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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표와 차 한잔] “건설사 인수금 6조 넘는 건 문제"

[홍세표와 차 한잔] “건설사 인수금 6조 넘는 건 문제"

술과 친구는 오래될수록 좋다는 말이 있다. 기업 사이에도 마찬가지다. 오랜 기간 함께 동고동락한 친구처럼 느껴지는 기업이 있다. 외환은행에서 일해온 사람이라면 각별한 마음이 드는 회사가 있다. 바로 현대건설이다. 외환은행은 해외금융거래를 위해 설립됐다. 그리고 해외 건설사업에 가장 앞장선 기업은 현대건설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현대건설의 주거래 은행은 외환은행이 됐다. 이들은 함께 동남아, 중동, 아프리카에서 고생했다. 나 역시 외환은행에서 국제부장을 하던 시절 현대건설 관련 업무로 중동을 다녀오던 일들이 기억난다. 현대건설 직원들이 땀흘려 번 돈을 안전하게 한국으로 송금하고 또 이들이 사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보증을 서주는 일이 주업무였다. 한국 정부에 대한 신용마저 낮은 시기라 힘은 들었지만 보람을 느꼈다. 특히 한국을 무시하는 이들 앞에서 보란 듯이 사업을 따내고 공사를 마무리하는 이들이 고맙게 느껴졌다. 그래서 이전에는 ‘현대가 하면 애국’이라는 말이 있었다. 해외에서 돈을 벌어와 국민을 배부르게 했고 세계적 기업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며 한국의 위상을 높여왔기 때문이다. 현대건설은 1966년 한국 최초로 해외에 진출한 이후 전 세계 47개국에서 628건의 공사를 수행해 496억 달러를 번 회사다. 이렇듯 한국 최고의 건설회사로 자리 잡았지만 참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경제 외적인 이유가 현대건설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대북경협사업에 무리한 투자를 벌이다 회사는 부도를 맞이했고 사주(社主)마저 투신자살하는 운명을 맞았다. 현대건설 사람들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사건이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 현대건설은 다시 일어섰다. 워크아웃에서도 벗어났고 5년치 25조원의 공사도 계약해 놓은 상황이다. 진행 중인 대우건설 매각이 마무리되면 현대건설도 새 주인을 맞이하게 된다. 지금 현대건설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1978년 현대건설에 입사해 30년 가까운 시간을 일해온 이종수 현대건설 사장을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는 담담히 말했다. “건설업계 1위는 현대건설 자리입니다.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바쁘신 중에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힘든 시기를 잘 넘기셨습니다.
“저희가 어려울 때 외환은행이 가장 열심히 도와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저희 회사가 이전에 비해 가장 달라진 점을 꼽는다면 투명경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전에도 사외이사 제도는 있었지만 유명무실했습니다. 지금은 사외이사들의 활동이 가장 뛰어난 회사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건설업 종사자에 대한 국민의 이미지가 나쁘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저희 현대건설에서 부정과 비리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이 사장은 거듭 투명화된 경영구조를 강조했다. 이는 아픈 경험에서 나온 고백이기도 하다. 현대건설이 험난한 길을 걸어온 배경에는 불투명한 경영환경이 있었다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이 사장의 말투에는 이런 일을 다시는 겪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섞여 있었다. “지난 5월에는 2000년 이후 처음으로 신용등급이 BBB-에서 A-로 한 단계 상향 조정됐습니다.” 이 사장은 사장에 취임하며 업계 1위 탈환을 밝혔다. 현재 건설업계 1위는 삼성물산 건설부문이다. 2위는 대우건설이다. 그는 3년이면 가능하다고 한다. “주택·건축 분야를 좀 더 강화하고 다른 부분은 지금 정도의 성장만 유지하면 2~3년 내에 할 수 있습니다.”

