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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구조 변화 따라 2020년 116조 시장…실버산업은 ‘황금알 낳는 거위’

인구구조 변화 따라 2020년 116조 시장…실버산업은 ‘황금알 낳는 거위’

의예과 위에 치의예과, 치의예과 위에 한의학과….” 공부 좀 한다면 의대에 들어가려고 야단법석인데 어느새 의학계열 학과별 서열이 이렇게 정해졌다. 힘들게 공부해 의대를 나왔다고 해서 아무 전공이나 일등 신랑감이 아니다. 일반외과나 흉부외과는 힘들고 야근이 많다는 이유로 전공의들 스스로 기피 대상 1호였다. 그런데 요즘 벌이가 시원찮아서 찬밥 신세로 밀려난 분야도 있다. 바로 산부인과와 소아과다. 왜 이렇게 변했을까? 평균수명이 길어져 노령인구가 많아지면서 치과나 한의원을 찾는 손님은 꾸준히 늘어나는 데 비해 아이를 덜 낳기 때문에 산부인과나 소아과를 찾는 환자가 줄어서 나타난 현상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요즘 각광 받는 게 통증클리닉이다. 인구구조의 변화를 알고 사업을 해야 실패를 줄일 수 있다. 장래 유망직업을 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인구구조를 파악하는 것은 기본이요, 적어도 몇 년 뒤에 어떨지를 아는 게 필요하다.

비상 걸린 결혼산업 우리나라 인구구조의 특징은 ‘지나치게 낮은 출산율 속 너무 빠른 고령화’로 요약된다. 여성의 출산율은 2003년에 1.19명으로 이미 세계 최저 수준이다. 결혼을 하지 않거나 늦게 하는 데다 아이를 낳지 않으려 들기 때문이다. 그 결과 1970년 100만7000명이었던 신생아는 2003년 49만3000명으로 급감했다. 아이를 두어도 ‘하나만 낳아 최고로 키우자’는 생각이 강하다. 그 결과 유아명품(名品)시장에다 웰빙 아동용품 시장이 형성됐다. 혼자 사는 ‘싱글(Single)족’에 자녀를 두지 않은 ‘딩크(Double Income, No Kids:DINK)족’도 등장했다. 아이를 키우는 즐거움을 애완동물이 대신해줄 것으로 믿는 ‘딩크펫(DINK+pet)족’ 덕분에 애완용품이 잘 팔리고 서울 강남 일대 동물병원은 야간에 응급실을 가동한다. 뒤늦은 출산장려 정책에 힘입어 출산율이 조금 높아져도 신생아 수는 늘어나기 어려운 구조다. 기본적으로 아이를 낳을 여성이 적기 때문이다. 신생아의 80% 정도는 25∼34세 여성이 낳는다. 그런데 2003년 40만명이었던 이 연령대의 여성은 2010년 37만명, 2020년 30만명, 2040년 20만명으로 줄어들 판이다. 이런 추세에 맞춰 80년만 해도 40만3000건이었던 혼인 건수가 97년 이후 내리 줄어 2002년부터 30만건에 턱걸이하는 수준이다. 이렇게 아이를 낳을 여성이 적은 데다 결혼도 덜 하니 신생아는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다. 2015년까지 40만명을 지키다가 2016년부터 30만명대에 진입하며, 급기야 2034년에는 30만명 선마저 깨질 판이다. 신생아 감소는 여러 분야에 영향을 미친다. 국가적으로 군 입대 병력이 줄어드는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대학정원을 줄이는 등 구조조정도 시급하다. 어디 대학뿐인가. 미취학 아동이 주 고객인 유치원과 미술·피아노 학원도 변신을 꾀해야 한다. 더 큰 도시로, 아이를 낳아 기를 연령층인 30대가 많이 사는 아파트단지로 몰려가야 현상 유지가 가능할 것이다. 장차 성인 대상 프로그램 개발에도 신경 쓸 필요가 있다. 초등학교에 다닐 6∼11세 인구는 올해 402만명에서 2010년 326만명, 2050년에는 155만명으로 급감한다. 대학에 들어갈 나이인 18세 인구는 올해 60만9000명에서 전후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가 많은 탓에 2008∼2012년 67만∼68만명 수준으로 늘었다가 2013년부터 급격하게 줄어 2020년에 49만명, 2050년에는 올해 대학정원의 절반 수준인 31만명에 그친다. 갈수록 결혼을 늦게 하는 데다 혼인 건수가 줄어드니 결혼 관련 산업도 전망이 썩 밝지 않다. 예식장이나 결혼정보회사 등은 남다른 서비스로 차별화하거나 부대사업을 늘리는 전략이 필요하다. 사회가 늙어가면서 사망자가 늘어난다. 2003년 24만6000명이었던 사망자는 2012년 30만명을 넘어서고, 2023년에는 40만명에 이른다. 2040년에 62만여명, 2050년에는 73만여명에 이를 텐데 베이비붐 세대가 수명을 다하고 세상을 뜰 시기라서 그렇다. 큰 병원들이 편안한 죽음을 위해 임종실을 마련하는가 하면 장례대행업이 번창할 것이다. 남성의 평균수명은 71년만 해도 58.9세였고, 61세를 넘어선 게 79년이다. 80년대까지 회갑연을 성대하게 치른 배경에는 바로 이런 통계가 있다. 남성의 올해 평균수명은 74.8세. 어느 새 우리는 회갑보다 고희를 값지게 여긴다. 남성보다 6∼7년 더 사는 여성의 평균수명은 81년에 칠순을 넘었으며, 2002년에 팔순도 돌파했다. 인구증가율이 높던 시절 키즈(Kids)산업은 더할 나위 없는 성장산업이었다. 이들이 커서 고교와 대학에 들어가면서 교육산업도 불황을 몰랐다. 고령화 초입 단계인 지금은 4050세대를 겨냥한 ‘시니어 시장(Senior Market)’이 뜨고 있다. ‘50+’ 세대의 해외여행이 늘어나고, 대학가요제 출신 가수 노래에 열광하는 7080 콘서트는 2004년 문화계를 장식한 하나의 코드였다.

