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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대우 계열사는 지금ㅣ그룹 사라져도 기업은 강해졌다

옛 대우 계열사는 지금ㅣ그룹 사라져도 기업은 강해졌다

지난 1967년 3월 섬유 수출업체인 한성실업 이사로 있던 31세의 김우중은 자본금 500만원을 가지고 대우실업을 세웠다. 그는 불과 한 달 만에 30만 달러어치의 원단을 팔았다. ‘김우중 신화’의 서곡이었다. 30년 후 대우는 자산 83조원, 매출 62조원의 국내 2위 재벌로 성장한다. 대우 깃발 아래서 근무하는 임직원만 국내와 해외를 합쳐 26만9000명에 달했다. 거침없이 질주하던 대우호(號)가 무너진 것은 1999년이다. IMF 외환위기를 만나면서 벼랑에 서게 된 것. 회계장부를 거짓으로 꾸미고 빚을 끌어다 신규 투자를 벌이는 김우중식 경영에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68조원대 부채를 안고 있던 대우는 몰락했고, 공적자금 29조7000억원이 투입되면서 주요 계열사에 대한 워크아웃이 시작됐다. ㈜대우를 비롯해 대우자동차·대우중공업·대우증권 등 주요 계열사들은 워크아웃 이후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간판 회사였던 ㈜대우는 2000년 대우건설과 대우인터내셔널로 분할됐다. 대우인터내셔널은 ‘전문무역상사’로 거듭나 세계 곳곳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2003년 말 미얀마 가스전 개발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상태. 대우건설 역시 ‘푸르지오’라는 아파트 브랜드를 출범시키는 등 ‘건설 명가’ 부활에 나섰다.

계열사 부활… 공적자금 회수 문제 대우차는 극심한 진통 끝에 미국 GM에 넘어갔다. 2000년 6월 말 포드가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으나 최종 인수 제안서 제출을 포기, 법정관리에 들어갔다가 2002년 10월 GM에 인수됐다. 대우차에서 분리된 대우버스·대우상용차는 각각 영안모자와 인도 타타모터스에 팔렸다. 대우차 부평공장이 대우인천차로 분리돼 있으나 GM 측과 인수 협상을 벌이는 중이다. 대우중공업은 대우조선해양과 대우종합기계로 쪼개졌다. 대우조선은 세계 LNG선 시장을 석권하는 등 영업 호조에 힘입어 2002년 8월 대우 계열사 가운데 가장 먼저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대우종합기계도 2001년 11월 워크아웃에서 조기 졸업, 올 초 두산중공업에 인수되면서 ‘두산인프라코어’로 거듭났다. 대우일렉트로닉스(옛 대우전자)는 아직 워크아웃 상태로 남아 있다. 반도체·방위산업·보일러 부문을 매각 혹은 분리하면서 외형이 작아졌으나 TV·냉장고·세탁기 등 가전을 중심으로 사업을 개편했다. 증권업계의 인재사관학교로 불렸던 대우증권과 서울투신운용은 산업은행 자회사로 들어가 있고, 산은 측은 “당분간 매각할 뜻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 밖에 다이너스클럽코리아는 현대카드, 대우경제연구소는 크리스탈투자자문에 각각 인수됐다. 오리온전기는 지난 4월 미국 매틀린 패터슨사에 인수됐다. 경남기업은 2002년 12월 워크아웃에서 벗어난 후 지난해 7월 충청권 중견건설사인 대아건설에 넘어갔다. 대아건설은 이후 사명을 경남기업으로 바꿨다. 대우는 또한 396개의 해외 법인과 589개의 해외 사업장을 거느린 다국적 기업이기도 했다. 해외에서 고용한 인력만 15만 명이 넘었다. 자그마치 110억 달러를 해외 사업에 쏟아 부었다. 동유럽을 비롯해 아프리카·중국 등 세계 곳곳에 대우의 흔적을 남겼고, 북한에도 진출해 첫 남북한 합작투자회사인 ‘민족사업총회사’를 만들기도 했다. 대우가 무너지면서 400개에 이르던 해외 네트워크는 절반 이상 정리됐다. 대우인터내셔널은 190개에 이르던 해외 법인과 지사를 최근 92개로 줄였다. 지난해에는 우즈베키스탄 이동통신법인과 파키스탄 운수법인을 매각한 바 있다. 대우인터내셔널 측은 “무역과 연관성이 떨어지는 해외법인을 매각한다는 것이 회사의 원칙”이라고 밝혔다. 세계 경영의 첨병 역할을 맡았던 대우차의 경우 GM이 인수하지 않은 해외 생산법인 14곳과 판매법인 20곳의 정리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법인, 중국 옌타이(煙台) 엔진공장은 이미 팔렸고, 폴란드 FSO 공장과 인도 법인 등은 매각 협상을 벌이고 있는 상태. 공적자금 회수 문제도 남아 있다. 대우 계열사들은 채무조정 과정을 통해 30조원에 가까운 공적자금을 수혈받았다. 자산관리공사에 따르면 대우그룹에 투입된 공적자금은 모두 29조7000억원. 지금까지 계열사 매각이나 채권 정리 등을 통해 7조7000억원을 회수했을 뿐이다. 대우조선해양·대우건설 등을 추가 매각한다고 해도 10조원 이상은 회수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결국 10조원대 국민의 혈세를 허공에 날리게 됐고, 38만 명에 이르는 대우 소액주주들도 3조원 가까운 피해를 봤다.

이태용·정성립 등 스포트라이트 한편 ‘대우그룹’이라는 끈이 떨어지면서 옛 대우 가족들은 브랜드 때문에 속앓이를 하기도 했다. 2002년 대우 로고에 대해 상표권을 가지고 있던 대우인터내셔널 측이 옛 대우 계열사에 로열티를 요구한 것. 이에 대우전자는 대우일렉트로닉스로 이름을 바꾸면서 회사 로고를 아예 영문으로 바꿨다. 그러나 ‘대우’라는 이름은 버리지 않았다. 해체와 재건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대우맨의 운명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불법 외환거래 혐의 등으로 구속된 강병호·장병주 전 ㈜대우 사장, 김태구 전 대우차 사장, 전주범 전 대우전자 사장 등은 대부분 유죄 판결을 받았다. 강 전 사장은 5년형을 받고 복역 중이며, 장 전 사장은 건강이 나빠져 보석으로 풀려났다. 옛 사람 가운데는 추호석 전 대우중공업 사장이 검색엔진 벤처회사인 코리아와이즈넛 전문경영인으로 활동하다가 지난해 초 파라다이스 사장으로 옮겨 눈길을 끌었다. 윤영석 전 대우중공업 회장은 대우 사태가 나기 직전 두산중공업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현재는 두산중공업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전주범 전 사장은 지난해 7월 영산대 대외부총장에 취임했다. 새롭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람도 있다. 김 전 회장 비서 출신으로 2000년 대우자동차판매 CEO로 발탁된 이동호 사장은 ‘대우’의 이름을 지키며 현역에서 활약하고 있다. 대우자동차판매는 지금도 대우그룹 사가(社歌)를 부르고 있다. 김 사장은 이영현 코래드 사장 등과 함께 김 전 회장의 귀국을 오래전부터 준비하며 여론의 흐름과 귀국 이후 파장에 대해 집중적으로 점검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 이태용 대우인터내셔널 사장, 박세흠 대우건설 사장, 김충훈 대우일렉트로닉스 사장 등은 대우 사태 이후 구원투수로 발탁돼 ‘새로운 대우’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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