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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 게이트를 계기로 본 ‘동방의 쿠웨이트’ 사할린ㅣ ‘검은노다지’ 사할린 경제학

오일 게이트를 계기로 본 ‘동방의 쿠웨이트’ 사할린ㅣ ‘검은노다지’ 사할린 경제학

확률 3%의 투자 게임.” 한국석유공사 해외조사팀 관계자는 “기술이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현재까지 경제적으로 타당성 있는 에너지 개발 사업의 성공 확률은 3% 수준”이라고 말했다. 100년 이상 노하우를 축적한 석유 메이저들도 성공 확률이 5%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탐사 시추공을 뚫었을 때 원유든 천연가스든 천연자원이 나올 가능성은 30% 정도다. 그러나 여기서 ‘경제적으로 개발 타당성 있는’ 원유 매장량을 보유한 곳은 다시 3∼5%로 줄어든다. 그래서 지난해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동해 가스전 개발은 우리나라 에너지 개발사의 ‘개가’로 인식된다. 시추공을 뚫은 세 곳 가운데 두 군데에서 상업성이 있는 가스전 개발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원망의 땅? 의혹의 섬? 기회의 땅? 그러나 이 ‘3% 검은 황금의 꿈’ 때문에 생기는 웃지 못할 일이 비일비재하다. 최근 문제가 불거진 철도공사(옛 철도청)의 러시아 유전 개발 의혹 사건, 이른바 ‘오일 게이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이번 오일 게이트에 연루된 ‘쿡에너지’처럼 이름도 생소한 회사들이 한 달에 두세 곳씩 사업 제안서를 가져온다”며 “대부분 사업성이 의심되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결국 투자 실패로 끝난 사할린 6광구는 어떨까. 전문지식이 없는 국가기관인 철도공사가 로비에 휘둘려 돈을 날린 것일까? 아니면 국내 석유 소비량 3위 업체인 철도공사가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 벌인 야심 찬 에너지 프로젝트였을까? 사할린 6광구의 정식 명칭은 ‘사할린 프로젝트 6’이다. ‘사할린 프로젝트’는 러시아 정부 차원에서 주도하는 에너지 개발 사업이다. 모두 9개 프로젝트로 진행되는데, 20여 광구에서 유전·가스전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프로젝트 1∼5는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들과 일본·서방 기업들이 개발 혹은 탐사에 나서고 있으며 프로젝트 7∼9는 러시아 정부에서 아직 뚜렷한 개발 정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문제가 된 ‘프로젝트 6’은 러시아 국영 로스네프트와 페트로사하가 50 대 50 지분으로 합작한 ‘DMNG’라는 회사가 개발 주체다. 프로젝트 6의 탐사권을 보유하고 있는 페트로사하는 러시아 6대 재벌인 알파 그룹의 석유개발 자회사다. 철도공사는 지난해 9월 페트로사하와 기업 인수합병(M&A) 계약에 합의했다. 페트로사하를 6200만 달러를 주고 인수하려 한 것이었다. 여기서 계약금이 620만 달러였고, 철도공사가 이 돈을 떼인 것이다. ‘프로젝트 6’은 사할린 섬 중부지역 태평양 연안 쪽이다. <그림 참조> 석유 매장량이 21억9900만 배럴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지만 구체적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다. 이 프로젝트는 석유공사가 세 차례 검토 끝에 타당성이 없다고 판단해 포기한 사업이다. SK㈜ 등도 사업 제안을 받았으나 초기 검토 단계에서 인수를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SK㈜ 관계자는 “해외 자산 인수 경험이 없고, 러시아의 석유개발 관련 법제도가 외국 업체에 불리하다는 이유에서 인수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사업을 주도한 쿡에너지 측은 “세계 최대 석유탐사 회사인 슐럼버거의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경제성이 검증됐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페트로사하의 파트너였던 로스네프트는 상업성이 낮다고 판단해 사업 철수 계획을 밝힌 상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할린 유전 개발 투자에 대한 의혹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70여 년 전 일제 때 징용으로 끌려가 탄광에서 갖은 고생을 한 기억 때문에 ‘원망의 땅’으로 기억되는 사할린이 졸지에 ‘의혹의 섬’이 돼 버린 것이다.

