난해 연간 매출액 300억원을 돌파하면서 회사 내 매출 1위 품목에 올랐다. SK제약은 이에 힘입어 지난해부터는 출시 첫해에 포기했던 ‘패치’ 전략을 다시 쓰고 있다. 김성우 과장은 “특히 스포츠 선수들이 오랫동안 잘 떨어지지 않는 트라스트를 애용하고 있어 ‘달리는 광고판’이 돼주고 있는 게 큰 힘”이라며 “트라스트를 중심으로 패밀리 브랜드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병환 상무는 이에 대해 “느낌이 중요한 시대에 컬러는 (제품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그래서일까? SK제약은 붉은색 로고를 가지고 있는 SK그룹 내에서 붉은색보다 노란색을 더 가치 있게 치는 유일한 회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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