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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몰 이 세계를 정복했다

쇼핑몰 이 세계를 정복했다

It's a Mall World After All 몇 년 전 LA 회사 알툰+포터의 건축가들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에 세울 쇼핑 센터를 설계하던 중 미묘한 상황에 직면했다. 원리주의 이슬람의 한복판에 서구의 유혹들로 가득한 번쩍거리는 쾌락의 탑을 어떻게 올리느냐는 문제였다. 물론 사우디인들이 소비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은 아니다. 리야드의 킹 할리드 공항은 파리와 런던의 고급품 매장으로 향하는 부자 아랍인들로 꽤 붐빈다. 그러나 관건은 공공장소에서 베일을 벗어서는 안 되는 여성 구매자들(소매 매출 주도층)을 끌어들이는 일이었다. “여성들은 입어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사려 하지 않는다”고 그 회사의 전무인 건축가 로널드 알툰은 말했다. 그에 따라 알툰+포터는 킹덤 센터라는 아주 보편적인 해결책을 내놓았다. 강철과 유리 골조로 이뤄진 3층짜리 쇼핑 낙원으로 한 층을 전부 여성 고객 전용인 ‘여성 왕국’(Women’s Kingdom)으로 만들었다. “우리는 여성의 베일을 벗겨 건물에 씌웠다”고 알툰은 말했다. 그 평범한 방안이 주효했다. 사우디 여성들은 여성 왕국에서 종교 지도자들의 분노를 사거나 엄격한 이슬람 율법 샤리아를 범하는 일 없이 쇼핑하고 수다떨며 외식하거나 심지어 스파에서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보통 어떤 쇼핑몰이든 3층은 수익의 사각지대지만 이곳은 전체 쇼핑센터 중 가장 노른자위 층이 됐다. 킹덤 센터는 혁명적이지는 않다. 음식 백화점에서 베일을 태우거나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이곳은 사우디 여성들의 작지만 의미 있는 자유를 상징한다. 그리고 이곳의 성공은 소비문화에 대한 갈증이 세계적으로 억누를 수 없는 현상일 뿐 아니라 민주화와 발전의 확산에 쇼핑할 권리가 갈수록 큰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가리킨다. 뉴욕시 사우스 스트리트 시포트 박물관의 존 B 하이타워 관장이 “쇼핑은 미국의 주된 문화활동”이라고 대놓고 떠벌린 지 20여 년이 지났다. 시포트 박물관은 문화센터와 쇼핑 센터를 겸한 복합공간이다. 그 후 쇼핑은 미국의 손꼽히는 주력 수출품으로 자리 잡았다. 과거 미국 특유의 편리와 과잉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쇼핑몰이 지금은 산티아고에서부터 상트 페테르부르크, 마닐라에서부터 뭄바이에 이르기까지 세계 구석구석을 수놓는다. 1999년에는 인도에 쇼핑몰이 세 개뿐이었다. 지금은 45개나 되며 2010년에는 300개로 불어날 전망이다. 때로는 쇼핑몰의 마법왕국라고도 알려진 아랍에미리트의 작은 토후국 두바이는 지난해 8850만 명이 쇼핑몰을 방문했으며 브라질에서는 매달 1억8000만 명 가까이 쇼핑센터로 몰려든다. 미국과 거의 맞먹는 인원이다. 과거 나이로비로 향하는 몸바사 도로를 따라 코끼리와 기린들이 노닐었지만 지금은 쇼핑몰을 들락거리는 아프리카인들이 훨씬 더 많이 눈에 띈다. 케냐 수도 나이로비에는 번쩍거리는 쇼핑몰이 네 개나 새로 생겼으며 그 밖에도 세 개가 건설 중이다. 그래도 중국의 속도를 따라잡지는 못한다. 중국에서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쇼핑몰 열기 등으로 달아오른 부동산 호황에서 한몫 챙기려 각축전을 벌인다. “30, 40년 전 쇼핑 산업이 북미에 몰고온 바로 그 에너지와 역동성이 이제 해외로 퍼져나간다”고 업계 동업조합이자 자문단체인 국제쇼핑센터회의(ICSC)의 마이클 커치벌 의장은 말했다. “이제 전 세계의 일반 대중으로 확산됐다.” 