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TV 위기의 실체…‘미디어 왕자’자만하다 후발주자에 ‘뒤통수’
지상파TV 위기의 실체…‘미디어 왕자’자만하다 후발주자에 ‘뒤통수’
TV권력의 해체 박천일 숙명여대 정보방송학 전공 교수는 “지상파가 TV 시장을 독과점하던 시대는 막을 내렸다”고 단언했다. “더 큰 위기는 수익 모델이 취약하다는 겁니다. 매체 광고시장은 이미 성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이후로는 뉴 미디어들과 이 시장을 나눌 수밖에 없어요. 광고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한편 외부적으로는 경영을 다각화하고 내부적으로는 경영을 효율화하는 게 살 길입니다.” 그는 지상파 TV의 광고 수입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의 산업 동향과도 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IMF 체제 이후 주요 산업에서 메이저 기업들의 시장 독점 현상이 나타나면서 기업들이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게 됐고, 그 결과 해외 광고와 해외 마케팅에 치중하게 됐다는 것이다.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상무는 지상파 TV가 당면한 상황을 누란(累卵)의 위기로 진단한다. “위기의 한 요소는 비즈니스 모델의 위기입니다. 케이블과 위성이 다양한 채널을 무기로 시장을 잠식하더니 어느새 지상파의 아성이 무너지는 임계점에 도달한 셈이죠. 이런 추세는 갈수록 가속될 겁니다. 오랫동안 무풍지대였던 지상파에 언젠가 쓰나미로 들이닥칠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위기는 신뢰성의 위기예요. 신문과 더불어 또 하나의 올드 미디어인 지상파는 수용자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어요. 이 두 가지 위기가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다고 봅니다.” 김 상무는 특히 지상파 방송은 신문과 달리 주인이 없어 판이 완전히 뒤집힐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혁신을 시도하겠지만 내부의 정치과정이 복잡해 쉽지 않고, 한국방송광고공사의 독점적 광고 영업 등 비경쟁적 제도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죠. 후발 사업자들의 진입을 봉쇄하는 장벽은 높고 인수합병(M&A)도, 신문과의 통합도 불가능합니다. 최악의 경우 지리멸렬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정윤식 강원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지상파 TV의 위기 요인으로 디지털 방식으로의 전환, 통신·방송 융합 서비스의 개시, 방송 시장의 글로벌 게임화를 꼽는다. 비경쟁적 체질이 족쇄 뉴 미디어의 도전도 날로 거세지고 있다. 케이블 TV 가입 가구는 지난해 6월 말 기준 1172만 가구로 전체 가구의 69%에 이른다. 위성 방송 가입 가구는 140만 가구로 전체의 8%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 중계방송 가입 가구까지 합치면 지상파 외에 이들 채널을 이용하는 다채널 가구 수는 전체 가구의 80% 이상 될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에 육박하는 수준이다(2003년 기준 다채널 가입 가구 88.3%). 한마디로 지상파 TV는 더 이상 지배적인 미디어가 아니다. 여전히 TV 앞에 앉아 있지만 채널을 케이블이나 위성 방송에 맞추는 시청자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미국은 2000년을 전후해 케이블 TV의 시청 점유율이 지상파를 앞질렀다. 아예 TV 모니터 앞에서 PC 모니터 앞으로 자리를 옮긴 시청자도 적지 않다. 2004년 8월 말 기준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가입 가구 수는 1171만 가구로 전체의 69%에 이른다. 위성 DMB는 이미 발진했고, IP-TV·와이브로(휴대 인터넷) 등의 신병기가 대기 중이다. 지상파 TV의 콘텐츠 경쟁력도 시험대에 올랐다. 조성호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지난해 가을 <방송환경 변화에 따른 지상파 텔레비전 시청행태 변화 분석> 이란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독립 PP들의 프로그램 경쟁력이 강화되면 지상파 쪽의 시청 점유율이 더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의 경우 지상파의 점유율이 37%까지 떨어졌습니다. 지역 지상파 TV의 경우 자체 제작 프로그램의 경쟁력이 떨어져 점유율이 더 급속히 하락할 거예요. 5년 후면 지상파와 케이블·위성 등 나머지 채널의 점유율이 역전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난해 광주·부산의 지상파 시청점유율은 각각 57.7%, 57.9%까지 추락했다. 