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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도심형’쇼핑몰이 인기

한국은 ‘도심형’쇼핑몰이 인기

한 달에 한번쯤은 계모임 하러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에 간다. 영화보는 데 2시간, 식사에 1시간, 쇼핑하며 둘러보는 데 1시간, 차 마시는 데 1시간, 5시간은 즐겁게 보낸다.”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사는 주부 이영희(37)씨는 코엑스몰 애호가다. 친구들과 잡담하며 한나절 즐기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 인기 음식점이나 커피 전문점에선 줄을 서야 하지만 다양한 욕구가 한꺼번에 해결된다는 이유만으로도 즐겨 찾는다. 코엑스몰엔 이씨 같은 사람이 주중 7만~9만 명, 주말엔 10만~12만 명 정도다. 이씨는 “쇼핑이라면 굳이 여기까지 올 필요 없다. 집 근처의 백화점이나 할인점에서 해결할 수 있다. 이곳에 오는 이유는 한가하게 즐기기 위해서다.” 2006년이면 한국 유통시장이 완전 개방된 지 만 10년이다. 그동안 한국 유통시장은 대형화·국제화·기업화라는 시대적 흐름을 탔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외국계 할인점들이 대거 진출한 할인점 시장의 유통업계 평정이다. 할인점 시장은 2003년 말을 기준으로 매출액 19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17조4000억원에 그친 백화점을 처음 앞질렀다. 2004년 할인점 점포는 274개, 매출 21조5000억원으로 백화점과 격차를 더 벌렸다. 이제 할인점 포화론까지 대두한다. 그 타개책의 일환으로 쇼핑몰이 부상했다. 쇼핑몰이란 소비자가 편하게 좀 더 오랜시간 머물도록 계획적으로 소매점을 집적시킨 ‘유통업태’를 말한다. 백화점·할인점에다 영화관·음식점 등이 한데 모여 쇼핑·관광·유흥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한다. 단순히 물건을 파는 데 그치지 않고 체험과 재미까지 제공해 고객을 끌어모은다. 숙명여대 서용구 교수(경영학)는 “즐거움, 가치, 개성 등 디지털 시대의 소비자가 추구하는 다양한 개념들이 유통산업에서의 ‘업태 파괴’내지 ‘업태의 융합’을 가속화한다”며 한국 유통의 새로운 흐름을 ‘복합화’로 정의했다. “쇼핑몰은 유통 업태의 최종 발전 단계이자 쇼핑 문화의 종착역이다.” 지금은 할인점이 유통 분야를 과점하고 있으나 조만간 전자상거래나 카테고리 킬러(특정 상품만 대량 취급함으로써 동종 판매업체들에 타격을 주는 업체) 시장이 성장하고, 궁극적으로는 이들 업체가 융합하는 현상이 빚어질 전망이다. 삼성경제연구소도 2001년 ‘엔터테인먼트형 쇼핑몰의 등장과 전망’이란 보고서에서 “소매업과 엔터테인먼트의 만남은 21세기 소매 유통업의 추세”라고 진단했다. 소비자들의 제한된 시간과 활동능력, 소비능력 등을 놓고 수많은 소매점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기 때문에 엔터테인먼트의 제공은 필수라고 보고서는 밝혔다. 한국에는 아직 미국 미네소타주의 ‘몰 오브 아메리카’나 뉴욕의 ‘우드베리 아웃렛’과 같은 ‘교외형’ 쇼핑몰은 없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는 돼야 교외형 쇼핑몰 수요가 발생한다”고 산업연구원 백인수 박사는 말했다. “당장 한국에서 교외형 쇼핑몰이 생기기는 어려울 것 같다.”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아직 약하다는 얘기다. 게다가 교통체증과 용지난 때문에 교외형 쇼핑몰이 구조적으로 수익성을 보장받기 어렵다. 롯데백화점 홍보실의 임형우 매니저는 “신규사업팀에서 교외형 쇼핑몰을 검토 중이나 구체적인 진전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 홍보실 김진영 과장도 “새로 짓는 교외형 쇼핑몰에 어지간한 자본을 들여서는 과천 서울랜드나 용인 에버랜드에 맞서 비교우위를 확보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도심형’ 쇼핑몰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서울 삼성동의 코엑스몰이나 강남의 센트럴시티, 명동의 밀리오레, 일산의 라페스타 등이 대표적이다. 