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오일로드의 출구] “에너지 유통의 중심지 될 것”
[뉴 오일로드의 출구] “에너지 유통의 중심지 될 것”
우기(雨期)인 이스탄불의 겨울은 종일 진눈깨비가 흩날렸다. 며칠째 눈과 비가 번갈아 내리는 바람에 미로 투성이인 이스탄불 도로는 먹다 남은 팥빙수처럼 질퍽했다. 비록 이스탄불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데는 실패했으나 보스포루스 해협은 지겹도록 구경할 수 있었다. 화물선, 유조선 할 것 없이 육중한 배들이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해 흑해로 들어가기 위해 하염없이 대기하고 있는 지중해 바다 또한 하나의 구경거리였다. 기상조건이 나빠질 경우 사고를 우려한 터키 정부가 보스포루스 해협의 통과 시간을 평소보다 까다롭게 통제하기 때문이다. 우기인 겨울철에는 특히 이 통제가 잦다. 그런데 문제는 겨울이 되면 주변 국가들의 에너지 수요 증가 탓으로 배는 더 몰리고 바닷길은 더 막힌다는 것이다. 모든 해협이 다 그렇겠지만 보스포루스 해협의 전략적 중요성은 여러 면에서 유별나다. 터키, 그루지야, 러시아,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불가리아가 해안선을 나눠가지는 흑해는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의 석유와 가스가 긴 파이프라인(CPC라인)을 타고 나온 종점이다. 노보로시스크, 로스토프나도누, 오데사 등 항구에서는 석유를 실은 배들이 지중해를 향해 출발한다. 항로, 교통규칙, 항만시설 등을 관장하는 국제해사기구(IMO)는 2001년 “보스포루스 해협은 좁고 얕아 하루 1억t 이상의 배가 다니는 것은 위험하다”고 발표했다. 인근에 인구 1000만 명이 넘는 국제도시 이스탄불이 있어 자칫 대형 오염사고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과한 화물량은 하루 평균 1억6000만t이었다. 이미 IMO가 권장한 규모를 넘어섰다. 보스포루스 해협은 이미 한도를 초과한 카드와 같다. 터키의 국영석유회사 TPAO의 무라트 울루 기획국장은 “최근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서 러시아, 카자흐스탄 등이 생산량을 늘려 탱커(석유를 실어나르는 배)들의 규모와 숫자가 더욱 늘었다”면서 “터키 정부는 더 이상 해상 수송을 늘리지 말고 터키 육로를 가로지르는 파이프라인을 건설해 이용하라고 주변국에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국 영토 내 파이프라인을 건설할 경우 터키가 얻는 이익은 막대하다. 현재 보스포루스 해협은 국제적으로 공해(空海)이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배가 지나가도 터키 정부가 얻을 수 있는 수입은 거의 없다. 그저 위험에 대비해 통행을 제한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파이프라인은 다르다. 우선 건설시 공사로 인한 수입을 얻을 수 있다. 대부분 터키 건설회사와 근로자들이 공사를 담당한다. 여기에 완공 후 오일 통과 때 통과료와 관세 수입이 생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산유국의 유통로를 터키 내에서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정치적, 전략적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지난해 말 우크라이나가 자국을 통과하는 러시아 가스의 통과료를 올려달라면서 러시아와 대립한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유럽으로 수출하는 러시아 가스 중 3분의 2가 우크라이나를 통과한다. 러시아로서는 우크라이나의 요구가 괘씸해도 들어줄 수밖에 없다. 터키 역시 보스포루스 해협의 교통 체증을 이유로 러시아에 계속 파이프라인 건설을 요구하고 있다. 이미 삼순∼제이한 간의 파이프라인이 건설 중이다. 올해 완공될 이 라인은 터키의 흑해항인 삼순에 러시아 탱커가 도착해 오일을 내려놓으면 파이프라인을 통해 지중해에 면해 있는 제이한으로 운반된다. 러시아는 여기서 유럽이든, 아시아로든 실어 나를 수 있다. 러시아는 터키뿐 아니라 인근의 불가리아와 루마니아도 활용하고 있다. 보스포루스 대신 루마니아 항구에서 불가리아를 거쳐 그리스로 가는 파이프라인 건설도 검토 중이다. 여기서 유럽으로 직접 배로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다 터키가 보스포루스를 통제하기 때문이다. 러시아뿐만이 아니다. 바쿠에서 출발하는 사우스코카서스파이프라인(SCP)은 트빌리시를 거쳐 터키의 에르주룸까지 연결된다. 여기서 북쪽이나 서쪽에 있는 항구를 통해 유럽으로 동유럽과 그리스, 이탈리아 등에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이 가스 파이프라인은 최초로 러시아 가스가 아니라 카스피해에서 생산된 가스가 서방으로 간다는 점에서 전략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유럽으로서는 가스 공급원의 다변화와 러시아가 陸┎舊?않는 첫 번째 가스 공급이라는 의미가 있다.