16억 달러에 달하는 이라크 미수금도 현대건설을 어렵게 한 원인이었는데 지금은 어떤가요?
“원금의 20%를 받기로 합의했습니다. 이는 파리클럽에서 이라크 재건을 위해 미수금의 20%만 받자는 권고를 받아들인 측면도 있습니다. 저희가 받아야 할 전체 미수금은 16억5492만 달러였습니다. 이 중 20%면 3억3100만 달러입니다. 하지만 이자까지는 계산해 주라고 합의했습니다. 원금에 연간 7%의 이자를 적용하기로 한 것이죠. 저희가 받을 이자 액수는 3억5030만 달러입니다. 합쳐서 6억8130만 달러를 수령하기로 합의를 본 것이지요. 저희가 양보를 하기는 했지만 투자한 원금 이상 받는 데에는 성공한 것이지요.” 현대건설의 이라크 미수채권 총액은 16억5492만 달러다. 하지만 원금은 6억4100만 달러였다. 10억1392만 달러는 원금에 대한 이자였던 것이다. 그래서 이 사장은 원금보다 4000만 달러를 더 받게 됐다고 설명한 것이다. 이라크 정부와의 관계가 우호적이 됐음은 물론이다.

경영도 투명해졌고 미수금 문제도 잘 해결됐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가장 민감한 문제이기도 한 현대건설의 M&A인 것 같습니다.
“그동안 주위에서 많이 들은 질문입니다. 그만큼 많은 관심이 모여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경영이 정상화되면서 채권단이 다른 간판을 달았습니다. ‘주주협의회’로 명칭을 바꾼 것이지요. 외환·산업·우리은행이 주 멤버입니다. 주주협의회에서 M&A 시기와 방법을 결정할 것입니다. 지금 한창 화제가 되고 있는 대우건설 인수합병이 마무리되면 우리 차례가 시작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지금 특별히 결정된 사항은 없다고 들었습니다. 현대건설 인수는 기본적으로 가장 높은 금액을 적어내는 참여자에게 유리하지 않겠습니까.”

현대그룹과 현대중공업에서 인수 의사를 밝히는 것 같던데요.
“현대그룹은 인수 의사를 공개했지만 현대중공업에서는 없던 것으로 압니다. 이들과 따로 접촉한 일도 없습니다.” 이 사장은 현대그룹과 현대중공업 중 어느 곳에서 현대건설을 인수하는 것이 좋겠느냐는 질문에는 그저 웃으며 대답을 피했다. “제가 선호하는 곳이 있다 해도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다만 이번 대우건설 인수에 참여한 업체들을 보면 현대건설 인수에 참여할 이들을 알 수 있겠느냐고 밝혔다. 대우건설 인수를 시도할 정도의 업체들이면 현대건설 인수에도 참여하려는 의사를 보이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대우건설 인수가 8월 정도 결정된다고 하니 현대건설은 그 이후에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겠느냐는 이 사장은 현대건설의 위상을 생각하며 M&A에 신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59년 동안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국민기업입니다. 외국 기업으로 넘어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국민 정서에도 크게 배치되고 특히 외국 기업의 인수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도 어렵다고 봅니다.”

그럼 어떤 회사가 좋다고 생각하시나요?
“현대건설을 잘 알고 있고, 장기적으로 더욱 성장·발전시킬 수 있는 기업이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저희가 보유한 풍부한 경험과 최고의 인재, 기술력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지 알고 있는 기업이 돼야 합니다. 그래야 현대건설은 물론 국가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장은 한국에서 인수합병을 한 회사들을 지켜보면 시너지는 없고 후유증만 심한 경우가 많다는 걱정도 내비쳤다. 그는 인수합병이 진행 중인 대우건설을 예로 들었다. “인수 금액이 너무 높다는 느낌입니다. 6조원을 넘어갈 것 같은데 그럼 매년 수익을 4000억원 이상 내야 합니다. 우리의 경우 지난해 3200억원이었습니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지요. 주주들이야 많이 받을수록 좋아하겠지만 경영인은 회사의 미래를 생각해야 합니다. 건실한 회사로 자리 잡고 장기적인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고 봅니다.”