2008년이 고령친화산업 원년 고령화가 시한폭탄만은 아니다. 새로운 수요와 시장을 창출하는 기회도 제공한다. 선진국에서도 고령자 비중이 10%를 넘어서고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에 이르면서 실버산업 수요가 급증했다. 우리나라가 이 두 조건을 충족시키는 시점은 2008년. 그래서 대통령자문 고령화 및 미래사회위원회는 2008년을 ‘고령친화산업 개화 원년’으로 보고 정책을 펴기로 했다. 이 무렵 65세 이상 고령자가 10명 중 한명꼴이고, 국민연금·공무원연금 등 공적연금을 받는 계층이 400만명을 넘어선다. 어느 정도 경제력을 갖춘 ‘신(新)노인층’이 등장한다는 얘기다. 특히 6·25전쟁 직후인 1953∼65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기 시작하는 2010년을 기점으로 고령친화산업이 급팽창하리란 전망이다. 어느새 50대에 접어든 이들은 50년 동안 총인구 중 차지하는 비중이 줄곧 증가하는 유일한 연령대다. 그 숫자 또한 약 1000만명으로 어느 연령대보다 많다. 자동차와 주택, 영화산업의 성장을 이끈 세대로 우골탑(牛骨塔)으로 상징되는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많다. 인터넷과 휴대전화 등 정보통신기기를 다루고 홈쇼핑도 할 줄 안다. 핵가족과 개인주의 등 가족에 대한 관념을 바꾼 세대로 여간해서 자식에게 얹혀 살지 않고 선을 그으려 든다. 보건사회연구원은 2002년에 6조4000억원이었던 국내 실버산업 규모가 베이비붐 세대가 고령 대열에 합류하는 2010년에 31조원, 2020년에는 116조원으로 커질 것으로 내다본다. 건강하고 교육 받은 노인이 늘어나면서 여가와 인터넷, 휴대전화 서비스에 관심이 많은 ‘인터넷 그레이(Internet Gray)’란 말도 생겨났다. 바로 이들을 겨냥한 레저휴양 단지가 각광받을 수 있다. 돈 많은 노인도 늘고 있다. 이들을 겨냥한 금융상품 개발은 필수다. 노인들은 집을 담보로 매달 생활비를 대출받아 쓰다가 사망하면 소유권을 금융회사에 넘기는 역모기지론을 찾을 것이다. 금융회사들은 여유 있는 노인의 자산을 관리해주는 직원을 더 많이 두고, 노인의 질병과 건강 관리에 맞춘 민간 건강보험도 등장할 것이다. 일본의 경우 개인의 금융자산 1200조엔 가운데 70%를 65세 이상 노인이 갖고 있다. 고령자를 돕는 요양도 ‘산업’이다. 집으로 찾아가 간호하는 민간기업이나 간병·수발업체가 등장함에 따라 노인전문간호사, 간병·수발 전문인력이 필요해진다. 집에 머물면서 건강진단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 휴대형 다기능 건강정보 시스템, 전동식 침대 등 노인을 위한 기기산업이 번창할 것이다. 첨단 정보기술(IT) 제품이라고 해서 젊은이들만의 점유물은 아니다. 이미 번호판이 크고 기능이 단순하며 가격이 9만원대로 싼 휴대전화가 나와 노인층에게 인기다. ‘실버 비즈니스’도 되겠지만 성장 잠재력을 보면 ‘노화방지 비즈니스’가 더 매력적이다. 이미 주름살을 감춰주는 보톡스 주사가 인기인데 노화방지 신약이 나온다면 대박이 틀림없다. 노인성 질환 예방 기능을 갖춘 식품이나 근육강화 효과가 있는 기능성 의류, 질병을 조기 진단하고 예방하기 위한 맞춤형 건강관리 시스템이 속속 등장할 것이다. 미국의 노화방지 비즈니스 시장 규모는 2003년에 430억달러로 추정된다.

