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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비자금 사태] “자본주의 망치는 기업인 단죄”

[현대차 비자금 사태] “자본주의 망치는 기업인 단죄”

"정의감이 투철한 검사다. 내가 법무부 검찰국장(2001년) 때 검찰 2과장이었다. 체구도 강단진 사람이 한 번씩 씩씩거리며 달려와서는 ‘국장님, 이래서야 되겠습니까’하고 세상 부조리에 대해 성토하면 내가 진정하라고 달래곤 했다.” 송광수 전 검찰총장이 기억하는 이인규(48)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의 모습이다. 정의감과 의협심이 유달리 강하다는 것이다. 올해 2월 인사 때 대검 미래기획단장에서 3차장으로 발탁됐다. 서울중앙지검 3차장 자리는 특수1, 2, 3부를 산하에 두고 검찰 인지 사건 대부분을 수사하는 요직. 요즘 ‘가장 잘나가는’ 사시 24회(1982년 합격)의 선두주자로 채동욱 대검 기획관과는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다. 현재 그는 특수2부의 브로커 윤상림씨 로비 의혹사건,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의 횡령·탈세 사건 수사와 특수3부의 황우석 교수 논문조작 사건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 중 진승현 전 MCI코리아 부회장과 공모해 거액의 회삿돈을 횡령한 의혹을 받고 있는 정몽규 회장에 대해서는 사법처리 수순에 돌입했다. 이인규 3차장은 검찰 내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서울대 법대와 대학원을 나왔으며 검사 시절 미국 연수를 가 92년 코넬대에서 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97~99년에는 주미 대사관 법무협력관을 지냈다. 소위 ‘가방끈’이 길고 미국물도 제대로 먹은 셈이다. 99년 국제법률관계 업무를 담당하는 법무부 검찰4과장을 지낸 것을 시작으로 형사 업무를 담당하는 검찰2과장, 검찰 전체의 인사와 예산을 담당하는 1과장을 잇따라 거쳤다. ‘검찰의 황태자’라고 불리는 법무부 과장직을 두루 거치면서 기획통 검사로 분류됐다. 이인규 3차장은 2002년 8월 검찰 1과장에서 서울지검 형사9부장으로 이동하면서 검사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기획통에서 금융특수통으로 변신한 것이다. 부임 후 명동 사채업자 반재봉씨 등 불법 가장 납입 사범들을 무더기로 구속한 데 이어 새롬기술 오상수 사장, 전재완 프리챌 사장 등 벤처기업 사장들도 잇따라 단죄했다. “기업 수사에서는 특수부보다 낫다”는 찬사까지 받으며 형사9부는 ‘금융특수부’라는 애칭을 얻었다. 이인규 당시 형사9부장에게는 “여러 방면에 해박한 지식에다 리더십과 추진력을 갖췄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그러다 형사9부가 차분히 수사 준비를 해 오던 현대상선의 4000억원 대북송금 사건 수사가 갑자기 유보되면서 혼선이 빚어졌다. 정치권에서 특검 도입을 결정하자 형사9부는 “대통령이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고 검찰이 직접 수사를 맡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을 상부에 제출, 파문을 일으켰다. 논란 끝에 특검이 사건을 맡으면서 수사팀은 허탈감에 빠졌다.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은 2003년 2월 17일. 형사9부는 작심이라도 한 듯 SK그룹에 대해 전격적이고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했다. ‘SK그룹 분식회계(회계부정비리) 사건의 시작이었다. 살아있는 대기업에 대한 것으로는 사상 최대의, 군사작전을 방불케 한 압수수색이었다. SK그룹은 치부를 그대로 드러내 보여야 했다. 특수수사의 양태가 관련자 진술에서 압수수색에 의한 증거확보로 바뀌는 전기가 되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들여다 봐서는 안 되는 것으로 여겨졌던 그룹 회장실, 구조본부 사무실이 샅샅이 파헤쳐졌다. 그룹의 회계장부, 기밀서류들이 무더기로 입수됐다. 당시 전격 압수수색에 대해 재계는 “이러다 ‘제2의 경제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며 역공세를 폈다. 검찰 내부에서도 반대가 적지 않았다. 자칫 압수수색 성과가 미미하게 되면 검찰이 부메랑을 맞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인규 3차장은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정확한 정보에 바탕한 자신감도 계기가 됐다. 결국 최태원 SK(주) 회장, 손길승 SK그룹 회장 등이 구속됐다. 