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대 주주가 세졌다
2대 주주가 세졌다
지난 3월 SK(주)와 주주총회 막판까지 신경전을 펼치며 최태원 회장의 퇴진을 요구했던 소버린자산운용, 현대캐피탈 지분을 사들이며 국내 금융권 진출을 선언한 세계 최대 소비자금융 회사인 GE캐피탈, 최근 진로 인수전에서 하이트맥주 컨소시엄에 참가했던 교직원공제회와 군인공제회.
모두가 재계의 ‘뉴스메이커’라는 사실 외에도 또 다른 공통분모가 있다. 바로 2대 주주라는 점이다.
이들은 예전 2대 주주와는 확연히 다르다. 과거에는 투자 수익률에만 초점을 맞췄던 단순 기관투자가들이 대부분이었다. 투자한 기업에서도 소액 주주보다도 더 대접을 받지 못했다. 시쳇말로 ‘호구’였다.
소액주주들의 입장은 참여연대 등과 같은 시민단체들이 대변한다지만, 2대 주주는 연금 ·국책은행 등 대부분 주가 추이에만 매달리며 ‘복지부동’하는 기관투자가였다. 국내 한 증권사 임원은 “국내 재계나 금융권에 2대 주주라는 존재 자체가 있었느냐”고 반문하며 “능동적인 2대 주주가 국내에 등장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례 1 파란 눈의 2인자
국내에 2대 주주들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외환위기 이후 외국계 사모펀드들이 몰려오면서였다. 이들은 대부분 ‘쓰러져가는’기업의 2대 주주로 들어가 기업 구조조정과 매각에 실질적으로 참여하면서 ‘눈부신’수익률을 올렸다. 정부에 이어 제일은행의 2대 주주였던 뉴브리지캐피탈은 은행의 구조조정과 매각을 진행하며 단단히 한몫을 챙긴 대표적인 사례.
최근 영국계 금융기관인 스탠더드차터드은행(SCB)에 제일은행을 매각하면서 1조1,500억원에 달하는 차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환위기 당시 투자한 5,000억원에 비하면 2배가 넘는 금액이다. 뉴브리지캐피탈코리아 측은 “뉴브리지는 자금이 필요한 회사를 지원하고 경영에 관여해 기업가치를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한미은행을 씨티은행에 매각한 SCB도 마찬가지다.
SK(주)의 2대 주주로 화려하게 등장했던 소버린자산운용은 최근 LG전자와 (주)LG의 2대 주주로 등장해 또 한 번 화제를 모았다. 소버린은 재계에 외국인 2대 주주에 대한 경각심을 몰고 온 케이스. 국내 한 인수 ·합병(M&A) 전문가는 “소버린의 구체적인 경영권 간섭 의사는 오너들에게 필요 이상의 긴장감을 심어줬다”며 “과도한 긴장 조성으로 기업들이 지분 늘리기 경쟁이라도 하듯 경영권 방어에 나선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외국인 2대 주주가 늘면서 ‘실패한’ 케이스도 등장했다.
JP모건 서영호 상무는 “LG카드의 2대 주주였던 워버그핀커스의 경우 대주주와 기존 경영진의 전횡을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2대 주주의 실패 사례”라고 지적했다. 2대 주주의 입김이 세지면서 지난해 9월에는 미국 캐피털그룹의 부름에 삼성전자 ·SK ·신한은행 등 국내 대기업 CEO들이 줄줄이 ‘면접’을 보러 가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캐피털그룹은 대구은행과 부산은행, 대림산업 등의 2대 주주. 5% 이상 지분을 가진 국내 유가증권시장(옛 거래소시장) 상장기업만 30여 개에 달하고 코스닥시장에서도 NHN 등 6개 종목을 5% 이상 보유하고 있다.
