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 시대의 한파를 이겨낸다
고유가 시대의 한파를 이겨낸다
How to Beat the Big Energy Chill
미 오하이오주 멘터에 사는 지나와 론 마틴 부부의 집은 덩그러니 크기만 하다. 침실 6개에 욕실 5.5개, 휑한 지하실, 널찍한 안뜰에다 뒤뜰엔 수영장까지 있다. 그러나 자영업자(주택건설업)로 일하는 두 부부가 2004년 꿈에 그리던 그 집을 장만할 때만 해도 난방비가 얼마나 많이 오를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지난해 겨울 그들은 전기·가스요금 등으로 한달 평균 400달러를 냈다.
난방용 기름 가격은 지난 두 주 사이 다소 내렸지만 올 겨울엔 전기료 등으로 매달 700달러 지출을 예상한다. 부부는 에너지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한다고 생각하며 많은 전문가도 같은 생각이다. 그래서일까? 부부는 10대 딸 3명이 대학에 진학해 집을 떠나면 집 규모를 줄일 작정이다. “우리는 이 집을 사랑했지만 이젠 싫어졌다. 우린 열심히 사는 중산층 가족인데도 가스요금 청구서만 보면 덜컥 겁부터 난다. 이 같은 현실은 뭔가 크게 잘못됐다”고 지나는 투덜댔다.
지나의 집에서 약 680㎞ 떨어진 곳에선 2주 전 미 상원 에너지위원회와 상무위원회가 공동 개최한 청문회가 열렸다. 그 자리에서 미 5대 석유회사 최고경영자(CEO)들은 소비자 가계에 끼친 고통에도 불구하고 3분기에 최고 수익(328억 달러)을 올린 데는 아무 하자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마틴 부부처럼 셸사의 유가 인상에 충격받은 소비자들에게 별 위안을 주지 못했다. “에너지 산업의 규모와 장기적 성격을 고려하면 임시변통책도, 단기적 해결책도 없다”고 세계 최대 석유회사 엑손 모빌의 CEO 리 레이먼드는 말했다.
이 모든 소란이 지나고 나면 2005년은 미국이 에너지난으로 심각한 고통을 겪은 해로 기록될지 모른다. 지난해 배럴당 50달러로 오른 유가는 한때 70달러까지 치솟으면서 주유소 휘발유값이 심리적 저지선인 갤런당 3달러를 잠시 웃돌았다. 동시에 세계적 온난화의 효과를 의심하던 사람 중 다수도 허리케인, 북극 빙하 감소, 기타 이상 날씨에 직면하면서 화석연료를 태울 때 생기는 온실가스가 지구 기후를 바꾸고 있다는 사실을 마침내 인정했다.
거기에다 “유가의 최고 상한선”, 지구의 석유 공급이 줄어드는 현실, 휘발유를 많이 소비하는 스포츠다목적차량(SUV)의 판매 급락, 그리고 마침내 허리케인 카트리나와 리타가 초래한 이중고를 둘러싼 뜨거운 논쟁까지 가세했다(두 허리케인은 멕시코만의 에너지 기간 시설을 할퀴고 지나가 미국의 석유·가스 생산시설 중 3분의 1이 문을 닫았다).
이 모두가 흥미로운 부수효과를 불러왔다. 대체 에너지 산업이 급부상한 것이다. 미래 에너지 사용량의 1%를 다른 자원에서 조달하도록 규정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주와 국가도 지난 2년간 늘었다. 예컨대 중국은 2주 전 자국의 대체 에너지 이용률을 지금의 7%에서 2020년까지 15%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한편 실리콘밸리의 엔지니어들은 재생 에너지 회사 창업에 나섰고, 관련 기술도 발전을 거듭한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대체 에너지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배럴당 60달러의 고유가 시대는 전에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실험’들을 중요한 해결책으로 둔갑시켰다. 투자회사 뉴 에너지 캐피털의 사장이자 미 에너지부 차관보를 지낸 댄 라이처는 “투자를 대행하는 사람들이 최초로 대체 에너지의 전망에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대체 에너지 산업엔 엄청난 돈이 유입됐다. 미국의 환경 감시단체 월드워치 연구소는 2주 전 전 세계적으로 재생 에너지에 대한 투자는 2004년 최고치인 300억 달러를 기록했다고 보고했다. 풍력·태양·바이오 연료뿐 아니라 지구 열을 이용해 터빈을 돌리는 지열 발전 등의 기술은 현재 전 세계 에너지의 4%를 차지한다. 그래도 아직 미미하다.