재벌그룹의 비상장주식을 이용한 부당내부거래에 대한 첫 사법처리였다. ‘재계의 저승사자’라는 별명도 이때 얻었다. 수사과정에서 손길승 회장에게서 “SK그룹 차원에서 정치권에 대선자금을 제공했다”는 진술도 받아냈다. 2003년을 뜨겁게 달군 대검 중수부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의 실마리였다. SK수사가 마무리된 후 형사9부는 ‘금융조사부’로 이름을 바꿨다. 이인규 3차장은 그해 8월까지 초대 금융조사부장을 지낸 뒤 검찰 인사에서 춘천지검 원주지청장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그는 3개월 만에 서울로 올라왔다. 대검 중수부가 SK그룹 이외에 삼성·현대차 등 5대 그룹으로 대선자금 수사를 확대하면서 그해 11월 대선기업 수사팀장으로 차출됐던 것. “당시 원주지청장이던 이인규 3차장을 대검 중수부로 불러올렸다. 그런데 지청장을 한 달 이상 파견받으려면 법무부의 직무대리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직무대리 승인을 받으려 하자 강금실 법무장관이 안 된다고 노발대발했다. ‘그것도 못 막는 사람이 무슨 국장이냐’며 담당 검찰 간부를 크게 나무랐다. 당시는 노무현 대통령도 수사 대상에 올라 있어서였던 것 같다. 실제로 청와대도 SK그룹을 수사한 강골 검사를 수사팀에 합류시킨 것에 대해 불평을 많이 했었다.”(당시 대검 고위간부) 예상했던 대로 이인규 3차장은 대기업을 강하게 조여갔다. “수사 초기 몇몇 회사에 대해 압수수색을 먼저 했는데 이인규 팀장이 가져온 정보였다. 어느 기업의 어디를 가면 비밀장부가 많다. 어느 그룹은 어느 기업이 핵심이다는 걸 많이 알고 있었다. 기업수사는 이인규 팀장이 맥을 튼 것이다.” SK그룹 수사 때 재벌 자금구조를 철저히 들여다본 그의 경험은 대선자금 수사에서도 진가를 발휘했다. 롯데, LG, 현대차 등의 대선자금 제공 사실을 속속 밝혀내며 역할을 톡톡히 했다. 롯데그룹에서 3억원을 받은 혐의로 노 대통령의 측근인 여택수 전 청와대 국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되자 수사를 보완, 재청구해 발부받기도 했다. 이인규 3차장은 스스로도 “대선자금 수사 때 검사로서 가장 행복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재계의 저승사자’라는 별명에 대해서는 적절치 않다고 항변했다. “나는 자본주의 신봉자다. 반기업주의자가 아니다. 기업에 감사하며 산다. 일부 기업인들의 잘못에 의해 자본주의가 망쳐지는 것을 막기 위해 기업 수사를 하는 것이다”라는 주장이다. 그는 “기업과 기업인을 착각해서는 안 된다. SK가 지금은 주가도 오르고 잘 되고 있지 않으냐”면서 “최태원 회장을 수사 이후 본 적은 없지만 지금은 나에게 고마워하고 있을 것이다”고 자신했다. 한 전직 검찰 간부는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발행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이 무리수를 둔다는 판단이 들 때 이인규 당시 대검범죄정보기획관에게 조언을 구하곤 했다”며 “그의 해박한 경제지식은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말했다. 이인규 3차장은 어디로 부임하든 상법책은 갖고 간다. 평소에도 기업의 구조적 비리에 관심이 많다. 기업 분식회계에 정통하며 기업비리의 맥을 정확하게 짚는다. 그는 넘치는 정의감 때문에 때로는 피조사자들로부터 모함과 항의도 적잖이 받았다고 한다. 그의 추궁을 받았던 대기업 임원들이 여러 경로로 “너무 심하게 수사한다”는 얘기를 검찰 수뇌부에 직접 전했다는 것. “수사라는 목적을 위해 피의자들을 향해 큰소리를 치고 닦달하는 일은 삼가야 할 것”이라는 지적들이 나온다. 그는 요즘 석 달 이상 계속되고 있는 황우석 교수 논문조작 사건과 브로커 윤상림씨 로비의혹 사건을 ‘수렁’이라고 표현했다. 황 교수 사건은 과학적 검증이 필요한 사건에 대해 사법적 단죄를 하는 것이 옳으냐는 논란이 있다. 윤상림 사건도 브로커 윤씨의 모르쇠 작전으로 꼬여있다. “자본주의는 부패하기 쉽다. 검찰은 그 부패를 막기 위한 자본주의의 소금이다.” 이것이 그의 지론이다. 소신껏 수사하다 보면 그의 말마따나 ‘거악이 편하게 잠들지 못하는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빨리 오지 않을까.


그간 어떤 수사 했나
- 브로커 윤상림 로비 사건 - 진승현 MCI코리아 부회장,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횡령·탈세 사건 - 황우석 교수 논문조작 사건 - 명동 사채업자 무더기 구속 사건 - 오상수 새롬기술 사장, 전재완 프리챌 사장 등 벤처기업 사건 - 현대상선 대북송금 사건 준비(나중에 특검으로 넘어가) - 최태원·손길승 회장 SK그룹 분식회계 사건 - 5대 그룹 불법 대선 자금 사건 - 여택수 전 청와대 국장 롯데그룹 수뢰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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