일각에선 2대 주주를 통한 국부유출과 경영권 위협을 제기하고 나섰다. 한국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소버린과 같이 외국인이 2대 주주이면서 경영권 위협 또는 분쟁 가능성이 있는 상장기업은 138개사에 달한다. 증권선물거래소 측은 “외국인 2대 주주가 불과 8개월 만에 20% 가까이 급증했다”며 “138개사는 조사대상 상장기업 623개의 22%에 해당해 5개 상장기업 가운데 하나가 잠재적 경영권 위협 상황에 놓여 있는 셈”이라고 밝혔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 3월 보고서를 통해 “외국인 2대 주주 중 다수는 단순한 투자목적의 투자자이지만 언제든지 투자목적을 경영권 확보로 바꿀 수 있어 경영권 위협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대로 힘센 2대 주주들의 등장으로 기업들의 ‘기초체력’이 개선됐다는 평가도 있다. 최근 발표한 LG경제연구원 보고서에선 기업들의 배당이 증가해 성장을 위한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는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외국인 지분율이 크게 높아진 상장업체 30개사와 크게 낮아진 30개사를 비교한 결과, 설비투자 위축 등 실제 폐해에 대한 근거는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LG경제연구원 배지헌 선임연구원은 “외국인 지분율이 증가한 기업의 배당이 늘어나는 것은 주주 중시 경영의 결과로 봐야 한다”며 “투기성 외국자본의 폐해를 확대해석하면 외국자본 유입을 기대하는 대다수 기업에 부정적 효과를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례2 ‘꿩 먹고 알 먹고’
그린화재해상보험은 ‘2대 주주’ 전문 회사다. 그린화재가 2대 주주로 있는 회사는 무려 7개다. 쌍용화재 ·동화약품 ·일성신약 ·세림제지 ·써니YNK ·동성화학 ·정소프트 등. 이 가운데에서 ‘5%룰(경영참여 목적으로 대량 주식지분을 취득할 때 공시하는 의무)’에 해당되는 기업이 한 곳도 없다. 즉 공식적으로 ‘경영 참가’ 의사는 없는 셈이다. 2대 주주로 있는 대우자동차판매에 ‘경영 참가 목적’을 공시한 정도다. 업계 10위의 손해보험사가 이렇게 기업들의 2대 주주로 ‘속속’ 입성하는 이유는 뭘까.
그린화재는 현재 기업들의 2대 주주로 나서면서 이를 보험영업에 활용하는 독특한 영업전략을 펼치고 있다. 동성화학의 경우 그린화재가 지난해 12월 에스텍으로부터 동성화학 주식의 14.1%를 사들이며 2대 주주가 됐다. 그린화재 측은 “에스텍과 동성화학 간 M&A 분쟁을 끝내는 과정에서 동성화학의 요청으로 지분을 잠시 맡아주는 것”이라며 “대신 우리는 동성화학과 그 계열사에 보험을 판매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코스닥기업 써니YNK도 마찬가지다. 써니YNK의 게임사이트를 장기보험 마케팅 채널로 활용한다는 복안이다. 대우자판의 2대 주주가 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린화재는 대우자판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자동차 보험영업을 확대하고 할부금융 시장에 뛰어들 계획이다. 코오롱 ·대한해운 백기사(우호지분)이자 3대 주주가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최근에는 쌍용화재의 2대 주주로 급부상하면서 적대적 M&A 논란에 휘말려 화제를 모았다. 그린화재 이영두 회장은 “M&A에 관심은 있지만 적대적으로 시도하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하며 “중소형 보험사 간의 합병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쌍용화재 측과 공식적으로 논의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 회사가 2대 주주 전문으로 나선 것은 지난해 2월 이 회장이 경영을 맡으면서였다. 리더스초이스 사장이었던 이 회장 역시 애초에는 그린화재의 2대 주주였다. 그린화재의 대주주인 우암홀딩스의 장홍선 회장이 이 회장에게 경영권을 위탁한 것. 이 회장은 과거 경남에너지 ·제일물산 ·한화종금 등의 M&A에 참여한 바 있는 M&A계의 실력자다. 그는 과거 SK텔레콤의 간담을 서늘케 한 헤지펀드인 타이거펀드를 돕기도 했다.