그러나 미시간주 클린테크 벤처 네트워크사의 연구자들은 올 들어 지금까지의 투자 추세를 고려할 때 올해엔 지난해 기록이 깨질 듯하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은 이 ‘에너지 폭풍’을 피해갈 모든 방법을 찾는 듯하다. 주식시장에 상장된 재생 에너지 기업의 추세를 추적하는 최초의 지수펀드(종합주가지수가 오르면 수익률도 오르고, 내리면 수익률도 떨어지는 펀드)인 ‘와일더 인덱스’(Wilder Index)는 1년 전 생긴 이래 35%나 올랐다. 카트리나 이후 그 펀드가 끌어들인 투자액은 매달 1000만 달러에서 매주 2500만 달러로 늘었다.
이 펀드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석유와 천연가스 가격이 최근 하락했지만 그럼에도 장기적 수요가 공급을 앞서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오른다는 전망에 기대를 건다. 1970년 미국은 하루 1470만 배럴의 석유를 소비했지만 지금은 2000만 배럴을 소비한다. 석유 생산업체들은 좀처럼 수요를 따라잡을 수 없다. 거기엔 미국이 지난 25년간 정유공장을 한 군데도 짓지 않은 탓도 있다.
그러나 그 때문에 공급시장이 빠듯해지면서 카트리나 등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가격 변동이 요동친다. 새 책 ‘사막의 여명: 다가오는 사우디 오일쇼크와 세계 경제’(Twilight in the Desert: The Coming Saudi Oil Shock and the World Economy)의 저자이자 에너지 금융가인 맷 시몬스는 가까운 장래에 대규모 새 유전을 찾을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우린 운송 능력도 딸리고, 굴착 장비도 모자라며, 새로 개발할 유전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문제만 제외하면 괜찮다”고 덧붙였다.
주요 석유회사들은 이 같은 문제의 심각성과 재생 에너지로의 다원화 필요성을 두고 견해가 엇갈린다. 엑손 모빌의 중역들은 오로지 화석연료에만 집중하겠다고 밝힌 반면 셰브론·셸·BP 등은 수익 중 소규모 비율의 자금을 풍력·태양력·수소 등 대체 에너지에 투자한다. 그러나 이 같은 투자는 막대한 석유 탐사 비용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들 회사 중 일부는 업계의 새로운 현실을 다른 방식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일례로 셰브론은 올해 약 3000만∼4000만 달러를 들인 광고 캠페인(‘우리와 함께 가시겠습니까?’)에 나서면서 “석유를 쉽게 구하던 시절은 끝났다”고 선언했다.
BP는 이제 회사명이 ‘British Petroleum’이 아닌 ‘Beyond Petroleum’(석유를 넘어)이라고 선전한다. 또 지난 5월엔 제너럴 일렉트릭(GE)이 풍력·수질정화 등 일부 사업을 강화하려고 9000만 달러를 들인 친환경 전략(일명 ‘ecomagination’)으로 마케팅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환경운동가들은 이를 ‘그린워싱’(기업의 친환경적 태도를 소비자에게 주입하는 전략)이라며 깎아내린다. 그러나 대체 에너지 기업가 대부분은 이 같은 노력을 환영한다. 이런 노력이 친환경 사업은 돈 벌 기회를 의미한다는 자신들의 믿음을 더 잘 보여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의 엔지니어들은 자신들의 장기(長技)를 펼칠 여건이 무르익었다고 생각한다. 바로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일이다.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태양 에너지 기업을 설립한 열정적 ‘고수’들뿐 아니라, 시애틀 바이오디젤사를 세운 한 인터넷 업체의 CEO는 대체 에너지 분야에선 인터넷과 컴퓨터 업계를 송두리째 바꾼 기술들처럼 기존의 패러다임을 깨는 기술이 너무 부족했다고 주장한다.
