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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사태로 본 명의신탁 백태… “수도권 농지 절반은 명의신탁”

이헌재 사태로 본 명의신탁 백태… “수도권 농지 절반은 명의신탁”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3월 3일 명의신탁 등 부동산 투기 의혹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부동산에 밝은 K씨(54)는 지난해 충남 서산지구에 농지를 샀다. 주소지가 서울로 돼 있는 K씨는 농지를 취득할 수 없어 서산에 사는 중학교 교장 출신의 사촌 형 명의로 3억원가량의 농지를 매입했다. 문제는 이후에 일어났다. K씨가 산 땅이 개발지구에 수용되면서 땅값이 32억원으로 뛰어 버린 것. K씨의 사촌형은 마음이 바뀌었다. 땅을 판 K씨의 사촌 형은 K씨에게 3억원과 약간의 이자만 얹어서 줬다. “땅을 사기 위해 돈을 빌렸다”고 주장한 것. K씨와 사촌 형 간에 차용증이 없었고, K씨가 온라인 송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또 부동산 계약 당시에도 K씨가 중개인과 단둘이 마주 앉은 것 등 정황을 보면 분명 실소유주는 K씨로 볼 수 있다. 하지만 K씨는 3억원과 약간의 이자를 받고 형과 의절할 수밖에 없었다. 현행법(부동산실명제법)상 명의신탁은 불법이기 때문에 명의신탁자가 실제 소유주가 아니라는 증거를 제출해도 법적으로는 명의자를 실소유자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사표를 내게 된 원인이 됐던 부동산 명의신탁과 위장전입은 위에서 보듯 일반인에게도 흔한 일이다. 그렇다면 과연 부동산 명의신탁은 어느 정도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을까? 시중은행의 한 재테크팀장은 “은행 PB센터에 오는 사람들 중 10억원 이상의 금융 자산가들은 대부분 명의신탁된 부동산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실제로 재산이 수십억원 넘는 고객을 수십 명 확보하고 있는 한 PB는 “서울 근교 농지의 절반 이상은 명의신탁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명의신탁은 사실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최근 판교 청약을 앞두고 청약통장의 불법거래가 기승을 부려 국세청에서 “청약통장 불법 거래 단속에 나서겠다”고 발표했었다. 청약통장 불법거래도 일종의 명의신탁이다. 이 통장을 사면 실제 명의자는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자신의 명의로 청약을 해 당첨될 경우 실소유자에게 권리를 넘긴다. 또 다른 경우는 수도권에 있는 재건축·재개발 아파트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개발 시 상대적으로 시세차익이 많은 재건축·재개발 지역에서 조합원 명의를 사는 것도 일종의 명의신탁이다. 뭐니뭐니 해도 명의신탁이 가장 많이 이뤄지는 상품은 토지다. 특히 서울 근교의 준농림지나 농지 등은 전체 물량의 절반 이상이 명의신탁된 것이라고 봐도 된다. 실제 소유주와 명의상 소유주가 다르다는 얘기다. 명의신탁의 원리는 간단하다. 실소유주인 A씨가 자신의 땅을 B씨에게 파는 것처럼 해 B씨 명의로 해놓는다. 물론 B씨가 땅을 구입한 자금은 A에게서 나온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명의신탁을 해 놓을 경우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명의자가 신탁받은 부동산을 자신의 소유처럼 팔거나 근저당을 설정해 돈을 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자신의 재산을 날릴 수 있다. 부동산 전문가와 세무 전문가들은 “실소유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방법은 여전히 친인척에게 명의를 신탁하는 것”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우리 사회에서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은 핏줄이기 때문. 특히 평소에 자신에게 신세를 지는 친인척의 경우 ‘배신’할 가능성이 줄어든다. 그렇더라도 대부분 ‘신탁수수료’는 준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거래규모가 10억원일 경우 3000만원 정도가 일반적인 관행이라고 한다. 3% 정도가 신탁 수수료인 셈. 또 다른 방법은 근저당을 설정하는 것. 