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수비형’ LG ‘공격형’어느별 지고 어느별 떴나
삼성 ‘수비형’ LG ‘공격형’어느별 지고 어느별 떴나
삼성그룹이 지난 11일 455명에 달하는 사장단 및 임원 인사를 단행하면서 올해 재계 인사가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다. 전통적으로 주력 계열사의 주주총회 시즌에 인사를 단행하는 SK그룹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기업이 새로운 진용을 구축했다. 올해는 어떤 별이 지고 어떤 별이 떠올랐을까?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인사철이 지나고 나면 여진(餘震)이 뒤따른다. 누군가 예상을 뒤엎고 발탁됐거나 낙마를 당한 인사일 때는 특히 그렇다. 갖가지 근거와 가설에 가까운 해석을 곁들여도 설명이 잘 안 되는 경우에는 아예 ‘소설’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여진이 아무리 크고 깊더라도 한 번 발표된 인사가 번복되는 법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사는 단순 명쾌하다. 옆에서 사후 해설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과 달리 정작 인사 대상자들이 이른 시일 내에 냉정함을 되찾는 것도 인사의 생리다. 좋은 자리를 받은 사람의 즐거움은 곧 새로운 긴장으로 대체되고, 한직으로 밀려난 사람의 울분과 비탄도 권토중래의 꿈으로 바뀐다. 조직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새로운 인물에 의해 새로운 논리로 돌아가고, 한때의 웃음이나 눈물은 인생 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속담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올해 재계 인사의 두드러진 특징은 삼성그룹이 사장단 인사를 최소화한 반면 LG그룹은 비교적 큰 폭의 물갈이 인사를 한 점이다. 삼성의 인사는 지난해 유난히 기승을 부렸던 ‘삼성공화국론’의 영향을 받아 조직의 안정과 결속을 다지는 데 주안을 뒀고, LG는 ‘1등 LG’ 구현에 글로벌 초일류기업 도약의 사활을 걸고 있는 구본무 회장이 모처럼 칼을 빼들었다. 특별한 실책이 없었더라도 안주하는 기미가 보이거나 1등 달성에 의지를 보이지 않는 사장들은 모두 고문으로 물러났다.
삼성, 2년째 사장 승진 적체 현상
올해 삼성은 통상 10명 안팎이던 사장단 승진 폭을 지난해와 같은 3명 수준으로 축소했다. 사장 승진을 고대하던 부사장들로서는 다소 실망스런 결과였을 것이다. 삼성전자 디지털 프린팅 사업부의 박종우 부사장이 같은 사업부의 사장으로, 삼성물산 전략기획실 지성하 부사장이 삼성물산 상사부문 사장으로 각각 승진했다. 삼성서울병원 이해진 부사장은 신설된 삼성자원봉사단장(사장급)으로 승진, 전보됐다. 삼성물산 상사부문을 제외한 다른 계열사의 최고경영자들은 전원 자리를 지켰다. 삼성이 사장단 이동을 최소화한 배경을 “대내외 경영환경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경영의 일관성과 조직의 안정을 위해 대과 없이 각사 경영을 이끌어 온 현 사장단 진용을 유지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종우 삼성전자 사장은 반도체 공정개발 분야에서 10여 년간 근무하다 2001년부터 프린트 사업부로 자리를 옮겨 사업 경쟁력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고 있다. 특히 디지털 컨버전스 환경 아래서 프린터가 중심 제품으로 도약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경남 밀양 출신으로 연세대 전자재료공학과를 나와 미국 퍼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성하 삼성물산 사장은 코닝·SDS·건설 등 삼성계열사의 경영관리 부문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았으며, 상사부문의 구조개혁을 이끌 적임자로 지목됐다. 경북 의성 출신으로 성균관대 경제학과를 나왔으며, 1987년 이후 그룹 비서실에서 다년간 근무한 경험이 있다. 또 이해진 사장은 기존의 삼성사회봉사단의 조직과 역할을 확대 개편해 조만간 새롭게 출범할 예정인 삼성자원봉사단의 초대 사령탑을 맡았다. 충남 청양 출신으로 연세대 상학과를 나왔으며, 그룹 비서실·제일모직·카드·종합화학·서울병원 등을 거쳤다. 이 사장은 특히 현 정부의 ‘실세 중의 실세’인 이해찬 국무총리의 친형이라는 점에서 각별한 주목을 받았다. 삼성 인사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 등 이건희 회장 일가와 구조조정본부 팀장 등 삼성 내 파워그룹의 승진이 대부분 보류된 점을 들 수 있다. 이재용 상무의 경우는 애초 전무 승진이 가능할 것으로 관측돼 왔으나, 이건희 회장이 “아직 현업에서 배워야 할 것이 많은 만큼 이번 승진 대상에 올리지 말라”고 지시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이 회장의 딸들이나 사위들도 진급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 등으로 이번에 모두 명단에 들어가지 못했다. 또 고참 부사장급으로 사장 진급 대상에 올랐던 구조조정본부의 이순동 홍보팀장과 노인식 인사팀장 등도 막판에 승진이 좌절됐다. 팀장들이 잇따라 승진할 경우 자칫 구조본이 비대해졌다는 논란이 생길 수도 있다는 판단 아래 이학수 본부장이 해당 팀장들에게 직접 양해를 구했다는 후문이다. 통상적으로 구조본의 부사장급 팀장들은 정기 인사에서 계열사 사장으로 승진하는 형태로 구조본을 벗어나곤 했는데, 삼성이 2년 연속 사장단을 유임시키면서 옮겨갈 자리가 없어진 점이 현실적인 제약으로 작용한 것이다. 사장단 교체나 전보 인사가 거의 없다 보니 임원 인사에도 영향이 미쳤다. 우선 지난해 26명에 달했던 부사장 승진자 수는 올해 15명으로 줄었다. 부사장군에 약간의 인사 적체가 발생하고 있는 양상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전무 승진자는 지난해보다 16명 많은 85명을 배출하고, 상무 승진자도 21명 늘어난 145명에 달했다. 또 승진자들 가운데 기술직군 임원은 199명으로 전체의 44%를 차지해 삼성의 ‘기술 중시’ 전략을 반영했다. 특히 기술직 신임 임원의 승진자는 99명으로 전체 신임 임원의 48%를 차지했다.
