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밥솥 1위 쿠쿠홈시스㈜… “밥상 차리는 주부 마음 아는 게 비결”
전기밥솥 1위 쿠쿠홈시스㈜… “밥상 차리는 주부 마음 아는 게 비결”
눈물로 시작한 ‘홀로서기’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고 말았다. “성광전자의 앞날을 기약하기 힘드니 스스로 팔아보는 게….” 눈물이 다 나왔다. 혹시 이런 날이 있지 않을까 해서 가끔씩 “독자 브랜드로 팔아보겠다”고 했을 때 LG전자는 “그렇게 하려면 납품을 그만두라”고 했다. 그런데 결국 ‘그날’이 오고야 만 것이었다. 밤잠을 못 자는 고민이 시작됐다. LG전자는 그가 납품하는 밥솥 외에도 수많은 제품을 생산·판매하고 있었다. 그가 납품하는 밥솥은 LG전자 매출액의 1%도 안 됐다. 그에게는 밥솥이 ‘전부’였지만 LG전자에게 밥솥은 ‘일부’였다. 그렇게 보면 독립을 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만들 줄만 알았지 팔아본 경험도, 유통망도 없었다. 더구나 ‘LG’라는 브랜드를 달고서도 잘 팔리지 않는 상황이었다. 유일한 위안거리라고는 들어오는 대로 무조건 은행에 쌓아뒀던 돈이 외환위기로 18%의 금리를 적용받게 됐다는 것. 남들이 번 돈으로 땅을 살 때도 한눈 한 번 팔아본 적이 없었던 그에게는 아이러니였다. 마른 수건이라도 짜듯 버티면 3년은 가겠구나 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었다. 괜히 일을 벌이다 직원 퇴직금까지 날리는 일은 없어야 했다. 밥맛으로 일군 ‘대박’ 신화 “그렇게 혼자 고민하고 있는데 어느 날 직원들이 찾아왔어요. ‘월급을 깎을 테니 한번 도전해보자’는 겁니다. 정말 눈물이 핑 돕디다.” 98년 4월의 일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상품이 없었다. 납품용만 생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LG전자에 매달렸다. 가까스로 OK 사인이 떨어지자 구사장을 비롯한 전 사원이 제품을 들고 시장으로 뛰어들었다. 새로운 브랜드는 ‘쿠쿠’. 요리를 뜻하는 ‘쿡’(Cook)과 정확한 시간을 의미하는 ‘뻐꾸기’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그렇게 6년. 요즘 시장에서 쿠쿠 밥솥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독보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 점유율도 50%를 훌쩍 넘었다. 독과점 규정 때문에 스스로 점유율 수치를 조정할 정도다. 점유율만 높은 게 아니다. 가격도 경쟁사들에 비해 20~30% 비싸다. 최근 들어서는 월 150억원쯤 하던 매출이 200억원을 넘어섰다. 매달 매출이 10% 이상 늘고 있어 올해 예상 매출액 1,900억원 달성도 무난할 전망이다. 순이익도 200억원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침체된 경기를 감안하면 대단한 성적이다. 도대체 무엇이 쿠쿠를 이렇게 만든 것일까? 사실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일본에 다녀오는 주부들 치고 ‘코끼리 밥솥’ 하나 들고 오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국내 밥솥은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코끼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대신 그 자리에는 쿠쿠가 있다. 쿠쿠의 저력은 연구·개발(R&D)에서 나온다. 전체 430여 명의 직원 중 50여 명이 연구소 소속일 정도로 쿠쿠는 R&D를 중시한다. 매년 전체 매출액의 7~8%(올해는 150억원가량)를 여기에 쏟아붓는다. 그러다 보니 보유하고 있는 실용신안 특허만 200여 건이 넘는다. 특히 압력에 관한 기술은 세계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달 초에는 밥솥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의 마쓰시타가 이 회사의 압력 기술을 사겠다는 제안을 해 왔을 정도다. 품질을 위해서도 별의별 연구를 다 한다. 108가지나 되는 신제품 테스트 중에는 화가 난 주부가 밥솥을 던지는 것을 감안한 실험도 있다. 연구소가 1년에 쓰는 쌀의 양만 6.5t에 이른다. 조학래 전무는 이에 대해 “밥솥이라는 것이 가장 까다로운 맛을 만드는 상품인 데다 일부분만 만지는 TV·오디오와 달리 24시간 내내 만지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누구나 만들 수 있을 것 같지만 쉬운 게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쿠쿠를 제외하고 ‘마마 밥솥’ 같은 회사는 모두 시장에서 사라졌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납품을 했던 LG전자 또한 지난 9월 말 시장에서 물러났다. 