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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적은 연료로 더 오래 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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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the Extra Mile

포드 자동차사의 휑뎅그렁한 풍동 안. 가느다란 연기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신형 링컨 제피르 위를 미끄러져 흘렀다. 그러나 공기역학 공학자 웨인 코스터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뒷유리창과 트렁크가 만나는 지점에서 작은 공중제비를 만들어내는 연기였다. “저기 보이죠?”라고 코스터가 통제실 창문 뒤에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게 바로 난기류입니다.” 난기류는 공기역학에서 가장 큰 골칫거리다.

코스터는 링컨차 디자이너들에게 연비를 높이려면 트렁크 높이를 낮춰야 한다고 설득하려 했다. 그러나 디자이너들은 난색을 표했다. 링컨 고객들이 골프 가방 여러 개가 들어가는 큰 트렁크를 원하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제피르의 연비는 고속도로 주행시 28mpg(휘발유 1갤런당 주행 마일)에 머물렀다(자매 차종인 포드 퓨전보다 1mpg가 낮다). “트렁크 덮개의 높이를 낮추면 보기도 좋고 공기 저항도 줄어들 텐데”라고 코스터는 말했다. “하지만 최종 결정은 늘 타협의 산물이다.”

그러나 요즘 들어 코스터처럼 연비를 따지는 사람들이 모타운(미국 자동차 제조의 중심지 디트로이트를 가리키는 말로 모터 타운의 줄임말)에서 힘을 얻는 추세다. 디트로이트는 지난 20년간 마력과 중량을 계속 높여왔지만 이제 연료 효율의 중요성을 고통스럽게 재발견하고 있는 중이다.

제너럴 모터스(GM)와 포드는 고통스러운 고유가 탓에 스포츠 다목적 차량(SUV) 매출에서 큰 타격을 입어 3분기에 두 회사 합쳐 자동차 부문에서 50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 지금까지 업계는 자동차를 구입하려는 소비자들이 가장 관심이 없고 불평만 늘어놓는 게 바로 연료 효율성이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자동차 시장조사업체 J D 파워가 실시한 새 조사에 따르면 최근 들어 연비는 구매자들이 자동차를 살 때 특정 차종을 구매 대상에서 제외하는 가장 큰 이유 다섯 가지 가운데 하나에 꼽혔다.

연비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미국에서 20년간 뒷걸음쳐온 연료 효율성을 역전시키려는 경쟁에 불이 붙었다. 그렇다고 소문이 무성한 하이브리드 차량이 유일한 해결책은 아니다. 하이브리드 차량의 시장 점유율은 1.3%에 불과하다. 대다수 구입자가 대당 4000달러에서 1만 달러를 추가 부담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제의 연료 효율성 경쟁은 기존의 자동차들을 둘러싸고 벌어진다.

게다가 많은 연료 절약이 가능한 분야도 자동차 시장이다. 미국 내 석유 소비의 40%를 각종 자동차들이 차지하기 때문이다(미국의 전체 에너지 중 22%는 가정에서 소비되며, 따라서 많은 공학자가 가정의 에너지 소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는다). 자동차 공학자들은 풍동과 연구개발(R&D) 실험실에서 자동차를 보다 더 날렵하게 만드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그들은 연비를 조금이라도 늘리려고 한 세기 동안 써온 내연기관 엔진과 변속장치도 재정비한다. “적어도 휘발유 값이 갤런당 5달러는 돼야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경제성이 있다”고 컨슈머 리포츠의 자동차 검사 책임자 데이비드 챔피언이 말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요구가 있다면 기존의 자동차에서 15% 내지 20%의 연비 개선이 가능하다.”

그래서 최신 자동차 광고도 신형 모델의 미끈한 외양보다는 본질적인 장점을 집중 부각시킨다. 11월 초 포드는 6기통 엔진에 6단 기어를 장착한 신형 모델 공개 기자회견을 열고 연료 효율성을 7% 개선했다고 발표했다. GM은 6단 기어의 연료 절약형 모델을 대대적으로 선전 중이다. 크라이슬러는 인식이 불가능한 지속적 기어 변속을 통해 연비를 8% 높인 소형차 캘리버 새 모델을 최근 내놓았다.