외국인 이민도 받아들여야 나이 든 ‘노(老)동력’을 활용하고 노인을 고객으로 삼아 이들이 필요로 하는 농산품을 생산·가공·유통시키는 복합산업도 고려할 만하다. 고령자를 위한 전원형 농촌 테마타운이나 도시형 실버농업 테마타운, 은퇴농장, 귀농교육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아이를 낳으려 들지 않는 가운데 고령화가 빨리 진행되니 총인구는 당초 예상보다 3년 빠른 2020년에 5000만명에도 못 미치는 4995만6000명을 정점으로 줄어들 판이다. 더구나 이때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14%를 넘어선 ‘고령사회’에 진입(2018년)한 뒤라서 일할 사람 구하기는 더 힘들어진다. 그러다가 2050년에 가면 총인구가 지금(4829만명)보다 600만명 정도 적은 4235만명에 그친다. 15∼64세의 생산가능인구는 2016년을 고비로 감소하기 시작한다. 올해 3467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71.8%인 비중이 2050년에는 53.7%로 뚝 떨어진다. 특히 한창 일할 나이인 25∼49세 연령층은 올해 2066만명에서 2010년 2043만명, 2050년에는 올해의 절반인 1029만명으로 줄어든다. 인구구조의 변화는 기업의 인사 관행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금은 오륙도(56세까지 일하면 도둑)와 사오정(45세가 정년)이 유행이지만, 청장년층을 확보하기 힘들어지면 퇴직제도가 바뀔 수밖에 없다. 선진국처럼 일자리 나누기(Job Sharing), 집중근무, 시간제 근무, 재택근무 등 근무시간과 장소·임금을 조정하는 유연한 업무 체제로 가다가 임금피크제 등 ‘단계적 퇴직’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민을 허용하는 문제도 논란거리로 등장할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는 불법체류자까지 5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독일은 지난해 8월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이는 새 이민법을 통과시켰다. 우리와 처지가 비슷한 일본은 고민 중이다. 국내에서도 합법적인 이민알선업자가 활동하는 시기가 올 것이다. 우리나라 인구구조는 일본과 20년의 시차를 두고 진행된다. 고령화를 먼저 겪었고 90년부터 ‘골드플랜’이란 노인복지 및 실버산업 육성 정책을 실행한 일본이 세계 실버용품 시장의 90%를 차지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제 겨우 로드맵을 그리는 단계다. 민관(民官)이 함께 적극 나서지 않으면 실버용품 시장에서도 대일(對日) 무역적자가 커질 것이다. ‘실버를 골드로’ 만들 수 있느냐는 우리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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