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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등산객 발을 정복하겠다”

“세계 등산객 발을 정복하겠다”

2002년 6월 북한산에서 63세의 한 기업인이 절벽 아래로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고(故) 정동남 K2코리아 사장. 평생을 등산화 및 등산장비 개발에 정열을 쏟던 그였다. 산은 그렇게 산사람을 데려갔고, 그의 장남인 정영훈(36)씨가 회사를 이어받았다. 대표 취임 당시 그의 나이 서른셋이었다. 회사로서도, 개인으로서도 황망스러운 일이었을 터다. 하지만 회사는 흔들림 없이 오히려 사세를 확장해 갔다. 2002년 이 회사의 매출은 340억원이었지만 지난해에는 약 800억원, 올해는 1200억원(이상 출하가 기준) 안팎을 바라보고 있다.

매출 5~7%는 연구개발 투자 K2코리아는 1조2000억원(2006년 추정) 규모의 아웃도어(Outdoor) 시장에서 외국산 브랜드와 치열한 선두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토종 중견기업이다. 1972년 설립된 이 회사의 대표 브랜드인 ‘K2’는 등산객들 사이에 유명하다. 국내 시장점유율은 2위와 근소한 차이로 3위다. 전국에 130여 개의 단독 브랜드 매장을 비롯해 190여 개의 매장이 있다. 최근에는 토털 아웃도어 브랜드 전략에 따라 골프·캐주얼웨어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이다. K2코리아는 지난해에만 150%가량 매출 성장을 이뤘다. 주5일 근무제 등으로 관련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동종 업계에서도 놀라는 수치다. 비결을 묻자 정영훈 대표는 “제품력”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의 얘기를 들어보자. “창립 30주년 때 20년 이상 K2 등산화를 신은 고객들을 대상으로 무상 수선 행사를 했는데, 100명이 넘게 오셨습니다. 그동안 원가를 따지지 않고, 최고의 소재와 최고의 설비로 제품을 만든다는 원칙을 지켰기 때문에 K2가 고객들에게 인정받는 브랜드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K2는 제품으로 승부를 겨룬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등산화나 등산장비는 안전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브랜드 로열티가 매우 중요한데, K2는 이미 대중적인 신뢰의 임계치 수준을 돌파했다”고 자신했다. 그는 그 비결을 철저한 품질관리와 끊임없는 연구개발이라고 했다. K2는 매출의 5~7%를 무조건 연구개발에 쓴다. 적지 않은 돈이다. 8명의 연구원과 3명의 디자이너, 최하 13년차 경력의 AS 요원 등으로 구성된 브레인팀이 개발을 맡는다. 이곳에서 개발되고 디자인된 제품은, 2002년 150억원을 들여 건립한 연건평 3200평 규모의 ‘K2테크노센터’에서 생산되고 전국으로 유통된다. 특히 지난해 국내 아웃도어 업체 중 최초로 자동분류 시스템을 적용한 첨단 물류센터를 열어 효율적인 재고관리와 빠른 배송이 가능해졌다. 하루 1만~1만5000개의 제품 물류처리가 가능해 구축 전보다 10배 정도 빨라졌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AS라인도 웬만한 공장의 생산라인 수준이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품질관리다. 이 회사는 생산되는 전 제품을 ‘전수검사’한다. 정 대표는 “한때 품질관리를 외주에 맡겼지만 형식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 아예 자체적으로 모든 제품을 일일이 검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역시 “제품만은 최고로 만들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다. 