일본 자동차 회사들은 연비가 높은 도시형 자동차를 미국 시장에 출시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한때 미국은 그런 소형차가 발붙이기에 부적합한 시장으로 간주됐었다. 도요타 야리스, 혼다 피트, 닛산 베르사는 연료 절약 기술을 통해 연비를 40mpg까지 내는 모델을 내년 미국 시장에 선보일 계획이다. 각 업체의 마케팅 부서도 연비를 내세운다. GM은 고속도로 연비 30mpg 이상인 신형 모델들을 선전하기 위해 ‘30 넘는 자동차 타는 사람들’이라는 문구로 전면광고를 게재한다.

그러나 가장 요란을 떠는 신기술은 사실 한 세대 전에 실패한 혁신을 재도입한 것이다. 최근 18개월 사이 크라이슬러·혼다·GM은 경제속도(고속도로 주행 등 일정한 속도 유지가 가능한 상태)에서 실린더 절반이 닫히도록 해 연비를 12% 높인 엔진을 새로 선보였다. GM은 25년 전 에너지 위기 직후 연료 절약을 위해 실린더가 닫히도록 하는 모델 개발에 나섰다. 그러나 그 악명 높은 캐딜락 ‘8-6-4’ 엔진은 오일 누출, 운전대 흔들림, 엔진 고장 등의 부작용이 심해 실패했다.

지금의 GM 공학자들은 선배들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 새로운 주문형 배기량(DOD) V8 엔진을 개발했다. 그 결과 이번에는 실패작이 아니었다. 공학자들은 투박한 기계식 제어장치들을 전자식으로 바꿔 실린더를 모두 작동할지 반만 작동할지를 초 단위로 조절토록 했다. 뉴스위크는 DOD 엔진을 장착한 시보레 임팔라 SS를 시험주행했다. 그 결과 시속 130km로 달리는 동안 잠시 30mpg에 도달했다.

그러나 전체 고속도로 주행시의 평균 연비는 20mpg였다. 프리우스의 연비에는 못 미치지만 미국인들이 몰기 좋아하는 303마력짜리 대형차치고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이 엔진을 단 차를 연간 180만 대 판다”고 GM 공학자 존 리제프스키는 말했다. “지금까지 생산된 하이브리드 차량의 절약분을 다 합친 만큼 연료 절감 효과가 크다”고 했다.

그러나 공학자들이 하이브리드 자동차에서 배운 점도 있다. 운전자들이 연비 정보를 계속 알고 싶어한다는 사실이다. 하이브리드 차 대다수는 계기판에 연비를 표시해 운전자가 시스템을 선택하도록 해준다(내리막길을 내려갈 때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고 연비가 99mpg까지 올라가는 즐거움을 맞보라!). DOD 엔진 차량을 운전할 때도 이 같은 정보가 제공되면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GM과 혼다 차량에는 표시기가 있다. 그러나 지난해 처음 실린더 폐쇄 시스템을 갖춘 헤미 V8모델을 시장에 내놓은 크라이슬러는 고객들이 혼란스러워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계기판에 ‘절약 표시등’을 달지 않기로 했다.

실제로 내가 처음 헤미를 400km 도로주행에서 시운전할 때는 연비가 18mpg로, 미 환경보호청(EPA)의 고속도로 연비 기준인 25mpg를 훨씬 밑돌았다. 그러나 11월 초 나는 헤미 엔진을 장착한 도지 차저를 타고 24mpg를 기록했다. 무엇이 달라져서 그럴까? 크라이슬러의 공학자 그레그 패넌이 차저의 앞유리 안쪽에 ‘iBox’ 정보센터를 부착해 실린더를 모두 작동시킬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주행 정보를 계속 알려줬기 때문에 그런 차이가 생겼다. “앞으로 선보일 모델들에는 절약 표시등을 달 계획”이라고 패넌은 말했다.

또 다른 유망한 연료절약 기술로 CVT(연속자동변속)가 있다. 이를 둘러싼 논란은 계기판에 등 하나 더 설치하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CVT는 기존의 변속장치를 ‘벨트와 도르래’ 시스템으로 바꿔 연비를 10%까지 끌어올린다. 그 시스템은 어떤 기어비(比)에도 계속 조절됨으로써 연료 효율을 극대화한다. 그러나 단계적으로 속도를 조절하는 기존 변속 방식에 익숙해진 일부 운전자는 CVT에 난색을 표한다. 이들은 CVT가 소음이 많으며 차체에 심한 흔들림을 준다고 불평한다. “가속 전 엔진에서 ‘부룽’ 소리가 너무 많이 난다고 고객들이 불평한다”고 도요타의 수석 공학자 데이브 허먼스가 말했다. “고객들은 클러치가 미끄러진다고 생각한다.”