실제로 전 세계가 소매유통 업계판 ‘군비 경쟁’의 소용돌이에 깊이 휘말린 듯하다. 캐나다 앨버타에 있는 웨스트 에드먼턴 몰은 2만 대의 주차공간, 스케이트장 한 곳, 미니어처 골프 코스 한 곳을 갖추고 잠수함 4대(캐나다 해군보다 많다)를 전시하며 수년간 세계 최대의 쇼핑몰로 군림했다. 하지만 지난 10월 베이징 북서부에 13억 달러를 들여 세운 골든 리소시즈 쇼핑센터에 1위 자리를 빼앗겼다. 이 쇼핑센터는 직원 2만 명에 연건평이 미 국방부 건물의 배에 가깝다. 두바이의 개발업자들은,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그보다 훨씬 더 큰 쇼핑몰을 하나도 아닌 둘씩이나 건설 중이다. 그중 하나는 다섯 면의 인공 스키 활강로를 자랑한다. 그러나 모두 올해 공장도시 둥관에 문을 연 초대형 사우스 차이나 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2010년께면 세계 10대 쇼핑몰 중 최소한 일곱 개가 중국에 몰려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중 많은 곳이 호텔까지 갖추게 된다. 사람들이 하루에 모두 돌아볼 수 없으리라는 전제 아래서다. 쇼핑몰을 미국 문화가 지닌 모든 해악의 축소판이라고 욕하는 사람들에게 쇼핑몰의 확산은 역병의 확산과 같다. 반대파 학자들은 최악의 상황을 그린 논문(‘재화가 지배하는 단일 국가’, ‘쇼핑몰의 외침’)을 잇따라 쏟아낸다. 비판론자들은 과거 활기 넘치던 상가와 노천 시장을 팔아치우고 동떨어진 지역의 볼품없는 건물, 엄청난 교통체증, 멍청한 영어 이름 투성이인 간판들(피닉스 하이 스트리트, 팜 스프링스 라이프 플라자, 바이롱 월드 트레이드 센터 페이스 II)의 황무지를 만들려고 온 나라가 애쓰는 세태를 개탄한다. 이것을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쇼핑몰은 독재에 안성맞춤이다. 사람들을 하나의 지붕 아래 폐쇄된 공간 속에 몰아넣는 것보다 국민을 통제하는 데 더 좋은 방법이 어디 있겠느냐”라고 이스턴 코네티컷 주립대의 에밀 포콕 교수(미국학)는 말했다. 그는 학생들을 데리고 쇼핑몰로 현장실습을 나가 소비사회를 가르친다. 저술가이자 쇼핑몰에 대한 혹평으로 유명한 윌리엄 카윈스키의 말을 빌리자면 ‘미국의 쇼핑몰화’(malling of America)가 세계의 쇼핑몰화로 확대됐다. 막상 뚜껑을 열고 보면 쇼핑몰이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쇼핑몰의 부상은 많은 비판론자의 우려만큼 전통적인 도심 상가지구의 쇠퇴를 예고하거나 앞당기기보다 오히려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성장의 촉매제 역할을 한다. 중국의 경우 소매유통 부문의 활황은 거액의 모험자본을 끌여들었고 중국의 도시 부동산에 눈독을 들이는 국제적인 투자자들과 수십 건의 합작 벤처를 낳았다. 지난 7월 말 미국의 대형 개발업체인 사이먼 프라퍼티 그룹은 모건 스탠리, 중국의 한 국유회사와 손잡고 앞으로 2~3년 동안 중국 전역에 최대 10여 개의 대형 소매유통 센터를 세우기로 했다. 인도에서는 쇼핑몰이 3300억 달러의 소매유통 산업을 이끄는 주력 엔진이다. 인도의 소매유통 산업은 이미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을 차지하며 최근 러시아의 규모를 앞질렀다. 마찬가지로 필리핀에서는 해외 거주 노동자들이 해마다 60억~70억 달러씩 송금하는 덕택에 소비지출이 급증했다. 그 영향으로 대형 몰을 중심으로 부동산 경기가 불타오른다. 대다수 개도국 세계의 쇼핑몰들은 뭍에 오른 고래들처럼 황량한 고속도로를 따라 널려 있지 않고 시내 중심가에 통합돼 있다. “중국 사람들은 80%가 걸어서 쇼핑몰에 간다”고 ICSC의 커치벌은 말했다. 