이 회장은 “한 개 기업의 대주주가 되는 것보다 여러 기업의 2대 주주가 되는 게 훨씬 현실적이고 효율적”이라며 “기업들의 2대 주주로 들어가 다양한 보험영업과 경영전략을 펼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린화재처럼 기업의 2대 주주로 참가하면서 경영전략을 펼치는 것은 세계 최대 소비자금융회사인 GE캐피탈도 마찬가지다. 현재 현대캐피탈의 2대 주주인 GE캐피탈은 현대캐피탈과의 제휴를 통해 신용대출 고객을 대상으로 대출금을 대신 변제해주는 ‘론119신용보장’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사례3 ‘커튼 뒤의 숨은 실력자’
‘돈 되는 곳에 공제회가 있다’는 말처럼 군인공제회와 교직원공제회는 군인과 교직원들이 매달 꼬박꼬박 납입하는 현금을 바탕으로 M&A의 ‘큰손’으로 등장했다. 교직원공제회의 경우 2월 말 기준으로 자산 11조2,000억원, 군인공제회는 3월 말 기준 4조6,000억원으로 중견 재벌 못지않은 덩치를 자랑하고 있다. 이런 공제회들이 적극적인 2대 주주로 떠오르고 있다. 기업 M&A에서 자금책으로 등장한 이들이 후에는 피인수 기업의 2대 주주로 자리 잡는 행태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교직원공제회는 2004년 2월 이랜드와 함께 인수한 뉴코아의 2대 주주. 뉴코아에 500억원을 출자한 교직원공제회는 이랜드로부터 최소 9%의 수익을 보장받았다. 상장할 경우 추가적인 이익이 예상된다. 그리고 최근 하이트맥주와 함께 참가한 진로 인수전에도 5,000억원가량의 자금을 댈 것으로 예상돼 하이트에 이어 2인자가 될 전망이다.
2대 주주로는 군인공제회가 더 유명하다. 군인공제회는 2003년 4월 금호타이어를 전격 인수하면서 화제를 일으켰다. 최근까지 대우종합기계를 인수한 두산컨소시엄 등 돈 되는 곳에는 어김없이 나타났다. 특히 올해 초에는 크라운제과갞B창업투자갞TB 등과 손잡고 해태제과를 공동 인수했다. 해태제과의 지분은 32.9%(700억원 투자)로 크라운제과(35.2%)에 이은 2대 주주다.
국내 M&A 전문가는 “공제회가 기업 인수에서 대주주가 아닌 2인자로 나선 것은 자본력은 있지만 기업 경영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며 “기업을 인수해 경영을 한다고 하더라도 공제회에 쏟아질 곱지 않은 시선이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례4 급할 때는 ‘아군’, 알고 보니 ‘적군’
‘5%룰’이 시행되면서 얌체 2대 주주들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5%룰은 상장기업 주식을 5% 이상 보유한 대주주나 특수관계인들의 주식 보유 목적을 명확하게 공시하라는 의무조항이다. 이 5%룰에 따라 M&A 위기에 처한 회사들을 도와준다며 백기사를 자청했던 회사들 중 이번 공시에는 버젓이 ‘경영참가’를 내세운 회사들이 나타났다.
지난해 노르웨이계 해운사 골라LNG 및 관련 펀드들과 국내 대주주 간 벌어진 치열한 지분경쟁에서 대한해운의 백기사로 등장했던 대우조선해양은 최근 고시를 통해 ‘경영참가 목적’이라고 밝혔다. 경영진 선임이나 합병 ·분할에 직접 관여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혀 백기사가 아니라 ‘흑기사’임을 자인한 셈이다. 지난 3월 삼양식품의 백기사로 나섰던 현대산업개발도 주식보유 목적을 ‘경영참가’라고 밝혔다.