GM과 포드는 새턴 뷰와 포드 500에 장착했던 CVT를 소문 없이 없애는 중이다. 양사는 도요타와 함께 CVT와 같은 연료 절감 효과를 내면서 비용이 싸게 드는 6단 변속기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크라이슬러와 혼다는 보다 자연스러운(일반적인 변속기 같은) 느낌이 들도록 만든 새 CVT를 선보인다. 가장 많이 팔린 CVT 모델인 닛산 무라노 SUV의 성공 비결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무라노를 타면 발의 움직임이 자동차의 움직임에 바로 전달된다”고 닛산 부회장인 잭 콜린스가 말했다. “운전자는 기어를 이리저리 바꾸기를 원치 않는다.”

세계 자동차 제조업체들 사이에서는 지금 엔진 개선이라는 성배(聖杯) 찾기가 진행 중이다. 점화 플러그 없이 시동이 걸리는 엔진을 말한다. 기어에 열광하는 사람들이나 좋아할 목표처럼 들리겠지만 점화 플러그 없이 작동되는 엔진은 연료를 더 깨끗하고 효과적으로 연소하는 동시에 연비를 30∼40% 높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하이브리드 차량에 큰 위협이 된다. 혼다는 그런 엔진 개발에 거의 가까이 다가가 있다. 이 엔진의 이름은 아직 마케팅 부서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균일혼합기압축점화기관’(HCCI)이라 불린다.

GM도 몇 년 내 장착 가능한 원형 모델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HCCI는 디젤 엔진처럼 작동한다. 점화 플러그로 발화하지 않고 공기와 가솔린을 실린더 안에서 압축해 자연 연소되도록 한다. 그러나 HCCI는 가솔린을 완전 연소하기 때문에 매연과 유독가스를 내뿜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이 매연과 유독가스 때문에 디젤 엔진 사용을 억제한다(뉴욕주와 캘리포니아주를 포함한 몇 개 주에서는 디젤 차량 운행을 금한다). 가장 큰 장애물은 HCCI 엔진이 출발 때와 고속주행 때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출발 때와 고속주행 때만 점화 플러그를 쓰도록 하는 게 하나의 가능한 해결책이라고 GM의 공학자들은 말한다. 혼다는 내년 하이브리드 시빅 모델에 4기통 HCCI 시제품 엔진을 선보일지 모른다. 연비가 65mpg에 이를 전망이다. 혼다는 이와 관련된 엔진을 개발 중이라는 사실만 밝힌다.

미래를 바라보는 엔진 실험실의 연구자들이 새로운 큰 도약을 모색 중이지만 풍동에서 일하는 공학도들은 좀 더 사소한 개선을 이뤄낸다. 렉서스의 공기역학 공학자들은 IS 세단의 양쪽 미등에 작은 플라스틱 연결장치를 부착해 공기 저항을 100분의 1 정도 줄였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디자이너들은 물고기들과 헤엄치며 거북복 모양의 바이오닉 컨셉트 카를 만들었다. 이 생체공학적 신개념은 유선형 자동차의 새 표준을 제시한다. 포드의 공기역학 전문가들은 전면의 라디에이터 그릴에 개폐기 설치를 고려 중이다. 고속주행시 개폐기가 닫혀 바람이 부드럽게 후드 위로 지나가도록 한다.

포드의 풍동 안에서 코스터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차 밑의 공기 흐름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링컨 제피르 라디에이터 아래에 부착한 플라스틱 에어 댐(코스터가 개발했다)을 보여줬다. 이 장치로 연비가 10분의 1mpg 높아진다. 포드의 공기역학 연구 책임자인 스티브 웨그린은 “100분의 1의 개선을 얻기 위해 싸우는 마당에 그 정도는 큰 이득”이라고 말했다. 미국산 자동차들이 휘발유를 벌컥벌컥 들이켜는 게 아니라 찔끔찔끔 마시도록 하는 노력의 성패는 이런 작은 성과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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