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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의 고려인 사업가] 카레이츠 하라쇼!(Korean is good)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사업가] 카레이츠 하라쇼!(Korean is good)

지난 1일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김 블라디미르 ‘카작무스’ 사장과 서방 은행장 및 세계적 투자 펀드의 대표들을 접견했다. 이번 만남에서는 ‘카작무스’의 발전 전망에 대한 협의와 향후 투자 문제가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카자흐스탄의 대표적 신문인 ‘카즈프라우다’지가 지난 11월 2일자에 보도한 내용의 일부다. 이 기사에 등장하는 ‘김 블라디미르’와 그가 사장으로 있는 ‘카작무스’에 대해 알고 있는 독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당시 ‘카즈프라우다’지를 보면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카자흐스탄의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런던 주식시장에 카작무스의 주식이 성공적으로 등록됐다는 것을 알고 몹시 기뻤고, 이는 카자흐스탄 광물자원 개발을 위해 이미 수천만 달러를 유치한 것과 같다’고 말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카작무스’가 어떤 기업이기에 영국의 블레어 총리가 카자흐스탄의 대통령에게 편지까지 보내는 것일까?

英 총리도 감탄한 고려인 “카스피해의 텡기즈 유전과 함께 카자흐스탄이 가진 10가지 보물들 중 하나”라는 아이나벡(38) 카자흐스탄 경제대학 교수의 말처럼 45억 달러의 자본을 소유한 세계 5대 구리 생산 회사의 하나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체불 임금과 만성 적자에 허덕이는 다른 콤비나트(기술적 연관이 있는 여러 생산 부문이 근접 입지해 형성된 기업의 지역적 결합체. 소련식 공단으로 볼 수 있다)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이러한 회사를 오늘의 ‘카작무스’로 발전시키기까지는 ‘김 블라디미르 사장’과 삼성물산이 있었다. 수억 달러의 지분을 보유한 김 블라디미르 사장은 삼성물산이 5년간 위탁경영을 하도록 주선했다. 1995년부터 2000년까지 삼성물산의 해외법인들이 벌어들이는 수입의 약 45%를 이 회사가 차지했을 정도였다. 지난 6월 “카자흐스탄도 맨해튼을 가져야겠다”고 다소 황당한 말을 한 남올렉. 그는 알마티의 ‘사이란’ 호숫가에 ‘맨해튼’이라고 명명된 대규모 아파트단지 건설을 시작함으로써 5개월 전에 한 자신의 말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그는 LG상사를 통해 한국의 건축공법과 건자재를 수입하여 카자흐스탄 아파트 건설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그래서 그가 운영하는 ‘쿠아트’는 카자흐스탄 건설 분야에서의 시장 점유율이 8%가 됐고 아스타나·알마티·악타우·우랄스크에 직원 9000명을 고용하고 있는 최대 규모의 건설사로 발전했다.

▶김 블라디미르 사장은 카자흐스탄 최대 동광산을 영국 증시에 상장시켰다.


▶카자흐스탄 최대 동광산 카직무스 전경.