대체 에너지의 최일선에선 활발한 활동이 일어난다. 일례로 지난 10년간 전망이 기껏해야 오락가락한 풍력 산업의 예를 보자. 덴마크의 베스타스 윈드 시스템스와 GE의 풍력사업 부문은 현재 주문이 엄청나게 밀렸다. 풍력의 인기는 경제원리로 간단히 알 수 있다. 대개 천연가스를 이용해 생산한 전력은 미 대부분의 지역에서 ㎾당 소매가가 약 9센트였다. 그러나 풍력으로 생산된 전력은 주정부의 환급금과 연방정부의 세금 혜택을 받기 때문에 생산 비용이 상쇄돼 현재 ㎾당 5센트 이하에 거래된다.
2년 전만 해도 천연가스는 값이 싼 반면 풍력은 비쌌다. 이젠 정반대다. 이 때문에 캘리포니아주 샌타바버라의 클리퍼 윈드파워 같은 신생업체들엔 주문 전화가 쇄도한다. 그 회사는 차세대 터빈 기술을 개발 중이다. 창립자 짐 델슨은 “전통적으로 화석연료만 써온 주요 전력 생산 회사 중 일부가 생각을 확 바꾸는 사례가 지난해 특히 두드러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생 에너지 회사들은 아직 힘든 일이 남아 있다. 만일 대규모 유전이 수십 년 안에 새로 발견돼 유가가 하락하면 재생 에너지에 대한 관심도 낮아질지 모른다. 실제로 70년대 오일쇼크 후 유가는 곤두박질쳤다. 이 같은 시나리오는 쉽게 되풀이될 수 있다. 재생 에너지를 훌륭한 투자 대상으로 만드는 경제적 조건 자체가 석유와 천연가스의 새로운 탐사 기회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캐나다 앨버타주의 사막에서 원유가 함유된 유사(油砂)를 채굴하고, 베네수엘라에서 새로 발견된 원유를 정유하거나, 천연가스로부터 액화연료를 직접 합성하는 방법은 모두 비용과 에너지가 많이 드는 기술로 여겨졌었다.
그러나 유가가 워낙 높은 지금은 오히려 이런 방법이 경제적일 뿐 아니라 석유 산업의 규모를 키우는 주요 방법이 됐다. 언뜻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기후변화도 북극 석유 탐사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다. 석유·가스 탐사 컨설턴트인 그레그 크로프는 “업계는 알래스카의 뷰포트해, 러시아의 바렌츠해와 카라해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물론 빙하가 녹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결정적 이유는 아니다”고 말했다.
석유회사들은 또 근해 해저를 보다 깊이 파고 싶어한다. 그러나 높은 휘발유값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폭넓은 저항에 부닥친 듯하다. 2주 전 미 공화당 지도자들은 북극 국립야생동식물 보호지구와 대서양 및 태평양 근해의 심해에서 유정을 뚫으려는 오랜 염원을 (당장은) 포기했다.
그러나 석유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대체 에너지든, 화석연료든 간에 새로운 에너지원이 필요할 듯하다. 뿐만 아니라 셰브론의 CEO 데이브 오라일리가 지적한 ‘보존 노력’도 필요하다(그는 이를 “가장 값싼 추가 에너지 공급원”이라고 표현했다). 발광소자(LED)를 이용한 조명, 기능은 향상되지만 전기는 절약되는 제품, 그리고 요즘 최고 인기 품목인 휘발유·전기 겸용 승용차 등 에너지 효율이 높은 각종 제품이 최근 시장을 강타했다.
재생 에너지로 생산된 전기로 만든 제품들에 친환경 인증(‘green E’)을 해주는 샌프란시스코의 자원솔루션센터(Center for Resource Solutions)는 자신을 친환경 기업으로 알리려는 회사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센터의 직원 5명에겐 프리토·페덱스·킹코스·스테이플스·스타벅스 등 기업들로부터 매주 20∼40건의 인증 요청이 쇄도한다(지난해 매주 5건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친환경적인 모습은 멋있는 듯 보인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올 겨울 난방용 기름 가격이 불가피하게 오르고, 경제 사정이 쪼들리는 가족이 늘어날수록 대체 에너지는 적어도 앞날의 구원을 약속하기 때문이다. 태양·바람·바이오연료·수소가 당장 다음달 가계에 도움을 주진 못하겠지만 이런 기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보다 장기적이고 보다 큰 보상을 염두에 둔다.
