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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과 현실 경계 허무는 PC 게임

가상과 현실 경계 허무는 PC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실제 인간의 삶처럼 도덕성과 가치관 적용하며 경제도 형성… 다가오는 ‘가상현실 세계’의 맛보기인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 World of Warcraft)가 출시된 지 2년이 다 됐지만 아무도 던전에 쳐들어가 포 호스맨이라고 알려진 일단의 컴퓨터 합성 악당들을 죽이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WOW는 전 세계 700만 명의 이용자가 동시에 참여 가능한 온라인 게임이다. 그러나 숙련된 ‘길드’ 플레이어들(유럽 한 명, 미국 두 명, 중국 한 명)이 자신들이 관리하는 별도의 웹사이트에 최신 정보를 갱신해 올리며 그 목표에 가까워졌다. 마침내 미국 길드의 40인 원정대가 마지막 괴물을 제거했다. 그리고 그들은 용과 드루이드(다양한 동물로 변신 가능)가 아주 실감나는 대규모의 공동체 사회에서 하루아침에 국제적인 스타가 됐다. 실제 세계에서 우리는 헛되이 명예를 갈구한다. 하지만 실상 빈 라덴은 아직도 우리를 괴롭히며, 버스 문은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닫혀 비를 쫄딱 맞힌다. 그러나 WOW의 가상 세계인 아제로스에서 우리가 받는 육체적인 고통은 키보드를 세게 두드릴 때뿐이다. 동료애는 기본이며 영웅이 되는 길은 멀지 않다. 간단히 말해 WOW는 대규모 다중이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MO)이라는 장르에서 가장 진보되고 인기있는 항목이다. “나는 ‘반지의 제왕’ 총천연색 미국판이라고 부른다”고 이 게임 제작사 블리자드 소프트웨어의 크리스 메첸 제품개발 담당 부사장은 말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에게 이것은 단순한 게임이 아니다. 하나의 도피처이자 머리를 떠나지 않는 망령이며 집이다. 칼을 휘두르고 주문을 걸며 괴물을 죽이는 이 게임을 즐기려면 보통 소프트웨어 구입에 50달러, 그 후 매달 온라인에 접속해 게임을 즐기는 데 15달러의 수수료가 든다. 아시아의 이용자들(캘리포니아주 어바인의 프로그래머들이 게임을 만들었지만 이용자 중 아시아인들이 절대 다수다)은 카드를 구입해 시간당 몇 센트에 이 온라인 게임을 즐긴다. 티셔츠, 재킷, 모자, 보드게임(디지털 게임이 아니다!) 등 관련 기념상품도 있다. 중국에서는 코카콜라 캔 6억 개에 WOW 등장인물들이 새겨졌다. 워크래프트의 줄거리에 기초한 소설도 7종이 나왔다. 그리고 블리자드는 최근 ‘수퍼맨 리턴즈(Superman Returns)’를 제작한 영화사와 계약을 했다. 블리자드사(비방디의 자회사)가 이 게임으로 벌어들인 수익은 지금까지 3억 달러 이상이라고 게임산업 분석가 데이비드 콜은 추산했다. 블리자드의 폴 샘스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아주 많은 이익을 낸다”고만 말했다. 워크래프트가 이전의 블록버스터 게임들과 다른 점은 이용자를 몰입시키는 특성과 설득력 있는 사회적 역학관계다. 이 게임은 다채롭고 지속성을 가진 대안세계다. 풍부한 그래픽에 매혹적인 사운드트랙(블리자드에는 풀타임 전속 작곡가가 두 명 있다)까지 갖춘 중세의 매트릭스다. 소니의 에버퀘스트 같은 이전의 MMO들보다 개선된 게 있다면 게임을 교묘하게 설계해 초보자들이 자신의 수준에 맞게 캐릭터를 개발할 수 있도록 한 점이다. 