건설현장에서 착용하는 안전화 시장에서도 K2는 강자다. 국내 고급 건설안전화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다. 정 대표는 “선친께서 건설현장 노동자들이 우리 회사 등산화를 신고 일하는 것을 보고 기존 기술력을 응용해 안전화 개발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2001년에는 중국 톈진에 공장을 건립하고, 중국 안전화 시장에도 진출한 상태다. K2코리아가 현재의 입지를 다질 수 있었던 것은 유통망 개혁이었다. 정 대표의 표현대로라면 ‘도박’이 맞아떨어져서 가능했던 일이다. 2003년까지만 해도 K2 제품은 등산화 취급점과 할인매장에서 주로 판매됐다. 단독 브랜드 매장은 단 한 개도 없었다. 정 대표는 브랜드 이미지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는 승부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단독대리점을 2004년에 100개, 지난해는 130개로 늘렸다. 그 결과 매출이 대폭 확대됐다. 야근이 없는 회사 K2코리아가 유명 외국산 브랜드가 판치는 아웃도어 시장에서 이 정도 내공을 발휘하는 데는 기업문화도 톡톡히 한몫을 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K2코리아 직원들은 오후 5시30분이면 퇴근한다. 야근 횟수도 연간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생산직·사무직 모두 마찬가지다. 제조업체로는 이례적이다. 기자가 직원들을 붙잡고 “사실이냐”고 묻자 생뚱맞은 질문을 한다는 표정으로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다. K2코리아의 복지정책은 전통이 깊다. 이 회사는 1990년 초 당시로는 생소했던 주5일 근무제를 실시했다. 직원 자녀들에게는 고등학교까지 학자금을 지원했다. 정 대표가 취임한 2003년부터는 자녀 학자금 지원을 대학까지 확대했다. 그것도 100% 지원이다. 또 직원들이 자기계발을 위해 학교에 등록하면 학비의 절반을 회사가 내준다. 사설교육기관 교육과정에 등록할 경우에는 전액을 지원한다. 덕분에 이 회사 이직률은 ‘제로’에 가깝다는 것이 회사 측 얘기다. 노사분규는 K2코리아에는 남의 나라 얘기다. 이에 대해 정영훈 대표는 이렇게 얘기했다. “현장에 계신 직원들이 대부분 저소득층이기 때문에 그런 대물림을 극복하고 역전시킬 수 있는 길은 자녀에 대한 교육밖에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얘기도 했다. “냉정하게 얘기하면 매출목표를 5000억, 6000억원 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죠. (K2는 정 대표와 가족이 지분의 100% 가깝게 갖고 있는 가족기업이다.) 하지만 조직원들 입장에서 보면 회사를 성장시켜 자꾸 자리를 만들어야 오래 일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회사를 키우려는 겁니다.” 2003년 취임 당시 정 대표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마흔 살에 매출 1000억원이 목표”라고 했었다. 일찍 목표치를 채운 소감을 묻자 그는 “3000억원까지는 무난히 갈 것으로 보고, 향후 5년 후에는 6000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회사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가 그때 세운 목표는 50세 때 매출 1조원을 돌파하는 것이다. 이런 비전이 가능한 데는 고 정동남 회장을 보필했던 원로들이 현재도 그대로 남아 정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고, 정영훈 대표가 삼고초려해 모셔왔다는 이태학 이사 등 30대 젊은 임원들의 ‘신구 조화’도 밑바탕이 됐다.