With JOAN RAYMOND in Cleveland
강태욱 tkang@joongang.co.kr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미 오하이오주 멘터에 사는 지나와 론 마틴 부부의 집은 덩그러니 크기만 하다. 침실 6개에 욕실 5.5개, 휑한 지하실, 널찍한 안뜰에다 뒤뜰엔 수영장까지 있다. 그러나 자영업자(주택건설업)로 일하는 두 부부가 2004년 꿈에 그리던 그 집을 장만할 때만 해도 난방비가 얼마나 많이 오를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지난해 겨울 그들은 전기·가스요금 등으로 한달 평균 400달러를 냈다.
난방용 기름 가격은 지난 두 주 사이 다소 내렸지만 올 겨울엔 전기료 등으로 매달 700달러 지출을 예상한다. 부부는 에너지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한다고 생각하며 많은 전문가도 같은 생각이다. 그래서일까? 부부는 10대 딸 3명이 대학에 진학해 집을 떠나면 집 규모를 줄일 작정이다. “우리는 이 집을 사랑했지만 이젠 싫어졌다. 우린 열심히 사는 중산층 가족인데도 가스요금 청구서만 보면 덜컥 겁부터 난다. 이 같은 현실은 뭔가 크게 잘못됐다”고 지나는 투덜댔다.
지나의 집에서 약 680㎞ 떨어진 곳에선 2주 전 미 상원 에너지위원회와 상무위원회가 공동 개최한 청문회가 열렸다. 그 자리에서 미 5대 석유회사 최고경영자(CEO)들은 소비자 가계에 끼친 고통에도 불구하고 3분기에 최고 수익(328억 달러)을 올린 데는 아무 하자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마틴 부부처럼 셸사의 유가 인상에 충격받은 소비자들에게 별 위안을 주지 못했다. “에너지 산업의 규모와 장기적 성격을 고려하면 임시변통책도, 단기적 해결책도 없다”고 세계 최대 석유회사 엑손 모빌의 CEO 리 레이먼드는 말했다.
이 모든 소란이 지나고 나면 2005년은 미국이 에너지난으로 심각한 고통을 겪은 해로 기록될지 모른다. 지난해 배럴당 50달러로 오른 유가는 한때 70달러까지 치솟으면서 주유소 휘발유값이 심리적 저지선인 갤런당 3달러를 잠시 웃돌았다. 동시에 세계적 온난화의 효과를 의심하던 사람 중 다수도 허리케인, 북극 빙하 감소, 기타 이상 날씨에 직면하면서 화석연료를 태울 때 생기는 온실가스가 지구 기후를 바꾸고 있다는 사실을 마침내 인정했다.
거기에다 “유가의 최고 상한선”, 지구의 석유 공급이 줄어드는 현실, 휘발유를 많이 소비하는 스포츠다목적차량(SUV)의 판매 급락, 그리고 마침내 허리케인 카트리나와 리타가 초래한 이중고를 둘러싼 뜨거운 논쟁까지 가세했다(두 허리케인은 멕시코만의 에너지 기간 시설을 할퀴고 지나가 미국의 석유·가스 생산시설 중 3분의 1이 문을 닫았다).
이 모두가 흥미로운 부수효과를 불러왔다. 대체 에너지 산업이 급부상한 것이다. 미래 에너지 사용량의 1%를 다른 자원에서 조달하도록 규정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주와 국가도 지난 2년간 늘었다. 예컨대 중국은 2주 전 자국의 대체 에너지 이용률을 지금의 7%에서 2020년까지 15%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한편 실리콘밸리의 엔지니어들은 재생 에너지 회사 창업에 나섰고, 관련 기술도 발전을 거듭한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대체 에너지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배럴당 60달러의 고유가 시대는 전에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실험’들을 중요한 해결책으로 둔갑시켰다. 투자회사 뉴 에너지 캐피털의 사장이자 미 에너지부 차관보를 지낸 댄 라이처는 “투자를 대행하는 사람들이 최초로 대체 에너지의 전망에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대체 에너지 산업엔 엄청난 돈이 유입됐다. 미국의 환경 감시단체 월드워치 연구소는 2주 전 전 세계적으로 재생 에너지에 대한 투자는 2004년 최고치인 300억 달러를 기록했다고 보고했다. 풍력·태양·바이오 연료뿐 아니라 지구 열을 이용해 터빈을 돌리는 지열 발전 등의 기술은 현재 전 세계 에너지의 4%를 차지한다. 그래도 아직 미미하다.