LG, 1등 만들 CEO 발탁
올해 LG그룹 인사에서 최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인물은 김반석 신임 LG화학 사장. LG그룹은 노기호 전임 사장을 비롯한 LG화학 3명의 사장단을 전원 아웃시키고 김 사장 원톱체제를 구축했다. LG화학의 실적은 그다지 나쁘지 않지만 이대로 세계 1위까지 치고 올라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김 사장은 LG석유화학·LG대산화학 사장 등을 거치는 동안 과감하고 도전적인 의사결정으로 그룹 안팎의 주목을 받아왔으며, 탈권위와 자율을 중시하는 경영 스타일로 부하들의 신망도 두터운 편이다. LG전자에선 김쌍수 부회장이 건재를 과시한 가운데 3명의 사장단 승진 및 전보 인사가 실시됐다. 이 가운데 1년간의 해외연수를 마치고 중국 총괄사장으로 돌아온 우남균 사장은 단연 화젯거리였다. 지난 2003년 디지털 미디어 및 디스플레이 사장으로 어느 누구보다 화려한 CEO 생활을 보내다가 승진 동기생이나 다름없는 김쌍수 부회장에게 대표이사 자리를 빼앗기자(?) 홀연히 연수를 떠난 그였기에 더욱 그랬다. 우 사장은 LG전자 제2 창업의 본거지인 중국사업을 재정비해 완벽한 흑자기반을 구축하라는 특명을 받고 떠났다. 디지털 어플라이언스 본부장으로 이번에 사장으로 승진한 이영하 사장은 전임 본부장인 김쌍수 부회장과 마찬가지로 창원공장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특유의 뚝심을 앞세워 지난해 창원공장 매출을 10조원 선으로 끌어올리며 구본무 회장의 눈에 들었다는 후문. 과거 10여 년을 에어컨 사업부에 근무하면서 에어컨을 세계 1위 품목으로 육성하는 데 적지 않게 기여한 인물이기도 하다. 권영수 사장은 재무담당 최고경영자(CFO)이자 이사회 멤버로서 일찌감치 사장감으로 점찍혀 온 인물이다. 과거 국제그룹 창업자인 양정모 회장의 사위이자 대한전선 오너인 양귀애 고문의 조카사위이기도 한 그는 2000년을 전후로 LG그룹과 필립스의 각종 제휴협상을 도맡아 처리한 실력파였다. CFO로서 자로 잰 듯한 관리실력도 정평이 나 있지만, 전세계의 거의 모든 해외법인들을 직접 찾아다닐 정도로 열성적이어서 주변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추진력이 강하기로 이름난 김쌍수 부회장과도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는 관측이다. 통신그룹의 사장단 인사도 적지 않은 주목을 받았다. 정홍식 전 데이콤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해 경영일선에서 한 발짝 물러나는 대신 남용 LG텔레콤 사장과 호흡을 맞춰 온 박종응 전 파워콤 사장과 이정식 전 데이콤 부사장이 각각 데이콤과 파워콤 신임 사장에 임명된 것이다. 박 사장과 이 사장은 모두 행정고시 출신으로 LG그룹에 합류해 구조조정본부를 거쳐 통신계열사로 자리를 옮긴 공통점이 있어 향후 긴밀한 공조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박 사장은 지난 2001년부터 3년 동안 데이콤 영업부문장을 역임한 경력을 발판으로 데이콤의 흑자경영 기반을 강화하는 한편, 파워콤과의 시너지 확대에도 적극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 사장도 지난 3년간 파워콤에서 사업담당 상무를 역임해 파워콤의 실정에 상당히 밝은 편이다. 내년 말까지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100만 명을 확보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관측된다. LGCNS 사장으로 영입된 신재철 사장은 1973년 한국IBM에 입사해 무려 31년을 같은 회사에서만 근무한 경력을 갖고 있다. 외부인사이긴 하지만 정보기술(IT) 업계의 흐름에 밝고 글로벌 기업에 오랫동안 몸담아 LG와의 이질성을 단기간에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회갑 맞은 금호아시아나 승진 잔치