뉴델리·나이로비·리우데자네이루 같은 일부 대도시에서는 도시의 팽창으로 소비자들이 외곽 지역으로 밀려났다. 그런 주거지역들은 새로운 쇼핑센터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쇼핑몰들이 예전처럼 소수 부유층의 취향에만 맞추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전에는 오로지 A급 쇼핑객들만 고려했다”고 커치벌은 말했다. “지금은 B급·C급·D급 고객들도 찾아온다. 개도국 세계의 쇼핑몰이 더 민주화돼 간다.” 많은 도시에서 쇼핑몰은 안전과 보안이 철저한 안식처로 환영받는다. 10대(특히 젊은 남성)가 길거리 범죄의 피해자가 되기 일쑤인 리우데자네이루에 사는 부모들은 자녀가 쇼핑몰에서 논다고 하면 일단 마음을 놓는다. 몇몇 쇼핑몰에는 안전요원이 100명이 넘게 배치되기 때문이다. “안전은 가장 중요한 판매전략 중 하나”라고 브라질쇼핑센터연합의 파울루 말조니 필류 회장은 말했다. “쇼핑몰에 들어오면 마치 외국에 온 것 같은 느낌”이라고 파라그 메타는 말했다. 그는 번화한 북부 뭄바이 교외 말라드의 인오비트 쇼핑몰을 자주 이용한다. 북미 교외 지역에서 처음 생기던 당시 획일적이었던 사업모델은 쇼핑몰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현지 실정에 맞게 다양화됐다. 쇼핑몰은 미국 상품과 햄버거의 범람이라는 망령을 불러올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토속적 입맛과 기호가 우세한 경우가 많다. 얼마 전 오후 한때, 베이징의 골든 리소시즈 쇼핑센터의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과 파파 존스는 거의 인적이 끊긴 모습이었지만 바로 길 모퉁이의 한국식당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칠레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천국이 된 지 오래지만 산티아고에서 제일 잘 나가는 소매체인점은 토종기업인 팔라베야와 알마세네스 파리스다. 산살바도르(엘살바도르 수도)의 가예리아스 쇼핑센터에는 하루에 두 번씩 미사를 드리는 가톨릭 교회가 입주해 있다. 대형 쇼핑몰의 개념에 철학적인 요소를 가미한 흥미로운 변화라 하겠다. 여러 개발도상국의 쇼핑몰은 은행·화랑·박물관·렌터카 사무소뿐만 아니라 여권국이나 차량국 같은 관청을 입주시키면서 단지 쇼핑센터에 머물지 않고 명실상부한 하나의 지역사회를 형성한다. 이렇듯 쇼핑몰은 개발도상국 주민들에게 점차 공공기관의 대행소 역할을 자임하며 쇼핑 이상의 사회적 가치를 조성해 나간다. 중국은 흡연인구가 약 1억6800만 명에 이르지만 금연 쇼핑몰에서는 일절 담배를 피울 수 없다. 환경적 고려는 이뿐이 아니다. 중국 내 많은 쇼핑몰이 전력 공급 안정 및 에너지 절약을 위해 전력 변환 설비를 갖춘다. 중동의 리야드 킹덤 센터 같은 쇼핑몰은 여성이 한데 모여 수다를 떨거나 혹은 혼자서 자유롭게 활보해도 좋은 몇 안 되는 공공장소 중 하나다. “쇼핑몰은 단지 물건을 사는 장소가 아니라 바로 꿈의 공간이다. 다른 방법으로는 별로 마주칠 일이 없는 주민들을 하나로 묶어주고 새로운 지역사회 공동체를 형성한다”고 베이징대 경제학부 샤예량(夏業良) 교수는 말했다. 한편 어떤 곳에서는 쇼핑몰이 잠시나마 과거를 잊는 공동의 휴식처가 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바르샤바의 시장은 대부분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파괴됐으며 음침하고 여유 공간 하나 없는 공산주의 시대의 건물 또한 쓸모가 없어진 지 오래다. 이런 바르샤바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공공장소 중 하나가 바로 쇼핑몰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폴란드 사람들은 일요일 미사에 갈 때나 정장을 입었다. 