그러나 미시간주 클린테크 벤처 네트워크사의 연구자들은 올 들어 지금까지의 투자 추세를 고려할 때 올해엔 지난해 기록이 깨질 듯하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은 이 ‘에너지 폭풍’을 피해갈 모든 방법을 찾는 듯하다. 주식시장에 상장된 재생 에너지 기업의 추세를 추적하는 최초의 지수펀드(종합주가지수가 오르면 수익률도 오르고, 내리면 수익률도 떨어지는 펀드)인 ‘와일더 인덱스’(Wilder Index)는 1년 전 생긴 이래 35%나 올랐다. 카트리나 이후 그 펀드가 끌어들인 투자액은 매달 1000만 달러에서 매주 2500만 달러로 늘었다.
이 펀드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석유와 천연가스 가격이 최근 하락했지만 그럼에도 장기적 수요가 공급을 앞서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오른다는 전망에 기대를 건다. 1970년 미국은 하루 1470만 배럴의 석유를 소비했지만 지금은 2000만 배럴을 소비한다. 석유 생산업체들은 좀처럼 수요를 따라잡을 수 없다. 거기엔 미국이 지난 25년간 정유공장을 한 군데도 짓지 않은 탓도 있다.
그러나 그 때문에 공급시장이 빠듯해지면서 카트리나 등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가격 변동이 요동친다. 새 책 ‘사막의 여명: 다가오는 사우디 오일쇼크와 세계 경제’(Twilight in the Desert: The Coming Saudi Oil Shock and the World Economy)의 저자이자 에너지 금융가인 맷 시몬스는 가까운 장래에 대규모 새 유전을 찾을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우린 운송 능력도 딸리고, 굴착 장비도 모자라며, 새로 개발할 유전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문제만 제외하면 괜찮다”고 덧붙였다.
주요 석유회사들은 이 같은 문제의 심각성과 재생 에너지로의 다원화 필요성을 두고 견해가 엇갈린다. 엑손 모빌의 중역들은 오로지 화석연료에만 집중하겠다고 밝힌 반면 셰브론·셸·BP 등은 수익 중 소규모 비율의 자금을 풍력·태양력·수소 등 대체 에너지에 투자한다. 그러나 이 같은 투자는 막대한 석유 탐사 비용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들 회사 중 일부는 업계의 새로운 현실을 다른 방식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일례로 셰브론은 올해 약 3000만∼4000만 달러를 들인 광고 캠페인(‘우리와 함께 가시겠습니까?’)에 나서면서 “석유를 쉽게 구하던 시절은 끝났다”고 선언했다.
BP는 이제 회사명이 ‘British Petroleum’이 아닌 ‘Beyond Petroleum’(석유를 넘어)이라고 선전한다. 또 지난 5월엔 제너럴 일렉트릭(GE)이 풍력·수질정화 등 일부 사업을 강화하려고 9000만 달러를 들인 친환경 전략(일명 ‘ecomagination’)으로 마케팅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환경운동가들은 이를 ‘그린워싱’(기업의 친환경적 태도를 소비자에게 주입하는 전략)이라며 깎아내린다. 그러나 대체 에너지 기업가 대부분은 이 같은 노력을 환영한다. 이런 노력이 친환경 사업은 돈 벌 기회를 의미한다는 자신들의 믿음을 더 잘 보여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의 엔지니어들은 자신들의 장기(長技)를 펼칠 여건이 무르익었다고 생각한다. 바로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일이다.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태양 에너지 기업을 설립한 열정적 ‘고수’들뿐 아니라, 시애틀 바이오디젤사를 세운 한 인터넷 업체의 CEO는 대체 에너지 분야에선 인터넷과 컴퓨터 업계를 송두리째 바꾼 기술들처럼 기존의 패러다임을 깨는 기술이 너무 부족했다고 주장한다.