“사할린은 동방의 쿠웨이트” 하지만 ‘사할린 문제’는 찬찬히 뜯어볼 필요가 있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사할린에 대해 “가능성과 잠재력의 땅”이라고 입을 모은다. 면적 7만6400㎢로, 남한(9만9373㎢)의 85%가량 되는 이 섬은 에너지의 보고(寶庫)로 불린다. 석유공사에 따르면 현재까지 확인된 사할린 지역의 석유 매장량은 1억552만t(약 11억 배럴) 규모다. 그러나 탐사율이 9.9%에 불과해 잠재력은 이보다 훨씬 크다. 러시아에서는 이 일대 석유 매장량이 20억t(약 150억 배럴)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추정 수치이기는 하지만 매장량으로 따지면 캐나다·미국 등과 맞먹는 수준으로, 섬 하나가 전 세계 20위권 산유국에 해당한다. 우리나라 연간 석유 도입량이 8억 배럴 규모인 것에 비추어 보면 그 가치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석유공사 이준범(국제정치경제학 박사) 해외조사팀장은 “사할린은 ‘동방의 쿠웨이트’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사할린은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도 전략적 가치가 있다. 2003년 말 현재 우리나라는 중동에서 들여오는 원유 의존도가 77.5%에 이른다. 만약 중동에서 돌발 사태가 생겼을 경우 에너지 수급 구조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석유공사 강용우 러시아전담반장 "에너지 수입의 중동 의존도를 완화하기 위해 대체 공급원 개발이 절실한데 그 대안이 러시아, 특히 사할린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짧은 운송 기간도 장점이다. 중동에서 울산까지 원유를 들여오는 데는 보통 보름이 걸리지만 사할린을 포함한 극동 지역에서는 이틀 정도면 충분하다. 정치적 리스크가 크겠지만 북한을 경유하는 송유관을 건설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사할린 프로젝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 지역에 들어가 있는 기업들의 면면을 보면 된다. 일본은 사할린을 포함해 동시베리아 지역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이토추상사·마루베니 등이 출자한 사할린석유개발회사(SODECO), 미쓰이·미쓰비시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 BP·로열더치셸·엑손모빌·텍사코 등도 30억∼50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석유공사 러시아전담반 관계자는 “전 세계 1만여 석유회사 가운데 톱10이 사할린에 포진해 있다”고 말했다. 사할린이 기술력이나 자본 규모에서 검증받은 메이저 플레이어들의 각축장이라는 의미다. 여기에 비하면 철도공사가 투자하기로 한 6200만 달러는 ‘코끼리 비스킷’에 불과하다. 일부에서는 사할린에 대해 개발 매력이 떨어진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먹을 것이 많은’ 것은 분명하지만 문제점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우선 사할린은 기후 조건 때문에 연중 6개월밖에 조업할 수 없다. 6개월 일해 1년 먹고 살 원유를 뽑아야 한다. 송유관 건설이 안 돼 있어 수송 수단도 마땅치 않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보통 시추공 한 개를 뚫는 데 1000만 달러가 든다. 그런데 수심이 100∼200m인 사할린에서는 그 열 배인 1억 달러가 들어간다”며 “광구 한 곳을 개발하는 데 투자 금액이 150억 달러가 넘어 채산성을 맞추기 힘들다”고 말했다. 사할린 유전이 너무 장밋빛으로 포장됐다는 지적도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일본의 사례를 보라”고 주문했다. SODECO·미쓰비시 등 일본계 업체들이 투자하고 있는 지역이 ‘프로젝트 1~2’에 집중돼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은 1920년대부터 이곳 일대를 탐사해왔다. 그런데 막상 투자는 일부 지역에 국한돼 있다”며 사할린 유전이 사업성이 낮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걸림돌은 또 있다. 러시아 정부의 세제 정책이다. 1970년대 사할린이 처음 개방될 때 다국적 기업에 비해 해양 유전 개발 기술이 떨어졌던 러시아는 이들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에너지 개발을 허용했다. 당시 러시아 정부는 외국 기업이 원유를 발견하면 투자 비용을 먼저 회수하고 나머지 물량에서 정부와 기업이 자원을 분배하는 이른바 ‘생산물 분배 계획’에 의한 세제 정책을 썼다.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러시아 정부는 현재 나머지 프로젝트에 대해 뚜렷한 방침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런 ‘제약 사항’에도 불구하고 사할린은 경제적·전략적 가치가 높게 평가받는다. 문영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인프라나 기후 조건 등이 불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상당히 유망한 지역”이라며 “이제라도 국가적인 차원에서 투자 분석에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로드맵 없는 에너지 정책 이런 상태에서 ‘오일 게이트’가 터진 것이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는 “‘로드맵 없는 에너지 정책’이 불러온 필연적인 결과”라고 말했다. 이 애널리스트는 “한 나라의 에너지 정책은 정부가 주도해 주도면밀하게 접근해야 마땅한데 ‘돌팔매질 한 번으로 독수리를 잡겠다’는 심산으로 도박성 사업에 비전문가, 정부 관계자 등이 끼었다”며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무엇보다 러시아와의 신뢰 관계에 금이 간 것은 두고두고 후회할 실책이다. 