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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조에서 1034조까지 ‘고무줄’

248조에서 1034조까지 ‘고무줄’

국가 부채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계기는 두 가지. 지난 8월 노무현 대통령이 노사모 회원들과의 청와대 간담회에서 했던 발언이 첫째다. 최근 공개된 녹취록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국가 부채는 그냥 낮은 게 아니다, 아주 낮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 알려지면서 전문가들 사이에서 “너무 낙관적인 생각”이라는 비판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또 하나의 계기는 지난 11월 23일 시작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다. 이번 예결특위는 시작 전부터 여야의 격돌이 예상돼왔다.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을 펼쳐야 한다는 여당에 야당이 국가 부채와 재정 건전성을 내세워 반대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예결특위에서 벌어진 ‘예산전쟁’의 중심에 바로 국가 부채 논쟁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예결특위에서의 설전과 노 대통령의 발언이 맞물려 다시 한번 국가 부채 논쟁이 거세질 전망이다.

현 정부 들어 133조→306조 우리나라 국가 부채는 보통사람들의 눈에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현 정부 들어 증가속도가 가파르기 때문이다. 정부 출범 직전인 2002년 말 133조6000억원이었던 나랏빚은 2005년 248조1000억원으로, 올해는 283조8000억원으로 늘었다. 임기가 끝나가는 내년 말이면 306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나랏빚이 2.3배나 늘어나는 꼴이다. “빚은 이자를 먹고 산다”는 말이 있다. 올해 정부가 지불해야 할 이자만 10조원. 1년 예산의 5%에 이른다. 그렇다면 국가 부채가 “그냥 낮은 게 아니다, 아주 낮다”는 말은 잘못된 것일까? 잘못된 보고를 받았거나 국민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말일 수도 있다. 대통령의 발언이 맞는지를 보려면 ‘근거’를 찾아야 한다. 근거가 있는 것일까? 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발언에 몇몇 단어를 덧붙여 새 문장을 만들어야 한다.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에서 국가 부채가 차지하는 비율은…”이라는 문장이다. 이런 의미라면 대통령의 말이 맞다. 국가 부채는 ‘그냥 낮은 게 아니라 아주 낮다’. 올해 추산되는 국가 부채 규모를 GDP 대비로 환산하면 32.3%. 2002년 19.5%에 비하면 1.7배가량 늘었지만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아직 많이 낮다. 2005년 기준으로 일본의 부채 비율은 무려 180%나 된다. 캐나다나 이탈리아의 경우 지난 수년 동안 국가 부채가 100%를 넘나들고 있다. 2005년 기준으로 미국 역시 64%에 이른다. ‘선진국 클럽’으로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77.7%. 이 정도면 우리나라 국가 채무는 대통령의 말처럼 아주 낮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가 이 같은 생각을 “잘못됐다”고 비판한다. “선진국과 비교해 우리 재정에 여유가 있다는 시각은 문제입니다. 국가 채무에 대한 이해와 기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국제 재정 비교는 대단히 조심스럽습니다. 비교를 하려면 국제 기준에 일관되게 맞춰야지요.”(옥동석 인천대학교 무역학과 교수) 통화안정증권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시중에 풀린 돈을 흡수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이 증권은 미국의 재정증권에 해당되는 것으로 미국 정부는 이를 ‘국가 부채’로 산정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기준’의 문제가 제기되면 얘기는 훨씬 복잡해진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국가 부채이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아니라는 말인가?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은 10년 전부터 그 기준을 제시해왔다.