현대산업개발은 삼양식품 대주주인 전중윤 회장 일가가 경영권을 되찾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며 우호지분 형태로 이 회사 지분 26.76%를 인수했다. 회사 측은 “지금은 경영에 관여하고 있지 않지만 앞으로 필요에 따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한 증권사의 M&A 팀장은 “과거 외국인과 신동방이 미도파를 적대적 M&A를 하려 할 때 당시 기업들이 백기사로 나선 것은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라 용납해선 안 된다는 사회적인 인식 때문이었다”며 “지금은 M&A에 있어 백기사나 2대 주주로 나서는 것은 모두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모두가 재계의 ‘뉴스메이커’라는 사실 외에도 또 다른 공통분모가 있다. 바로 2대 주주라는 점이다.
이들은 예전 2대 주주와는 확연히 다르다. 과거에는 투자 수익률에만 초점을 맞췄던 단순 기관투자가들이 대부분이었다. 투자한 기업에서도 소액 주주보다도 더 대접을 받지 못했다. 시쳇말로 ‘호구’였다.
소액주주들의 입장은 참여연대 등과 같은 시민단체들이 대변한다지만, 2대 주주는 연금 ·국책은행 등 대부분 주가 추이에만 매달리며 ‘복지부동’하는 기관투자가였다. 국내 한 증권사 임원은 “국내 재계나 금융권에 2대 주주라는 존재 자체가 있었느냐”고 반문하며 “능동적인 2대 주주가 국내에 등장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례 1 파란 눈의 2인자
국내에 2대 주주들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외환위기 이후 외국계 사모펀드들이 몰려오면서였다. 이들은 대부분 ‘쓰러져가는’기업의 2대 주주로 들어가 기업 구조조정과 매각에 실질적으로 참여하면서 ‘눈부신’수익률을 올렸다. 정부에 이어 제일은행의 2대 주주였던 뉴브리지캐피탈은 은행의 구조조정과 매각을 진행하며 단단히 한몫을 챙긴 대표적인 사례.
최근 영국계 금융기관인 스탠더드차터드은행(SCB)에 제일은행을 매각하면서 1조1,500억원에 달하는 차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환위기 당시 투자한 5,000억원에 비하면 2배가 넘는 금액이다. 뉴브리지캐피탈코리아 측은 “뉴브리지는 자금이 필요한 회사를 지원하고 경영에 관여해 기업가치를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한미은행을 씨티은행에 매각한 SCB도 마찬가지다.
SK(주)의 2대 주주로 화려하게 등장했던 소버린자산운용은 최근 LG전자와 (주)LG의 2대 주주로 등장해 또 한 번 화제를 모았다. 소버린은 재계에 외국인 2대 주주에 대한 경각심을 몰고 온 케이스. 국내 한 인수 ·합병(M&A) 전문가는 “소버린의 구체적인 경영권 간섭 의사는 오너들에게 필요 이상의 긴장감을 심어줬다”며 “과도한 긴장 조성으로 기업들이 지분 늘리기 경쟁이라도 하듯 경영권 방어에 나선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외국인 2대 주주가 늘면서 ‘실패한’ 케이스도 등장했다.
JP모건 서영호 상무는 “LG카드의 2대 주주였던 워버그핀커스의 경우 대주주와 기존 경영진의 전횡을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2대 주주의 실패 사례”라고 지적했다. 2대 주주의 입김이 세지면서 지난해 9월에는 미국 캐피털그룹의 부름에 삼성전자 ·SK ·신한은행 등 국내 대기업 CEO들이 줄줄이 ‘면접’을 보러 가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캐피털그룹은 대구은행과 부산은행, 대림산업 등의 2대 주주. 5% 이상 지분을 가진 국내 유가증권시장(옛 거래소시장) 상장기업만 30여 개에 달하고 코스닥시장에서도 NHN 등 6개 종목을 5% 이상 보유하고 있다.