평소 수시 인사를 통해 사장단을 교체하고 있는 현대자동차 그룹의 경우 이번 정기인사에서 총 185명에 달하는 부사장급 이하의 임원 인사를 실시했다. 이광선 현대자동차 전무와 이광우 기아자동차 국내영업본부장, 서영종 현대모비스 전무, 강봉돈 위아 전무, 신동권 다이모스 전무, 우승기 케피코 전무 등 6명이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연구R&D)과 해외영업통들의 약진이 돋보인다. GS그룹은 GS칼텍스의 나완배 정유영업본부장과 허진수 생산본부장을 각각 사장으로 승진 발령하는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지난 77년 입사한 나 사장은 자금부문장(상무)·종합기획실장(전무) 등을 거쳤다. 86년 입사해 국제금융부 부장·경영전략본부장 등을 역임한 허 사장은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둘째 동생이기도 하다. 외환위기 이후 성공적으로 구조조정을 마치고 재발진 준비를 하고 있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올해 창립 60주년을 맞아 큰 폭의 승진 인사를 한 점도 눈에 띈다. 우선 박찬법 아시아나항공 사장과 신훈 금호산업 건설사업부 사장이 각각 실세형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박 부회장은 지난 2001년 대표이사를 맡은 이후 경쟁사가 혀를 내두를 정도의 혹독한 구조조정을 지휘했으며, 흑자경영 기반을 거의 완벽하게 구축했다는 평이다. 신 부회장은 건설업계 CEO로는 드물게 IT에 밝은 경영자로 2002년 거의 다 쓰러져가던 그룹의 건설사업을 3년여 만에 우량 사업으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다. 아시아나항공 신임 사장에는 미주지역본부장 등을 역임한 강주안 씨가 선임됐으며, 금호석유화학 사장에는 울산 여수 공장장을 지낸 김재완 씨가 임명됐다. 한편 코오롱그룹은 연초 인사에서 간판 CEO인 한광희 코오롱 사장을 신설된 중국 전략본부 사장에 임명하고, 코오롱 사장직은 코오롱유화를 이끌며 성공적인 구조조정 솜씨를 보여준 배영호 사장에게 맡겼다. 한 편에선 구조조정을 착실하게 진행하면서 또 다른 한 편에선 중국에서 새로운 블루오션을 찾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인사철이 지나고 나면 여진(餘震)이 뒤따른다. 누군가 예상을 뒤엎고 발탁됐거나 낙마를 당한 인사일 때는 특히 그렇다. 갖가지 근거와 가설에 가까운 해석을 곁들여도 설명이 잘 안 되는 경우에는 아예 ‘소설’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여진이 아무리 크고 깊더라도 한 번 발표된 인사가 번복되는 법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사는 단순 명쾌하다. 옆에서 사후 해설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과 달리 정작 인사 대상자들이 이른 시일 내에 냉정함을 되찾는 것도 인사의 생리다. 좋은 자리를 받은 사람의 즐거움은 곧 새로운 긴장으로 대체되고, 한직으로 밀려난 사람의 울분과 비탄도 권토중래의 꿈으로 바뀐다. 조직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새로운 인물에 의해 새로운 논리로 돌아가고, 한때의 웃음이나 눈물은 인생 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속담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올해 재계 인사의 두드러진 특징은 삼성그룹이 사장단 인사를 최소화한 반면 LG그룹은 비교적 큰 폭의 물갈이 인사를 한 점이다. 삼성의 인사는 지난해 유난히 기승을 부렸던 ‘삼성공화국론’의 영향을 받아 조직의 안정과 결속을 다지는 데 주안을 뒀고, LG는 ‘1등 LG’ 구현에 글로벌 초일류기업 도약의 사활을 걸고 있는 구본무 회장이 모처럼 칼을 빼들었다. 특별한 실책이 없었더라도 안주하는 기미가 보이거나 1등 달성에 의지를 보이지 않는 사장들은 모두 고문으로 물러났다.
삼성, 2년째 사장 승진 적체 현상
|
LG, 1등 만들 CEO 발탁
|
회갑 맞은 금호아시아나 승진 잔치
|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서울 ‘마지막 판자촌’에 솟은 망루...세운 6명은 연행
2겨울철 효자 ‘외투 보관 서비스’...아시아나항공, 올해는 안 한다
3SK온, ‘국내 생산’ 수산화리튬 수급...원소재 조달 경쟁력↑
4‘국내산’으로 둔갑한 ‘중국산’...김치 원산지 속인 업체 대거 적발
5제뉴인글로벌컴퍼니,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두번째 글로벌 기획전시
6의료현장 스민 첨단기술…새로운 창업 요람은 ‘이곳’
7와인 초보자라면, 병에 붙은 스티커를 살펴보자
8젠슨 황 엔비디아 CEO “삼성전자 HBM 승인 위해 최대한 빨리 작업 중”
9‘꽁꽁 얼어붙은’ 청년 일자리...10·20대 신규 채용, ‘역대 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