“국가 부채는 종류가 다양합니다. 직접 빚을 낸 ‘직접 부채’와 빚을 내지는 않았지만 보증을 선 ‘보증 부채’가 있지요. 이 두 가지는 대부분 전문가들이 국가 부채로 여깁니다. 거기에 사실상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하는 공적연금이나 통화안정증권 잔액 등의 부채까지 포함해야 합니다. 그런데 정부는 주로 직접 빚을 낸 ‘직접 부채’만 ‘국가 부채’로 인정합니다.” 이 기준에 따르면 국가 부채는 몇 배로 는다. 2005년 말 기준으로 정부가 ‘국가 부채’라고 발표하는 직접 부채액은 248조1000억원. 여기에 보증 부채액 55조원과 4대 공적연금 책임준비금 부족액 434조6000억원 등을 합하면 1034조원에 이른다. 이 의원은 “이것이 사실상 국가가 져야 할 부채”라고 주장한다. 이 계산대로라면 2005년 기준으로 GDP의 140%나 된다.
부채 느는 속도가 더 문제 그렇다면 이 수치를 근거로 우리나라의 GDP 대비 국가 부채 규모가 일본을 제외한 다른 선진국보다 크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이 의원이 말하는 ‘사실상 국가 부채’에 해당되는 부채 항목 전체를 국가 부채로 산정하는 나라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직은 국가 부채의 ‘실체’가 드러난 것이 아니다. 분명 248조원에서 1034조원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2005년 옥 교수는 한 논문에서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직접 부채에는 중앙 및 지방정부 부채와 일부 기금이 들어 있습니다. OECD나 국제통화기금(IMF) 기준을 보면 우리나라의 전체 기금 중 10여 개 정도가 추가돼야 합니다. 여기에 정부 산하에 있는 비영리기관의 부채까지 포함시켜야 하지요.” 이런 식의 계산이라면 2005년 기준으로 국가 부채는 331조3000억원으로 GDP의 45% 수준에 이른다. 하지만 이한구 의원은 이런 셈법에 동의하지 않는다. “아무리 완화한다 해도 최소한 한 가지 항목은 더 추가돼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한국은행의 통화안정증권이다. 이 의원의 계산에 따르면 국가 부채는 옥 교수의 추정치인 331조3000억원에 통화안정증권 155조2000억원을 더한 486조5000억원에 이른다. 결국 이 의원은 아무리 낮게 잡아도 우리나라 국가 부채는 GDP 대비 66.1%라는 것이다. 그런데 옥 교수는 최근 다른 기준을 제시했다. “지난 2005년 산출된 수치에 통화안정증권과 각종 기금이 추가돼야 했다”는 것이다. 옥 교수는 “이전 분석에서 빠진 항목을 추가한다면 2005년 기준으로 했을 때 OECD 평균에 근접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국제 기준에 비춰봤을 때 우리나라 국가 부채는 2005년 현재 최소 486조5000억원에서 572조1000억원, GDP 대비 66.1~77.7%로 좁혀진다. 정부 계산의 두 배 전후다.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는 권영빈 중앙일보 사장(앞줄 오른쪽)과 신동훈 조선미술협회장(왼쪽)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규모’보다 ‘속도’에 더 초점을 맞춘다. 안종범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가 부채 규모를 외국과 비교한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며 그보다는 “빚이 얼마나 빨리 늘고 있느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면에서 보면 “한국은 어느 나라보다 빠르고 그래서 위험하다”고 경고하는 것이다. 이 ‘위험’은 급증하는 이자 규모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분석이라면 정부는 당연히 긴축재정을 해야 한다. 안 교수는 특히 이 점을 중시한다. “현재 정부 재정운용은 매년 재정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채권을 발행하는데 그 규모가 8조~9조원 규모”라며 이로 인해 부채 규모가 지속적으로 커지므로 당장의 나라 살림을 흑자로 꾸려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 ‘긴축’은 곤란하다. 곧장 경기둔화와 기업경영 악화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채로 나라가 위태로우면 모를까, 현재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삼성경제연구소 손민중 연구원은 “우리나라 재정은 아직 건전하고 여력이 있다”고 분석한다. 따라서 “경제성장에 부응하는 재정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한다. 재정과 국가 부채에 대한 지나친 우려는 자칫 긴축재정 운용으로 경제성장을 압박할 수도 있다고 강조한다. 국가 부채. 어디서 어디까지인가? 문제인가 아닌가? 재정운용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경제 및 경제정책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합의를 구하지 않는 한 논란과 혼란은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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