하지만 요즘은 쇼핑몰에 가기 위해 옷을 차려입는다”고 바르샤바대 사회학 교수이자 소비자문화 전문가인 그졔고즈 마코프스키는 말했다. 하지만 일부 비평가의 눈에는, 제 아무리 사회와 경제가 발전한다 해도 현대의 모든 쇼핑몰이 결국 만연한 소비주의의 전당이라는 사실을 감추기 어렵다. 도시 문예부흥에 관한 저명한 전문가이자 코펜하겐 왕립미술아카데미의 건축학 교수인 얀 겔은 학생들에게 전 세계의 여러 쇼핑몰 사진을 보여주면서 각 건물이 어느 지역에 위치하겠느냐고 물어보곤 한다. 죄다 비슷한 탓에 구별이 힘들다(요즘 들어 차이점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히틀러 치하의 유럽을 도망쳐 나왔던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유대인 망명자이자 1950년대 미네아폴리스 교외에 최초의 쇼핑몰을 만든 바 있는 빅터 그륀 같은 사람도, 비록 자신의 이름을 걸고 세운 건물이긴 하지만 주차시설이 딸린 천하기 짝이 없는 성냥갑 같은 콘크리트 괴물에 정나미가 떨어졌다. 유럽을 다시 찾은 그는 1978년 런던의 한 연설회장에서 “나는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이 사생아들에게 양육비를 지급할 의사가 전혀 없다”고 투덜거렸다. 하지만 그런 현실을 피할 만한 무슨 뾰족한 수가 있지도 않았다. 이미 쇼핑몰은 유럽에서 승승장구 커가던 참이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흐른 지금, 쇼핑몰을 반대하는 일부 세력은 작금의 현실을 거부한다기보다 실체 없는 과거에 대한 향수를 이야기한다. 옛 터키에도 나름의 상점쇼핑 중독자들이 있었다. 그렇다면 현대의 쇼핑센터란 복합영화관이 딸린 시장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어쩌면 쇼핑몰은 단지 현대화의 산물일 뿐, 항상 있었던 것이 보다 이용하기 편리해진 데에 불과할지 모른다. 옛 조상들도 모든 과학기술이 녹아 든 현대의 쇼핑몰을 아주 멋진 장소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런던의 두뇌집단인 영재단의 스티븐 마셜은 말했다. 여하튼 쇼핑몰 개발업자들은 절제를 몰랐던 자신들의 초기 행태에서 많은 교훈을 얻었지 싶다. 번쩍이는 외관과 사방으로 막힌 벽, 그리고 합성수지로 만든 인공 숲 대신에 요즘 새로 건축되는 쇼핑몰은 조각공원·벽화·전망대, 그리고 은은한 조명을 자랑한다. 리우데자네이루의 고급 의상 쇼핑몰인 패션몰의 실내는 싱싱한 넝쿨식물과 화려한 양치식물, 그리고 깃털이 뒤덮인 야자나무와 선인장으로 꾸며진다. 리야드의 킹덤 센터는 2003년에 국제적 규모의 디자인상을 받기도 했다. 아직도 쇼핑몰 세상의 가장 큰 미덕은 ‘덩치’일지도 모르지만 점차 아담하게 건물을 지으면서 그 옛날 유럽의 광장 시장이나 중심가를 흉내 내려 애쓰는 개발업자들이 늘어간다. 물론 거상들이 한결같이 꿈꿨던 더 없이 자랑스러운 소비자 천국에는 미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 지구촌의 쇼핑몰들은 왕년의 어떤 시장보다 가까이, 그리고 조금은 기묘한 방식으로 대담한 민주적 이상에 다가가는 듯하다. 어쨌든 밖에는 비가 와도 쇼핑몰 안에서는 절대 비에 젖을 염려가 없다. With SUDIP MAZUMDAR in New Delhi, SUMEET CHATTERJEE in Mumbai, QUINDLEN KROVATIN in Beijing, JOANNA KOWALSKA-ISZKOWSKA in Warsaw, WILLIAM UNDERHILL in London and ALEXANDRA POLIER in Nairobi 차진우·이정명 jinch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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