약탈자들이 이들을 쉽게 죽이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반면 고수들은 계속 갈수록 고난도의 과제들에 직면한다. 회사의 모토가 “배우기 쉽고 정복하기 어렵게”라고 수석 디자이너 롭 파도는 말했다. 몇 달 게임을 한 후 최고 단계(60)에 도달하면 다른 이용자들과 함께 정교한 계획을 세워 던전을 공격하거나 다른 길드와 대대적인 전투를 벌인다. “자녀양육, 강의, 세탁 등 내 일의 90%는 언제나 끝이 없다”고 뉴욕주 로체스터에서 사는 대학 교수 엘리자베스 롤리(레벨 60, 트롤족 성직자)는 말했다. “WOW에서는 과업을 마치고 새로운 단계에 도달할 때마다 목록에서 항목을 지워나갈 수 있다.” 많은 WOW 이용자와 마찬가지로 롤리는 길드 활동에 적극적이다. 순위가 높은 길드 중 일부는 자신들만의 웹사이트, 온라인 포럼, 전설을 가진 미니 사회다. 저명한 일본인 모험자본가 조이 이토(60단계, 놈족 마법사)가 만든 길드가 대표적이다. 이토는 먼저 사업상 알게 된 사람들을 초대했다. 그중 한 명이 자신이 이사로 있는 인터넷 회사의 최고경영자 로스 메이필드(60단계, 인간 전사)다. “워크래프트는 새로운 골프”라고 메이필드는 말했다. “실제로 WOW를 통해 만난 사람의 회사와 계약을 성사시켰다.” 그러나 이토가 WOW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구성원이 다양해졌다. 성직자 캐릭터를 가진 성직자도 있다. 그 밖에 군인, 바텐더, 트럭기사, 변호사, 구글 엔지니어가 있다. 이 길드의 ‘공격 지도자’는 웨스트 버지니아주 파커스버그에서 야간당직 변호사로 일하는 제이미 레이(60단계, 나이트 엘프족 드루이드)다. 공격 지도자는 한 주에 두 번씩 공포의 몰튼 코어로 쳐들어가 막강한 ‘보스 맙’ 괴물들을 죽이기 위한 원정을 준비한다. WOW는 가상 세계지만 길드와 개인 간의 교류는 인간의 선택과 도덕에 의존한다. 게임에 참여하려면 먼저 8개 ‘종족’ 중에서 아바타를 선택한다. 이 종족들은 사람처럼 생긴 얼라이언스와 야수에 가까운 호드 두 파벌로 나뉜다. ‘합성 세계(Synthetic Worlds)’의 저자인 에드워드 카스트로노바 인디애나대 교수(42단계, 성직자)는 한때 ‘호드는 악마’라는 제목의 글을 블로그에 게재해 WOW 커뮤니티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반사회적인 심성을 가진 사람들이나 그 어두운 쪽을 선택한다고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게임에서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은 현실 세계에서도 엄격히 심판해야 한다고 카스트로노바는 믿는다. 게임에서의 나쁜 짓은 예를 들면 현실 세계의 살인광처럼 훨씬 낮은 단계의 캐릭터를 단순히 재미삼아 죽이는 식이다. 문제 행동의 또 다른 사례는 동영상 검색 사이트 유튜브에서 8만 명 이상이 본 비디오에 나온다. 한 길드 멤버가 사망하자(아제로스가 아닌 현실 세계에서) 친구들이 게임 속에서 그를 추모하는 장례식을 열기로 했다. 그 엄숙한 장례식에 경쟁 길드가 쳐들어가 무장하지 않은 조문객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했다. “길드 멤버를 추모하려는 사람들에게 그런 짓을 하다니 불행한 일”이라고 마이크 모하임 블리자드 사장은 말했다. 블리자드의 경영진을 당혹스럽게 만든 또 다른 사건은 게임 속 시위행진이었다. 알몸의 놈족 수백 명이 모여 더 큰 힘을 달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대체로 이 게임 이용자들은 현실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상대방을 많이 배려해준다. 