지상파의 점유율이 떨어지고 있는 건 TV 수용자들의 시청 패턴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10~20대에게 지상파 채널은 말 그대로 단지 하나의 ‘경로’에 불과하다. 지상파는 이들의 시선을 붙잡기 위해 케이블과 위성은 물론 인터넷·휴대전화·MP3 등과 힘겨운 경쟁을 하고 있다. 이들에게 지상파 TV는 그저 ‘저렇게 많은 별 중에 나를 내려다보는 별 하나’일 뿐이다. 이들은 TV를 보더라도 좋아하는 장르에 ‘선택과 집중’을 한다. ‘종합선물세트’인 지상파보다 전문화된 케이블이나 위성 쪽을 선호한다. 지상파들은 주말 편성을 통해 이들을 유혹해 보지만 이들은 이미 야외에 나가고 없다. 시청점유율·광고비 동시 하락세 순수 인구학적인 면에서 지상파 시청자들이 고령화하고 있을 뿐더러 이들의 구매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박천일 교수는 TV 시청자 중에서 구매력이 있는 계층은 케이블로 돌아서고 있다고 말했다. 지상파 TV 내부의 위기감도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정길화 국장은 “경영진이 임금을 깎자는 데 직원들이 선선히 동의한 것은 IMF 체제 이후 처음”이라고 말했다. 노사가 경영을 효율화하고 고통을 분담키로 한 것이야말로 위기의 긍정적 효과라고 그는 덧붙였다. 지상파 TV의 위기의식은 통신사업자들의 진입을 막기 위해 장벽을 둘러치려는 데서도 엿볼 수 있다. 지상파 방송사업자들은 최근 위성 DMB 사업자인 TU미디어에 대해 지상파 TV의 재전송을 허용치 않기로 했다. 위협적인 경쟁자라는 것이 그 이유다. 콘텐츠 보급을 차단함으로써 고사시키는 작전이랄까? 재전송 허용에 반대한 KBS 노조의 한 간부는 국가 기간방송이자 공영방송인 KBS로서는 통신 재벌의 방송 진입을 경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천일 교수는 그러나 “지상파 재전송을 선별적으로 허용하는 것은 유통의 공정 경쟁을 해치는 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공영방송이라면 보편적 서비스를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국민이 내는 수신료로 운영되는 방송사의 노조가 프로그램의 재전송 여부를 작위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공영방송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지상파(공중파) 방송은 일종의 공공재다. KBS와 같은 공영방송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KBS가 수신료를 징수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경쟁자라서 콘텐츠를 내줄 수 없다는 건 공영방송으로서 공적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다. 이런 결정은 수용자 주권에도 반한다. 위성 DMB에 대한 재전송은 지상파에 대한 수용자의 접근로를 하나 늘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상파 TV들의 행동 통일은 공정거래법상 담합의 소지도 있다. 이효성 방송위원회 부위원장은 “경쟁 상황을 위협 요인으로만 받아들이다 보니 상충 작용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여러 가지 이유에서 지상파로는 난시청 문제를 100% 해결할 수 없습니다. 케이블과 위성 쪽엔 이미 재전송을 허용하고 있어 형평성 문제도 있어요. 무엇보다 ‘원 소스 멀티 유스’를 요구하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비춰 콘텐츠의 새 유통경로를 확보할 필요가 있습니다.” 박 교수는 통신·방송 융합 서비스가 지상파 방송사업자와 후발 사업자 간의 경쟁 체제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프로그램 공급을 차단하는 건 지상파들이 가하는 일종의 규제예요. 규제는 최소화하고 경쟁은 최대화하는 것이 이 시대가 지향할 원칙입니다. 지상파 TV의 콘텐츠 제작 능력은 그것대로 키워 나가면서 후발 뉴 미디어들이 경쟁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합니다.” 정길화 국장은 “올드 미디어의 위기론은 과거에도 있었다”고 말했다. 미디어의 역사에서 뉴 미디어가 출현하면 올드 미디어는 특화의 길을 걸었다. 고유의 특장을 강화해 살아 남았다. TV 시대에도 잘나가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은 역설적으로 ‘지금은 라디오 시대’라는 타이틀을 내걸었다. 정 국장은 어느 결에 지상파 TV가 올드 미디어가 됐다고 말했다. ‘올드랭사인’(그리운 옛날)을 부르고 있기엔 그러나 상황이 너무 절박해 보인다. 방송환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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