대부분의 명의신탁자들은 돈이 없기 때문에 명의신탁을 위해 부동산을 살 경우 돈을 빌려야 되고 이 과정에서 실소유주가 돈을 빌려 주든지, 아니면 자신이 거래하는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알선해 주면서 담보를 설정해 명의신탁자가 마음대로 팔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명의는 신탁자가 가지고 있지만 사실상 모든 권리는 돈을 빌려준 실소유주나 은행이 행사할 수 있어 ‘불의의 사고’를 막을 수 있다. 이런 형식은 기업에서도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다. 회사 소유의 부동산을 명의신탁할 경우 직원에게 회사가 대출해 주고 다시 근저당을 설정하면 사실상 모든 권리는 회사에 넘어온다. 이렇게 되면 자금 출처도 명확해지고, 회사는 비업무용 부동산을 소유할 필요가 없다. 이런 과정을 몇 번 거치면서 사장은 비싼 돈을 주고 산 회사 부동산을 싸게 자신의 명의로 바꿀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아파트나 토지 등의 등기부 등본에 담보가치의 90% 이상으로 담보가 설정돼 있는 경우는 사업해서 망한 경우가 아니면 거의 명의신탁으로 볼 수 있다고 한 세무 전문가는 귀띔했다. 이렇게 명의신탁 거래를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다운계약서(매매금액을 낮춰 쓰는 계약서)’가 등장하게 된다. 이유는 우선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한 것이고, 결과적으로 자신이 부담해야할 대출이자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명의신탁에서 소유주와 명의신탁자는 대부분 특수 관계다. 신탁자는 실소유자와 오랜 주종관계에 있는 경우가 많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명의신탁의 경우 운전기사·직원·비서·가정부 등 실소유자와 상하관계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1996년 부동산 실명제법이 실시된 후 명의신탁 사고가 많아지자 친인척에게 명의신탁을 하는 경우에도 선호하는 직업군이 뚜렷이 갈라지고 있다. 한 PB에 따르면 명의신탁 대상자로 인기있는 직업은 공무원, 대기업 직원, 은행원, 농민, 정년 퇴직자 등 리스크가 없는 사람들이 주를 이룬다고 했다. 반면 사업가, 증권사 직원, 자영업자 등은 명의신탁을 꺼린다. 이들은 자신의 사업이 실패할 경우 제3자로부터 차압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편법 증여에도 명의신탁이 이용된다. 땅이 많은 A씨가 미성년 아들에게 땅을 줄 경우 소득이 없기 때문에 증여세를 내야 한다. 이럴 경우 A씨는 B씨에게 명의신탁을 하고, 연이어 B씨와 미성년 아들 사이에 부동산 매매계약서를 체결하게 한다. 등기를 넘겨받지 않는 한 명의자는 B씨로 돼 있기 때문에 미성년 아들은 아무런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후 매매계약서에 의해 명의를 넘겨받게 되면 A씨의 아들은 증여세에 비해 훨씬 적은 취득세만 내면 된다. 증여는 15년이 지나면 조사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한 대기업 사주는 자기 공장을 지을 터에 땅 일부분을 사두고(일명 ‘알박기’) 명의신탁한 후 토지 수용 을 위해 과도한 비용을 치러 자신의 비자금으로 사용했다는 얘기도 있다. 그럼 명의신탁은 세무당국에서 찾아낼 수 없을까? 전직 국세청 인사는 “찾아내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했다. 우선은 재산세·종토세를 누가 냈는지 알아보면 된다. 명의신탁이란 편법을 쓰지만 의외로 80% 이상은 실소유주가 직접 세금을 낸다. 명의신탁자들이 고지서를 실소유주에게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이 인사는 “실소유주의 경우 대부분 명의신탁한 부동산이 한두 건이 아니어서 자신이 직접 확인하고 납부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직접 세금을 내지 않더라도 세금액을 최소한 온라인으로 신탁자에게 부쳐준다. 이 밖에 대출 과정에서 보증인이나 대출금의 이자 납부자에 의외로 실소유주가 올라있는 경우도 있다. “찾으려고 마음먹으면 찾을 수 있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명의신탁 거래를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다운계약서’가 등장한다. 일단 세금을 줄일 수 있고, 매매 비용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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