중앙아시아 어디를 다녀도 공항에서부터 우리를 반기는 눈에 익은 광고판이 있다. 바로 LG전자·삼성전자·대우전자 등 국내 가전 3사의 광고판이다. 카자흐스탄 알마티도 예외는 아니어서 국내 가전업체들이 이곳 가전시장을 좌지우지할 정도다. 일본의 업체들조차 국내 기업들의 마케팅 기법과 시장 점유율을 부러워 할 정도다.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플라니에타·술박·테크노돔(여기서는 ‘빅3’라고 부른다)이라는 카자흐스탄 가전 딜러들과 이들을 지원, 활용한 우리 업체들의 현지화 전략이 있었다. 이들 ‘빅3’는 모두 고려인이 사장이다. 카자흐스탄 메데우 댐 공사를 한 허가이 알렉세이(76). 건설부 차관을 역임한 그는 카자흐스탄 최대의 댐 공사에 특이한 공법을 사용하여 세계 각국의 토목 공학자들을 감탄케 했다. 벌써 30년이 더 지난 일이지만. 해발 2000m 산속에 건설해야 하고 지진과 진흙사태가 자주 일어나는 알마티의 지질조건 속에서 그는 협곡 좌우에 있는 높은 산을 폭파시켜 산에서 쏟아져 내린 흙과 돌로 댐을 막는 공법을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가전딜러 빅3도 고려인 “산을 무너뜨려 100m 높이의 댐을 막는 공법을 선보인다고 해서 세계적으로 큰 화제가 됐습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와 일본 유네스코에서 견학도 오고 모스크바에서 전문가들이 배우러 오기도 했습니다”라고 말하는 허가이 알렉세이는 이 공로로 국가 공로훈장을 받았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영빈관에서 75세 생일을 직접 베풀어주었을 정도로 국가적인 존경의 대상이다. 당시 그의 생일이 방송에 사진과 함께 크게 소개되어 고려인의 위상을 한껏 높였다. 그는 옛 소련이 붕괴된 후 모스크바를 경유해 돌아오던 기존의 항공노선 대신 서울∼알마티 간 직항로를 열어 우리 기업의 출장자들이 6시간 만에 서울과 알마티를 다녀올 수 있게 했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최유리 회장은 카자흐스탄 고려인의 대표적 성공 사례다. 현재 그는 제분, 전자제품 조립, 제약, 은행 등을 거느린 거대 그룹의 회장이다. 앞에서 예를 든 다섯 가지 사례는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당한 후 잡초처럼 다시 일어난 고려인들의 활약상 중 극히 일부만 소개한 것이다. 이 외에도 정치·경제·문화·과학·스포츠계에서 두각을 드러낸 많은 고려인이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시골 콜호스(협동농장의 러시아말)에서부터 카자흐스탄 초원에 이르기까지 부지런하고 근면한 것으로 따진다면 ‘카레이츠’를 따라올 민족이 없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자랑스러워 할 수만은 없는 우리의 아픈 현대사가 원인이 되었지만, 중앙아시아 어디를 가나 고려인에 대한 평이 나쁜 곳이 없다. 아니 옛 소련 지역에 있는 약 130개 민족 중 타민족의 모범으로 칭송받고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중앙아시아 지역의 농업 발전에 끼친 고려인들의 영향은 절대적이다. 아랄해에서 불어오는 소금바람 때문에 아무런 작물도 재배하기 어려운 크질오르다 지역에서도 벼농사를 성공시켰고, 기후가 따뜻한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 주변 지역은 곡창지대로 만들었다. 모스크바인들이 먹는 수박과 참외·양파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에서 올라간 것인데, 대부분 고려인이 생산한 것이다. 또 흐루시초프가 미국을 방문해 옥수수 농장을 보고 온 뒤 시작한 중앙아시아 초원과 시베리아 처녀지 개발 프로젝트의 주요 주인공들도 다름 아닌 바로 ‘고려인’들이었다. 옛 소련 시절, 집단농장 노력영웅 1200명 중 고려인이 750명을 차지하였다는 것은 이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당한 후 생존을 위해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았는지를 대변해 준다. 이런 삶 속에서도 자신들의 문화를 간직했다. 오히려 주변 민족들에게 그 문화를 전해주었다. 대표적인 것이 ‘김치’인데,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의 최대 농산물 도소매 시장인 ‘쿠일륙’시장, 카자흐스탄 알마티의 ‘질료니 바자르’뿐 아니라 조그마한 동네 시장과 알마티의 ‘람스토르’ 같은 대형 수퍼마켓에서도 김치·당근채·두부·훈초자(고려식 잡채)를 사먹을 수 있다. 외국어대학교 박넬리(한국어과 학과장) 교수는 “러시아 사람들 잔칫상에도 우리 고려 짐치(김치의 함경도식 발음)와 당근채가 올라가지 않으면 아무리 잘 차린 음식상일지라도 제대로 차린 잔칫상이라고 하지 않소. 카레이스키 샐러드는 모든 민족이 다 좋아하는 음식이오. 그리고 비싸오”라며 김치가 이미 고려인들만의 것이 아닌 2억 명이 훨씬 넘는 옛 소련 지역 민족들에게 보편화한 음식이 됐음을 말해주었다.

우즈베크 농업 일군 고려인 카자흐스탄에서 “어디서 오셨어요?”라는 질문은 자신의 출신 부족을 묻는 질문이다. ‘믈라드시 주스’ ‘스레드니 주스’ ‘스타르시 주스’등 세 부족 중 자신이 속한 부족명을 말하게 되는데, 최근 네 번째 부족이 생겼다고 한다. 바로 ‘카레이스키 주스’다. 이는 친밀감의 표시 중 최고의 표현이다. 실제로 카자흐인들 집안을 보면 사위·며느리 중 한 명은 고려인들이 있을 정도다.

▶카자무스에서 생산된 구리.