자신의 회사가 M&A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직원들 동향은 좀 어떻던가요.
“저희 임직원은 M&A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회사의 장래가 불안하다고 사장에게 찾아오는 직원이 있겠습니까만은 저도 회사를 경영하며 직원들 분위기가 어떤지 파악할 정도의 눈치는 있습니다. 동요하는 분위기가 있으면 당연히 저도 신경쓸 텐데 직원들이 모든 일을 의연하게 받아들여 주고 있어 참 고맙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일들을 겪고 또 이를 극복하다 보니 강하게 단련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장으로서는 부끄러운 말이지만요.” 이 사장은 얼마 전 직원들과의 만남에서 현대건설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회사의 주인이 바뀔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일은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를 인수하려는 기업은 삼성이나 GS가 아니라고 말해줬지요. 지금 대우건설 인수에 나선 금호, 삼환, 유진 등의 업체들이 또 나설 텐데. 그곳 사람들보다 너희가 훨씬 우수한 인력이라고 말해준 것이지요.” 비록 피인수 회사지만 그들보다 현대건설 직원의 수준은 훨씬 높다는 이 사장은 제대로 된 회사라면 결코 우수한 인력을 건드리지는 못할 것이라고 직원들에게 말했다는 것이다. “사실 저 같은 사장이나 본부장급 임원들은 남아 있기 힘들다고 봅니다. 그래서 걱정은 임원들이 해야지 평사원들이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제 확신이기도 합니다.” 이 사장은 현대건설의 매출은 5조원에 이르고 앞으로 5년간 25조원 분량의 공사를 발주받아 놓은 상태라고 지적한다. 한 취업업체의 조사에 의하면 가장 일하고 싶은 건설사 1위로 꼽히기도 했다. 주위에서 이런 평가를 받을 정도로 견실한 회사이기 때문에 어느 회사가 인수하더라도 3600명의 현대건설 임직원을 그대로 끌고 가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직원들이 정말 무사할 수만 있다면 일단 경영자로서 책임은 다했다고 봅니다. 하지만 59년 역사의 ‘현대건설’ 이란 이름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어려운 질문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많은 분이 궁금해 했습니다. 현대건설이 가진 브랜드 파워를 살려야 한다고 봅니다. 현대건설은 전 세계에서 공사를 벌이고 있는 기업입니다. 해외 어디에 가든지 건설현장에서 현대건설 하면 사람들이 알아줍니다. 아무리 마케팅을 열심히 한다 해도 이 정도 인지도를 얻기 어렵습니다. 당연히 지켜야 한다고 봅니다.” 이 사장은 앞으로도 해외 공사를 활발히 할 텐데 무리한 명칭 변경은 도움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심지어 아직도 해외에서는 현대건설이 채권단의 관리에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현대자동차·현대중공업과 아직도 같은 회사인 줄 알 정도로 한국 내 실정에는 무지하지만 현대건설이라는 이름 정도는 알고 있다는 말이다. 얼마 전 대우건설 한 신입사원이 익명으로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불과 입사한 지 6개월 된 직원이 김우중 전 회장 편을 드는 것을 봤습니다. 그는 대우건설 직원들이 아직도 그를 ‘회장님’이라 부르며 존경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세상이 뭐라 하건 공항에서 햄버거 먹으며 뛰어다닌 모습을 실제로 본 사람들은 그를 인정하더군요.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저희 직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 회사 대리 아니 과장급만 돼도 우리 명예회장님 직접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저희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정주영 명예회장님입니다. 우리 회장님은 남의 회사를 인수한 적이 없습니다. 다 본인이 직접 시작했습니다. 현대제철이 있기는 하지만 그 외에는 직접 만들어 세계적인 회사로 키워오셨습니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강하게 추진해 한국 대표 수출기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명예회장님의 이런 경영철학은 지금 ‘현대정신’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사실 저희 어려운 일 많았습니다. 우리 엘리트 직원들 자존심도 많이 죽었고요. 이것을 이겨낼 수 있던 저력은 바로 현대정신에서 나왔다고 봅니다. 이곳에는 모두 안 된다고 말할 때 보란 듯이 일을 성사시킨 인물의 발자취가 남아있습니다. 저희 회사 현관에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직원들이 모금을 해서 명예회장님 동상을 세웠습니다. 정신은 강합니다. 정신이 살아있으면 결국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저희는 알고 있는 것이지요. 제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누가 현대건설을 인수하더라도 반드시 이 정신을 이해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장은 현대의 문화가 상명하복이 중시되는 군대식의 ‘하라면 하라’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전에는 그런 문화가 있었지만 이제 권위주의는 거의 사라졌다는 것이다. 회사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시기에 권위를 찾는 모습은 사라지고 서로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가장 빠른 해결책을 찾아 추진하는 모습이 정착됐다고 한다. 시대가 변하며 현대건설의 문화도 발전한다는 말이다. “현대건설이 60년 동안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60년간 변화에 대응해 왔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화가 있기에 저는 현대건설의 앞날이 밝다고 생각합니다.” 1949년생 1973년 연세대 경영학과 졸 1978년 현대건설 입사 1997년 현대건설 이사대우 2006년 현대건설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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