대체 에너지의 최일선에선 활발한 활동이 일어난다. 일례로 지난 10년간 전망이 기껏해야 오락가락한 풍력 산업의 예를 보자. 덴마크의 베스타스 윈드 시스템스와 GE의 풍력사업 부문은 현재 주문이 엄청나게 밀렸다. 풍력의 인기는 경제원리로 간단히 알 수 있다. 대개 천연가스를 이용해 생산한 전력은 미 대부분의 지역에서 ㎾당 소매가가 약 9센트였다. 그러나 풍력으로 생산된 전력은 주정부의 환급금과 연방정부의 세금 혜택을 받기 때문에 생산 비용이 상쇄돼 현재 ㎾당 5센트 이하에 거래된다.
2년 전만 해도 천연가스는 값이 싼 반면 풍력은 비쌌다. 이젠 정반대다. 이 때문에 캘리포니아주 샌타바버라의 클리퍼 윈드파워 같은 신생업체들엔 주문 전화가 쇄도한다. 그 회사는 차세대 터빈 기술을 개발 중이다. 창립자 짐 델슨은 “전통적으로 화석연료만 써온 주요 전력 생산 회사 중 일부가 생각을 확 바꾸는 사례가 지난해 특히 두드러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생 에너지 회사들은 아직 힘든 일이 남아 있다. 만일 대규모 유전이 수십 년 안에 새로 발견돼 유가가 하락하면 재생 에너지에 대한 관심도 낮아질지 모른다. 실제로 70년대 오일쇼크 후 유가는 곤두박질쳤다. 이 같은 시나리오는 쉽게 되풀이될 수 있다. 재생 에너지를 훌륭한 투자 대상으로 만드는 경제적 조건 자체가 석유와 천연가스의 새로운 탐사 기회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캐나다 앨버타주의 사막에서 원유가 함유된 유사(油砂)를 채굴하고, 베네수엘라에서 새로 발견된 원유를 정유하거나, 천연가스로부터 액화연료를 직접 합성하는 방법은 모두 비용과 에너지가 많이 드는 기술로 여겨졌었다.
그러나 유가가 워낙 높은 지금은 오히려 이런 방법이 경제적일 뿐 아니라 석유 산업의 규모를 키우는 주요 방법이 됐다. 언뜻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기후변화도 북극 석유 탐사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다. 석유·가스 탐사 컨설턴트인 그레그 크로프는 “업계는 알래스카의 뷰포트해, 러시아의 바렌츠해와 카라해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물론 빙하가 녹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결정적 이유는 아니다”고 말했다.
석유회사들은 또 근해 해저를 보다 깊이 파고 싶어한다. 그러나 높은 휘발유값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폭넓은 저항에 부닥친 듯하다. 2주 전 미 공화당 지도자들은 북극 국립야생동식물 보호지구와 대서양 및 태평양 근해의 심해에서 유정을 뚫으려는 오랜 염원을 (당장은) 포기했다.
그러나 석유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대체 에너지든, 화석연료든 간에 새로운 에너지원이 필요할 듯하다. 뿐만 아니라 셰브론의 CEO 데이브 오라일리가 지적한 ‘보존 노력’도 필요하다(그는 이를 “가장 값싼 추가 에너지 공급원”이라고 표현했다). 발광소자(LED)를 이용한 조명, 기능은 향상되지만 전기는 절약되는 제품, 그리고 요즘 최고 인기 품목인 휘발유·전기 겸용 승용차 등 에너지 효율이 높은 각종 제품이 최근 시장을 강타했다.
재생 에너지로 생산된 전기로 만든 제품들에 친환경 인증(‘green E’)을 해주는 샌프란시스코의 자원솔루션센터(Center for Resource Solutions)는 자신을 친환경 기업으로 알리려는 회사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센터의 직원 5명에겐 프리토·페덱스·킹코스·스테이플스·스타벅스 등 기업들로부터 매주 20∼40건의 인증 요청이 쇄도한다(지난해 매주 5건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친환경적인 모습은 멋있는 듯 보인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올 겨울 난방용 기름 가격이 불가피하게 오르고, 경제 사정이 쪼들리는 가족이 늘어날수록 대체 에너지는 적어도 앞날의 구원을 약속하기 때문이다. 태양·바람·바이오연료·수소가 당장 다음달 가계에 도움을 주진 못하겠지만 이런 기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보다 장기적이고 보다 큰 보상을 염두에 둔다.
With JOAN RAYMOND in Cleveland
강태욱 t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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