이러한 고려인들의 근면, 성실한 이미지는 옛 소련 붕괴 후 이 지역에 진출한 한국과 한국 기업에 대한 이미지로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만약, 고려인들이 손가락질받는 천덕꾸러기 민족이었다면 한국 제품도 싸구려라는 선입견이 박히기 쉬웠을 것이고 이런 이미지를 벗기 위해 각 기업들은 얼마의 돈을 쏟아부어야 할까? 이런 측면에서 우리 기업들은 고려인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역사적 은혜’를 입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박넬리 교수는 “카자흐스탄 사람들이 한국의 경제성장을 알기 때문에 우리를 헤프게 보지 않는다. 이곳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선진국 못지않은 제품과 실력을 보여줘 우리의 위신도 올라갔다”며 감사를 표했다. 알마티 시내에서 만난 볼랏(28)은 “한국인과 한국 기업의 진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한국의 기술과 자본은 우리 카자흐스탄의 경제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된다. IT 분야의 발전은 정말 놀랍다”고 대답한 뒤 “카레이츠 하라쇼(Korean is good)”라고 엄지손가락을 위로 세워 보였다. 한국 기업의 진출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할 뿐 아니라 대부분의 국민이 ‘한강의 기적’을 알고 있고 한국과 한국 기업의 진출이 자신들 나라를 그렇게 변화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일종의 기대감을 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 삼성·LG는 한국 기업의 이미지를 벗어나 이미 국제적 기업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브릭스(BRICs )국가 중 하나인 러시아 시장을 석권하기 위해서는 관세동맹을 맺고 있어 경제적으로 한 나라나 마찬가지고 모든 비용이 저렴한 중앙아시아에 먼저 튼튼한 거점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여기가 사회주의 체제였고 한국은 자본주의 체제였다는 단순한 사실을 망각하지 않고 현지 사회의 생활수준, 문화, 풍습과 전통, 사고 방식, 취미를 잘 파악한다면 중앙아시아에서 우리 기업들은 고려인들을 교두보 삼아 승승장구할 것이다.

고려인들의 웃지 못할 성(姓)
“허가입니다”하다보니 ‘허가이’姓 만들어져
독립국가연합(CIS)을 다니다 보면 고려인 중 허가이, 유가이, 박가이 등 왠지 익숙한 성을 만날 수 있다. 취재 중에 만난 유가이 로버트 (Robert Yugai), 허가이 알렉세이(Aleksei Hugai) 등이 그런 경우다. 다들 눈치챌 수 있지만 이들의 성은 원래 ‘유’씨나 ‘허’씨다. 하지만 옛 소련 시절, 우리나라 주민등록처럼 인민들을 행정기관에서 등록하는 작업이 있었다. 당시 소련 정부기관에 불려간 고려인들은 “성이 뭐냐?”고 물으면 “허가입니다” “유가입니다” “박가입니다” 이렇게 대답했다. 한국말 어미를 ‘~니다’로 알고 있었던 러시아 사람들이 이들의 성을 ‘허가이, 유가이, 박가이’로 등록한 것. 고려인들의 역사에는 이런 에피소드가 수없이 담겨 있다. 현재 CIS 내 고려인 수는 임시 체류자 2100여 명을 포함해 총 40여만 명이다. 국가별로는 러시아에 10만여 명, 우즈베키스탄에 20만여 명, 키르기스스탄에 2만여 명, 카자흐스탄에 2만여 명, 우크라이나에 9000여 명, 벨로루시에 2000여 명, 몰도바에 350명, 그루지야에 250명, 아제르바이잔에 100명, 아르메니아에 30명이 거주하고 있다. ‘고려인’은 CIS 내에 거주하는 한인 동포들을 총체적으로 일컫는 용어다. 러시아어로는 ‘카레이스키’라고 하며, 고려족 또는 고려사람이라고도 한다. 한국인들이 러시아로 이주하기 시작한 것은 1863년(철종 14년)으로, 농민 13가구가 한겨울 밤에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 우수리강 유역에 정착하였다. 이어 1865년(고종 2년)에 60가구, 그 다음해에 100여 가구 등으로 점차 늘어나 1869년에는 4500여 명에 달하는 한인이 이주하였다. 이후로도 이민은 계속되었는데, 거의가 농업 이민이었으나 항일 독립운동가들의 망명 이민도 있었다. 그러나 스탈린의 이른바 대숙청 당시 연해주 지방의 한인들은 유대인·체첸인 등 소수민족과 함께 가혹한 분리·차별정책에 휘말려 1937년 9월 9일부터 10월 말까지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됐다. 이들은 화물열차에 짐짝처럼 실려 중앙아시아의 황무지에 내팽개쳐졌다. 당시 고려인 수는 17만5000여 명으로, 이 가운데 1만1000여 명이 도중에 숨졌다. 그러나 고려인들은 강한 생명력을 바탕으로 중앙아시아의 황무지를 개척하고 한인집단농장을 경영하는 등 소련 내 소수민족 가운데서도 가장 잘사는 민족으로 뿌리를 내렸다. 그러다 92년 1월 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 외에 11개 독립국가로 분리되면서 고려인들이 거주하는 국가에서는 배타적인 민족주의 운동이 확산되었다. 우즈베키스탄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로 인해 고려인들은 직장에서 추방당하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자 다시 연해주 지방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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