중국 시장 진출도 모색 회사는 잘나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수출 부문은 K2코리아가 풀어야 할 난제다. 현재 K2코리아는 ‘K2’ 브랜드로는 수출을 할 수 없다. ‘K2’라는 미국 유명 스포츠용품 업체와의 상표 소송 결과 ‘K2코리아는 K2라는 브랜드로 수출을 할 수 없고, 미국 K2 역시 한국에서 판매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치명적인 한계로 보이지만 정영훈 대표는 담담하게 이에 대한 해법을 제시했다. “세계 유명 브랜드에 투자하는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상표 문제가 걸림돌이라면 해외에서 자체 브랜드 비즈니스를 하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며 “브랜드를 새로 만들어 해외로 나갈 수도 있겠지만 시각을 좀 더 자유롭게 해보면 꼭 그럴 필요는 없다”고 했다. “해외의 유수한 브랜드를 사는 것이 오히려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정 대표는 중국 시장과 관련해 “아직 아웃도어 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남들이 간다고 같이 따라가는 것은 옳은 길이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은 어차피 가야 할 시장이기 때문에 좀 더 공부해서 새로운 접근법을 찾겠다”며 “실패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차분하게 가는 것도 사업가의 자세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K2코리아는


2대째 아웃도어 분야 ‘한 우물’
1972년 ‘한국특수제화’라는 이름으로 설립됐다. 1970년 초 고 정동남 사장이 1000켤레의 외국 유명 등산화를 직접 해부하며, 한국인과 한국 지형에 맞는 등산화 ‘로바’를 론칭하면서 회사 역사가 시작됐다. 현재는 한국생산성본부 브랜드경영센터가 해마다 두 차례씩 발표하는 국가브랜드경쟁력지수(NBIC)에서 등산복 부문 1위를 차지할 만큼 브랜드 인지도가 컸다. K2코리아는 지난 1989년 당시 세계 최고의 제화 기술력을 갖춘 이탈리아의 최신 제화설비를 도입하고, 세계적인 신발제조 설비업체인 독일 데스마사의 인젝션 기계를 도입하는 등 설비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또 2002년부터는 내부 전산망을 구축하고, 물류센터를 여는 등 투자에 적극 나섰다. 2005년부터는 등산화 및 등산의류를 기능별로 세분화해 생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문 산악인을 위한 익스트림 라인, 등산과 레저를 즐기는 등산 레저파를 위한 트레킹 라인, 편안하고 도시적인 감각의 실용파를 위한 컴포트 등 고객 특성에 맞게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브랜드를 알리는 데에도 적극적이었다. 정영훈 대표는 “매년 마케팅비로 매출 대비 5% 룰은 반드시 지키고 있다”고 밝혔다.


아웃도어 시장은


한·미·유럽 치열한 3파전
F/W(가을·겨울) 시즌이 되면 아웃도어 시장은 전쟁터로 변한다. 연매출의 70% 이상이 이때 발생하기 때문이다. 각종 미디어를 통해 관련 업체 광고가 쏟아지기 시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5일 근무제가 기폭제가 돼 급성장 궤도에 오른 아웃도어 시장은 지난 2001년 5000억원대에서 올해 1조2000억원 규모로 볼륨이 커졌다. 골프나 일반 스포츠의류를 제외한 수치가 그렇다. 이 시장에서는 ‘빅 3’로 불리는 노스페이스·FnC코오롱·K2코리아가 전체 시장의 절반 가까이 점유하고 있다. 노스페이스는 미국 브랜드로 골드위코리아가 수입해 판매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등산화 부문은 부산에 있는 트랙스타와 K2코리아 등 국내 업체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고, 등산의류 부문은 외국산 브랜드가 우위에 있다. 지난해부터는 유명 외제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속속 한국에 입성하면서 기존 노스페이스·팀버랜드·컬럼비아 등 미국 브랜드에 ‘밀레’ ‘라프마’ 등 유럽산이 도전장을 던지는 양상이다. 국내 업체로만 보면, ‘코오롱·LG 대 K2코리아·트랙스타’ 구도로 대기업 대 중견기업 간 대결이 치열하다. 최근에는 영원무역이 ‘영원’이라는 브랜드로 시장에 진출하는 등 춘추전국시대로 들어가는 모습이다. 하지만 관련 업계에서는 “아웃도어 시장에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미 1000억원대 이상 매출을 올리는 브랜드가 주요 백화점을 장악하고, 단독 매장을 확대해 가면서 하위권 브랜드와의 격차를 벌릴 것으로 예상된다. 정영훈 K2코리아 사장은 “지난 몇 년간 급성장해왔기 때문에 앞으로 다소 완만한 성장이 예상되지만, 아웃도어 시장의 외형 자체가 확장 중이고, 소비자 욕구도 높아지고 있어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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