높은 단계의 이용자들은 일부러 시간을 내서 초보자들을 가르치고 모험에 그들을 동반한다. 깊은 우정이 형성되며 그런 관계가 결혼으로 꽃을 피우기도 한다. 타우렌족 신부와 언데드족 신랑이 선더 블러프의 가상 주막에서 백년가약을 맺는다. 워크래프트는 나름대로의 경제도 형성한다. 이용자들이 비축하는 이색적인 황금 방호 장구와 무기들은 거래에서 큰 인기다. 블리자드의 반대에도 ‘골드 파밍(gold farming)’과 ‘파워 레블링(power leveling)’을 통해 실제로 엄청난 달러를 버는 산업도 번창한다(블리자드는 진짜 돈을 써서 게임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행위는 WOW의 평등주의 정신에 위배된다고 생각한다). 골드 파밍은 게임 속 통화를 모아 파는 행위이며 파워 레블링은 다른 사람의 아바타를 빌려 경험을 쌓아 단계를 높이는 행위다. 그런 일은 대부분 장한빈(60단계, 부랑자) 같은 중국 노동자들이 한다. 이 24세의 청년은 학교를 중퇴하고 지방 도시 우쉐(武穴)에 있는 우중충한 아파트 겸 작업장에서 일한다. 하루 여덟 시간 동안 게임 전리품을 수집하면 100개 정도의 골드 머니가 모이는데 암시장에서 30달러 정도 받는다. 워크래프트를 하면 시간을 얼마나 많이 빼앗길지 감이 잡히는가. “나를 찾는 [중독] 환자들이 즐기는 모든 게임 중에서 워크래프트가 가장 인기”라고 임상 심리학자 킴벌리 영은 말했다. 주로 어린이들이 수업 중 곯아떨어지거나 배우자들끼리 싸우는 문제가 발생한다. “게임을 사준 여자 친구가 나를 죽이려 들었다”고 뉴욕시의 배우 알렉스 라스코바(60단계, 놈족 마법사)는 말했다. 그는 종종 여덟 시간씩 게임에 빠져 지내다가 몇 달 전 완전히 게임을 끊었다. 자녀 사용통제 기능도 있지만 대다수 부모는 뭐를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른다. 나는 이 기사를 쓰기 시작할 때에야 아들(60단계, 트롤족 무당)이 WOW의 최고 단계에 이르렀음을 알았다. 현실 세계가 아제로스만큼이나 무서워져가는 경쟁사회 중국에서는 이용자들이 도를 넘는 경향이 심해지는 듯하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한 여성은 며칠 동안 쉬지 않고 계속 WOW를 한 후 과로사했다. 올해 말 오랫동안 고대되던 개정판 ‘불타는 성전(The Burning Crusade)’이 블리자드에서 출시되면 그동안 게임을 끊은 사람들도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이 들리라. 주요 변화로는 종족 둘, 대륙 하나가 새로 생기고, 최고 단계가 60에서 70으로 높아졌다. 수십만 명의 이용자가 다시 한번 최고 단계에 오를 때까지 WOW 서버에 부하가 계속 걸릴 것이다. 에드워드 카스트로노바는 이 모두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가상 세계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말해주는 전조라고 본다. 가상과 실제 영역 간의 경계가 갈수록 모호해진다. “20~30년 뒤에는 놀랄 만큼 사람을 몰입시키는 더 현실적인 세계를 창조하는 기술이 등장한다”고 그는 말했다. “자신이 꿈꾸는 삶의 환상에 들어맞는 세계가 나타난다.” 물론 WOW에 깊숙이 빠진 사람들은 이미 그런 미래에서 산다. “그렇다. 이것은 게임에 불과하다”고 조이 이토는 말했다. “현실 세계가 하나의 게임인 것처럼.” With MELINDA LIU in China and N'GAI CROAL and PEG TYRE in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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