SCP는 BTC라인과 같은 경로를 이용하기 때문에 건설비용도 덜 든다. 앞으로 SCP라인은 아제르바이잔의 가스전뿐 아니라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의 가스도 실어나를 것으로 보인다. 투르크메니스탄의 경우 현재 러시아의 파이프라인을 이용해 가스를 수출하고 있다. 생산량의 80%를 러시아의 CPC라인을 이용해 수출하고 있고 수출량의 60%는 현금이 아닌 물품으로 지급받는다. 더구나 투르크메니스탄은 ㎥당 30달러 정도로 러시아에 팔고, 러시아는 이 가스를 서방에 200달러 정도로 판다. 개인 우상화 등 극단적인 독재정치를 펴고 있는 투르크메니스탄은 러시아와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러시아를 이용하면서 바터(barter) 무역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이유로 막대한 가스를 러시아 가스관을 통해 싼값에 수출하는 것이다. 투르크메니스탄이 SCP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정치적으로 변화가 필요하다. 터키를 비롯한 주변국에서는 2~3년 내에 투르크메니스탄의 에너지 정책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유럽도 러시아에 편중된 가스 도입원을 다변화하고 싶어한다. 일이 그렇게 진행되면 터키의 몸값은 저절로 올라가게 돼 있다. 터키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있다. 아직 미개발지이지만 이라크 북부의 가스와 이란 북부의 가스까지 터키를 통해 유럽으로 내보낸다는 계획이다. 울루 기획국장은 “정부는 제이한에 가스 액화시설을 세워 카스피해 가스는 물론 이란, 이라크 북부, 러시아 가스까지 집결시키는 센터로 육성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이한에 가스 액화시설이 세워지면 인근 중앙아시아, 러시아 남부, 중동의 북부 등 인근 지역에서 유일하게 가스 액화시설을 갖춘 곳이 된다. 장거리 수송 및 해상을 통한 수출이 자연히 제이한을 통해 이뤄지게 되는 셈이다. 이미 BTC라인이 완공됐고, 이 파이프라인이 가동되면 연간 1억 달러의 수입(관세, 통과료)이 생기는 터키는 앞으로 제2, 제3의 파이프라인을 유치해 명실공히 에너지 유통의 중심으로 발돋움한다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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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노선으로 본 터키 중앙아시아로 가는 비행기 보면 타슈켄트보다 이스탄불이 많아 중앙아시아의 허브는 어디일까? 옛 소련 시절 중앙아시아의 중심지는 타슈켄트였다. 지금도 중앙아시아 5개국(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은 물론 인근의 카스피해 서안에 있는 아제르바이잔, 그루지야, 우크라이나 등으로 가는 비행기는 타슈켄트에서 출발한다. 예를 들어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서 카자흐스탄의 알마티로 가려면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를 거쳐야 한다. 그루지야에서 투르크메니스탄도 마찬가지다. 투르크메니스탄에서 키르기스스탄도 타슈켄트를 경유해 간다. 타슈켄트는 카스피해 연안 국가의 항공 허브다. 하지만 이제부터 중앙아시아나 카프카스 지방으로 가려면 타슈켄트 대신 이스탄불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스탄불에서 중앙아시아 5개국과 카프카스 지역으로 뜨는 비행기는 타슈켄트보다 훨씬 많다. 이스탄불에서 이들 8개국으로 가는 비행기편은 1주에 61편이나 있다. 이 중 알마티, 바쿠, 트빌리시는 하루 한 편 이상 있다. 반면 타슈켄트는 주 14회에 불과하다. 트빌리시와 오데사로는 직항편이 없다. 이미 중앙아시아와 카프카스 지역은 터키 경제권에 들어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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