일각에선 2대 주주를 통한 국부유출과 경영권 위협을 제기하고 나섰다. 한국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소버린과 같이 외국인이 2대 주주이면서 경영권 위협 또는 분쟁 가능성이 있는 상장기업은 138개사에 달한다. 증권선물거래소 측은 “외국인 2대 주주가 불과 8개월 만에 20% 가까이 급증했다”며 “138개사는 조사대상 상장기업 623개의 22%에 해당해 5개 상장기업 가운데 하나가 잠재적 경영권 위협 상황에 놓여 있는 셈”이라고 밝혔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 3월 보고서를 통해 “외국인 2대 주주 중 다수는 단순한 투자목적의 투자자이지만 언제든지 투자목적을 경영권 확보로 바꿀 수 있어 경영권 위협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대로 힘센 2대 주주들의 등장으로 기업들의 ‘기초체력’이 개선됐다는 평가도 있다. 최근 발표한 LG경제연구원 보고서에선 기업들의 배당이 증가해 성장을 위한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는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외국인 지분율이 크게 높아진 상장업체 30개사와 크게 낮아진 30개사를 비교한 결과, 설비투자 위축 등 실제 폐해에 대한 근거는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LG경제연구원 배지헌 선임연구원은 “외국인 지분율이 증가한 기업의 배당이 늘어나는 것은 주주 중시 경영의 결과로 봐야 한다”며 “투기성 외국자본의 폐해를 확대해석하면 외국자본 유입을 기대하는 대다수 기업에 부정적 효과를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례2 ‘꿩 먹고 알 먹고’
그린화재해상보험은 ‘2대 주주’ 전문 회사다. 그린화재가 2대 주주로 있는 회사는 무려 7개다. 쌍용화재 ·동화약품 ·일성신약 ·세림제지 ·써니YNK ·동성화학 ·정소프트 등. 이 가운데에서 ‘5%룰(경영참여 목적으로 대량 주식지분을 취득할 때 공시하는 의무)’에 해당되는 기업이 한 곳도 없다. 즉 공식적으로 ‘경영 참가’ 의사는 없는 셈이다. 2대 주주로 있는 대우자동차판매에 ‘경영 참가 목적’을 공시한 정도다. 업계 10위의 손해보험사가 이렇게 기업들의 2대 주주로 ‘속속’ 입성하는 이유는 뭘까.
그린화재는 현재 기업들의 2대 주주로 나서면서 이를 보험영업에 활용하는 독특한 영업전략을 펼치고 있다. 동성화학의 경우 그린화재가 지난해 12월 에스텍으로부터 동성화학 주식의 14.1%를 사들이며 2대 주주가 됐다. 그린화재 측은 “에스텍과 동성화학 간 M&A 분쟁을 끝내는 과정에서 동성화학의 요청으로 지분을 잠시 맡아주는 것”이라며 “대신 우리는 동성화학과 그 계열사에 보험을 판매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코스닥기업 써니YNK도 마찬가지다. 써니YNK의 게임사이트를 장기보험 마케팅 채널로 활용한다는 복안이다. 대우자판의 2대 주주가 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린화재는 대우자판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자동차 보험영업을 확대하고 할부금융 시장에 뛰어들 계획이다. 코오롱 ·대한해운 백기사(우호지분)이자 3대 주주가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최근에는 쌍용화재의 2대 주주로 급부상하면서 적대적 M&A 논란에 휘말려 화제를 모았다. 그린화재 이영두 회장은 “M&A에 관심은 있지만 적대적으로 시도하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하며 “중소형 보험사 간의 합병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쌍용화재 측과 공식적으로 논의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 회사가 2대 주주 전문으로 나선 것은 지난해 2월 이 회장이 경영을 맡으면서였다. 리더스초이스 사장이었던 이 회장 역시 애초에는 그린화재의 2대 주주였다. 그린화재의 대주주인 우암홀딩스의 장홍선 회장이 이 회장에게 경영권을 위탁한 것. 이 회장은 과거 경남에너지 ·제일물산 ·한화종금 등의 M&A에 참여한 바 있는 M&A계의 실력자다. 그는 과거 SK텔레콤의 간담을 서늘케 한 헤지펀드인 타이거펀드를 돕기도 했다.