러시아는 한·미·중·일 등 동북아 이해 관계자 4개국 가운데 유일한 에너지 강국이다. 러시아의 원유 매장량은 691억 배럴로 전 세계 7위다. <도표 참조> 러시아 정부는 원유 매장량을 국가 1급 비밀로 취급해 극도의 보안을 유지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실제 매장량 1800억 배럴로 사우디아라비아(2627억 배럴)에 이어 세계 2위 규모로 평가하고 있다. 러시아는 또 1659조㎥의 천연가스가 매장된 세계 1위의 가스 수출국이기도 하다. 이런 ‘에너지 강국’과 우리나라의 인연은 별로 끈끈하지 못했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사할린을 포함해 러시아는 전략적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10여년 동안 유가가 배럴당 10∼20달러대로 안정돼 있었기 때문에 개발 비용이 많이 드는 사할린 지역이 순위에서 밀렸다는 설명이다. 다만 1990년대 이후 러시아 자원 개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석유공사가 투자한 서캄차카 반도 대륙붕 광구 개발, 가스공사가 주도하는 동시베리아 이르쿠츠크 가스전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석유공사는 지난해 10월 인원 8명의 러시아전담반을 새로 만들었다. 이제 막 러시아 에너지 개발의 첫발을 떼는 단계에서 오일 게이트가 불거졌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국운을 걸고 해야 할 일을 아마추어들이 나서는 바람에 숟가락도 얹기 전에 재만 뿌린 격”이라며 말이 많다. 이장훈 애널리스트는 “앞으로 러시아에서 한국과 한국 기업에 대한 신용을 회복하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을 치러야 할 것”이라며 “오일 게이트가 국가적 에너지 정책 어젠다를 제시하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시간이다. 이렇게 국내적으로 혼란 비용을 치르는 사이 우리나라가 ‘에너지 전쟁’에서 디딜 땅은 더 좁아지고 있다. 그래서 “한국은 과거사만 캤지 미래를 위한 전략을 찾아볼 수 없다”는 한 에너지 전문가의 비판이 더 씁쓸하게 들린다.
우리나라의 해외 유전 개발은…

대부분 지분투자… 투자 회수율 80%대
“45억 달러를 투자해 37억 달러를 회수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우리나라가 거둔 해외 자원 개발 성적표다(2003년 말 기준). 백분율로 환산하면 82점 정도를 받을 수 있다. 투자 회수율이 80%대라고 해서 무작정 ‘실력 없음’이라고 단정 지을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유전에서 생산이 진행 중이어서 회수율은 더 높아진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100년 노하우가 있다는 메이저 석유업체들이 경제적 가치가 있는 원유 개발에 성공하는 비율도 5%에 미치지 못한다”고 말한다. 석유 개발이라는 게 그만큼 고비용에 고위험 구조라는 얘기다. ‘석유 문외한’인 철도공사(옛 철도청)가 얼마나 무리한 프로젝트를 진행시켰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일단 경제적으로 개발 타당성이 검증됐다고 하면 ‘노다지’라고 봐도 될 듯하다. 유전사업의 영업이익률은 80%가량 된다. 우리나라에서 해외 자원 개발이 본격화된 것은 한국석유개발공사(현 석유공사)가 설립된 1979년이다. 오일쇼크에 자극받은 정부는 석유공사를 설립해 1984년부터 본격적으로 해외 석유 개발에 나서게 된다. 본격적인 의미에서 국내 첫 해외 유전 개발 사례로 기록된 예멘 마리브 광구에는 석유공사를 비롯해 SK㈜·현대·삼환 등이 투자했다. 지금도 원유 생산이 진행 중인 마리브 광구는 7억6000만 달러를 투자해 16억9000만 달러의 수익을 거두고 있다. 이후 우리나라는 인도네시아 서마두라, 이집트 자파라나, 오만 부카 등에 의욕적으로 투자했으나 그다지 좋은 결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면서 민간 기업들의 지분 투자가 뜸해졌다. 석유공사가 본격적인 ‘검은 황금 찾기’에 나선 것은 1994년 이후부터. 석유공사는 2004년 12월 말 현재 12개국에서 19개 사업을 벌이고 있다. 특히 2003년 10월 원유 생산을 개시한 베트남 15-1광구는 탐사 단계에서부터 우리나라 기술진이 주도해 최초로 상업적 발견에 성공한 광구로 꼽힌다. 15-1광구의 원유 생산량은 하루 8만 배럴 규모로 베트남 전체 생산량의 약 20%를 차지한다. 탐사-개발-생산에 이르는 온전한 석유 개발을 수행할 수 있는 기업은 국내에 석유공사밖에 없다. SK㈜·GS칼텍스 등은 석유공사 혹은 외국계 업체의 컨소시엄에 지분을 투자하는 형태로 유전 개발에 나서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석유공사의 ‘우산’에서 벗어나고 있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초기 리스크 관리만 잘하면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분석에서다. 한편 산업자원부는 지난해 12월 “2008년까지 연간 8560만 배럴의 석유를 우리 손으로 개발해 원유 자주 개발률을 10%까지 늘리겠다”는 내용의 ‘제2차 해외 자원 개발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민간기업의 투자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어 현 추세대로라면 정부의 목표 달성이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현재 우리나라의 석유 자급률은 3.5%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2004년 기준으로 연간 8억259만 배럴을 쓰는 세계 7위의 석유 소비 대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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