몰의 길이가 800m에 달하는 삼성동 코엑스몰은 연간 이용객이 3000만 명을 넘어섰으며, 입점업체들의 매출도 60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박종천 (주)코엑스 전무는 “16개 상영관을 가진 메가박스와 당시 국내에서는 하나밖에 없던 수족관을 유치한 게 주효했다”고 말했다. 코엑스는 개관 당시 미국 미네소타주의 세계 최대 쇼핑몰인 ‘몰 오브 아메리카’에서 대규모 수족관의 집객(集客) 능력을, 일본 후쿠오카(福岡)시의 ‘카날 시티’에서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벤치마킹했다. 2000년 6월 문을 연 명동 밀리오레 역시 패션 액세서리 쇼핑 기능에 더해 ‘국내 최초의 개인 영화관’을 표방하는 DMS(Digital Media Service)영화관, 치과·피부과 등 4곳의 개인병원, 푸드 코트, 뷰티숍, 피트니스 센터 등이 한데 모여 600억원의 연간 매출을 올렸다. 2006년 완공 예정으로 서대문구 신촌동 신촌 민자역사에 건립되는 밀리오레는 패션 쇼핑몰에다 영화관, 패밀리 레스토랑, 녹지공원, 문화공간 등을 묶는 환경친화형 복합쇼핑 공간을 내세운다. 이 밖에 영화관·웨딩홀·사우나·수영장 등 편의시설을 갖춘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이나 김포공항의 테크노스카이시티 등도 주거지역을 낀 복합쇼핑몰의 한 형태다. 지방에서도 복합쇼핑몰은 지역사회의 소비와 오락, 유통의 중심부로 진입 중이다. 부산 해운대에는 ‘멋지게 놀자-스펀지’라는 슬로건 아래 쇼핑·영화관·서점·외식시설을 갖춘 ‘스펀지’가 있다. 지역사회 최초의 ‘엔터테인먼트 쇼핑몰’을 표방하는 스펀지는 부산 시민들에게 백화점이나 할인점이 못했던 다양한 볼거리를 선보인다. 대구에서도 동화백화점 수성점과 롯대백화점 대구점, 액슨밀라노, 이마트 칠성점 등이 영화관을 같은 건물에 입점시켜 영업 중이다. 또 2007년 6월 대구 도심에 들어설 이수건설의 ‘아이 트윈 타워’는 3200여 석의 복합상영관에다 전자제품점·커피전문점·음식점·웨딩숍·여행사·아이스링크 등을 유치할 예정이다. 광주에서는 신세계가 백화점 옆에다 할인매점 이마트를 짓는다. 여기에 영화관과 식당 등을 보강, 복합쇼핑몰로의 변신을 꾀한다. 경인권에서는 중동 신도시에 분양 중인 ‘소풍’이 쇼핑시설과 함께 건물 내에 암벽등반 코스와 인라인 스케이트장 등 레포츠시설을 들여왔다. 지난해 10월 경기도 분당에 문을 연 유아전문 쇼핑몰 ‘베어캐슬’은 지상 3~4층에 각양각색의 인형을 소개하는 인형박물관을 조성, 테마 쇼핑몰로서의 입지를 다진다. 이처럼 쇼핑몰을 표방하는 업체들이 늘고 있으나 업체의 수나 매출액에 관한 통계자료는 찾아 보기 어렵다. 한국유통물류진흥원 유통사업T/F팀의 손일선 전문위원은 “한국의 쇼핑몰은 아직 초기 발전단계에 있어 업계를 대표하는 기구 설립은 물론이고 실태 조사도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종전까지의 관행은 개발업체가 시설을 완공한 뒤 분양하면 그만이었다. “쇼핑몰 운영의 핵심은 임대점포를 어떻게 유치하고 잘 관리하느냐인데 우리나라는 단기 차익을 노린 분양을 선호한다”고 유통컨설팅 그룹 ‘인터원 컨설팅’의 원창희 사장은 말했다. 선진국의 경우 개발업체가 분양 후 관리까지 책임을 지는 게 보통이다. 더 바람직하기는 개발업체가 분양이 아닌 시설 임대를 통해 사업방침에 부합하는 점포를 유치하고, 운영의 효율성과 관리까지 책임을 지는 형태다. 신세계 김대식 과장은 “부지 매입과 설계단계에서부터 소비자들의 취향에 어울리는 업체들을 유치함은 물론 임대 후 운영, 관리까지 전 과정을 책임지는 쪽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숙명여대 서용구 교수는 복합쇼핑몰은 관광객 유치와 국가 이미지 제고에도 많은 기여를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개발을 민간에 일임하지 말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사업의 주체가 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며 공공기관의 참여를 권유한다. 박성현 p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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