대기업으로는 유일하게 삼성전자만 남아 있지만 쿠쿠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차지고 고소한 밥맛을 가장 좋아합니다. 고소하려면 약간 눌어야 하는데, 이건 또 싫어해요. 더구나 아무리 반찬이 좋아도 밥맛이 안 좋으면 그 밥상은 별로잖아요. LG전자의 산증인인 손진방 LG전자 중국지주회사 사장이 예전에 ‘모든 전자제품을 다 만들어봤는데 하잘것없어 보이는 밥솥 만드는 게 가장 어려웠다’고 하더군요.”(구자신 사장) 그래서일까. 구사장이 경남 양산시 교동에 있는 회사에 출근해서 맨 먼저 하는 일은 인트라넷으로 올라온 결재서류와 고객들로부터 날아온 메일을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결재서류와 시급한 고객의 불만이 동시에 올라오면 어떻게 할까? 그는 “당연히 고객의 소리를 먼저 본다”고 말했다. “눈에 띄는 제목을 보면 겁이 덜컥 나고 아픈 소리를 들으면 저절로 머리를 책상 밑으로 숙여야 할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는 게 그의 솔직한 답변이다. “주부들이 항상 스트레스를 받는 게 뭐겠습니까? ‘오늘 밥상은 어떻게 차려야 할까’ 하는 게 아닐까요? 그런 마음에 만족이 있다면 거짓말이겠죠.” 쿠쿠는 이런 고객들을 위해 중소기업으로서는 드물게 60여개의 A/S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불만이 있을 경우 100% 방문하는 ‘찾아가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민첩함이 생존무기 쿠쿠는 납품업체 시절부터 효율성에 목숨을 걸었다. ‘전산화’라는 말 자체가 연구실 용어 수준일 때 벌써 자재관리 전산화를 시작했고, 92년부터는 결재 단계를 4단계로 줄이면서 전산결재 시대를 열었다. 민첩하지 않고서는 시장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게 구사장의 판단이었다. 고객은 기업을 기다려주지 않지만 기업은 고객을 기다려야 하고 찾아가야 하기 때문이었다.지금도 결재 단계는 담당자-팀장-부문장-사장뿐이다. 권한위임이 많이 이뤄지면서 부문장 전결이 많아 사실상 대부분의 결재는 3단계로 끝난다. 신속한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비결이다. 덕분에 최근 몇 년간 급속하게 조직이 커졌음에도 성장통 같은 부작용이 없다. 구사장은 “목표에 대해 겁부터 먹는 게 아니라 현실성 있는 목표를 세우고 자신감 있게 도전하는 문화 덕분”이라며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 고유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쿠쿠의 외형은 10배 이상 늘었지만 인원은 절반도 늘지 않았다. 짜임새 있는 조직이라는 얘기다. 지난 2002년 회사명을 쿠쿠홈시스㈜로 바꾸고, 종합생활가전을 비전으로 채택했지만 효율성 추구는 바뀌지 않고 있다. 작고 민첩하게 살았던 경험을 살려 몸집이 커져도 민첩하게 생존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밥솥이 아니다” 그렇다고 미래가 보장될까. 더구나 시장은 동지섣달 팥죽 끓듯 수시로 변하고 있는데 말이다. 이에 대해 구사장은 “밥솥이 아니라 만능 조리기구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최근 출시한 전기압력밥솥이 대표적인 예다. 이 밥솥은 기존 밥솥과 다른 게 많다. 세계 최초로 자체 개발한 가변회로 기술을 탑재한 이 밥솥은 우선 16가지 ‘맞춤 입맛’을 자랑한다. 갈수록 까다로워져 가는 입맛을 위해 ‘약간 차지면서 고슬고슬한 밥’을 먹을 수 있게 한 것. 어디 이뿐인가? 현미를 발아시키는 기능은 물론이고 삼계탕·갈비찜·누룽지를 만드는 ‘요리 기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현교 마케팅팀 부장은 “쌀 모양이 찌그러지지 않아 보기에도 좋은 밥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쿠쿠는 이제 세계로 나가고 있다. 지난 2002년 국내 최초로 자체 브랜드를 달아 밥솥 종주국 일본에 수출한 쿠쿠는 여세를 몰아 여타 국가로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밥을 주식으로 하지 않는 러시아인들에게 만능 찜 기능을 강화한 제품을 선보이는 등 수출국은 벌써 23개국에 이른다. 올해 목표인 600만 달러 수출도 벌써 ‘무난한 목표’가 됐다. 구사장은 어떤 회사로 평가받기를 원하느냐는 질문에 “기술의 기업,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주는 기업”이라고 정의했다. 만약 구사장의 말이 현실이 된다면 쿠쿠와 구사장은 누구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흔히 누군가를 비난할 때는 쓰는 ‘밥맛이야’라는 말을 ‘정말로 맛있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바꾸고 있으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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