이 회장은 “한 개 기업의 대주주가 되는 것보다 여러 기업의 2대 주주가 되는 게 훨씬 현실적이고 효율적”이라며 “기업들의 2대 주주로 들어가 다양한 보험영업과 경영전략을 펼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린화재처럼 기업의 2대 주주로 참가하면서 경영전략을 펼치는 것은 세계 최대 소비자금융회사인 GE캐피탈도 마찬가지다. 현재 현대캐피탈의 2대 주주인 GE캐피탈은 현대캐피탈과의 제휴를 통해 신용대출 고객을 대상으로 대출금을 대신 변제해주는 ‘론119신용보장’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사례3 ‘커튼 뒤의 숨은 실력자’
‘돈 되는 곳에 공제회가 있다’는 말처럼 군인공제회와 교직원공제회는 군인과 교직원들이 매달 꼬박꼬박 납입하는 현금을 바탕으로 M&A의 ‘큰손’으로 등장했다. 교직원공제회의 경우 2월 말 기준으로 자산 11조2,000억원, 군인공제회는 3월 말 기준 4조6,000억원으로 중견 재벌 못지않은 덩치를 자랑하고 있다. 이런 공제회들이 적극적인 2대 주주로 떠오르고 있다. 기업 M&A에서 자금책으로 등장한 이들이 후에는 피인수 기업의 2대 주주로 자리 잡는 행태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교직원공제회는 2004년 2월 이랜드와 함께 인수한 뉴코아의 2대 주주. 뉴코아에 500억원을 출자한 교직원공제회는 이랜드로부터 최소 9%의 수익을 보장받았다. 상장할 경우 추가적인 이익이 예상된다. 그리고 최근 하이트맥주와 함께 참가한 진로 인수전에도 5,000억원가량의 자금을 댈 것으로 예상돼 하이트에 이어 2인자가 될 전망이다.
2대 주주로는 군인공제회가 더 유명하다. 군인공제회는 2003년 4월 금호타이어를 전격 인수하면서 화제를 일으켰다. 최근까지 대우종합기계를 인수한 두산컨소시엄 등 돈 되는 곳에는 어김없이 나타났다. 특히 올해 초에는 크라운제과갞B창업투자갞TB 등과 손잡고 해태제과를 공동 인수했다. 해태제과의 지분은 32.9%(700억원 투자)로 크라운제과(35.2%)에 이은 2대 주주다.
국내 M&A 전문가는 “공제회가 기업 인수에서 대주주가 아닌 2인자로 나선 것은 자본력은 있지만 기업 경영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며 “기업을 인수해 경영을 한다고 하더라도 공제회에 쏟아질 곱지 않은 시선이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례4 급할 때는 ‘아군’, 알고 보니 ‘적군’
‘5%룰’이 시행되면서 얌체 2대 주주들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5%룰은 상장기업 주식을 5% 이상 보유한 대주주나 특수관계인들의 주식 보유 목적을 명확하게 공시하라는 의무조항이다. 이 5%룰에 따라 M&A 위기에 처한 회사들을 도와준다며 백기사를 자청했던 회사들 중 이번 공시에는 버젓이 ‘경영참가’를 내세운 회사들이 나타났다.
지난해 노르웨이계 해운사 골라LNG 및 관련 펀드들과 국내 대주주 간 벌어진 치열한 지분경쟁에서 대한해운의 백기사로 등장했던 대우조선해양은 최근 고시를 통해 ‘경영참가 목적’이라고 밝혔다. 경영진 선임이나 합병 ·분할에 직접 관여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혀 백기사가 아니라 ‘흑기사’임을 자인한 셈이다. 지난 3월 삼양식품의 백기사로 나섰던 현대산업개발도 주식보유 목적을 ‘경영참가’라고 밝혔다.
현대산업개발은 삼양식품 대주주인 전중윤 회장 일가가 경영권을 되찾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며 우호지분 형태로 이 회사 지분 26.76%를 인수했다. 회사 측은 “지금은 경영에 관여하고 있지 않지만 앞으로 필요에 따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한 증권사의 M&A 팀장은 “과거 외국인과 신동방이 미도파를 적대적 M&A를 하려 할 때 당시 기업들이 백기사로 나선 것은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라 용납해선 안 된다는 사회적인 인식 때문이었다”며 “지금은 M&A에 있어 백기사나 2대 주주로 나서는 것은 모두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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